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그 어떤 시기도 덕성여대에서 보낸 7개월처럼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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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시기도 덕성여대에서 보낸
7개월처럼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1)

한상권(중세사 2분과)

1. 파국으로 치닫는 덕성여대사태

1997년 8월 5일(화) 학생처장(약대), 교무처장(자연대), 인문대 학장, 정OO교수(사회대),  김OO교수(예술대) 등 5명의 교수가 총장실에 들이닥쳐 출입문을 닫고 총장사퇴를 요구하였다.

  이 자리에서 학생처장은 “사퇴 요구가 이사장님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라며, 학교 발전을 위해 사퇴해 달라고 하였다. 총장이 임명한 보직교수들이, 총장의 참모역할을 해야 할 보직교수들이 총장사퇴를 요구하는 대학사상희귀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수많은 사학이 부정ㆍ부패ㆍ비리로 말썽을 빚고 있으나 대부분이 재단을 등에 업은 총장과 개혁파 교수들의 갈등, 학생과 학교 간의 분쟁이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보직교수들이 총장실에 난입하여 면전에서 퇴진을 요구하는 덕성여대사태는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사진 1> 덕성여대사태 “파국 속으로” (한겨레 97.8.18, 백서 3-2, 398쪽)   

  이틀 후인 8월 7일(목) 오전 10시 40분, 또다시 4명의 교수가 총장실을 방문하여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서와 서명교수 명단을 전달하였다. 보직교수들이 제시한 성명서에는 ‘전ㆍ현직 보직자 16명 외 교수 50명 일동’이라고 서명 주체가 명기되어 있었다. 그러나 보직교수들은 나머지 50명의 서명교수 명단을 밝히길 거부하였다.

교수신문 취재결과 많은 교수들이 서명하는 과정에서 압력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 아무개 교수는 “새벽에도 전화를 걸어 서명을 종용하는 바람에 여간 스트레스를 받은 게 아니다. 특히 신분이 불안한 여교수, 시보교수들을 집중 공략하였다”고 밝혔다. 서명한 것으로 알려진 교수들은 한 결 같이 인터뷰를 꺼려했다. 대뜸 먼저 “왜 나한테 전화를 걸었느냐”는 것이었다.

  심지어 서명을 주도했던 학생처장조차도 교수신문 기자에게 “왜 내게 전화를 했는가. 나는 할 말이 없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서명교수 책임자나 대표가 누구인지 묻자 “나는 모른다, 모든 것은 추후에 발표하겠다. 서명교수 명단도 밝힐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김용래 총장이 학사업무와 현안 문제를 수습하는 일을 등한시 하고 총장으로서의 직무수행에 태만했다며 퇴진해야 할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성명서에 제시한 김 총장 퇴진이유 조차도 누구하나 제 입으로는 말하길 꺼려하고 있다고 취재기자는 말하였다.

  학내에는 총장이 이사회에서 곧 해임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8월 13일 교무위원들(학생처장, 교무처장, 사회대학장, 예술대학장, 사회대 이OO 교수)이 총장이 소집한 교무회의에 일방적으로 불참하면서 이사장이 소집한 신라호텔 모임에 몰려갔다. 신라호텔 불란서식당 “라 콘티넨탈”에서 열릴 예정인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교수신문 기자가 이날 이사회 정경을 취재하였다.

8월 13일, 신라호텔에서는 학교법인 덕성학원 이사회가 열렸다. 4개 의안이 마무리되고 기타 보고사항을 논의할 쯤 교무처장과 학생처장이 회의실에 들어섰다. 긴장감이 감돈 가운데 두 교수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이사들을 향해 ‘김 총장을 오늘 이 자리에서 해임해야한다’고 강력하게 호소했던 것으로 이사장의 한 측근은 전한다.


<사진 2> [무슨 사연 있길래 울며불며 총장퇴진 요구하나] (교수신문 119호, 1997.9.1, 백서 3-2, 405쪽)

그러나 8월 13일 총장해임 기도는 이사들의 반대로 관철되지 못했다. 이날 이사회 이후로 교무위원 등 일부 보직교수들은 총장이 소집한 교수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들은 총장이 “교수회의를 교수사회를 분열시키고 대학의 운영을 독점과 전횡으로 몰고 가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삼으려 들고 있다”며, “우리들은 김용래 총장이 획책하는 어떠한 정치적 힘이나 물리적 횡포에도 당당히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였다. 이들 배후박원국 이사장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2. 방학 중에 열린 교수회의

