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기억을 둘러싼 투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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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둘러싼 투쟁 (1)

한상권(중세사2분과)


1. 이사장님께 속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1999년 10월 11일(월), 평온하던 교정에 느닷없이「교권수호대책위원회」란 정체불명의 단체 이름으로 플래카드와 대자보가 나붙었다. 이문영 이사장이 덕성 출신 교수를 탄압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흘 후에는「덕성여대정상화추진교수회」라는 이름으로 “이문영 이사장은 전횡을 중단하라”는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1학기 내내 조용하던 교정에 갑자기 비방 선전물이 나붙은 까닭은 덕성여대가 마치 분규 대학인양 내보이려는 속임수가 작용하였기 때문이었다. 개혁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여름 방학 동안「교권수호대책위원회」「덕성여대정상화추진교수회」는 국회의원실을 찾아다니면서 이사회를 비방하는 진정서를 제출하고 국정감사를 호소하였다. 그 결과 덕성여대가 분규대학으로 분류되어, 법인의 전횡과 교수채용 비리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학들과 함께 피감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10월 13일(수)부터 15일(금)까지 3일 동안 국회 교육위원회 회의실에서 청문회 형식으로 분규대학 국정감사가 진행되었다. 경원대· 그리스도신학대·한국외국어대(13일), 경문대·상지대·대구대(14일), 중부대·한려대·덕성여대(15일) 등 아홉 대학이 피감 대학으로 선정돼 국정감사를 받았다. 아홉 대학 가운데 현재 학내 분규를 겪고 있거나 비리재단이 현존하는 다섯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네 대학(상지대, 한국외대, 상지대, 대구대, 덕성여대)은 피감 대학으로 선정된 자체를 의아해 했다. 정작 분규가 극심하여 학교가 파국으로 치달을 때는 ‘사학의 자율성 침해’라는 구실로 한사코 딴전을 피우던 교육위원들이 학내분규가 말끔히 치유되고 평온을 되찾자 새삼스럽게 국감을 하겠다니, 그 저의를 의심하는 것이 당연했다.

  전국대학노동조합이 옥석구분없는 국정감사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국회 교육위원회는 더 이상 사학재단의 앞잡이 노릇을 하지 말라”고 질타하였다.


우리는 지난 97년, 98년 덕성여대 대학 민주화 운동과 관련되어 재임용에서 탈락한 한상권 교수의 재임용과 덕성학원 정상화를 위한 대책위원회 활동을 전개하면서, 덕성여대에 대한 국정감사 실시를 국회 교육위원회에 수차례 요청한 적이 있다. 당시 국회 교육위원회는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우리의 거듭된 국정감사요구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거부했었다. 그러던 교육위원회가 대학이 정상화된 (덕성여대를) 지금에 와서 일방적으로 분규대학이라 규정하고 감사를 실시하겠다는 것은 국정감사라는 순수한 의도 이외에 구 재단 복귀를 위한 의도가 숨어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피감 대상으로 선정된 네 대학의 공통점은 구 재단의 비리와 전횡으로 한때 극심한 학내 분규에 휘말렸던 대학들이라는 점이었다. 또한 이사진이 전면 교체되거나 임시이사가 파견돼 학사운영에 안정을 찾았다는 점도 일치하였다. 특히 이들 대학은 이 해 8월 사립학교법 및 고등교육법 개정안 통과 당시 교육위 소속 몇몇 의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교육 7적’으로 규정하는데 가장 앞장섰던 학교들이었다. 국회 교육위 소속 일부 위원들이 자신들의 심기를 건드린 괘씸죄로 구 재단의 복귀를 돕기 위해 분규대학으로 지목한 것이라는 등 뒷말이 무성하였다.


<사진 1> 누가 우리를 ‘분규대학’이라 하는가(한국대학신문, 1999.10.18.)

