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덕성여대 이사회가 열릴 수 있을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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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여대 이사회가 열릴 수 있을까? (1)

한상권(중세사2분과)

1. 한상권 교수 복직을 결사반대한다!!

  대학에서의 복직 제청절차가 끝나고 언론에도 복직을 기정사실화하자, 이를 저지하려는 구 재단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덕성을 진심으로 아끼고 지키고자 하는 교수들’ 명의의 문건을 통해, 구 재단측 교수들은 한상권교수 복직을 결사반대한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한상권 교수 재임용 제외조치는 합법적인 것으로서 재론의 여지가 없다.
  덕성학원의 한상권 교수 재임용제외 조치는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의 재심청구 각하, 헌법재판소의 “교수 재임용제도는 연임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도 아니며 임용권자가 당연히 재임용해야만 하는 연임보장 규정도 아니다”라는 결정, 대법원의 “학교법인이 재임용하지 아니하기로 한 결정이 그 요건과 절차에 위배되었다 하더라도 논의의 실익이 없다”는 판례 등에 비추어볼 때 합법적인 처분이므로, 더 이상 거론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지난 한 해 동안의 학내사태를 거친 후 이제 와서 한상권 교수의 복직을 운위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
 
지난 한 해 동안 개교 이래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무질서와 초법· 탈법 행위가 학내에서 자행되었는데, 이를 주도한 한상권 교수를 복귀시킨다는 것은 교육본연의 임무와 학내질서의 정상적인 회복을 파괴하려는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의 실추된 명예와 전체 구성원이 입은 상처, 전면 학부제 도입 등 선도적인 교육개혁을 통해 대학발전의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하려던 노력과 희망이 수포로 돌아간데 대해, 오히려 한 교수가 피해보상을 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셋째, 우리 대학이 진정 필요로 하는 교수는 위장된 ‘민주화의 투사’가 아니라 교육을 우선시하고 소중히 여기며 대학이라는 공동체질서를 존중하여 대학 발전에 함께 참여하는 교육자이다.
그 어느 때 보다 국가와 개인의 경쟁력과 자구노력이 절실히 요청되는 이때에, 질서문란의 주범인 한상권 교수 복직을 요구하는 교수협의회는 교수 권한 밖인 대학의 인사권을 포함한 경영 전반에 대한 결정권이 마치 자신들의 권한인 양 착각함으로써 대학의 행정업무에 대해 비난과 간섭을 일삼고 무소불위의 압력과 권한을 행사하였다. 이처럼 대학이라는 조직과 행정체계, 그리고 공식 절차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불법·초법적인 억지주장이야말로 대학의 화합과 발전을 저해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구 재단측 교수들은 교육자로서의 본분을 져버린 일부 교수협의회 교수들이 주도하는 학생선동과 수업거부, 거리시위, 재야 시민단체들과의 연대투쟁, 언론을 동원한 악의적인 비방과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학교는 명예가 실추되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고 하였다. 또한 ‘민주화’라는 명분을 앞세워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학내 폭력과 무질서로 인해 박원국 이사장이 부당하게 임원승인취소 되었다고 주장하며, ‘한상권 교수의 복직만이 우리 대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교수협의회의 주장은 대학을 또 다시 무질서와 혼란으로 빠뜨리려는 의도를 공공연하게 드러낸 야욕에 불과하다고 비난하였다.

2. “참 복도 지지리 없는 사람”

  6월 11일 총장이 이사회에 복직제청을 하였으므로, 16일(화) 열리는 20차 이사회에서 한상권 교수 복직 결정이 내려지리라는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20차 이사회에 안건에는 해직교수 복직 의안이 의제로 상정되지 않았다. 이사회 소집 통보서를 대학 인사위원회가 열리기 이전인 6월 2일 내보냈기 때문이었다. 20차 이사회는 김계수 이사장이 신병으로 불참하였기 때문에 재단법인정관예문 제20조 제3항을 준용하여 최 연장자인 박승서이사가 임시의장을 맡아 회의를 진행하였다. 이사회 요청에 의해 복직제청이 이루어졌으므로, 이날 이사회에서 복직 문제를 논의할 이사회 날짜를 잡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차기 이사회 날짜가 잡히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이상한 기류는 총장의 움직임을 통해서도 감지되었다. 이사회 이틀 후인 6월 18일(목), 이강혁 총장은 사의를 표명한 본부 처·실장의 보직사표를 수리하고 이사장 집으로 직접 찾아가 새 보직 인선에 대한 결재를 받아 냈다. 이강혁 총장의 새 보직인선은 교수협의회 교수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구 재단을 추종하는 교수들 위주의 인선이었다.