교육부의 시정조치 마감기한을 일주일 앞둔 7월 21일, 총장으로서의 실질적 권한을 되찾겠다고 결심한 김용래 총장은 인사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내용의 문건을 이사장에게 보냈다. 교육부 감사에서 처분 지시된 사항뿐만 아니라 지적사항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하므로 총장의 인사권에 관한 권한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 다음날 중도파 교수를 중심으로 “한상권 교수를 어떠한 형식이든 교단에 다시 설 수 있도록 대학 당국의 결단이 있기를 촉구한다”는 내용의 서명운동이 전개되었다. 서명운동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이틀 만에 참여 교수가 40명을 넘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이사장은 총장의 진의를 타진하기 위해 인문대 학장을 밀사로 파견하였다.

  7월 23일 총장을 면담한 인문대학장이 이사장과 적당히 화해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김용래 총장이 총장으로서의 권위를 찾겠다는 당초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협상은 결렬되었다.

  박원국 이사장은 김용래 총장이 총무처장과 서울시장까지 역임했던 경력을 발휘하여 대외사업 등 학교이미지 관리를 적극 맡아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얼굴마담’으로 채용한 김 총장이 교육부 사안감사 이후 호락호락 따르지 않자 결국 칼을 빼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사장은 총장이 감사결과 처분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법인의 권한에 속하는 사항을 침해하면서까지 자신의 권한확대에만 급급 하는 것은 대학의 인사권을 장악하여 대학의 운영권을 완전 접수하려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사장은 7월 25일 정관 시행세칙을 통과시켜 정관에 규정되지 않았던 시간강사와 조교 그리고 임시직원과 촉탁직원까지 이사장이 임면하도록 하였다. 총장권한을 더욱 축소한 정관시행세칙의 제정은 학사행정 전 분야에 걸쳐 이사장의 제도적ㆍ관행적 간섭을 배제하는 근본대책을 마련하라는 교육부의 감사처분지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처사였다.

  총장과 이사장의 갈등이 전면화 되는 가운데, 7월 27일 전ㆍ현직 일부 교무위원 10여 명이 이사장 숙소인 신라호텔에 모여 총장퇴진을 결의하고 서명운동을 모의하였다. 학내사태가 날로 악화되고 걷잡을 수 없는 혼미에 빠지게 된 책임이 김용래 총장에게 있다고 보는 데 따른 움직임이었다.

  이들은 총장퇴진의 이유로, 총장이 학사업무에 태만하고 직무를 유기한 점, 학내 공식기구와 절차를 무시하고 결과적으로 교수를 선동한 점, 학교가 어려운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한 확대에만 연연하였다는 점 등을 들었다. 그리고 덕성여대 출신인 학생처장이 동문교수를 담당하고 그 밖의 교수들은 각 단과대학 학장들이 접촉하기로 역할분담을 하였다.

  이사장파 교수들이 총장실을 찾아와 서명결과를 들이밀면서 사퇴를 요구하자 총장은 교수회의 소집으로 맞섰다. 8월 한창 방학 중인데도 교수회의가 4일(44명 참석)과 18일 (56명 참석) 그리고 22일(53명 참석, 위임 3명) 잇달아 세 차례 열렸다.

  8월 4일 1차 교수회의는 보직 교수들의 총장실 난입으로 당일로 긴급 소집되었기에 많은 교수들이 참석하지 못했다. 1차 교수회의에서 “전체 교수가 모일 수 있도록 가까운 시일 내에 전체교수회의를 개최해 줄 것”을 요구하는 긴급동의가 있어, 18일 다시 교수회의가 열렸다.

  2차 교수회의에서는 교육부에서 8월 16일까지 보고하도록 한 감사처분지시사항에 대한 학교 측과 법인 측의 견해 차이 그리고 현재 학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총장퇴진운동에 대한 총장의 설명이 있었다.

  총장의 보고를 들은 교수들은 “두 차례의 교수회의에 총장과 의견을 달리하는 보직교수들의 참여하여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은 보직교수로서의 책임회피”이니, “다시 한 번 총장이 전체교수를 소집하기를 요청하며 그 자리에는 반드시 보직교수가 참석하여 현재 학교의 사태에 대한 보직교수들의 입장을 밝혀 주기를 바란다.”는 긴급동의를 참석자 전원의 찬성으로 채택하였다.

