[나의 이야기] 물러날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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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날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 (1)

한상권(중세사2분과)

1. 1%만 응한 ‘일요일 중간고사’

 

  총학생회가 총투표를 거쳐 수업거부에 돌입하자 학교측은 ‘일요일 중간고사 실시’로 맞대응하였다. 학교측은 “몇몇 극렬 소수 학생의 ‘수업거부’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일요일인 4월 22일 덕성여고에서 중간고사를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 학생들이 수업거부 투쟁으로 책상을 다 빼놓아 학교에서 시험을 볼 수 없게 되자 안국동에 있는 같은 재단의 덕성여고에서 시험을 치르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게다가 “학습권을 지키겠다는 학생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며 ‘학교 밖 중간고사’를 강행하면서 ‘재시험 불가’라는 강경한 방침까지 세웠다.

  학교측은 빠른우편과 전화 등을 통해 전교생에게 “22일 덕성여고에서 교양과목 중간고사를 치를 것임”을 통보했다. 평일도 아니고 남들 다 쉬는 일요일 날, 멀쩡한 학교를 놔두고 고등학교로 시험을 보러간다? 시험보기 전날 집집마다 전화해서 “시험 보러 오라” “장소는 홈페이지에 설명되어 있다”라고 통보하는 학교. 집에 없었으면 전화를 못 받았을 거고 시험 보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시험 당일인 22일 덕성여고 앞에서는 시험거부를 호소하는 학생회측과 시험을 강행하려는 학교당국 간의 대치상황이 오전 내내 계속되었다. 열 받은 학생들이 아침부터 교문을 막고 교직원들과 학교측 교수들의 덕성여고 출입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학교측의 ‘시설보호요청’으로 경찰과 의경이 투입되었고, 여경들이 몰려와 앞줄에 있는 학생들부터 무자비하게 전경차에 집어넣었다. 학생들은 단지 시험을 보지 말라고 외쳤을 뿐인데 학교측은 그런 학생들을 잡아가라고 공권력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닭장차를 타면서도 울면서 애원하는 친구들

“여러분, 시험보지 마세요. 제발 다 같이 치루지 말아요”

그러자 시험 보러 온 학생들이 눈물을 훔치며 돌아선다.

“어떡해요, 쟤네들은 우리 때문에 닭장차 탄 거에요.”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80년대적 장면이다. 쓰불(덕성여대 98학번 Karma, 딴지일보(2001.5.11. 금요일))



<사진 1> 덕성여대 학교측의 시설보호 요청에 따라 학생들을 강제연행하고 있는 여경들 ⓒ 김자영


<사진 2> 연행된 학생들 ⓒ 오마이뉴스
  22일 덕성여고에서 치루는 시험에 응한 덕성여대 학생들은 전체 응시대상자 1,300여 명 가운데 10여 명에 불과했다. 시험에 응한 학생은 부끄러운 마음을 자유게시판에 올려 용서를 구했다.


돌맞을 각오를 하고…부끄럽습니다…

  저는 오늘 시험을 본 학생입니다. 오늘 오후에 학교에 갔었는데요.
그 때까지만 해도 수업거부에 여전히 반대였었고, 시험을 봐야 한다는 생각이어서… 교문 앞에는 학우들이 모여 있었고 전경들이 있었는데 그냥 그런가보다 했어요. 밖에는 상황 파악을 하려고 온 또 다른 학우들이 있었고 시험을 볼지 말지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는 거 같았습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어떤 여자 교수님께서 시험을 볼 의향이 있는 학우들을 데리고 가시길래 음 …많은 망설임 끝에 저도 따라 갔습니다. 시험장에 들어가서도 마음이 불안하고 문제도 제대로 풀지 못했어요. 휴…들어온걸 후회도 하고…그렇게 착찹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가서 저녁때 뉴스를 보니까 제가 보지 못했던 아침에 일어났던 끔찍한 일들이 보도도 되고 있는 거에요. 세상에… 많은 학우들이 전경에 폭행을 당하고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학우들은 무엇 때문에 희생하며 저런 일까지 당해야 하는지… 반대 입장이었던 저까지 가슴이 뭉클해지고 슬프더군여.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고… 솔직히 이제까지 ‘나는 학교에서 정해진 일정대로 수업 듣고 시험 보는 건데 내가 무슨 잘못이냐’하고 생각했었고, 학교 직원들이 학생들을 폭행했다는 소리를 들어도 그냥 말 그대로 들은 것이어서 넘어갔는데, 제 눈으로 확인하고 게시판에 올려진 글들도 보니까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여. 지금 혼란스럽고 답답하고 속상합니다…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여…그리고 시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오늘 시험을 봤던 저로서는 다시는 도저히 시험을 못 볼거 같아요. 시험 안보는 것보다 더 아음이 아프고 불편한 거 같아서…돌 맞을 각오하고 썼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될 거 같아서여…(manes) 