특히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동토의 왕국’에서 ‘양심과 희망의 대학’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덕성여대가 피감 대학으로 선정된 데에는「덕성여대정상화추진교수회」의 역할이 컸다. 관선이사 파견이 임박할 즈음인 1998년 12월 초, 박원국 전 이사장 측근 교수들이 관선이사 파견을 반대하는 교수서명 작업을 벌였다. 권순경 전 총장 직무대리와 주영숙 전 총장이 앞장서서 교수 서명을 독려하였다. 이들은 “박원국 이사장님께 속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건국대도 이사장이 쫒겨나 주인이 없어 망하고 있다”는 등의 말로 교수들을 압박하였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서명한 교수들의 이름이「덕성여대정상화추진교수회(정추교)」회원 명단으로 둔갑하였다. 정추교 회원명단은 관선이사 파견을 반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청원서와 함께 이해찬 교육부장관(98년 12월 9일과 99년 2월 8일자)과 김종필 국무총리(99년 2월 8일자), 김대중 대통령(99년 2월 18일자)에게 각각 제출되었다.

  이 명단은 이후에도 국회·교육부·법원 등에 제출되어 박원국 전 이사장의 복귀를 돕는 자료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정추교는 정식 창립절차를 거치지 않은 단체이기에 회원 명단에 들어 있는 상당수의 교수들이 자신의 이름 도용에 항의하였다. 또한 정추교는 이미 퇴직하였거나 다른 대학으로 옮긴 교수들도 회원 명단에 포함시켰기에 정확한 회원 수조차 파악할 수 없는 허구적 유령단체에 불과하였다. 그래서인지 교육부의 국회 보고문건에서도 정추교 소속 교수의 수치를 정확히 밝히지 못하였다.

정추교는 이문영 이사장을 비롯한 신임 이사진을 ‘어용이사’라고 부르면서 “덕성학원의 경영권을 탈취하여 들어오는 것”이라고 매도하였다. 또한 이문영 이사장이▶덕성출신 동문교수탄압 ▶대학평의원회와 교원인사위원회를 자파세력을 구성하여 대학의 지배권 장악 ▶이강혁 총장의 권한 침해 ▶일부 극렬 교수와 한총련과 연대 ▶덕성학원의 경영권 찬탈 등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덕성여대를 국정감사 해달라는 진정서를 교육위원들에게 제출하였다. 이를 근거로 한나라당 소속 교육위원들이 덕성여대를 분규대학으로 분류, 국정감사 대상으로 선정한 것이다.

  10월 15일 열린 교육위의 국정감사에서 현 정권의 산실인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으로서 덕성학원 이사장에 취임한 이문영 이사장의 공과(功過)를 둘러싸고 여야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사진 2> ‘이문영 이사장 공과’ 누구 말이 맞나(국민일보, 99.10.16)

야당인 한나라당 위원들은 이문영 이사장이 분규를 해결하는데 그치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영구적으로 학교를 장악하려 한다고 몰아붙였다. 한나라당 박승국 위원은 “자중해야 할 정권의 실세가 경제가 어려운 IMF 시대에 사립학교 이사장에 취임해 교비 23억 원을 들여 수리한 아방궁 같은 사무실에서 연봉 1억 원, 판공비 1억 6천만 원 등 연간 5억 원의 사학경비를 축내면서 호가호위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에 대해 이문영 이사장은 “조사도 하지 않은 근거 없는 내용을 묻지 말라”고 반박했다. 같은 당 김정숙 위원은 “이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측근 3명을 이사로 앉히고 교원인사조정특위를 설치해 총장의 교원인사임면권을 박탈하는 등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쏘아 붙였다. 그러자 국민회의 설훈 위원은 “박원국 전 이사장 시절 동토의 왕국이었던 덕성여대가 이문영 이사장 취임이후 양심과 희망의 대학으로 탈바꿈했다”면서 “이처럼 잘 운영되고 있는 덕성여대가 왜 분규대학 국정감사 대상기관으로 선정됐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정추교는 국정감사를 통해 이문영 이사장의 비리를 폭로한 후 퇴진운동을 벌이고자 하였다. 이들이 세운 퇴진방략은 다음 세 가지였다.


○ 이사장의 봉급수령과 판공비사용 및 이사장실 수리 등 금전 문제를 부각시킴으로써 이사장을 흠집 내고 이사회를 흔든다.
○ 이사회가 대학평의원회를 구성하여 총장의 권한을 침해하였다고 주장하여 개혁 작업에 제동을 건다.
○ 인사조정특별위원회 활동을 문제 삼아 위기에 몰린 구세력에게 힘을 불어넣는다.