3차 교수회의는 전 교수에게 연구실 및 가정(전화)으로 통지하고 공문을 연구실로 전달하고, 특히 1, 2차 교수회의에 불참했던 보직교수들에게 등기 속달로 회의일정을 알리고 교내 지정게시판 6개소에 회의소집 공고문을 게시한 가운데 열렸다.

  이에 맞서 보직교수들은「8.22 교수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를 밝힙니다」라는 글을 통해, “김용래 총장의 유언비어 날조와 비상식적인 단독처리로 소집된 1차 교수회의, 1, 2차 교수회의의 가결사항임을 내세워 소집된 2차 교수회의와 3차 교수회의가 부당하고 구속력이 없음은 법과 행정을 누누이 강조해 온 김용래 총장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취임 이래 해교행위를 조장하고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며 이를 통하여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는 총장이 소집한 교수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고 하였다.

  전체 교수회의가 열리는 8월 22일, 총장퇴진에 서명한 교수들이 올림피아호텔 뷔페식당에 별도로 모였다. 이 사실을 교수신문이 취재하였다.

학교에서 교수회의가 열리는 같은 시각 올림피아호텔 뷔페 홀에서는 또 다른 교수 모임이 있었다. 이른바 이사장파 교수들이 모인 것이다. 교무처장은 이 모임을 “단순히 개강을 맞아 교수들끼리 회식한 것”이라 밝혔지만,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이날 모임은 김 총장의 전체교수회의에 맞서 세 과시 겸 향후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교무처장은 애써 의미를 감추고, 또 다시 “모든 것은 추후에 밝히겠다. 지금은 아무 말도 할 게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이 자리엔 40여 명의 교수들이 참석했다, 호텔 측은 학생처장의 이름으로 65석이 예약됐음을 확인해 주었다.

  3차 교수회의에 참석한 교수들은 두 가지를 의결하였다. 하나는 교육부 감사처분지시에 대해 김용래 총장이 마련한 학교 측 안을 바탕으로 종합시정방안(이행각서)에 합의할 것이며, 다른 하나는 총장퇴진을 주도한 보직교수(교무위원에 한함)에 대해 보직해임을 하라는 것이었다. 교수회의에 참석한 교수들은 이 두 가지 의결 내용을 이사장 및 총장에게 서면으로 보고하고 전체교수들에게도 서면통지하기로 하였다.

8월 19일 총장이 3차 교수회의 소집을 통보하자, 이튿날 이사장도 이사회 소집 통지서를 내보냈다. 이사회 안건에는 “덕성여자대학교 총장에 관한 건”이 상정되어 있었다. 조만간 총장을 해임할 터이니 교수들은 동요하지 말라는 이사장의 무언의 메시지였다.

  그러나 이사회 개최 전날인 8월 27일 저녁 10시 학교법인 덕성학원에서 긴급히 보도 자료를 배포하여, 총장에 관한 건은 모 이사의 중재로 이번 이사회에서 상정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하였다. 중재안이 나오기도 전에 해임운운 하는 것은 사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에 따라 안건을 취소하였으며, 9월 4일 이사회를 다시 열어 총장에 관한 안건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박원국 이사장은 중재안이 나오는 것을 지켜본 다음 중재가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곧바로 이사회를 열어 총장해임을 강행할 계획이었다.

 3. 공개 채용 시 응모의 기회를 준다

총장 퇴진운동과 해임압력이 가중되는 가운데 9월 1일 총장과 이사장 간에 덕성여대 정상화 방안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 합의각서가 교육부에 제출되었다.


<사진 3> [정상화 위한 총장ㆍ이사장 합의 각서 마련-종합시정방안 오는 20일까지 합의돼야-]  (덕성여대신문 400호, 97.9.15, 평교협백서 505쪽)

이에 따라 9월 4일 이사회는 취소되었다. 양자 간에 합의한 내용은 대학학사행정 전 분야에 관한 이사장 간섭 배제 종합시정방안을 공동작성해 공증하고 교직원에 공표 후 교육부에 제출 재임용 탈락한 한상권 교수에게 신규교원 모집 시 응모기회 부여 감사처분 시 경고 조치된 교무위원(4명) 및 총장퇴진 운동을 주도한 교무위원(6명) 보직 교체 등 5개항을 담고 있었다. 합의각서는 총장의 퇴진이 없이는 어떠한 합의도 해 줄 수 없다는 이사장의 완강한 입장 때문에 총장의 사퇴를 담보로 하여 비로소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덕성여자대학교한상권교수재임용탈락처분철회및교수재임용제개선추진위원회’(추진위)를 비롯하여 덕성여대 교수들은 합의각서는 ‘이사장의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며 강력 반발하였다. 교수들은 “합의 내용은 말도 안 되는 것들이다. 그걸 합의안이라고 발표한 교육부도 문제다.