  다음날은 장소를 옮겨 종로구 운니동 캠퍼스에서 중간고사가 실시됐다. 권순경 총장직무대리는 “총학생회의 시험장 봉쇄로 중간고사가 파행을 겪고 있지만 시험을 치르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재시험은 없다”고 학생들에게 통보했다. 그러나 학교측의 재시험불가 방침에도 불구하고 22일 15명, 23일 20명만이 시험을 치루었다. 시험에 응한 학생은 전체 응시대상자 1,300여 명의 1%에 불과하였다. 그럼에도 학교측은 응시하지 않은 학생들에 대해 ‘재시험을 실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침을 계속 고수함으로써 학생들의 분노를 촉발했다.

2. 소풍을 나온 게 아니랍니다


‘일요일 중간고사 강행’은 학생들을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만든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수업거부 9일째를 맞이한 4월 26일 오후 2시, 총학생회가 1,200여 명의 학생들이 운집한 가운데 ‘덕성여대 문제해결 촉구를 위한 덕성인 결의대회’를 종묘공원에서 개최했다. 덕성사태의 심각성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종묘공원에서 집회를 갖고 거리 선전전을 하려 한 것이었다.


<사진 3> 덕성여대 문제해결 촉구를 위한 덕성인 결의대회 ⓒ 오마이뉴스 김미선

  5,000여 명의 덕성여대 학생 중 20%를 상회하는 이 날 집회 참가자 수는 개별학교 규모의 학외 집회로는 이 해 들어 최대 인원이었다. 종묘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박원국 이사장 퇴진 ▲교수 재임용탈락 처분 철회 ▲교육부의 특별감사 실시 ▲관선이사 파견 ▲사립학교법 개정 등을 요구하였다.

  이날 집회에서 총학생회장(김나영, 정치 4)은 “내가 일학년 때 이 자리에서 똑같은 문제로 선배들과 투쟁했다. 언제까지 후배들에게 안 좋은 학교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가?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이 하나로 뭉쳐 박원국 족벌체제를 뿌리 뽑아야 한다. 아름다운 덕성의 모습을 후배들에게 남겨주자”는 발언을 하였다.

  그가 1학년 때인 4년 전인 97년 10월 17일, 덕성여대 교수와 학생 1천 여 명은 “덕성여대 정상화를 위해 즉각 관선이사를 파견하라”며 종묘공원에서 집회를 열었다. 한상권 교수의 부당한 재임용탈락과 146가지의 불법 부당한 학사간섭으로 박원국 재단 이사장이 해임된 이후 학교 정상화를 촉구하는 집회였다. 그러나 4년 뒤인 2001년 4월 26일, 교수와 학생 1,200여명이 똑 같은 문제를 가지고 다시 종묘공원에 섰다.


<사진 4> 종묘공원집회(2001.4.26) ⓒ 오마이뉴스 김미선

  이날 집회에서 입학과 동시에 수업거부에 동참하고 있는 01학번 신입생들은 ‘새내기 선언’을 낭독, ‘재단퇴진’투쟁에 동참할 것을 선언하기도 했다.


  우리 새내기들은 2001년 덕성에 입학하면서 박원국 재단의 폭력적인 행동과 그 비민주성에 많이 놀랐습니다. 한편, 많이 혼란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3월 29일 용역깡패 등장과, 교직원들의 폭력적인 탄압들…또 어용 교수님들의 모습들…전투경찰들의 폭력 연행들을 보면서 이제는 혼란스러워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선배님들과 함께 당당하게 우리의 깃발을 들고 힘차게 투쟁하겠습니다. 우리는 덕성의 새로운 주인으로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에 최선을 다할 것을 선서합니다.


  집회에 참석한 교수와 학생은 서양화과 학생들이 그린 덕성학원 설립자 차미리사 선생의 초상화를 들고 명동성당까지 거리행진을 하였다. 종묘집회는 차미리사 선생이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역사적 순간이기도 했다.

종묘집회 후, 교수들은 덕성사태 해결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교육부에 항의하기 위해, 4월 30일부터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정부종합청사 후문 앞에서 특별감사 실시와 관선이사 파견을 요구하며 1인 시위에 돌입하였다


<사진 5> 이반교수는 그림 안 그리고 여기서 뭐하나? (대학생신문 132호, 2001년 5월 15일)

이어 함윤정 학생(국문과 4)이 정부종합청사 정문 앞에서 목숨을 건 열흘간 단식과 함께 1인 시위(5.10-5.19)를 하였으며 5월 21일부터 민주동문회 소속 졸업생들이 교협 1인 시위에 동참하였다. 덕성여대 교수, 학생, 졸업생 등이 총체적으로 나서는 교육부 앞 1인 시위에 대해 언론은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보도해 주었다. 오마이뉴스(4.30)를 비롯하여 한겨레(4.30), KBS 텔레비젼(4.30), 노동일보(5.11), 한겨레(5.15), 코리에 헤럴드(5.17), 대학생신문(5.17), 내일신문(5.18), MBC 텔레비젼(5.21) 등이 앞장서서 덕성 구성원 주장의 정당성을 널리 알려 주었다.