 


(1) 본부 보직인 교무처장, 학생처장, 기획실장이 모두 비교협 교수
(2) 대학원장, 교양학부장, 평생교육원장이 모두 비교협 교수
(3) 5개 단과대학 학장이 모두 비교협 교수
(4) 학과장은 학과 교수 전원이 교협 교수일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 비교협 교수
(5) 주요 위원회인 교무위원회(12명 중 11명이 비교협 교수), 인사위원회(9명 중 8명이 비교협 교수), 교원징계위원회(교수에게 할당된 3명이 전원 비교협 교수)에 교협 교수들을 배제



이강혁 총장은 6월 8일 발표한 담화문에서, 덕성의 발전과 번영을 위하여 지난날 뿌리 깊게 형성된 구성원들 간의 분열과 대립, 갈등과 불신을 일소하고 대화합의 장을 마련하자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새로 이루어진 보직 인선은 대화합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직 개편에서 이강혁 총장은 교무처장, 학생처장, 기획실장, 시설관리처장, 사무처장 등 학교 운영에 관해 주요 결정을 하는 본부 보직자는 물론 심지어 학과장까지 박원국씨 측근 세력을 전진 배치시켜, “이번 인사는 총장의 인사가 아니라 박원국씨의 인사다”라는 말이 교내에 파다할 정도였다.

6월 19일(금), 김계수 이사장이 재단에 팩스를 보내 차기 이사회 일자를 30일로 잡으라고 지시하였다. 6월 중으로 한상권 교수 복직문제를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러자 사흘 후인 6월 22일(월), ‘교수협의회 소속이 아닌 평교수 일동’ 명의로「김계수 이사장 사퇴 촉구서」라는 정체불명의 괴문서가 학내에 살포되었다. 이들은 김계수 이사장이 사퇴해야 하는 이유로 다음 다섯 가지를 들었다.

 


  첫째, 한상권 교수에게 7월 1일부로 복직을 약속해 주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이사회를 6월 30일에 열도록 명령함으로써 이사회의 고유 권한과 자율성을 침해하였다.

  둘째, 총장에게 한상권 교수의 복직을 제청하라고 명령함으로써 대학의 자율성과 총장의 권한을 침해했다.

  셋째, 오래전부터 한상권 교수와 투쟁의 동반자적 관계에 있었다.

  넷째, 자신과 막역한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고령의 나이와 두 번이나 해직교수의 전력이 있는 김용준 이사를 총장으로 뽑기 위해 교수협의회 교수들과 사전에 음모하여 총장선출을 무리하게 관철시키려 했다.

  다섯째, 재단 이사장의 임무는 재단 산하 모든 기관을 관리해야 하는 것인데 연 1억 원에 이르는 급여와 판공비 혜택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해왔다.


  이사장이 상식을 벗어난 월권행위와 이사, 총장, 교수, 총동창회 등에 강제력을 행사하여 한 교수를 복직시키려 하므로 자진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궤변이 아닐 수 없었다. 김계수 이사장은, 3월 24일 이사 간담회에서 한상권 교수를 복직시키겠다는 의견을 모았음에도, 두 달이 넘도록 복직제청을 하지 않는 이강혁 총장에 대해 아무런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아 복직지연을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사립학교법상 법적 권한을 지닌 이사회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총장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까닭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김계수 이사장은 월권행위와 강제력 행사 때문이 아니라, 이사장으로서의 법적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 때문에 비난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한상권 교수가 김계수 이사장과 오래전부터 투쟁의 동반자적 관계에 있었다는 주장은 더욱 기가 막혔다. 이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김계수 이사장님은 외대교수 재직 시절부터 한상권 전교수와 친분관계를 유지하면서 사회적, 정치적 이슈로 불법적 투쟁을 벌여 온 동지였습니다. 김 이사장님은 한 전교수와의 동지적 친분을 은폐한 채 덕성학원 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덕성학원에 부임하자마자 암암리에 한 전 교수에게 복직을 약속하는 위법적인 일을 저질렀습니다.