  특히 한상권 교수 문제는 구체적 구제방안이 절실한데도 고작 응모기회라니, 응모는 자격만 갖춘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응모를 하고 안하는 것은 한교수의 권한이지 총장과 이사장이 마치 큰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요란을 떨 일이 아니다”라며 허탈해 했다.


<사진 4> 내용 없는 ‘합의각서’에 교수들 반발 (교수신문 120호, 97.9.15, 백서 3-2, 408쪽)

  추진위도 즉각 반박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추진위는 먼저 합의각서 작성절차의 부당성을 지적하였다.

예컨대 합의란 분쟁 당사자 간에 하는 것이다. 당사자조정원칙에서 볼 때, 한상권교수재임용탈락 문제는 피해자인 한상권교수와 가해자인 박원국 이사장 간에 합의할 사항이지, 아무런 위임도 받지 않은 제3자인 총장이 나설 문제가 아니다. 당사자를 배제한 채 총장과 이사장 간에 이루어진 합의가 무슨 효력과 구속력이 있단 말인가? 우리는 한상권 교수 문제와 관련된 총장과 이사장 간 합의는 원천적으로 무효임을 선언한다.  

  이어 합의내용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였다.

도대체 응모의 기회를 준다는 것이 무슨 합의사항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응모의 기회는 이사장이나 총장이 베푸는 특별한 ‘은전’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교원임용에 결격 사유가 없는 사람이면 누구나 행사할 수 있는 고유한 ‘권리’이다. 이처럼 하나마나 한 소리가 무슨 합의 내용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마지막으로 교육부의 무성의한 태도를 공격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수준 이하의 합의문을 접수하여 학교정상화방안이라고 발표한 교육부에 대해서도 준엄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지난 8월 30일 교육부 앞에서 항의집회를 하고 방문하였을 때, 교육부는 한상권 교수, 김용래 총장, 박원국 이사장 삼자 모두를 살릴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조만간 마련하겠다고 답하였다. 교육부가 생각한 삼자 모두를 살리는 방안이 고작 한상권 교수에게 신규교원 모집 시 응모의 기회를 준다는 것인가? 누가 보더라도 이 합의문은 삼자 모두를 살리기 위한 방안이 아니라, 한상권교수를 죽이고 박원국 이사장을 살리는 내용이다.

  합의각서로 야기된 학내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9월 11일 4차 교수회의가 열렸다. 이날 교수회의에 참석한 교수들은 71명(위임장 제출 2명)이었다. 처음으로 과반수가 참석한 교수회의에서 교수들은 현행 학부제 즉각 중단 한상권 교수 즉각 복직 교수들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은 총장-이사장 간에 작성된 이행각서 무효 등 3개항을 의결하였다. 9.11 교수회의 결의로 총장-이사장 간에 작성된 합의각서는 폐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덕성여대는 9월 11일 동아일보에 한국사 전공 교수 초빙 공고를 냄으로써 교수초빙 절차를 강행했다. 김용래 총장이 “ 합의각서에 ‘공개 채용 시 응모의 기회를 준다’고 되어있으나, 채용의 보장이 없는 ‘응모의 기회부여’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러한 합의는 저의 큰 잘못이며 어떠한 질책도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뒤늦게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진 5> 교수초빙 공고 (백서 3-1, 546쪽)

한국사 전공 교수초빙 공고가 나자, 9월 22일 한겨레가 나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인터뷰를 했다.


문: 신규임용 절차가 시작되면 개인적으로 상당한 갈등을 겪지 않겠는가?

답: 이 문제는 개인의 명예나 권리회복만이 아니라 사립대 교원들 전체의 지위와 관련된 문제다. 교육부조차 명백히 잘못을 지적하는데도 재단 쪽의 버티기만으로 대학사회의 병폐가 고쳐지지 않는다면 한국대학의 발전가능성이 있겠는가. 또 재임용제도의 병폐를 지적하면서 신규임용절차를 밟는다면 자가당착이며 재임용 제도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사진 6> [이사장-총장만의 합의각서는 무효] (한겨레, 97.9.22, 백서 3-2, 415쪽)

4. 대학민주화는 구호 아닌 염원

9월 29일 김용래 총장이 전격 사퇴하였다.