3. 내가 그냥 그 앞에서 죽을까요?

  5월로 접어들면서 등교 투쟁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눈에 띠게 줄어들었다. 넉넉잡고 2주일 정도면 끝날 것이라는 총학 지도부의 말을 믿고 수업거부에 동참하였으나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학생들이 동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학생들의 불안한 마음을 교수들이 파고들었다.


“수업이나 시험을 거부하면 모두 F학점을 주겠다”
“97년에도 나는 수업거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F학점을 준 적이 있다. 너희들도 얼마든지 그렇게 만들 수 있다”
“수업거부를 하면 대외 이미지가 손상되어 취직이 안 된다”
“한 명이 와도 수업 한다”
“교육부 법이 바뀌어 1명이 출석해도 수업이나 시험이 인정 된다”
“너희들은 교수들 싸움에 이용되는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다 수업 받는데 너만 수업 안 듣고 뭐하느냐”


  특히 1학년 학생들에게는 개별적으로 전화 연락까지 하여 새내기들이 많이 불안해하고 있었다.

  총학생회가 동요하는 학생들을 다잡기 위해 5월 9일부터 18일까지를 학자 총력투쟁기간으로 설정하였다.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모아 강력한 투쟁을 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총력투쟁기간 동안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가 사법처리 위험 속에 학교 안에서 단식에 돌입하였으며, 국문과 학생회장 함윤정이 광화문 교육부 정문 앞에서 단식투쟁과 1인 시위에 돌입하였다.


<사진 6> 스승의 날을 교수님과 함께 보내고 싶어요(함윤정) (노동일보 2001.5.11)

단식 6일째인 5월 16일, 함윤정은 교육부 사이버 소리함에 글을 올려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교육부를 질타하였다.


내가 그냥 그 앞에서 죽을까요?

오늘은 비가 왔습니다. 단식과 1인 시위 6일째지요.
억울하기도 합니다.
집에 가면 맛있는 밥과 반찬이 있고 돈만 있으면 맛난 거 사먹을 수 있는데
내가 왜 이렇게 소음공해 심하고 먼지 많은 그리고 사람들의 눈길 속에서 비쩍비쩍 말라가야 하는지.
도대체 교육부는 이제사 뭘 하겠다는 것입니까?
그렇게 사람들이 굶으면서까지 온 몸으로 항의하는데 이제 겨우 감사라니?
언제까지 우리는 수업도 못 듣고 비쩍비쩍 말라가면서 그리 있어야 하나요?
사람하나 나가 죽어야 정신 차릴까요?
차라리 못 먹는 거 그냥 아예 먹지 말고 그 앞에서 뒹굴다가 죽을까요?
들리십니까? 덕성인들이 가슴을 쳐대며 우는게?
우리가 장난으로 이러는 것처럼 보이시냐구요?
그새 6킬로가 빠졌더군요.
당신들은 그  동안 밥 잘 먹고 잠 잘 잤으니 6킬로는 더 쪗겠군요.
억울합니다.
정말 이 나라 현실이.
내가 왜 이 땅에 태어났을까하는 생각마저 드니까요.


  함윤정의 단식 투쟁은 처음에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는 듯했다. 그러나 며칠 후 교육부 관계자가 찾아와 “조만간 교수 재임용 문제와 관련해 감사를 실시할 예정이니 단식을 풀어라”며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교수 재임용 철회는 우리 주장의 하나 일 뿐”이라며 “박씨 일가의 완전한 퇴진과 관선이사가 파견할 때까지 끝가지 싸울 것”임을 강조했다.

  16일 오후 5시, 덕성여대 학생들 40여 명이 집회가 금지돼 있는 정부종합청사로 모여들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부패재단 박원국 일가 퇴진” “덕성학원에 대한 교육부 감사”를 외치며 시위하던 시위대열에서 빠져나온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은 교육부 정문 앞에 연좌한 채 기습시위를 하였다.


“박원국 일가 퇴진하라”
“교육부 장관을 만나고 싶다”
“교육부 항의방문만 7번째다. 왜 교육부장관은 우리를 만나주지 않는가”


  4-5차례 이어지는 경고방송에 이어 여경들이 학생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여경에 의해 강제 연행되었으며 48명 전원이 끌려갈 때까지 남아있는 학생들의 구호는 계속됐다.