  정추교가 교육관계법을 개악하여 교육·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교육 7적’으로 지목된 교육위원들을 대상으로 여름 방학동안 로비를 벌이는 한편, 국감 직전 학내에 괴문서를 살포하고 플래카드를 부착하여 분규상황을 위장한 것은 이러한 음모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정추교는 국정감사를 통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하였다. 자신들이 줄기차게 요구한 교육부 특별감사를 민주세력의 반발로 이끌어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사안에 대한 교육부의 시정조치 역시 ▶이사장 봉급은 상근이므로 적법하다 ▶인사조정특별위원회는 인사위원회의 자문기구이면 가능하다 ▶이사장실 이전 비용은 교비로 지출한 것이므로 재단에서 이입하도록 하라는 등 경미한 사안에 그쳤다. 이에 정추교는 직접 실력행사로 들어갔다. 정추교와 교권수호대책위원회 교수들은 쌍문동 이문영 이사장 집 앞에서 세 차례에 걸쳐 퇴진촉구 집회를 가졌다(10월 18일, 22일, 26일). 11월 23일에는「(가칭)덕성여자대학교민주화및정체성수호를위한교수회(정수회)」라는 또 다른 정체불명의 단체가 등장하여 “독재를 일삼는 현 덕성학원 이문영 이사장은 즉각 퇴진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과거 덕성은 박원국 전 이사장의 일인독재 치하에 있었고, 박 전 이사장이 휘두르는 전횡 앞에 구성원들은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반면 이문영 이사장 취임 이후 학교의 권력을 평교수와 학과에 돌려주도록 제도개혁을 하였다.


<사진 3> 평교수·학과에 대학권력 돌려줘야(한국일보)

과거 인사위원회는 박원국 이사장 측근 보직 교수들만으로 구성되어 이사장 뜻대로 승진·재임용에서 탈락시켜 학내 불만과 분규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인사위원회 위원들은 총장이 임명하는 것이 대학의 일반관행이다 하지만 덕성여대의 경우 오랫동안 자행된 편향적 인사행정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하여 인사위원 9명 중 7명을 교수들 직선으로 선출하기로 하였다. 직선으로 선출한 평교수 중심의 인사위원 제도는 전국 최초로 시행되는 것이었다. 대학평의원회의 교수위원 역시 교수들이 직선으로 선출하는 대학은 거의 없었다.

  이밖에도 옛날에는 이사장이 학과장을 지정하고 그 임기도 무한정이었다. 학과에 따라서 특정인이 10년 이상 학과장을 독점하는가 하면, 재직한 지 14년 된 교수가 학과장을 한 번도 맡은 적이 없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를 2년 순환제로 하여 누구나 다 학과장을 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과거 이사장이 지정하던 교과과정위원회나 교양과정위원회의 위원들은 학과장이 자동적으로 맡게 하였다. 실정이 이러한데도 박원국 전 이사장의 전횡에 숨죽이고 있었던 구 재단세력들은 이문영 이사장을 ‘독재자’라 비난하면서 퇴진을 요구하였다.

2. 이문영 이사장의 뼈아픈 두 가지 실책


국정감사 이후 구 재단을 추종하는 세력들의 공세가 날로 강화되었다. 이강혁 총장과 박원택 이사가 뒤를 봐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강혁 총장은 국정감사장에서 “총장의 권한을 침해당했다” “학생들 동요 조심이 있다”는 허위성 증언을 함으로써 이문영 이사장을 정면 비판하였다. 뿐만 아니라 국정감사가 끝난 이후 구 재단 세력들이 학내에 대자보와 플래카드를 내붙여 허위사실을 유포하면서 분규를 부추기고 있는데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마침내 11월 12일 직무유기를 하고 국감장에서 위증을 하였으며 이사회를 음해하고 학내 구성원들을 선동한다는 등의 이유로 이강혁 총장이 해임되었다.