<사진 7> 덕성여대 김용래 총장 전격 사퇴 (경향신문 1997.10.1, 백서 3-2, 418쪽)


<사진 8> 덕성여대 총장 사퇴-재단에 교권보장 등 촉구 (동아일보 1997.10.1, 백서 3-2, 418쪽)


<사진 9> 김용래 총장 사퇴 대자보

  5만여 서울시 공무원을 총괄하며 복잡다단한 시정을 이끌었던 행정가가 학생을 포함해 5천명의 조직운영에 좌절감을 느끼고 사표를 던진 이유가 무엇인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세 차례(8월 13일, 8월 28일, 9월 4일)에 걸쳐 총장 해임결의를 기도를 하였던 박원국 이사장은 김용래 총장이 극렬 교수들과 야합하여 덕성학원을 탈취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사퇴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97년 3월 공모로 총장에 부임한 김용래(전 서울시장, 전 총무처 장관)는 운동권세력에 포섭되어 저들과 야합하여 교주(校主)인 박원국 이사장의 축출과 학원탈취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운동권 세력과 김용래는 정치권력을 동원하여 교육부로 하여금 1년 전인 ’96년 5월 종합감사에도 부정과 비리가 전혀 없었던 덕성학원과 대학에 ‘97년 6월 불시 사안감사를 나오게 하고, 감사 수감은 물론 감사결과 시정조치 중에도 재단과 대학에 불리하도록 계속 교육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한편, 이사장의 시정조치 이행을 고의로 방해하였습니다.

저들의 공작으로 교육부는 감사결과 시정지시를 덕성학원이 어김없이 이행하였음에도 공연히 트집을 잡고 4차에 걸친 무리한 요구로 추가 시정지시를 하여 덕성학원을 괴롭혔으며, 그때마다 전 총장 김용래는 이사장에 맞서 총장의 불법적인 권한 확대에 급급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97.9.30. 자진사퇴하면서 학생들에게 소위 학원민주화투쟁 즉, 체제타도를 선동하는 글 “왜 나는 덕성여대 총장직을 떠나는가”를 발표하여 분규가 악화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반면 덕성여대 교수협의회는 “김용래 총장의 사퇴는 이사장의 독단과 횡포에 대해 항의하는 사퇴이며, 동시에 그것을 학내외에 고발하는 사퇴”라고 주장하였다.

  갑작스럽게 사퇴를 발표한 이유를 묻는 교수신문의 질문에 김용래 총장은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갑자기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나는 지난 30여 년 동안 공직자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그 어떤 시기도 덕성여대에서 보낸 7개월처럼 괴롭지는 않았다. 더 이상 내가 덕성여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사표제출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런 결단을 내리지 않고서는 덕성여대 정상화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 대학을 위기에서 구출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내 희생이 학교정상화의 큰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사진 10> 전격 대담: 법인 이사장과 갈등 끝에 사퇴한 김용래 전 덕성여대 총장 (교수신문 122호, 97.10.13, 백서 3-2, 445쪽)

김용래 총장은 총장으로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가 너무도 비정상적이고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현실에 놀랐으며, 덕성여대에서 보낸 처음 한 달 동안 이상한 걸 느꼈다고 하였다.

덕성여대에는 교수들의 바둑, 테니스 모임 같은 게 없을뿐더러 회식조차도 잘 안한다. 알고 보니, 모임에서 학교당국에 비판적인 말을 조금이라도 했다간 즉각 불이익을 받아, 교수들이 기피하기 때문이었다. 교수사회에 감시와 고발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덕성여대 밖에서는 아무도 이 얘기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상상을 초월하는 재단 이사장의 간섭으로 덕성여대 교수사회는 교권은커녕 인권마저 유린당하고 있다고 김 총장은 증언하였다.

덕성여대에서 박원국 이사장은 곧 법률이오, 명령이며, 정관 그 자체였다. 심지어 임시직원의 채용마저도 박 이사장에게 직접 결재를 받아야 했다. 그 동토의 대학에서 나는 정말 외로웠다. 박 이사장은 내 하루 일정과 만나는 사람까지도 직원을 시켜 보고하도록 했다. 내가 누구를 만나는지 누구와 통화를 하는지 감시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쳤다. 이건 교권을 떠나 인권 문제다.

이러한 덕성여대 현실을 목도하고 6월 교육부 특별감사를 계기로 이사장의 위법ㆍ부당사례의 재발을 방지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고 하였다.