<사진 7> 덕성여대 학생 40여명은 5월 16일 오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교육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연좌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 다음날 교육부는 학생들 수업거부가 한 달 넘게 진행된 덕성여대에 대해 21일부터 30일까지 특별감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수업거부, 혈서, 삭발, 교육부 앞 단식 투쟁이 마침내 교육부 감사를 이끌어 낸 것이다. 실제로 학생들이 수업거부에 돌입한 이후 교육부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수업거부 이전에도 학생대표가 교육부 면담을 갔으나 교육부는 “덕성여대 문제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말로 일축하였다. 하지만 학생들이 수업거부에 돌입하면서 덕성여대사태가 여론의 주목을 받자 결국 교육부는 특별감사를 실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육부는 특별감사를 통해 ▲교수재임용심사 절차의 적정성 ▲재임용 탈락 판정 기준의 타당성 여부 등 주로 인사문제를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 시정조처를 내리고 제도개선책도 함께 모색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특히 덕성여대에 대해서는 다른 대학보다 2배 이상의 감사요원을 투입해 교원인사 이에도 학교운영 전반에 대해 강도 높은 감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하였다. 교육부 관계자는 “덕성여대는 인사 문제 외에도 이사회 구성의 적법성, 재단의 부당한 학사개입 여부 등 교수협의회가 주장하고 있는 다른 사항도 점검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 감사가 시작되자 학생들이 감사실이 설치된 3층 행정동 앞에서 책임 있는 감사를 요구하며 각 단대별로 릴레이 하루단식 침묵시위를 시작하였다.


<사진 8> 본교, 교육부 특별감사 실시 (덕성여대신문 450호, 2001.5.28)

교육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감사관은 감사 첫날 학생 대표에게 “감사까지 들어왔으니 이제 행정동 점거를 풀어라” “이런 식으로 하면 감사 못한다”며 학생들을 몰아세웠다. 이와 같은 교육부 감사관의 위압적인 태도를 규탄하고, 겉치레 감사가 아닌 공정하고 책임성 있는 감사를 촉구하기 위해, 감사실 앞에서 단식․ 침묵시위에 돌입한 것이다.

  학생들은 감사관실 앞에서 ‘공정한 감사 실시’ ‘사학비리척결’ ‘관선이사 파견’ ‘박씨일가 퇴진’ 등의 구호를 목에 걸고 침묵시위를 하였다. 아무 말도 않고 얌전히 앉아있는 학생들에게 교무처장이 폭언을 퍼부었다.


“물 뿌려 버리기 전에 나가라. 아님 오줌을 뿌리던가”
“오줌을 뿌리던지 확 똥물을 뿌려버리겠다”
“냄새 난다. 너네 목욕도 안 하지?”
“(음식을 먹으며) 너네도 먹고 싶지? 쟤네 먹고 싶어서 쳐다보는 것 좀 봐”


  그는 전날 6시 화제집중(모자이크 여인의 주인공)에 출연하여 “80% 학생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느니, “삭발한다고 뭐 달라질 줄 아냐”느니 하는 등 망언을 한 주인공이기도 했다.

  감사 5일째인 25일부터는 배혜정(영문과 3)이 공정한 감사를 위한 총력 단식투쟁을 결의하였다.


  어제도 감사관실 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이고 왔습니다. 학교 측에서는 서류 준비다 뭐다해서 굉장히 분주한 모습을 보이더군요.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학교측에서는 감사관측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학교측은 지금 총력을 다해 감사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덕성인들의 조금은 느슨해진 모습은 우리의 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싸움은 지금부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오천 덕성인들이 분연히 일어난다면, 그리고 그 힘을 학교측과 감사관들에게 보여준다면 우리가 원하는 바대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가까이서 감사관들을 긴장시킬 수 있도록 오늘부터 침묵시위와 더불어 감사기간이 끝날 때까지 총력단식투쟁을 벌이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발맞추어 교수협의회 교수들도 교육부의 감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릴레이 철야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4. 6월 2일 새벽, 덕성여대에서 벌어진 일

학생들의 전면 수업거부가 시작되면서 강의실 책걸상을 둘러싼 학교측과 학생들의 ‘넣기-빼기’ 줄다리가 계속되었다. 학생들은 총투표를 통해 확정한 수업거부 실천투쟁의 하나로 강의실 책상-걸상을 모두 끌어내 대강의동에 쌓아두었다.


<사진 9> 덕성여대 무기한 수업거부 (한국대학신문 2001.4.23).

이에 맞서 학교 측은 용역업체를 동원, 학생들이 빼낸 책걸상을 다시 강의실에 집어넣었다.


  요새는 학교에서 밤마다 마술쑈가 벌어지는데 학생들이 빼서 대강의동에 쌓아놓은 책상이 아침마다 강의실에 넣어져 있는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용역을 불러서 마술쑈를 한 학교는 학생들에게 엄중 경고한다.