  이강혁 총장도 즉각 반격에 나섰다. 그는 [덕성구성원께 드리는 글]을 통해 “금년 2월 이문영 이사장의 취임을 계기로 드디어는 대학의 모든 규정을 상위법인 교육관계법령을 위반하면서까지 개정, 변경하여 총장의 권한을 불법 또는 탈법적으로 박탈함으로써 학내 분규를 조장하였”다며 이문영 이사장을 정면 공격하였다. 이어 “이문영 이사장의 초법적인 독선과 전횡으로 얼룩진 우리 대학을 정상화하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아끼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다”며, 전면전을 선포하였다(11.15.).이문영 이사장의 이강혁 총장 해임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박원택 이사 부자의 해임 반대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교육부로부터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듬해 3월 20일 이사회는 이강혁 총장 해임 처분 취소 결정을 내리고그를 복귀시켰다.

  어설픈 총장해임이 이문영 이사장의 첫 번째 실책이었다. 이문영 이사장이 아무런 부작용 없이 이강혁 총장을 교체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전에 두 차례나 있었다. 이문영 이사장은 [국정감사를 치른 후 덕성여대 모든 구성원들에게 드리는 글]에서, 국감장에서 제기된 의혹 가운데 “총장 권한 침해”에 관해 다음과 같이 해명하였다(10.22.).


  본인은 총장의 각종 권한을 침해한 바 없으며, 오히려 총장의 인사권 남용을 시정하고자 노력했을 뿐입니다. 더욱이 본인은 이사장 부임 시 총장이 제출한 사표를 반려하고, 대학 개혁을 이끌어 줄 것을 부탁했었습니다. 그 후 개혁이 지지부진하여 총장과 교수들 간에 마찰이 일어나 총장이 다시 사의를 표명했을 때에도 이를 거듭 만류하고 대학개혁에 교수들과 함께 매진해 줄 것을 거듭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본인은 기존의 보직교수들의 분포가 지극히 편향적임에도 이미 임명된 보직자들의 임기를 존중해 왔으며, 다만 총장이 교무처장으로 추천했던 인사가 규정에 어긋나서 재고 의사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이강혁 총장이 새 이사진이 구성된 이후에도 계속 직무유기를 하면서 개혁 작업을 방해하였지만, 총장의 사표를 두 번이나 반려하면서 개혁에 동참할 것을 간곡히 호소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강혁 총장은「개교 49주년 기념사」에서 1997년의 학내 민주화 투쟁을 덕성학원의 위상을 추락시킨 것으로 폄훼하면서, 박원국 전 이사장이 만든 ‘교양교육 강화’라는 교육이념을 충실히 따를 것을 천명한 데서 볼 수 있듯이 전형적인 구 재단 추종 인물이었다. 이강혁 총장의 언행불일치, 비민주성, 반 개혁성을 보여주는 편파적이고 파행적인 학사운영 사례는 무수히 많다. 박원국 전 이사장이 남긴 반교육적이고 비민주적인 제도와 관행을 개혁해야 하는 당연한 의무를 태만히 해온 인물에게 함께 개혁 작업을 하자고 호소하였다니,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문영 이사장의 더 큰 실책은 박원택 이사와 손을 잡은데 있다. 박원국 이사장의 둘째 동생인 박원택 이사는 이사로 선임되기 전까지는 덕성여대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인물이었다. 이러한 인물이 덕성에서 발언권을 갖게 된 까닭은 이문영 이사장의 그릇된 상황판단 때문이었다.

  이문영 이사장은 취임 초부터 “현 이사진은 본인의 임기까지 함께 간다”는 약속을 수차례 하였다. 이는 이문영 이사장의 임기가 함께 온 이상신·정경모·김유배(청와대 노동복지수석으로 3월 3일 임명됨에 따라, 후임으로 함세웅 신부가 4월 13일 선임됨)이사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약속이었다. 1999년 2월 23일 열린 학교법인 덕성학원 28차 이사회에서 ‘이사 임면에 관한 건’을 심의하면서, 정관 제 19조 제2항에 의하여 보선에 의하여 취임하는 임원의 임기는 전임자의 잔여기간으로 하도록 하였다. 고 김계수 이사장의 후임으로 취임하는 이문영 이사장의 경우, 김계수 이사장이 1997.12.4부터 2001.10.25.까지 임원취임 승인을 받았으나 작고하였기에, 임기는 정관에 따라 교육부의 승인을 받는 날로부터 2001.10.25까지였다. 반면 이상신․정경모 이사의 임기는 2000.1.28.까지로 이문영 이사장 보다 20개월 이상 앞섰다.