제가 부임하기 전에 재임용에서 탈락된 한상권 교수의 복직문제를 둘러싸고 학내외의 파동은 확대되어 가기만 하였고, 이러한 와중에서 지난 6월 9일 부터 6월 19일까지 학교법인 덕성학원과 덕성여자대학교에 대한 교육부의 특별감사가 실시되었으며, 그 결과로 7월 14일자로 교육부의 감사결과 처분지시가 송부되어 왔습니다.

참으로 많은 위법, 부당사항이 적출되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법인 이사장이 학사행정에 관한 총장의 권한을 너무 많이 침해 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총장인 저로 하여금 자괴감을 느끼도록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저의 입장을 심히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저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공채를 통해 저를 총장으로 선임한 이사장과의 의리를 먼저 생각하야 하는가, 아니면 이사장의 잘못된 제도적 관행적 간섭을 배제하고 학교운영을 정상화 시켜야 하는가?
이 갈림길에서 저는 결국 후자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육부의 감사처분지시를 변명과 미봉책으로 호도하기 보다는 이를 겸허히 받아들여 위법, 부당사항을 과감히 시정하고 나아가 위법 부당사례의 재발을 방지 할 수 있는「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교육부의 감사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 「제도적 장치」라는 것은 현행 교육관계법령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학교의 자율성을 신장하는 방향으로 덕성학원의 정관, 정관시행세칙, 관련규정 등을 제정 또는 개정하자는 것이며, 대학 자율성의 수준도 지나치게 이상적인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다수대학의 평균적인 수준으로 정상화 하자는 극히 상식적인 내용입니다.


  그러나 재단에 힘을 실어주는 사립학교법 때문에 개혁은 역부족이었다. 7개월 총장 시절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 민주화란 말이 단순한 구호인줄 알았는데 대학에 있어보니 너무나 절절한 염원이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사진 11> 재단 이사장은 대학의 왕이다?-덕성여대 박원국 이사장, 사설왕국 착각 학점ㆍ말단직원까지 인사 결정; 인터뷰/ 김용래 전 덕성여대 총장 “재단에 힘 실어준 사립학교법이 문제다” (뉴스메이커, 244호, 1997.10.23, 백서 3-2, 458-9)

김용래 총장은 총장으로서의 포부도 펴보지 못한 채 7개월 만에 덕성여대를 떠나는 처연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다.

 


존경하는 덕성가족 여러분!

제가 사회생활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어언 40년, 공직에서 33년, 교직에서 7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40년간의 기나긴 여정 중에서 덕성여자대학교에서 보낸 7개월만큼 길고 힘들었던 시간은 없었습니다.

기나긴 여름방학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출퇴근하던 직장입니다.

「미운 정, 고운 정」다 들었다는 말이 있듯이 저도 어찌 정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쌀쌀하지만 봄바람도 감도는 3월 초, 그래도 저 나름대로의 포부와 구상을 가지고 학교 문을 들어섰는데 포부를 펴 보기는커녕 별로 해 놓은 일도 없이 가을이 깊어가는 9월말에 학교 문을 나서자니 만감이 교차함이 억누를 길 없습니다.

나는 왜 이 학교에 들어왔는가?

나는 이 학교에 와서 무슨 일을 하였는가?
무엇을 남겨 놓고 가는가?
왜 나는 지금 떠나야 하는가?

허공을 향하여 소리쳐보고도 싶고, 넓은 바닷가에 가서 목 놓아 울어보고도 싶은 심정입니다.

덕성가족 여러분!

여러분이 꾸짖지 않으신다면 저에게도 조그만 소망은 있습니다.
“김용래 총장은 우리대학에서 오랫동안 굳게 닫혀있던 자유의 문을 열기 위하여 두드리고 또 두드리며 혼신의 힘을 다하다가 홀연히 떠난 사람”이라고 기억해주실수 있는지요?


  김용래 총장의 사퇴는 덕성여대의 파행적 학교 운영을 사회에 고발하려는 고발성 사퇴였다. 또한 대학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서는 박원국 이사장의 퇴진만이 유일한 길임을 절감하고, 덕성에 몸담고 있으면서 박원국 이사장과의 싸움을 적극적으로 해나갈 수 없으므로 학교를 떠나 본격적으로 싸우겠다는 투쟁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였다. 아무튼 김용래 총장의 사퇴 결단으로 지난 1학기 한상권 교수 재임용탈락으로 촉발된 덕성여대 사태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