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덕성! 우리가 가는 길이 역사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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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 우리가 가는 길이 역사다! (2)

한상권(중세사2분과)

 

4. 2년만의 복직 대학양심은 살아있어요.


3월 2일(화) 교수협의회가 복직 환영 플래카드를 학교 정문 앞에 내 걸고 「한상권 교수의 복직을 환영하며-개혁이 곧 화합니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1997년 2월 한상권 교수의 재임용탈락은 덕성여대의 온갖 모순과 비민주의 결정판이었습니다. 이후 2년간 학내구성원들은 물론 우리 사회의 양심세력이 단합하여 그것이 사실임을 밝혀내고 한상권 교수의 복직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였습니다. 그렇기에 한상권 교수의 복직은 덕성학원의 양심과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사건이며 우리나라 교육사에 길이 새겨질 쾌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상권 교수의 복직은 또한 한상권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킨 박원국 전 이사장 체제의 퇴출이라는 사회적 평결을 최종 확정하는 의의가 있습니다.


  한 교수가 2년 만에 복직되어 다시 강의를 시작하였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몇 몇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사진 3> 2년만의 복직, 대학 양심은 살아 있어요, 한국일보 1999.3.19(백서 4, 288쪽)

‘덕성여대한상권교수재임용탈락처분철회및교수재임용제개선추진위원회’ 참여단체 가운데 하나였던 ‘참여연대’의 김문정(이대 신문박송 대학원생) 학생과 인터뷰한 내용이『참여사회』 4월호에 비교적 자세히 실렸기에 그 내용을 옮겨 적는다.


  새 학기의 캠퍼스는 씩씩하다. 아니 목도리를 둘렀을지언정 팔짱을 낀 여학생들의 조잘거리는 영상은 생기를 몰고 온다. 봄눈이 흩날리는 날이었다. 겨울을 빠져나가기가 참 힘들구나 생각한다. 짙은 회색빛의 캠퍼스는 그래도 봄의 기운이 완연하다. 늦장 추위를 달고서 밀고 온 이 봄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있다고 믿으면서 걸어간다. 발자국이 찍히는 그것이 길이다.
덕성여대 사학과 한상권 교수(46)의 강단 복귀 소식을 듣고 연구실로 그를 찾아갔다. 97년 2월 28일 한 교수는 학내 민주화를 주도한다는 괘씸죄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박원국 전 재단 이사장 퇴진과 덕성여대 정상화를 위한 투쟁이 폭발했다. 그리고 꼭 2년 만에 그는 다시 강의실에서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해 6월에 복직 결정이 되었으나 강의는 할 수 없었다. 그러다 99년 2월 28일 학교 측으로부터 새 학기 강의를 하라는 통보를 받았고, 전공과목 세 개와 교양과목 한 개, 모두 네 과목을 맡게 되었다. 실질적인 복직이 이루어진 셈이다.
첫 수업에 대한 감회를 물어보았더니 ‘조선시대 생활사’ 강의에서 역사의 원동력인 무언의 다수, 민중의 생활사를 복원해보자는 얘기로 강의를 시작했다는 말로 대신했다. 바로 그와 덕성여대 학생들이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그는 이제야 지난 2년을 돌아보면서 한숨을 놓고 얘기할 수 있게 됐다.
“서로가 짐을 벗은 것에 대해 홀가분한 마음입니다. 이런 사건은 끝이 났다고 해도 후유증이 크고 계속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보통이지만 별 무리 없이 마무리됐으니까요.”
한 교수는 현 이사장을 비롯해 새 이사진이 그래도 과거와는 다른 민주적인 인물들이어서 신뢰할만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서 기득권층의 지형이 변화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이 고단한 싸움을 시작했을까.
“처음에는 개인의 명예회복이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덕성여대한상권교수재임용탈락처분철회및교수재임용제개선추진위원회(이하 위원회)’가 결성되었고, 80여 개 대학의 3,000여 명의 교수들이 서명에 참여했고, 사회각계에서 힘을 모아주었습니다. 복직과 함께 이사진의 퇴진까지도 투쟁의 목표로 삼게 됐습니다.”
학단협(학술단체협의회)과 민교협(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등 학계 뿐 만 아니라 참여연대, 경실련, 여성민우회 등 시민단체들까지 위원회에 참여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위원회는 한 교수의 복직을 위해 세 권의 투쟁백서를 내고 서명 작업을 벌이는 등 지속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 덕택에 언론도 과거와는 달리 많은 관심을 보였다. 혼자 힘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던 만큼 이러한 분위기는 큰 힘이 되었다.