  이문영 이사장이 자신보다 먼저 임기 만료되는 이상신·정경모 이사를 연임시키기 위해서는 개혁성향의 이사 한명을 더 확보해야만 했다. 학교법인 덕성학원 정관 28조에 이사회 안건은 이사 정수의 과반수 출석과 재적이사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되어 있다. 덕성학원 이사회 이사정수는 7명이므로 의결정족수는 4명이 된다. 그런데 동 29조에 임원 및 학교의 장의 선임과 해임에 있어 자신에 관한 사항은 의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자파 이사를 연임시키기 위해서는 이사 한 명이 더 필요했다.

  이문영 이사장이 이사 한 명을 더 확보할 수 있는 기회는 의외로 빨리 왔다. 1999년 3월 3일 구 재단측 인사인 이행원 이사가 사표를 냈기 때문이다. 이문영 이사장으로서는 공익적인 인사 한 명을 더 확보하여 개혁 체제를 확고히 구축할 수 있는절호의 찬스였다. 3월 18일(목) 결원 이사의 후임을 뽑는 이사회가 열렸다. 이날 이사회에서 이문영 이사장은 개혁 성향의 인사가 아닌 박원택 상임이사의 아들 박상진(외국 이름 박토마스)을 후임 이사로 선임하였다.

이문영 이사장은 자신의 취임사에서 밝힌 “사학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에 따라 박원택씨를 상임이사로 그 아들인 박상진씨를 이사로 선임하였으며, 덕성학원의 모든 재정운영은 박원택 부자가 맡도록 하였다. 그리고 박상진 이사를 차기 이사장으로 지목하고, 좋은 이사장이 되도록 교육도 하였다. 박상진 이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상임이사가 됨으로써 덕성학원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실제로 박상진 상임이사는 이사장 수업의 일환이라는 명목으로, 신임교수 초빙 시 이문영 이사장과 함께 신임교수 후보자를 최종 면접하는 특권을 누렸으며 각종 위원회에도 참석하였다.

  그러나 박원택 이사를 동반자로 선택한 이문영 이사장의 결정은 기득권 세력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한 데서 말미암은 뼈아픈 실책이었다. 이문영 이사장의 패착으로 덕성을 개혁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는 사라지고 말았다. 아들이 상임이사이고 아버지가 이사인 정상적인 대학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형적인 재단이사회가 꾸려졌으며, 박원택 이사의 동의 없이는 이문영 이사장과 함께 온 개혁적인 이사들을 연임시킬 수도 없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2000년 1월 25일 열린 이사회에서 박원택 이사 부자의 거부로 덕성 개혁을 진두지휘해 온 이상신·정경모 이사의 연임문제가 처리되지 못하였다. 정추교, 정수회 등 구 재단세력들이 온갖 중상모략과 공격을 퍼부어 이들 이사의 연임을 막았다.  두 이사가 1월 28일자로 임기만료로 불명예퇴진함에 따라 이문영 이사장도 의결권을 상실하였다. 3월 22일 열린 이사회에서 이들 이사의 후임으로 박원택 이사의 고등학교 1년 선배인 김기주 전 호서대총장, 그리고 박상진 이사의 외국인 학교 동창생인 외국인 John Linton(한국명 인요한)이 선임되었다. 3년 만에 이사회 의결권이 다시 박씨 일가로 돌아가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3. 아버지, 아들, 아버지의 친구, 아들의 친구가 한 자리에 모인 이사회


이사 정수의 과반수가 박원택 이사와 혈연·학연 관계가 있는 인사로 구성된 ‘사랑방좌담회’ 수준의 덕성학원 이사회가 사학의 공익성을 추구할 리 만무하였다. 아버지·아들․ 아버지의 친구․ 아들의 친구, 이들 4명이 모여 앉아 학생 5천여 명이 다니는 덕성여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였다.

