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구속영장이 청구됐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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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영장이 청구됐습니다 (2)

한상권(중세사2분과)

4. 돌아와 처음 한 일이 재임용탈락이라니…

2월 26일 학교법인 덕성학원 이사회가 열렸다. 박원국 이사장이 복귀한 뒤 처음 열리는 이사회였다. 이날 이사회에서 박원국 이사장은 설립자 차미리사 선생 초상화 봉정식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경고장을 받은 신임교수 3명을 포함하여 5명의 교수를 재임용탈락시켰다. 해직된 교수들은 1월 중순 인사위원회에서 재임용이 제청돼 내달 2일 개강을 앞두고 학생들의 수강신청까지 받아 놓은 상태였다. 개강을 불과 3일 앞두고 뚜렷한 이유도 없이 교수들을 대거 탈락시킨 것은 민주화 운동에 대한 보복임이 분명하였다.


<사진 8> 덕성여대 재단 이사장 보복성 인사 ‘물의’ (한겨레 2001.3.2)

박원국 이사장은 대학 인사위원회의 제청을 무시한 가운데 교수를 해직시킨 부당성을 지적하고 이의 시정을 요구하는 교무위원회의 요청을 묵살하고, 이들을 해임하고 친위세력으로 보직 교체를 하는 등 보복성 인사를 자행하였다.

  또한 자신을 추종하는 권순경 교수를 총장직무대리로 임명하였다. 동생 박원택 상임이사와의 주도권 다툼으로 임기 만료된 이강혁 총장의 후임을 선임하지 못하자 자신의 심복인 권순경 교수를 총장직무대행에 임명한 것이다. 권순경 교수는 1997년 박원국 이사장을 도와 부당한 학사행정 간섭을 앞장서서 도와준 장본인이었다. 그는 “이사장은 주인이고 교수들은 머슴이다. 주인과 머슴이 싸우면 누가 이기겠는가? 그러니 박원국 이사장을 도와 일해야 한다”며 머슴론을 주창하며, 김용래 총장 퇴진운동을 주도하였다. 뿐만 아니라 1998년 관선이사 파견 반대하는 교수서명을 주도하고 덕성여대정상화추진교수회를 만들어 공익이사진을 흔들고 이문영 이사장 퇴진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저항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 11명에 대해 징계를 의결하고 형량 결정은 추후에 다시 논의하기로 하였다.

  그가 이사장으로 복귀한 후 자행한 교원인사 파행운영의 실태는 교육부 [감사결과처분서]에 잘 드러나 있다. 교육부는 2001년 5월 21일부터 30까지 9일간 덕성여대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하였다. 덕성여대의 경우 다른 대학보다 2배 이상의 많은 감사요원을 투입, 교수 재임용문제 외에도 이사회 구성의 적법성 등 학교 운영 전반에 걸쳐 감사를 벌였다. 그 결과 박원국 이사장은 ‣교원 인사 등 파행 운영으로 학내분규 야기 ‣교원 재임용 제외 부당 ‣재임용결격사유자 정년보장 교수로 재임용 ‣교원 승진임용 부적정 ‣겸임교수 임용절차 미 준수 ‣보직교수 임면절차 미 이행 등으로 엄중경고 처분을 받았다.

  박원국 이사장이 자행한 부당한 교수 재임용탈락에 대해, 교육부는 다음과 같이 적시하였다.


<사진 9> 감사결과 처분서


〇사립학교법 제 16조, 제19조, 제 20조의 2 및 학교법인 덕성학원 정관에 의하면 법인 이사장은 학교법인의 최고책임자로서 당해 학교법인을 대표하고 사립학교법과 정관에 규정된 직무를 수행하며 법인 내부의 사무를 통할하고 학교법인이 설치한 학교 경영의 중요사항을 이사회 의결을 거쳐 결정하도록 하고 있는바, 덕성여자대학교는 교원 재임용 제외를 비롯한 법인과 교수들간 학내분규로 수차례에 걸쳐 학교 운영 파행, 학생소요 등 사회적 물의를 야기하고 있으며 ‘01.1.19 대법원 판결로 복귀한 박원국 이사장은 이러한 학내의 특수상황을 감안하여 교육과정상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 학사행정에 관하여 당해 학교의 장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아야 하며, 학내분규를 야기하지 않고 나아가서 고질적인 분규 해소를 위한 특단의 주의 의무를 다하여야 함에도

-교원기간제임용심사기준에 관한 내규 제7조에 의거 재임용결격사유에 해당하는 김OO교수는 재임용한 반면 교원인사위원회의 재임용 동의 및 총장이 재임용 제청한 교수협의회 소속 남동신 등 3명의 교수는 신학기 개강 4일 전에 재임용 제외하였으며 이에 따라 대학에서는 대체강사 선정 등 별도의 학사대책을 수립하지 못 한 채 11개 과목이 폐강되는 등 학사운영의 파행이 초래되었고


  재임용결격사유에 해당하는 자신의 최측근인 김 아무개 교수는 재임용한 반면 재임용에 아무런 하자가 없는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 3명은 재임용 제외시켰다는 것이다. 박원국 이사장은 징계처분을 받은 재임용결격자인 김 아무개 교수를 승진까지 시켜 정년보장 교수로 재임용하였다.