부당함에 맞선 승리의 기쁨

“현행법상 학교 측에서는 재임용해줘야 할 아무런 의무는 없습니다. 따라서 재임용 탈락이 부당할 수는 있지만 불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더욱 보통 재임용 탈락이 이슈로 부각되면 학교 측의 부당함을 인정하면서도 한편 교수에게도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양비론적인 평가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면 문제의 본질은 비켜가고 당연히 논의는 상대적 약자인 교수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를 제도적인 문제로 접근해가야 할 당위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부당하지만 불법이 아닌 제도적 현실 하에서 재임용탈락을 무효화시킨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다.
중간 중간 타협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이사회 측에서 일체의 경비를 대줄테니 1년간 미국으로 연수를 다녀오라는 것. 또한 한교수의 복직과 박원국 전 이사장 측 인사를 이사로 임용하는 것을 맞바꾸자는 조건이었다.
“생각해보면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더없이 좋은 조건입니다. 이 제안에 대해 학생들과 상의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반대했습니다.”
학생들이 수업거부에 때로는 단식까지 하면서 돕고 있는데 그들의 의사를 배반할 수 없었다. 때로는 그가 분열을 조장하고 학교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일부의 오해와 괴문서 등으로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재학생 뿐 아니라 졸업생, 학부모에게까지 격려편지로, 서명으로 지원을 받으면서 끝까지 자신이 걸어야할 길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부당한 것을 거부하고, 원칙을 지킴으로써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 의미를 두는 것을 택했다.
그의 재임용 탈락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 국면으로 확대되면서 적지 않은 부담이 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렇게 긴 싸움이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민주세력이 환영하는 축복받는 복직. 그것은 정의로운 과정을 통해 획득된 것이기에 마음이 좋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바쁘게 전화를 받아야 했다. 한 교수의 복직이 성공사례가 되어 전국의 많은 재임용 탈락 교수들이 그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재임용 탈락의 사례는 한 교수 이전에도 많았지만 아직도 적지 않게 계속되고 있다.…
한 시간 가량의 짧지 않은 대와를 나누고 나오면서 다시 한 번 교정을 둘러보았다. 더 이상 이 캠퍼스에 전쟁터와 같은 구호와 상처의 흔적은 없었다. 다만 정문 앞에 걸려 있는 ‘한상권 교수 복직 환영’이라는 플래카드를 보고서야 그 옛날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신입생들은 알까. 지금 이 평온한 교정이 지난 2년간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많은 이들이 어깨를 모으고 치열하게 싸웠던 전장(戰場)이었던 것을.



5. 덕성! 우리가 가는 길이 역사다!


4월 9일(금) ‘한상권교수 복직 축하와 덕성 민주화를 여는 한마당-덕성! 우리가 가는 길이 역사다!’가 학생회관에서 열렸다. 덕성여대 교수협의회, 민주동문회, 한상권교수복직을위한비상대책위원회의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는 지난 1990년 학원 민주화투쟁 이후 1999년 한상권 교수 복직에 이르기까지 학내 사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이들이 함께 한 자리였다.


<사진 4> 덕성, 우리가 가는 길이 역사다.

졸업생 최광기(사회학과 88)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덕성구성원과 외부인사 등 1,00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으며, 덕성여대 문예패와 윤도현 밴드, 최도은, 조국과청춘, 꽃다지, 원더보드, 김문규 영문과 교수, 박범수 철학과 교수, 사학과 동문들 및 민주동문회가 출현하였다.

주최 측의 인사말로 시작된 본 행사에서 교협의 박병완(국문과) 교수는 “한상권 교수의 복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으로 생각했지만 결국은 복직되었다”“덕성의 민주화를 위해 제도와 사람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학생들은 “현재 학생 자치권탄압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상권 교수 복직투쟁의 성과를 이어 축소되어 가는 학생권의 확대, 학생자치권 사수를 위해 투쟁하자며” 투쟁의 의지를 밝혔다.  제 15대 중앙운영위원회는 투쟁 결의문을 통해 “많은 문제들을 풀 수 있는 힘은 덕성인이 한 목소리로 단결될 때”라고 하였다. 또한 현재 활발히 문제가 제기되는 총학생회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진정으로 5천 덕성을 책임지는 투쟁을 벌여나가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투쟁의 역사․ 승리의 역사, 축하의 한마당, 대동의 한마당 등 3부로 나뉘어 진행된 4․9문화제 행사는 700석 규모의 학생회관의 자리가 부족해 계단에 앉아 행사에 참여하는 등 많은 인파가 몰려 이 행사에 대한 학생들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사교련 회장이며 추진위 상임공동대표인 이재윤 교수(중앙대)는 발을 다쳐 몸이 불편한데도 사모님의 부축으로 휠체어를 타고 나와 축사를 해주었다.