  작년 10월부터 나를 비방하는 괴문서가 여러 차례 학내외에 살포되었다. 그 중 몇 가지만 들어보면, “한상권 교수는 한총련 등 과격 학생을 선동하여 세 번 경고를 받았다(1997.10.16).”,  “한상권 전 사학과 교수는 10여 년 無 박사로 연구 논문 겨우 두 편으로 버티면서…기회만 있으면 한총련의 ‘대부’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서 학생들을 선동하며…덕성여대를 ‘XX학교’라 하였다(97년 12월).”,  “한상권 전 사학과 교수님의 다양한 학문에 대한 ‘무지함’과 ‘단순사고 영역 속’에서의 강의는 자신의 독단과 아집만 학습시킬 뿐이기에 한상권식의 NL계 운동논리만 강화시켜주었습니다(98.4.10).”,  “한상권님은 저희들을 형편없는, 거지같은 아이들이라며 문전박대하였으며…강의시간마다 강의안도 아닌 교재를 줄줄이 읽어댄다(98.4.10).”는 내용들이었다. 위 괴문서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허무맹랑한 것이었다.

  더구나 당시 이사장은 지병인 폐암이 재발하여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다. 악의와 중상· 비방으로 가득 찬 위 괴문서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하루하루 힘든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이사장에게 견디기 힘든 충격을 주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사장이 어렵사리 소집한 6월 30일 이사회는 의사정족수 미달로 유회되었다. 덕성학원 이사회 이사 정수는 7명인데 재적이사는 6명이었다. 임기만료가 된 이사 1명의 후임을 이사회에서 선임하여 교육부에 임원취임 승인신청을 하였으나 교육부가 이사 승인을 보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자세한 내용은 13회 [재임용탈락 교수의 ‘장외수업’] 참조). 재적이사 6명 가운데서도 1명은 1년 가까이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었으며, 이사장 역시 힘든 투병생활로 거동조차 어려워 이사회에 참석할 처지가 못 되었다. 활동 가능한 이사 4명 가운데 1명만 불참하여도 이사회는 유회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의 복직을 한사코 반대하는 이사 한 명이 불참하여 6월 30일 이사회가 유회된 것이다. 이사장이 7월 15일 자로 이사회를 다시 소집하였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이사회가 계속 유회되자, 김계수 이사장은 자택에서 이사회를 개최하여 한상권 교수 복직 문제를 처리하고자 하였다. 이사장은 7월 28일 자로 이사회를 소집하면서 회의장소를 자택으로 하였다. 한 교수 복직에 반대하는 이사 한 명이 불참한다 할지라도 자신을 포함하여 네 명이면 이사회를 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끝내 미소를 짓지 않았다. 이사회 개최를 불과 일주일 앞둔 7월 22일, 투병중인 김계수 이사장이 별세하였다. 빈소로 문상을 가니 사모님이 내 손을 꼭 잡고 “한 교수는 참 복도 지지리 없는 사람”이라며 눈물을 가누질 못했다. 사모님은, 남편이 투병 중에도 달력에 하루하루 동그라미를 쳐가며 “이제 며칠만 지나면 한 교수가 복직되겠다. 그러면 내가 한 시름 놓을 수 있겠다”고 말씀하셨다며, 나의 복직이 무산된 것을 퍽 안타까워했다. 한상권 교수의 복직을 이제나 저제나 애타게 기다렸던 교수협의회도 아쉬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계수 이사장께서는 박원국씨 측의 온갖 중상모략과 부당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대학과 이사회에서 한상권교수의 복직절차가 제대로 진행되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지병이 악화되어 운신조차 힘든 와중에도 김계수 이사장께서는 한상권 교수복직문제가 마무리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대학에서의 복직제청절차가 끝나고 이사회의 복직결정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김계수 이사장께서 그 결실을 보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셨으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상권 교수를 복직시켜 덕성여대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나아가 대학사회의 정의와 양심을 회복하려 했던 고인의 높은 뜻만은 반드시 계승되어야 할 것입니다.