  “강의실 책걸상을 다시 빼내지 말 것. 책걸상은 수업을 원하는 학생들의 요구로 다시 들여놓았음. 책걸상을 1회 다시 들여놓은데 5백만 원의 비용이 발생함. 대학 당국은 책걸상을 다시 들여놓을 것임. 만약 이를 방해하거나 다시 들어내는 행위가 발생할 경우 그 행위자에게 전액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임.”


 


  아니, 누가 5백만 원이나 드는 용역을 쓰라고 했는가? 강의실 책상을 빼기 위해서는 덕성인 400여 명의 4시간의 무임금 노동이 필요하다. 왜 이 노동은 무시하는가! 그 5백만 원은 우리 등록금에서 나가는 것이 아닌가?(덕성여대 98학번 Karma, 딴지일보(2001.5.11. 금요일))


  네 차례에 걸쳐 용역업체를 동원, 학생들이 빼낸 책걸상을 강의실에 집어넣은 학교측의 다섯 번째 강의실 책걸상 넣기 작전은 다름 아닌 한밤 남몰래 용접작전이었다. 학교측은 무려 2천만 원 가량이나 되는 거액의 학생 등록금을 들여, 감사가 끝난 직후 남몰래 책걸상을 쇠사슬로 묶고 용접하도록 지시하였다.

  6월 1일 밤 10시 경부터 그 다음날 새벽 2시 40분 사이 모 용역업체(사장: 승경용)의 인부 250여명이 교실 밖에 쌓여 있던 책걸상 2,570개를 18개 혹은 20개씩 묶어 용접하였다. 인부들은 정문이 아닌 학교 담장을 학생들 몰래 사다리를 타고 넘어 들어왔으며 책걸상을 쌓아둔 대 강의동으로의 진입도 현관이 아닌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용역들은 불도 켜지 않은 채 무전기로 서로 상황을 주고받으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강의실 책걸상 배치조가 인문대 강의실에 책걸상을 배치하면, 쇠사슬조가 배치한 책걸상들을 다시는 강의실 밖으로 빼내지 못하도록 앞뒤 네 개의 책상끼리 쇠사슬로 감았다. 이어 용접조는 쇠사를 고리가 풀리지 않도록 용접작업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개씩 묶인 책상끼리 또 다시 쇠사슬로 감고 용접을 해 20여 개의 책걸상을 한 묶음으로 만드는 작업을 한 것이다.



<사진 10> 덕성여대는 6월1일 밤 10시부터 6월2일 새벽2시까지 용역업체를 동원, 강의실 의자와 책상에 쇠사슬을 감고 용접을 시도했다. ⓒ 오마이뉴스 김미선

  인부들은 새벽 2시까지 인문사회관 30여개 강의실의 책걸상을 4개씩 쇠사슬로 묶고 용접을 마쳤다. 용접공들은 건물 입구를 철재 사물함으로 막아 학생 진입을 막은 후 조명을 끄고 손전등만을 사용하여 작업했다. 이즈음 행정동에서 농성 중이던 학생들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작업하는 외부용접공들과 인부들에 거세게 항의하자 이들은 작업을 계속하기 위하여 스크럼을 짜면서 학생들의 접근을 막는가 하면 심지어는 학생들을 향하여 소화기를 뿌리고 사물함으로 밀치는 등 강력하게 저항하여 학생들에게 상해를 입히기까지 하였다.


우리가 무슨 불이냐

우리에게 소화기를 뿌리는 것을 보면 우리가 불로 보였나 보다. 그리도 우리가 무서웠나? 얼마나 무서웠으면 그들은 그 안에서 쑥덕거리더니 결국 생각해 낸 대안이라는 것이 소화기였을까?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소화기였으니 망정이지, 만약 정말 위험한 물건이 그들 눈앞에 보였으면 아미 서슴없이 그것도 들이밀었을 것이다.

소화기를 뿌리는 것을 봤을 대 나는 무슨 가스총이라도 쏜 줄 알았다. 어찌나 뿌옇던지 시야를 확 가리는 것이 매캐했다.

다 큰 아저씨들이 우리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으면 갖은 애를 쓰면서 끝까지 버팅겨 보겠다고 사물함으로 가로막고 서 있었을까? 그것도 제대로 가리고 있는 것도 아니라 정말 허술하게 사물함을 등에 이고 있었다. 꼭 사물함을 업고 있는 형상으로 말이다.
그렇게 무서우면 하지 말아야지, 어설프게 하는 꼴이란…
오늘 쇠사슬로 묶여져서 한 쌍이 되어버린 4-6개의 의자를 보면서, 아, 정말 박원국이라는 X은 이제 못할 짓이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완전 개싸이코였다. 어찌 그리도 당돌하고 앙큼한 생각을 했을까?(98010224)


  학생들의 거센 항의에 밀려 새벽 4시 45분 경 용역들은 책상 일부는 용접하지 못한 채 철수하였다. 이 와중에 용접용 헬멧, 수많은 쇠사슬들, 재단 건설고문 이경주가 박원국 이사장에게 제출한 “강의실 의자 연결 장치 비용 보고”란 이름의 작업계획 보고서 등을 남겨 놓고 떠났다.