  저희 교육단체들은 덕성여대 한상권 교수 재임용탈락을 사학법인 이사장들이 자행해온 인사권 남용의 대표적인 사례로 간주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지난 2년 동안 기울여 왔습니다. 한상권 교수의 재임용탈락처분 철회는 교원의 교권수호, 교수신분보장, 교수재임용제 악용방지 등을 실현해가는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육단체들의 노력과 덕성여대 민주세력의 동참으로 ‘동토의 왕국’이라 불리는 덕성여대에서 황제처럼 군림하던 박원국씨가 이사장직에서 해임되고, 마침내 한상권 교수가 복직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싸움이 주는 교훈을 세 가지정도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원칙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 내부에서도 많은 의견차이가 있었지만 우리가 끝내 분열되지 않았던 까닭은, 상호신뢰성의 바탕 위에서 싸움의 의미를 되새기고 서로가 서로를 설득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번의 올바른 승리를 통해 우리는 ‘힘이 정의가 아니라, 정의가 힘’이라는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집요하고 일관된 노력의 중요성입니다. 우리가 한상권 교수의 복직을 위한 싸움을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패배의식에서 시작하였다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우리 교육단체들은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는 굳건한 믿음으로 한 교수복직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정진해왔으며, 그 결과 값진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대동단결의 중요성입니다. 이번 승리는 덕성여대 교수님들, 졸업생 동문, 학생 여러분, 학부모님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교육민주세력의 연대, 그리고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까지 가세하는 등 범 민주세력의 대동단결로 쟁취한 귀중한 것입니다. 이번 덕성여대의 값진 승리를 교훈으로 삼아, 우리 모두 더욱 굳게 뭉칩시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6. 이제부터는 개혁이다!

4월 20일(목) 교수협의회는 민주마당 앞에 걸렸던 ‘한상권 교수 복직 환영’ 현수막을 거두고 ‘이제부터는 개혁이다!’라는 새 현수막을 내걸었다. 새 현수막의 내용은 빠른 시일 내에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하에 개혁 작업이 완료되어, 덕성이 민주화되고 발전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교협의 염원을 반영한 것이다. 교협은 ‘개혁이 곧 화합이다’라는 화두를 내걸고 개혁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한상권 교수는 복직되었지만 한상권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키고 한상권 교수의 복직을 가로막았던 박원국 전 이사장 체제의 부정적 잔재는 여전히 덕성여대에 온존하고 있습니다. 덕성여대의 정상화는 바로 그 부정적 잔재들을 청산하고 상식과 합리가 지배하는 대학다운 대학을 만드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박원국 전 이사장의 영향 하에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편파적인 인사나 밀실행정과 같은 파행적인 학교운영은 이제 한상권 교수의 복직을 계기로 근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불합리한 제도와 규정이 합리적으로 정비되어야 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투명한 제도운영이 정착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원칙과 상식에 따른 민주적 학교운영이 정착되어 어느 누구도 부당하게 교권을 침해당하지 않을 때 구성원들 간의 분열은 근본적으로 치유될 것이고 대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한상권 교수가 복직된 지금 우리 교수들은 진정 구성원 모두 골고루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제도개혁을 위해, 그리고 덕성여대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교수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과거 박원국 전 이사장 체제 하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청산하고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대학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지체 없이 개혁 작업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교수협의회는 각종 불합리한 제도의 민주적인 개혁을 위해 「교수협의회 인사제도 개혁안」을 이강혁 총장과 이사회에 제출하였다. 지난 3월 12일 이문영 이사장이 대학구성원들에게 인사제도 개혁안을 마련하여 보고할 것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었다. 교협은 개혁안에서 첫째 각종 불합리한 제도의 민주적인 개혁, 둘째 개혁의지를 갖은 인재의 과감한 기용, 셋째 박해를 받은 양심적인 개혁세력에 대한 명예회복 등 3원칙이 관철되는 방향으로 개혁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교협의 문제제기를 받아 들여 이사회는 박원국 전 이사장의 지시라든가 인적관계에 의존해서 파행적이고 음성적이며 비상식적으로 이루어지던 인사행정을 종식시키고, 공정하고 투명하며 상식적인 절차를 회복하여 대학의 민주화와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대학 개혁을 주도할 기구로 대학평의원회를 신설하였다. 이어 전국 최초로 평교수 중심의 인사위원직선제를 도입하여 승진, 재임용, 신규임용 등 인사문제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발생하였던 마찰과 잡음이 다시는 생겨나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사장 1인 독재의 학사운영에서 평교수중심의 민주적인 학사운영으로 전환시키고자 한 것이다. 