  8월 18일(화) 남은 이사 4명이 긴급히 이사회를 열어 박승서 이사를 이사장직무대행으로 선출하고, 28일 후임 이사를 보선하여 이사회를 정상화시키기로 하였다. 그러나 28일(금) 열린 22차 이사회에서 1호 안건인 후임 이사 선임 문제를 논의하려 하자마자, 나의 복직에 반대하는 최OO이사가 돌연 사표를 내겠다며 퇴장하는 바람에 이사회는 또 다시 유회되었다.
덕성여대 학보사에서 개강 직전에 열린 28일 이사회 결과를 재단사무국에 알아보니, 교수재임용문제는 모두 처리하였으며, 한상권 교수의 복직을 다룰 ‘대학교원신규임용에 관한 건’은 최OO 이사의 중도퇴장으로 인한 성원미달로 안건조차 상정하지 못하고 회의를 마쳤다고 하였다. 이처럼 네 차례(6.30, 7.15, 7.28, 8.28)나 계속되는 이사회 유회로 2학기가 시작될 때까지도 나는 복직이 되지 않았다.

 3. 퇴거요구에 불응하고 학교 강의실에 함부로 침입하였다.

네 차례에 걸친 이사회 유회로 복직이 기약 없이 미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나의 복직을 저지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공작이 진행되고 있었다. 8월 17일(월) 교양학부 강OO 교수(그 교수는 1997년 11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을 대량으로 복사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5회 ‘추적60분’ 참조)가 재단 직원과 연명으로 나를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에 고발한 것이다. 고발장의 요지는 불성실한 태도로 근무를 하면서 학생들 시위를 자주 주동하고 또한 대학의 운영체계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자주 이의를 제기하여 재임용탈락된 사학과 한상권 교수가 1998년 3월부터 출근투쟁을 전개하여 건조물 무단침입, 불법강의 및 학생선동으로 교내질서를 어지럽힌다는 것이었다.
동년 12월 16일 북부지청 담당 검사가 가. 방실침입 나. 퇴거불응 죄명으로 나를 불구속 기소하였다.


<사진1> 공소장(백서 4, 133쪽)


공소 사실

피고인은 1983.8.22.부터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사학과의 조교수로 재직하다가 1997.2.28.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된 사람으로서,

1. 위 재임용 탈락 이후 피고인의 복직 및 재단 이사장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서울 도봉구 쌍문동 419. 덕성여자대학교 인문사회관 214호 교수연구실을 계속하여 사용하던 중, 1997.5.20.경 학교 측으로부터 내용증명 우편으로 위 교수연구실을 비우고 퇴거하여 달라는 요청을 받았음에도 이에 응하지 아니하고 1997.5.26.까지 연구실을 계속 사용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학교 측의 퇴거요구에 불응하고,

2. 1997.5.27.경 덕성여자대학교 인문사회관 2층에 있는 학생휴게실의 구석에 가로 3미터, 세로 2.5미터 규모의 대형게시판 1개와 가로 2.4미터, 세로 1.8미터 규모의 합판 2매를 사용하여 5평 규모의 공간을 조성한 뒤 그 안에 탁자, 의자 및 소파 등을 놓아두고 이를 무단히 개별연구실로 사용하여 오다가 1997.6 초순경 학교 사무처장 등으로부터 시설물을 철거하고 즉시 퇴거하여 달라는 요청을 받았음에도 이에 응하지 아니하고 그때로부터 1997.12.4.경까지 계속 사용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학교 측의 퇴거요구에 불응하고