<사진 11> 강의실 의자 연결 장치 비용보고.

이들이 바쁘게 건물을 빠져나가며 떨어뜨리고 간 문건에는 놀랍게도 각 건물 및 책걸상의 배치도와 박원국 이사장에게 설치비용을 청구하는 내용의 청구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문서는 이번의 책걸상 반입과 용접작업이 박원국 이사장의 지시와 지휘 하에 이루어진 치밀한 작전이었음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권순경 총장직무대리는 “4월 이후 일부 학생들이 책걸상을 대강당으로 옮기는 등 수업 방해를 계속해 왔다” 며 “21일까지 1학기 학사일정을 마쳐야 할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학교당국은 “수업 거부 중의 책걸상 반출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며 자신들의 행위를 애써 정당화 하려 하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교육부 특별감사 이후 수업복귀를 원하는 여론이 높아짐에 따라 총투표를 통해 수업에 복귀할 것을 결정한 상태였다.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수업 재개에 관한 총투표를 실시하여, 총 재적인원 5,218명 중 2,846명(54.5%)이 투표하여 1,821명(63%) 찬성으로 6월 4일부터 모든 과가 수업에 복귀하기로 한 것이다. 

  책걸상을 쇠사슬로 묶고 용접하라는 박원국 이사장의 지시는 파행적인 학사행정 간섭이며, 대학의 자유정신을 쇠사슬로 묶고 노예화하려는 반 교육적인 테러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총학생회는 “학생들이 찬반투표를 통해 수업재개를 결정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분노하였다. 책걸상에 설치한 쇠사슬이 언론의 지탄을 받자 이것이 부담스러웠는지 학교측은 또 다시 용역을 시켜 쇠사슬을 해체하고 대신 눈에 잘 띄지 않는(하지만 기능은 쇠사슬과 같은) 새로운 구조물을 책상에 설치했다.

  여름 방학이 끝날 무렵인 8월 15일, 학교측은 쇠사슬을 특수 제작한 고정대로 바꾸었다. 그러나 고정대 역시 책상 다리를 옥죄고 있었다. 그나마 쇠사슬은 책상을 조금씩은 옮길 수 있었지만, 교체된 고정대는 책상 하나를 움직이려면 8개의 책상과 그 옆줄의 8개 책상을 동시에 옮겨야 움직일 수 있었다. 너무나 기가 막혀서 학생들은 개강이 되기 전까지 고정대를 해체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고정대 해체 작업을 밤이 새도록 하였다. 고정대를 세 개 푸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겨우 반 정도를 풀었을 때, 학교측은 용역을 이용해 어느새 2-3층의 책상에 다시 고정대를 채웠고, 학생들이 해체하지 못하도록 본드 칠까지 해놓았다. 결국 학생들의 힘으로는 더 이상 고정대를 풀 수 없게 되었다.

  2학기 개강과 함께 총학생회는 학습권을 침해한 박원국 이사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기로 하였다. 당시 서울대 학생들은 교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학습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숭실대의 한 장애 학우는 학교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역시 학습권 침해로 학교 당국을 고소했다.

  학생들은 직접 행동주간에 다 같이 고소장을 작성하고 개강투쟁선포식 ‘임전무퇴’가 끝난 후 북부지청으로 달려가서 고소장을 접수했다. 학생들은 강의실의 책걸상마다 쇠사슬로 연결한 채 용접을 하여 학습권 효율성을 침해하고, 학업 능률을 저하시킨 박원국 이사장에 대하여 학습권 침해에 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쇠사슬, 고정대 설치로 수업환경을 짜증나게 만들고 학습권을 침해한 박원국을 고소한다

1. 인문사회관 각 강의실마다 쇠사슬이 설치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학생들은 수업을 효율적으로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20명씩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는 ‘교양독서세미나’ 수업을 비롯하여, 어학관련 학과의 회화수업, 사회과학 관련 학과의 토론 수업 등은 책상 배열을 둥그렇게 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수업방식이 효율적임에도 불구하고, 책걸상마다 용접된 쇠사슬로 인하여 책상 배열을 바꿀 수가 없어 일방적으로 교수를 보며 비효율적인 토론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으며,

(나)용접 당시 책걸상의 상단 부분 (책을 놓는 부분)이 겹쳐진 채 용접되어 기울어진 책상에서 수업을 해야 하거나, 각 책걸상이 용접되어 있는 관계로 주위 학생이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주변의 책상이 함께 움직여 학습에 불편을 겪는 등의 학습권 침해 사례가 속출하였습니다.