  5월 31일 열린 제34차 이사회에서 대학을 민주적, 합리적,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하기 위해 정관 및 정관 시행세칙 일부가 개정되었다. 교육에 관한 주요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대학평의원회’를 신설하고 단과대학별로 선출한 평교수가 주축이 된 ‘인사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이사회가 대학개혁을 주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6월 18일(금) 개정된 정관에 따라 단과대학 교수회의에서 무기명 투표를 통해 인사위원을 선출했으며 동시에 대학평의원회 교수위원도 선출하였다.

  대학평의원회는 총 13명의 의원(법인이사 2명, 대학교육저명인사 2명, 보직교수 2명, 평교수 7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2년이었다. 단 보직 교수(부총장, 대학원장, 단과대학장, 교무처장, 학생처장)는 평의원회에서 제외되었다. 신설되는 대학평의원회는
‣학부 또는 학과의 설치 폐지에 관한 사항
‣학칙 기타 제 규정의 제정과 변경에 관한 사항
‣예산 운영의 기본 계획에 관한 사항
‣교원인사의 기본 방침에 관한 사항
‣이사장 또는 총장이 대학의 운영상 중요하다고 인정해 심의를 요구하는 사항에 대한 심의 권한을 가지도록 하였다.

전국대학 최초로 정관에 대학평의원회 구성을 명기하여 합법적인 기구로 대학평의원회를 운영하고자 결정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난 2년간 계속된 학내 분규가박원국 전 이사장의 비상식적이고 독단적인 학교운영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대학평의원회에서 학교운영에 관한 주요 사항들을 심의함으로써 대학 운영의 민주성, 합리성, 투명성이 보장되도록 하였다. 각 단과 대학별로 선출된 평교수들, 보직교수들, 재단 임원이 함께 모여 학교운영 전반에 관한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통해, 학교 구성원들 간 그리고 학교와 재단간의 극심한 반목과 갈등을 벗어나 대화합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었다.

  대학사회에서 대학평의원회 설치가 갖는 의미를 교수신문이 보도하였다.


  법인 비리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겪은 덕성여대(총장 이강혁)와 한국외대(총장 조규철)가 최근 사학 역사상 처음으로 대학평의원회를 구성 운영해 화제가 되고 있다. 대학평의원회는 대학 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여러 차례 제안돼 온 바 있지만, 본격적으로 도입 시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학평의원회는 대학의 의사 결정이 교무회의-총장-법인이사회의 수직적 구조 속에서 빚어지는 제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제안된 것이다. 예컨대 학내외 구성권과 대학당국 그리고 학교법인의 대표들이 수평적 위치에서 만나 함께  대학의 주요정책 결정 과제를 논의하는 공론의 장인 셈이다. 덕성여대의 경우 한상권 교수(사학과)의 복직 이후 대학 개혁의 과정에서 대학평의원회가 제안됐다. 내규로 규정을 만든 한국외대와 달리 덕성여대는 법인정관에 운영에 관한 규정을 못박음으로써 보다 탄탄한 법적 지위를 확보하도록 하였다.


  이사회는 인사위원 선출도 보직 교수(부총장, 대학원장, 단과대학장, 교무처장, 학생처장)는 제외하도록 하였다. 개정된 정관에서 인사위원회는 각 단과대학별 비율에 따라 선출된 평교수들과 교무처장과 대학원장 등 12인 이내로 구성하게 되어 있다. 인사위원회는 기존 교수들의 승진과 재임용, 신규교수 임용, 학장 임용 등을 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인사위원회에 대한 임명권이 총장에게 있으며 보직교수로 구성돼있다. 이 때문에 교수신분이 불안한 대학일수록 평교수들은 연구와 강의라는 본연의 임무에 몰두하기 보다는 보직교수가 되기를 원하거나 보직교수들의 눈치를 보는데 급급한 경우가 많다. 박원국 전 이사장 체제하의 덕성여대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대학에서는 처음으로 교수가 직접 뽑은 위원들로 인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을 마련한 까닭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이문영 이사장이 답하였다.