3.1998.3.경부터 학교 내 강의실 등을 무단히 사용하여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여오다가 1998.3.23. 학교 측으로부터 학생들을 상대로 한 부정강의 및 강의실의 무단사용을 즉시 중지하여 달라는 요청을 받았음에도

1998.5.4. 11:00경 덕성여자대학교 인문사회관 331호 강의실에 함부로 들어가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한 것을 비롯하여 그달 25.까지 별지 기재와 같이 모두 7회에 걸쳐 학교 강의실에 함부로 들어가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한 것이다.



연구실을 비워주지 않고 인문사회관 로비에 앉아 있었다는 이유로 ‘퇴거불응죄’와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했다는 이유로 ‘방실침입죄’로  기소한 것이다.

학교의 대표인 총장이 복직을 결정하고 특별임용을 제청까지 한 상태에서 학교운영의 책임을 맡고 있는 보직교수도 아닌 평교수가 나를 고발하였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담당 검사도 이 점을 궁금해 하였다.


문 : 진술인은 재단의 위임을 받아 한상권을 고발한 것인가요?

답 : 아닙니다. 재단하고는 상관없이 제 개인적으로 고발을 하였습니다.

문 : 진술인은 대학재단측도 아닌데 같은 교수의 입장에서 한상권을 고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예. 저는 교수의 본분은 연구를 하면서 학생들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한상권 교수는 자기의 정치적 야심을 위하여 학생과 언론, 재야단체 등을 끌어 들여 현재 많은 학생과 교수, 재단 등이 막대한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같은 교수의 입장에서 한상권 교수를 고발한 것입니다.



교수로서 학생들을 올바로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자적 사명감과 사회적 정의감 때문에 고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로써 설명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다.

  첫째, 고발한 시점과 관련된 의혹이다.
고발장은 8월 17일 접수되었다. 이때는 일 년 이상에 걸친 학내 민주화 및 복직투쟁이 마무리면서 교원인사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한상권 교수 복직제청이 동의되었고, 이강혁 총장이 법인 이사회에 한교수의 특별 채용을 위한 복직제청을 한 이후여서 학내분규는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고 학교는 평온을 되찾아 가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복직투쟁이 거의 마무리 되는 시점에서 뒤늦게 고발하면서 교육자적 사명감과 사회적 정의감을 고발 동기로 내세우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새 이사진이 들어선 이후인 1999년 9월 10일, 강 교수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징계사유는 1. 한상권 교수 형사고발로 인한 대학 운영질서의 파괴행위 2.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 복사로 인한 교수품위 손상행위 3. 김 아무개 교수의 폭행사건과 관련 법원, 검찰청에 제출한 진술서를 통한 교수품위 손상행위 등이었다. 징계위원회 자리에서 한 교수 고발과 관련된 질문이 있었다.


김OO 위원 : 97년 3월 1일자로 한상권 교수가 해직되었으며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97, 98년에 처절한 투쟁을 하였는데 그 안에도 할 수 있었음에도 1년 반 이상 시간이 흘러 고발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강OO 교수: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마음속의 갈등이 있을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고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김OO 위원 : 그것은 전혀 이유가 되지 않는다.

정OO 위원장 : 한상권 교수의 복직을 어렵게 만들려는 의도는 없었는가?

강OO 교수 : 없었다.

정OO 위원장 : 총장이 복직 제청을 하였지만 유죄가 되면 복직이 안 된다. 생각 못하고 한 것인가?

강OO 교수 : 못하고 했다.



강 교수는 학교에 대한 애교심과 정의감 때문에 고발한 것이지 복직을 방해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립학교법과 덕성여대 정관에는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자”를 교수임명결격사유로 규정하였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학교가 평온을 되찾고 학생들이 수업을 받도록 하려는 충정에서 한 교수를 고발하였다는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둘째 고발인 자격과 관련된 의혹이다.
대학 구내를 관리하는 책임자는 총장이다. 따라서 고발이 필요하다면 그 주체는 총장 또는 관할대학 학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주거지의 관리책임자도 아니고 고발의 주체도 될 수 없는 평교수가 총장의 뜻에 반하여 한 교수를 고발한 점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징계위원들은 이 점에 관해서도 강 교수를 추궁하였다.