  마침내 5월 7일 이문영 이사장이 “사학을 존중하고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취임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사퇴할 수밖에 없다”며,자신이 추천한 이사 2명과 동반 사퇴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문영 이사장은 사퇴 성명서에서 개혁 추진이 좌절된 경위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불행하게도 1년이 지난 지금 덕성여대는 다시 혼란 상태에 빠졌고… 본인과 함께 덕성학원의 개혁을 주도했던 두 이사가 불명예 퇴진하게 되었고, 학교를 잘못 운영하여 해임되었던 이강혁 총장이 복귀하게 되면서 학교는 다시 시끄럽게 된 것입니다. 특히 본인이 추천한 김기주 이사가 첫 참석한 이사회에서 인사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학사운영 원칙을 무시하였고 더구나 이사장을 보필해야 할 지위에 있는 (박원택) 상임이사가 이강혁 총장의 왜곡된 주장을 옹호·고집함으로써 본인에게 인간적 배신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박원택 이사가 자신을 상임이사로,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이사로 선임하여 학교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준 은공을 갚기는커녕 배신감만 안겨주었기에 이사장을 자진 사퇴한다는 것이다. 이문영 이사장의 자진 사퇴에는 새로 선임된 김기주 이사도 일조하였다. 김기주 이사는 5월 1일 첫 참석한 이사회에서 인사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학사운영의 원칙을 무시하고 박원택 상임이사의 전횡을 부추겼다. 박원택 상임이사는 이사회에서 이미 인사위원회를 거쳐서 제청된 교수 승진을 전면 보류시키고, 다시 인사위원회를 열어 승진이 부결된 두 명의 교수를 승진시키도록 대학에 지시하는 전횡을 주도하였다. 여기에 김기주 이사가 가세하여 박원택 상임이사의 안이 투표 결과 4대 3으로 통과되었다. 

  박원택 이사가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특별히 승진을 챙겨준 두 명의 교수는 국정감사 직후 이문영 이사장 퇴진을 위해 새로 결성한「덕성여자대학교 민주화 및 정체성 수호를 위한 교수회(정수회)」의 공동대표였다. 이들은 정수회 결성 선언문(1999.11.17.)에서 “현 이문영 이사장은 용서와 화해보다는 단죄 행위와 전횡을 일삼고 있다”며 “덕성학원 관리주체의 가족으로서 이사 자격이 있는 박원택 상임이사와 박상진 이사를 철저히 배제한 이사회의 의사결정행위 등은 사학의 설립취지와 근본정신을 말살하는 것이며, 이는 사학의 관리권을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였다. 이어 “덕성의 정체성 수호를 위해 이문영 이사장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학의 관리권’이라는 해괴망측한 용어까지 만들어내면서충성을 바치는 교수들에 대한 고마움을 박원택 이사는 승진으로 보답하였던 것이다.

  이문영 이사장을 비롯한 개혁 이사진의 사퇴로 덕성여대는 또 다시 과거로 회귀하였다. 크게 두 가지 퇴영적인 모습이 나타났다. 첫째, 덕성학원 이사회가 모자세습(송금선→박원국), 형제세습(박원국→박원택)에 이어 부자세습(박원택→박상진)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박씨일가 족벌체제로 되돌아갔다. 그 즈음 정주영 일가의 부자 세습행태를 보고 세간에서 비난이 빗발쳤다.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에서 조차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대세인데, 박원택 상임이사는 사회의 공기(公器)인 대학을 사유물화 하여 봉건적인 부자세습을 하였으니, 사회적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였다. 더구나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과는 달리, 박씨 일가는 설립자 차미리사와 아무런 연고권도 없었으므로 비난은 더욱 거셀 수밖에 없었다.

  1999년 국정감사를 통해 사립학교는 설립자 개인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10월 13일 국회 교육위 국정 감사장에서 노무현 의원(국민회의)은 김덕중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사립학교는 공익 재산으로 소유권이나 처분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사립학교의 주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추궁했다. 김 장관은 이에 대해 “사립학교에 설립자가 있지만 통념적으로 소유주나 주인이라는 말은 맞지 않는다”며 “(설립자라는 말은) 자신의 재산을 출연해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뿐 사립학교가 어느 개인의 소유는 아니다”라고 답변했다.외국의 보편적인 사례처럼 사학이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고 사회의 공기(公器)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사학재단의 공공성을 강조한 교육부 장관의 발언은 “사립학교법상 설립자에게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다”는 이수인 의원(한나라당)의 발언에서도 재확인 되었다.