  덕성여대 학내분규는 교수 재임용을 둘러싸고 일어났다. 이사장의 독단이 아니라 객관적인 기준과 원칙이 적용되면 된다.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평교수들이 직접 뽑아 구성된 인사위원회에서 불공정성에 대한 논란은 없다.



장기간의 덕성여대 분규가 재단으로부터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보직교수들이 평교수들의 교권을 지나치게 탄압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하고, 이와 같은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로서 전국 대학에서 처음으로 단과대학별로 선출된 평교수 중심으로 인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정관을 개정하였다는 것이다. 대학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인 평교수들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본분인 연구와 강의에만 몰두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학의 핵심권력기구인 인사위원회를 직선제로 선출함으로써 앞으로 교수재임용 및 각종 인사 관련 심사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 이사회와 대학당국의 부패와 부조리로 인해 오랜 학내분규를 겪었던 덕성여대가 이런 파격적인 개혁 작업을 전개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내일신문, 캠퍼스저널, 교수신문, 한국대학신문 등에서 이 사실을 집중보도하였다.


<사진 5> 교수임용심사 ‘투명해 진다’, 캠퍼스저널, 99.6.24(백서 4, 296쪽)


  덕성여자대학교가 전국 대학 최초로 교수들이 선거를 통해 인사위원회를 구성했다. 덕성여대 한상권 교수는 “교수 신규 채용 비리나 공정치 못한 재임용탈락 논란 등은 대학 사회의 고질적 병폐였다” 며 “보직교수는 피선거권을 제한하고, 교수들이 직접 뽑은 평교수 중심으로 인사위원회를 구성해서 인사의 투명성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지난 99년 3월 전면 개편된 덕성학원 이사회를 맡은 이문영 이사장은 “장기간 지속된 덕성여대 분규 원인이 재단과 밀착된 보직 교수들의 인사권 남용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 평교수 중심의 인사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덕성학원 이사회는 이를 위해 정관을 개정하고 교육부의 승인을 받아 지난 18일 3개 단과대학이 교수회의에서 무기명 투표를 통해 인사위원을 선출했다. 덕성여대 교수협의회 관계자는 “덕성여대의 인사위원회 구성은 한국 대학 사회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역사적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문영 이사장은 “대학 개혁이 대학 구성원의 참여 없이 외부에 의해 강제되는 방식으로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새로운 제도를 통해 모두가 참여하며 변화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덕성여대의 새로운 시도가 분규대학이라는 불명예를 씻고 대학 개혁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인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7. 따가운 눈총이 부러운 시선으로

  특히 이사회는 “그동안 덕성에서 부당하게 해직되었던 교수와 직원은 본인에게 하자가 없는 한 복직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개혁원칙을 문서화 해, 교수재임용과 관련하여 문제를 안고 있는 상당수 대학들을 긴장하게 하였다. 이 원칙에 따라 9월 17일 성낙돈 교직과 교수의 복직을 결의하였다. 성낙돈 교수는 교내 민주화와 사회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1990년 8월말 부당하게 해직되었다가, 덕성여대 개혁 원칙에 따라 10년 만에 복직되었다. 이를 언론이 보도하였다.


  최근 인사위원회와 대학평의원회 교수위원을 직선으로 선출, 민주적학사운영의 귀감이 됐던 덕성여대가 지난 90년, 학내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부당하게 해직됐던 성낙돈 전 교육학과 교수를 10년 만에 복직시키기로 해 화제다.…
이번 성교수의 복직결정은 지난 2월 한상권 교수(사학과)의 복직 이후 본격화된 대학 개혁 작업의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덕성여대 법인이사회(이사장 이문영․아태평화재단이사장)는 지난 6월 국내대학사상 최초로 직접선거를 통해 평교수를 인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했다. 또 구 재단 하에서 부당하게 해직된 교수 및 교직원들은 심의를 통해 원상회복시킨다는 원칙을 세우는 등 본격적인 개혁 작업에 착수했다. 이에 대해 한상권 교수는 “성교수의 복직은 대학민주화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라며 “현재 교수재임용과 관련, 논란이 일고 있는 많은 대학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직소식을 들은 성교수는 “10년 동안 나를 옭아맸던 족쇄가 풀린 것 같다. 나의 복직을 위해 그동안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감격해 했다.
그는 또 “그동안 사회적․심리적․경제적으로 많은 고충을 겪어야 했지만 이번 결정으로 인해 그래도 사회정의가 살아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며 “앞으로 그동안 못했던 학문연구로 매진, 좋은 교육자로서 이 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이듬해 3월 2일에는 교무처에서 다년간 근무하다가 해직된 장도규 선생이 8년 만에 복직되었다. 장도규 선생은 초대와 2대 노조부위원장, 3대 노조위원장을 역임하면서 학원민주화와 직원 권익보호를 위해 열정으로 활동하였던 인물이었다.