2. 쇠사슬 설치로 인하여 이미 인문사회관에서 학습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습권을 침해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8월 15일 학교 당국은 쇠사슬을 해체하고 책걸상 다리 기울기에 맞추어 정교하게 제작된 고정대를 또 다시 설치하였습니다.

3. 세미나실의 경우 고정대 설치 시에는 아예 배열을 둥글게 한 채 고정대를 설치했으나  역시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여 비효율적인 수업을 할 수밖에 없으며, 이번에는 인문사회관과 자연관 모두 설치가 되어 그 피해가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4. 고소인은 덕성여대 재학생으로서 매학기 일정 수준의 등록금을 지불하고 있으며 그에 합당한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 바, 각 강의실의 책걸상마다 쇠사슬로 연결한 채 용접을 하여 학습의 효율성을 침해하였으며, 고정대로 교체하였으나 이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은 계속되고 있으며, 여전히 학습의  효율성은 저하되고 있으니, 피고소인 박원국에게 상당한 처벌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5. 최모 교수를 다시 최모 양으로 돌려놓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수업거부 기간 동안 학교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비정상적으로 수업을 강행하였던 교수들은 수업재개 이후 “성적에 불이익을 주겠다”며 학생들을 겁박하였다. 그 중에서도 교양 독서 세미나를 가르치는 최OO 교수는 수업거부에 동참한 학생들에게 “원칙을 가르치겠다”며 무더기 F학점을 주어 학생들로부터 손가락질을 한 몸에 받았다.

  교육부가 학생들의 수업거부 장기화 등으로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한 기간 동안 학교운영과 학사운영 정상화를 촉구하는 공문을 덕성학원 이사장과 덕성여대 총장에게 5월 16일과 6월 12일 두 차례 발송하였다. 교육부는 공문에서“학교의 비정상적 운영에 매우 유감스럽다” “총장의 임기가 만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후임 총장을 선임하지 못하고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하는 것은 학교 운영의 안정화에 반하는 것이다”라며 (1)총장 등 학교관리자들이 구성원간의 의견 조정에 적극적으로 임하여 학생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 (2)학교운영의 정상화를 위하여 조속히 총장을 선임하고 이사회는 학교문제 해결을 위해 구성원간의 의견 조정 등에 적극 나설 것 (3)6월 4일 재개된 수업과 관련한 학교 측의 무리하고 부적정한 수업 보강 일정으로 인해 선의의 학생들에 대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할 것 등을 촉구하였다.

  학교가 학생 대표들에 대한 형사 고발, 책걸상 쇠사슬 용접, 파행적 수업보강 강행 및 수업거부 학생들에 대한 보복(학점 부여 거부)등 탄압조치로 일관하며 교육부의 거듭되는 학교 운영 정상화 및 학사운영 정상화 요구를 무시하여 왔기 때문에, 교육부가 시정 촉구 공문을 보낸 것이었다. 설사 교육부 공문이 아니라도, 학생들이 전체 투표를 통해 수업을 받기로 결정하여 교실에 들어온 이상 그동안 못한 수업을 최대한 보충하는 것은 선생으로서의 최소한 도리였다. 학생들의 수업 거부는 개인적인 필요나 이익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스승의 부당한 해직과 열악한 교육환경에 대한 항의와 이를 바로 잡으려는 정의감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근본 원인이 다름 아닌 대학과 재단의 전횡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교육부의 정상화 촉구 공문과 수업에 복귀한 학생들의 보강요청에도 불구하고 독서세미나 수업을 맡은 최 교수는 보강을 거부하고, 수강생의 70%가량이 되는 29명의 학생들(심리학과 학생들의 세미나 수업에서 20명 중 16명, 사회학과학생들의 세미나 수업에서 20명 중 13명)에게 무더기 F학점을 주었다. 수업거부가 진행되는 동안 대부분의 수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특히 세미나 수업은 단 한과목도 제대로 진행된 바 없었다. 더구나 세미나 과목은 교양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어 있어 원하는 교수에게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지정된 교수에게서 수업을 듣도록 되어 있었다. 세미나 수업에서 학점 피해를 받은 학생들은 같은 시간을 공부하고 동일하게 수업거부에 동참하였음에도 단지 최 교수의 수업에 배정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한 것이다.

  피해를 입은 심리학과 박윤경(98010187)이 최 교수의 상식 밖의 행동을 고발하는 글을 학교 인터넷에 올렸다.