정OO 위원장 : 학교에는 담당 분장업무가 있어 학교질서를 위해 직제상 책임질 사람이 많은데, 직제상 관련이 없는 사람이 고발을 했기 때문에 한 번 더 물어 보는 것이다.

강OO 교수 : 모교에 대한 애교심 때문이다.

김OO 위원 : 학교에 대한 애교심, 정의감, 충정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 외에는 없는가.

강OO 교수 : 없다.

신OO 위원 : 강OO교수가 고발장을 쓴다던가 입증자료를 입수하는데 있어 재단의 도움을 받았는가?

강OO 교수 :  아니다.

신OO 위원 : 한상권 교수가 고발된 당일 날 사무국장이 당시 박승서 이사장 직무대리에게 고발장을 복사해서 FAX로 보낸 사실이 있고, 박승서 직무대리가 다음날 이사회 회의석상에서 고발장 사본을 나눠준 사실이 있다. 강OO 교수가 고발장을 정한모 국장에게 준 사실이 없는가?

강OO 교수: 없다.



징계위원들이 고발에 필요한 입증자료를 입수하는데 재단의 도움을 받지 않았냐고 추궁하자 강 교수는 부인하였다. 그러나 강 교수가 고발인 자격으로 검찰에 출두하여 한 발언은 이와 다르다. 검사가 고발내용에 대한 입증자료를 요청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예. 입증자료는 97.6.3과 6.4 한상권이가 학생회관 복도를 무단 점거하고 학생 약 40명을 모아놓고 공개강의를 강행하였는데 당시 한상권이가 행한 발언 등을 대학 학생처 학생과에서 일일보고서를 작성하였는데 그 일일보고서를 제출하겠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강 교수는 학생처 학생과에서 작성한 일일보고서를 고발내용의 입증자료로 제출하였다. 학교에서 비밀리에 작성한 나에 관한 사찰보고서를 어떻게 강 교수가 입수하였는지, 이 점은 검사가 묻지 않아 알 수 없다. 징계위원회에서 학생처장이 자료유출에 관해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발뺌하는 점으로 보아 자료가 불법으로 강 교수에게 유출된 것만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하여 징계위원회에서의 다음 발언이 주목된다.


신OO 위원: 강OO 교수가 한상권 교수를 고발한 사실을 재단에 보고한 적이 있는가?

강OO 교수: 총장한테 찾아간 것 같다.

이OO 위원: 고발하기 전인가? 고발하고 난 후인가?

강OO 교수: 고발한 후이다.



강 교수는 고발 직후 총장을 찾아가 고발사실을 보고하였다. 이강혁 총장은 5월 하순에도 본부 처·실장으로 하여금 한교수를 고발하도록 하여, 강한 반발을 받은 바 있다(15회; 한상권교수 복직 결정). 결국 이강혁 총장의 한 교수 고발 요청을 본부 보직교수 대신 평교수인 강 교수가 대신 들어준 셈이었다. 따라서 검찰에 제출된 입증자료도 총장의 묵인·방조 하에 강 교수에게 건네졌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세 번째 고발 동기와 관련된 의혹이다.
왜 많은 구 재단측 교수 가운데 하필이면 강 교수가 나섰는가 하는 점이다. 징계위원들은 강 교수의 고발이 사주를 받거나 의도성이 있었다며, 고발 동기를 집중적으로 추궁하였다.


김OO위원 : 교수도 아니고 수익사업부 과장인 안OO 과장과 왜 연합하여 고발을 했는가? 안OO 과장은 박원국 전 이사장과 빛과 그림자의 관계이다. 강OO 교수의 시아버지가 유OO씨죠? 박원국 전 이사장과 친분이 두텁죠?