학교법인 또는 사립대학의 설립 및 법적 성질에 관한 기본법에 의하면, ‘자연인이 자기 소유의 재산을 기증 또는 헌액으로 출연하여 공익을 목적으로 학교법인을 설비할 경우, 출연된 재산은 출연자의 사유재산과 구별되며 그 자체로서 독립된 법인격을 갖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학교법인의 기본재산은 기본적으로 사회에 환원된 공익 재산인 것이다. 사립대학은 학교법인에 의해 설치되고 운영되는 대학으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공익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학교 법인 뿐만 아니라 그 교육기관인 사립대학에 있어서 어느 한 개인이 아무리 많은 재산을 투입했다 하더라도 이는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이에 대해 재산권을 주장하는 것은 분명히 민법과 사립학교법의 법리에 반하는 것이다. 사립학교법 어디에도 설립자가 주인이라는 조항은 없다.

  2000년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이재정·임종석 의원은 “덕성여대는 전형적인 박씨 중심의 족벌체제”라며, “10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덕성여대 분규의 원인이 여기에 있으니 현재단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서는 이사진과 총장이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4> “형제‧부자세습 현 재단 물러나야”(한국대학신문, 2000.11.6)

  이문영 이사장을 비롯한 개혁 이사진의 사퇴로 덕성에서 나타난 두 번째 퇴영적인 모습은 개혁이 중단되면서 민주세력에 대한 탄압의 광풍이 몰아쳤다는 점이다.이사회를 장악한 박씨 일가는 이문영 이사장체제가 이루어놓은 개혁의 성과들을 원점으로 환원시키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박씨 족벌재단은 학원의 자율성과 교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민주세력들을 가차 없이 탄압하였다. 덕성학원은 대학 운영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주세력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검과 북부지청에 3중 4중으로 고소하여 공안정국을 조성하였다.


<사진 5> 학교법인 덕성학원과 덕성여대의 교수‧학생 고소 일람표(14건)

김기주 이사장직무대행은 국정감사장에서, 교수들 고소 목적이 “기소만 되어도 직위해제할 수 있다”는 사립학교법의 독소조항을 악용하여 해임하려는데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였다. 대학과 재단은 교수들을 고소고발하기 위해 감시사찰도청을 일삼았다. 교수들을 고소한 근거로 제출한 증거 가운데는 교수들이 학생 축제 때 한 발언은 물론 강의실에서 발언한 내용까지 상세하게 녹취되어 있었다.

  이강혁 총장도 여기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덕성학원 설립자 차미리사 선생 초상화 봉정식’을 불온 행위로 문제 삼은 것이다. 2000년 10월 10일 교수협의회가 총학생회, 민주동문회와 공동으로 행정동 입구에서 ‘차미리사 초상화 봉정식’을 가졌다. 교수, 학생, 졸업생이 공동으로 개최한 초상화 봉정식은 그동안 박씨 가문의 사유물로 잘못 알려져 있던 덕성학원의 정통성을 바로잡고 수십 년 간 족벌경영의 폐해를 받아 온 덕성여대를 근본적으로 바로 잡으려는 덕성 구성원들의 염원을 담고 있는 뜻 깊은 행사였다.


<사진 6> [학교정통성 바로 잡는다], (한국대학신문, 2000.10.16, 교협 4기년도 백서, 625쪽)

이는 덕성여대의 새로운 출발을 상징할 뿐 아니라, 그동안 뿌리가 왜곡된 다른 사학재단의 정통성 확립의 계기도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행사였다. 그러나 이강혁 총장은 덕성학원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는 행사에 참석한 교수들의 동정을 비디오로 촬영한 후, “대내적으로 학원을 혼란케 하고, 대외적으로 학원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내용의 경고장을 발송하였다. 이듬해 2월 재단 이사회는 “학원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일부 교수들의 일련의 집단 행위에 참가한 것을 이유로 총장의 경고를 받았다”는 사유 등을 들어, 봉정식에 참석한 3명의 신임교수를 재임용탈락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