1987년 9월 덕성여대 직원들은 박원국 전 이사장과 그의 조종을 받던 대학당국의 탄압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덕성여대 직원노동조합(직원노조)을 결성하는데 성공하였다. 비록 이 시기가 87년 6월 항쟁 직후라 할지라도 박원국 전 이사장의 수십 년에 걸친 일인 철권통치 하에서 노조를 결성한다는 것은 직장을 잃을 각오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장도규 선생은 이 시대 덕성여대 직원노조의 결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용기가 있고 소신도 있는 몇 안 되는 직원 중의 한사람이었다.

수십 년 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던 박원국 전 이사장은 교수나 직원의 자율적 활동을 일체 용인하지 않았다. 1987년 9월 직원노조와 평교수협의회(평협)가 결성되자, 박원국 전 이사장은 이를 자신의 대학지배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노조와 평협을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노조와 평협을 약화 혹은 해체시키기 위하여 보직교수들과 그를 추종하는 교수들을 통하여 두 조직을 비방하고 교수와 직원이 가담하지 못하도록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리고 이미 가담한 이들은 조직에서 탈퇴하도록 회유하고 협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와 평협이 계속하여 박원국 전 이사장의 전횡을 비판하고 학원의 민주적 운영을 요구하자 해직이라는 극단적인 탄압수단을 택하기에 이르렀다. 평협 탄압은 1990년 8월 25일 교직과 성낙돈 교수의 재임용탈락으로, 노조탄압은 1992년 2월 29일 장도규 전 노조위원장 해직으로 나타났다.

이 두 사람의 해직이 일시적으로 구성원들의 분노를 촉발시키는 듯했으나 장기적으로는 공포심을 내면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박원국 전 이사장의 혹독한 탄압에 못 이겨 많은 교수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학교를 옮겼다. 남아 있는 대부분의 교수들도 박원국 이사장체제에 협조함으로써 체제순응형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비록 소수이지만 학자로서의 양심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수모와 박해를 감내한 교수들도 있었다. 이들은 온갖 피해를 당하면서도 올바름을 잃지 않고 고통을 견디어 왔다. 이들은 ‘힘이 정의’라고 믿는 세력과 타협하지 않았고, 오직 ‘정의가 힘’이라 믿고 끝까지 양심을 지켰다.

자신의 탄압정책이 노조와 평협을 위축시키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한 박원국 전 이사장은 그 후에도 계속하여 교수와 직원을 탄압해 나갔다. 급기야 교수, 직원, 학생에 대한 자신의 지배체제를 완성할 생각에서 1997년 사학과 한상권 교수를 재임용 탈락시키기에 이르렀다. 1990년 성낙돈 교수의 재임용탈락에서 1992년 장도규 선생의 해직, 1997년 한상권 교수의 재임용탈락으로 이어진 박원국 전 이사장의 학원 민주화세력에 대한 탄압은 마침내 교수, 학생, 직원이 연대한 거교적인 민주화운동을 촉발시켰다.

1997년 10월 교수, 학생, 직원이 개교 이래 처음으로 혼연일체가 되어 연대투쟁을 함으로써 철옹성과 같은 박원국 전 이사장 지배체제를 무너뜨렸다. 그 결과 비인도적인 인사조치의 희생자인 성낙돈 교수와 장도규 선생이 복직되었다. 덕성여대는 교권은커녕 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동토의 왕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양심과 희망의 대학’으로 놀랍게 변화하고 있었다. 이러한 덕성여대의 변모에 대해 언론은 ‘따가운 눈총이 부러운 시선’으로 바뀌었다고 보도하였으며, 교육계에서는 민주적 개혁에 성공한 모델로까지 평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