강OO 교수 : 사학재단 이사장으로 있을 때 박원국 전 이사장이 부회장으로 있었는데 이런 관계면 친하다고 하는가?

김OO 위원 : 김계수 이사장 서거 이후 박원국 전 이사장이 유OO씨를 이사장에 추천하였는데 이사회에서 부결된 것을 아는가?

강OO 교수 : 처음엔 모르고 나중에 알았다.

김OO위원 : 박원국 전 이사장과 안OO씨와의 관계, 박원국 전 이사장과 유OO씨와의 관계를 볼 때, 강OO 교수가 정의감에 의해 고발을 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며 분명 연계가 되어있었다.

강OO 교수 : 시아버지가 이사장으로 추천되었다는 것은 교협 교수를 통하여 알게 되었고, 안OO씨와의 관계는 지난번에 말씀드렸기 때문에 더 이상 말씀드릴 것이 없다.


  박원국 전 이사장이 서거한 김계수 이사장 후임으로 강 교수의 시아버지를 덕성학원 이사장 후보로 추천하였다는 징계위원의 발언덕성학원 제24차 이사회에서 있었던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10월 27일, 이틀 후에 열리는 이사회에서 다룰 ‘이사 선임에 관한 건’에 관해 의견조율을 하기 위해 이사 간담회가 열렸다. 이에 앞서 박원국 전 이사장은 10월 31일 자로 임기가 만료되는 재단 사무국장 후임으로 안OO 재단 수익사업부 관리과장(그는 1997년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박원국 전 이사장의 해임을 ‘하늘이 통곡할 일’이라며 장관을 추궁했던 자민련 안택수의원의 사촌동생이다, 11회: 하늘이 통곡할 일이에요 참조)을 추천하고, 강 교수의 시아버지인 유OO씨를 이사장으로 선임해줄 것을 이사들에게 요구하였다. 행정소송을 통해 이사장으로 복귀하려 하였으나 교육부의 변론재개 신청으로 재판진행이 여의치 않게 되자, 신임 이사장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이사회를 장악하려고 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이사들은 “안OO은 한교수를 고발한 사람이고, 유OO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사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며 반발하였다.

10월 29일 열린 24차 이사회에서 논의 끝에 “현재 이사회가 이사장이 궐위된 상태이고 임시적인 이사회체제이므로 원만한 법인운영을 위하여는 사무국장을 교체하기 보다는 현 체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는 박승서 이사장직무대행이사의 제안과 이사들의 동의에 따라 현 사무국장을 연임시키기로 결의하였다. 이어 1호 안건 ‘이사 선임에 관한 건’은 본 건에 대한 의견을 조율하기 위하여 이사회 전에 비공식으로 간담회를 개최하여 협의를 하였으나 사전협의가 어려운 형편이라는 이사장직무대행이사의 보고가 있었으며, 심의결과 이사 선임에 관한 건은 이사들 간의 협의에서 의견일치를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의결하지 못하고 유보하기로 하였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강 교수의 한 교수 고발은 다음 두 가지를 의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하나는 한상권 교수 복직이 가시화되자 복귀를 저지하려는 목적이었다. 사립학교법과 덕성여대 정관에 비추어 볼 때, 고발 의도가 한 교수 복직을 저지하려는 데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강 교수는, 두 차례에 걸친 검찰 조사에서, 검사에게 “철저히 조사하여 법과 질서를 어기는 사람은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피고인을 처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일관되게 한 교수 형사처벌을 요구하였다. 만약 그의 요구가 관철되었다면 설사 총장이 복직제청을 하였더라도 이사회에서 복직 의결을 할 수 없게 된다.

강 교수는 3월 25일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한 교수가 복직되자 법정에 나타나지 않아 검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 소를 취하하였다. 강 교수 자신의 주장대로 교육적인 차원에서 과거에 대한 잘잘못을 가릴 목적으로 고발하였다면 법정에 출두하여 소신을 밝히고 끝까지 소를 취하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 점을 징계위원들이 추궁하였다.