상식 밖의 일(심리학과 교양독서 세미나)

…수업 거부 기간 동안 원칙적으로 최OO 교수의 수업은 단 한 번 있었습니다. 헌데 최OO 교수는 수업을 두 번 진행했더군요.
교양독서세미나라는 과목인데 저희 섭이 있는 수욜에 공휴일이 꼈었는데 최OO 교수 임의대로 보강 날짜를 잡아 학생들에게 공고하지도 않은 채 섭 거부 기간 중 수업을 진행했답니다.
그것도 다른 반이랑 합쳐서…
그리곤 두 시간을 빠졌기 때문에(세미나는 2시간 이상 빠지면 출석 점수가 나오지 않게 되고 학칙 상 F를 줄 수 있습니다.) 학점을 줄 수 없다며 학생들을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세상 이런 일이 어딨습니까? 학생들에게 제대로 공고하지도 않은 채 보강을 진행하다니요…
아예 학생들에게 성적을 주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수업거부에 들어가기 바로 전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위하는 척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며 학생들이 이용당하고 있는 거라고 외치며, 자신은 학생들을 제자로써 후배로써 아끼고 사랑하는 척 하더니… 이게 진정 학생들을 위하는 것입니까?…제가 좀 흥분했습니다. 죄송 꾸벅–
최OO 교수 섭 거부가 끝나고 학생들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저희 과 친구가 우연히 정말 운 좋게도 우연히 만나 섭 거부 기간 동안의 정규 수업은 빼더라도 보강만은 다시 해달라고 항의했지만 막무가내로 F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 소문이 났을 때 학생회에서 지어냈다. 이제 그런 말 그만해라… 등의 말들이 오가는 것을 봤습니다.
학생회에서 지어낸 것 절대 아닙니다. 이런 말 그만 할 수 없습니다.
직접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이 심정 모를 것입니다.
저는 덕성의 학생으로서 받아야할 수업권을 빼앗겼습니다. 그것도 다름 아닌 교수로부터…
세상 어디에 이런 일이 또 있겠습니까? 정말 상식 밖입니다. 학생들에게 학점을 주지 않기 위해 수업을 하는 교수가 있다!! 정말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한 내용이 아닙니까?…


  덕성 출신의 87학번인 최 교수는 90년 학원민주화 투쟁 당시에도 유일하게 수업에 들어가 자신을 제외한 다른 학생들이 F학점을 맞도록 한 장본인이었다. 학교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다녀온 그는 1996년 교육 경력 없이 석사학위 소지만으로 박원국 이사장에 의해 연구교수로 특채되어 2000년까지 연구교수의 신분으로 근무해왔다. 2001년 박원국 이사장은 복귀하자마자 자신이 연구원으로 특채한 최 아무개 연구교수를 인사위원회의 심의도 거치지 않은 채, 2000년 4월 일자로 소급하여 일반교원으로 신분전환 시킴과 동시에 조교수로 승진 발령하였다. 덕성여대 인사규정상 전임교원이 아닌 연구교수가 전임교원이 되기 위해서는 공개 임용 절차 즉 일반교원 임용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교원인사의 원칙과 절차를 무시한 채 전임교원이 된 교수가 “원칙을 가르치겠다”며 불의에 항거하는 학생들에게 무더기로 F학점을 주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학생들에게 학점 피해를 준 최 교수는 2학기에 교직과로 발령이 나고 고등교육연구소장까지 맡았다. 가치관의 도착이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보고 ‘jacal’(아이디)이 자신의 생각을 학생 자유게시판에 개진하였다.


덕성학원이 바로 잡아야 할 가장 비교육적으로 잘못된 인사조치

어제 밤 이 게시판에 풍덩 빠져서
읽고 생각하고 읽고 화내고 하기를 새벽이 되는 줄도 몰랐던 나 자칼
순수하고 순진함이 묻어나는 글들이 이미 기성세대에 편입되어서
매일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업무를 하고 있는 나를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난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일로 먹고 사는데
학생 여러분들은 잘 이해 못하겠지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기란 쉽다.
능력 없는 사회적 약자로 치부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순한 생각과 아주 평범한 활동으로
일반적인 시간 대 안에서 그들의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에
일의 본질과 맥만 짚어내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고정관념들을 가능으로 바꾸는 건 어렵지 않다.

난 덕성학원의 학생들을 예전에 비해 오늘날 이토록 분열하게 하고 고민하게 하는 뿌리가 다른 학생들이 시위를 하는 동안 유일하게 수업에 악착같이 참여한 최모 양이 최모 교수가 된 것이 기인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세상천지 어디에 이보다 더 비교육적인 인사조치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정치인들까지 주무르는 처세 9단쯤 되는 박원국과 그의 식솔이라 불려지는 노련한 인사들이 최모 양을 최모 교수로 바꾸는 인사 조치를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너무 뻔하다.
난 덕성여대라는 대학이 이번 문제의 해결과는 관계없이 정말 학교를 위해서 최모 교수를 다시 최모 양으로 돌려놓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지금 학생들을 아프게 하는 가치관의 분열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