김OO위원 : 고발했을 때 복직을 방해하려는 의도는 없었고 잘잘못을 가리기 위해서 했다고 했는데, 복직이 되니까 법원의 재판에 가지도 않고 고소 취하를 했다. 이것은 잘잘못을 가리기 위해서 했다 라는 말과 맞지 않는다.

강OO 교수 : 왜 안 맞는가? 한상권 교수의 경우 교협 교수에게도 말을 했지만 억울하다면 법으로 호소해야 한다고 했었다. 고소 취하는 나중에 심경의 변화 등 여러 가지 개인적인 갈등이 많이 있었다.

김OO 위원 : 자기의 추정과 철학에 변화를 줄만한 것이 있었는가?

강OO 교수 :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고소취하를 했다.



1999년 5월 19일(수) 강 교수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북부 지원에 가서 소를 취하했다고 했다. 내가 “왜 취하했는가?” “검찰에 두 번이나 출두하여 처벌을 원한다고 하지 않았는가?”라고 묻자, 강 교수는 “생각이 복잡하다. 이유는 이사장님이 탄원서도 쓰고 하여 화합 차원에서 하였다”라고 대답한 후,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다른 하나는 구재단의 복귀를 도우려는 목적이었다. 김계수 이사장 서거 이후 취약해진 이사회를 흔들음으로써 박원국 전 이사장의 복귀를 용이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박원국 전 이사장은 1997년 10월 10일 있은 교육부의 임원취임승인취소처분에 맞서, 같은 해 12월 9일 교육부를 상대로 ‘이사장및이사직취임승인취소처분취소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박원국 전 이사장이 제기한 취소청구의 소는 여러 번의 변론 끝에 1998년 7월 23일 변론을 종결하고 9월 24일 선고 예정이었다. 박원국 전 이사장은 9월 24일 자로 행정소송에서 이겨 자신이 복귀할 것이니 후임 이사장 선임문제는 그 때까지 유보해달라는 팩스를 모든 이사들에게 보내 후임 이사장 선임을 지연시켰다. 그리고 그의 측근 교수들은 박원국 이사장님께서 9월 24일 틀림없이 복귀한다는 소문을 공공연히 퍼뜨려 교수사회를 동요시켰다. 그러나 교육부가 보조변호사를 새로 선임하고 변론재개신청을 내어 소송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교육부의 변론재개신청이 재판부에 의해 받아들여져 10월 22일 속행함으로써 판결을 통한 구 재단 복귀 전략은 차질을 빚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자신의 주장이 사실무근으로 드러나자 박원국씨는 이번에는 자신이 천거하는 인사를 이사장으로 선임해 달라고 이사진에 압력을 넣었다. 한편 이사회 내에서 박원국 전 이사장이 행정 소송에서 승소하여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한 이는 나의 복직을 끝까지 반대한 최OO 이사였다. 그는 이사회의 기능은 최소한만 유지하도록 하면서, 핵심적인 두 가지 사안인 한 교수 복직 안건과 신임이사 선임 안건이 상정되기만 하면 중도 퇴장함으로써 논의 자체를 원천 봉쇄하였다.

  이상 한상권 교수 고발을 총 지휘한 사람은 박원국 전 이사장이며, 이강혁 총장은 그의 충실한 대행자였다. 8월 중순 경 박원국 전 이사장은 김근태 의원을 만나, “나한테 손 털고 나가라고 하는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한 교수는 밖에 알려진 만큼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한상권 교수가 들어오면 학교가 통제 안 된다”고 하였다. 또 복직에 찬성하는 이사에게 전화를 걸어 “한교수가 들어오면 학교가 절단난다”며 복직을 추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였다. 이강혁 총장은 대학의 권위와 자율성을 스스로 포기하면서 대학을 재단에 예속시키는 역류 책동에 동조하였다. 투병중인 이사장 집에 찾아가 자신을 반대하는 처·실장 보직사표를 수리하고, 구 재단을 추종하는 교수들 일색으로 보직 인선을 하였으며, 한 교수 고발사실을 보고받고도 묵인·방조한 행위 등이 그 구체적인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