〇덕성여자대학교 정년보장교수임용규정 경과조치에 의하면 동 규정 시행(1999.9.3) 이전에 교수로 승진되어 재직중인 교수는 “교원기간제임용심사기준에 관한 내규 제7조의 재임용결격사유에 해당되지 아니하는 한 임용기간 만료일 그 다음날로부터 정년보장교수로 임용된다”라고 정하고 있어 임용결격사유가 없는 경우 학교법인 덕성학원정관 제39 및 제 51조의 규정에 따라, 교원인사위원회의 동의를 받아 총장의 제청으로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이사장이 임면토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덕성여자대학교 총장은 2000.1.31 징계처분(견책)을 받은 경영학과 교수 김OO의 경우 교원기간제임용심사기준 제7조에 규정된 재임용결격사유에 해당되는 것으로 제출하였으나 동 위원회에서 참석 위원(8인)간의 논의 끝에 무기명 투표를 거쳐 재임용 제청키로 동의하였다 하여 2001.2.19 이사회에 재임용 제청한 사실이 있으며,

-학교법인 덕성학원에서는 2001.2.26 이사회 개최시 김OO 교수에 대한 정년보장교수로의 재임용 건을 심의하면서 “교원기간제임용심사기준에관한내규”에 위배됨에 대하여 자체 조사한 법률자문 결과를 참고로 하여 재임용하기로 의결한 사실이 있음



  5. 구속영장이 청구됐습니다


대규모 교수해직이 있은 지 이틀 뒤인 2월 28일, 서울지검 북부지청 형사 2부(부장검사 이상훈, 담당검사 양보승)가 교수협의회 회장(신상전, 독문과)과 부회장(한상권, 사학과)을 구속시킬 목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 재단쪽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 추가 조사할 일이 있으니 28일 오전 10시까지 검찰에 출두하라고 해서 가보니, 담당 검사는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출석 요구에 응하는 등 도주우려는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사장 직무대행 집 앞에서 장기간 피켓시위를 벌이는 등 개인의 사생활이 심각하게 침해를 받고 있는 점을 중시, 영장을 청구했다는 것이다.

  현행범도 아니고 지금까지 성실히 조사를 받아온 현직 교수에 대해 개강을 앞둔 시점에서 영장을 청구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학교운영의 책임자가 학사행정의 민주화와 개혁을 주장하는 교수들을 고소하는 해괴한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신청은 사안의 성격이나 비중에 비추어 볼 때 과도하고 형평에 어긋난 법 적용이었다. 또한 이와 비슷한 사건의 대법원 무죄판결이 있고, 교협의 주장이 사실에 입각하고 있으며, 공익성이 강하며, 회장단이 교수 신분으로서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구속영장까지 신청한 것은 정상적인 법 집행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때까지 수갑을 차고 북부지청에 마련된 구치소에 들어가 기다려야만 했다. 수갑을 채우는 까닭은 도주의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담당 직원이 편의를 봐주는 바람에 수갑까지 차지는 않았다. 영장 실질 심사는 오후 4시 경 시작되었다. 영장 담당 판사는 검사의 영장 청구 사유를 먼저 들은 다음 피고인 우리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우리가 검찰 측 주장의 오류를 사실에 근거하여 조목조목 반박하자, 말문이 막힌 검사는 고소인 대표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며 증인신청을 하였다. 잠시 후 증인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놀랍게도 이강혁 총장이었다. 그는 교협 회장단이 얼마나 나쁜 사람들인지 장황하게 설명한 후, “이 교수들의 죄질이 나쁘니 구속해서 엄벌에 처해 달라”는 말로 발언을 마무리 하였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총장은 교무를 통할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휘 감독하며 학생을 지도하고 대학을 대표한다. 대학 자유 수호의 최후보루가 되어야 할 총장이 재단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여 교수들의 언행을 감시․사찰․도청하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고소․고발하여 탄압의 선봉장이 된 것만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대학에 분쟁이 발생하면 조정할 위치에 있는 총장이 분쟁 당사자가 되어 고소인 대표 자격으로 법정에 출두하여 교수를 구속시켜 달라고 증언하고 있다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강혁 총장은 이문영 이사장을 쫒아냈고 함세웅․방정배 이사 복귀를 막은 공을 내세워  총장 연임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박원국 이사장이 권순경 교수를 총장직무대리로 앉혔기 때문에 이날로 임기가 만료되어 덕성을 떠나야 할 사람이었다. 몇 시간 후면 덕성과 인연이 끝나는 사람이 법정까지 나와 교수를 구속시켜 달라고 요청하다니… 더구나 내일 모레면 개학이 아닌가? 교수가 구속되면 학생들 수업은? 이강혁 총장의 바람대로라면 덕성여대는 다섯 명의 교수가 해직된 상태에서 또 다시 두 명의 교수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된다. 판사 앞에서 음해성 발언을 하는 이강혁 총장의 모습을 보고 도대체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말이지만 이강혁 총장은 1998년 3월 덕성여대 총장에 취임 한 후 2001년 2월 임기 만료 때까지 3년 동안 전체 교수회의를 단 한 차례도 소집하지 않았다. 이 점이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되었다.


– 김덕규 위원 : 이강혁 증인께 질의하겠습니다. 증인께서는 학교 운영을 책임지고 계시는 총장이시지요?
– 증인 이강혁 :
– 김덕규 위원 : 총장께서는 증인께서는 작년(1999) 국정감사에 나오셨습니다. 취임 후에 교수회의를 한 번도 개최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시지요? 그러니까 작년 국정감사 나오시고 난 이후에도 교수회의를 한 번도 개최한 일이 없지요
– 증인 이강혁 :


  이강혁 총장은 한 차례 해임당하고, 두 차례 국정감사에 불려 나갔으며, 학생들로부터 세 차례 탄핵 당했고, 세 차례 총장실을 점거 당했다. 이 때문에 국정감사에서 절대 연임시켜서는 안 되는 인물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강혁 총장이 해임된 동안, 박원국씨는 매달 400여만원씩 세 차례(2000.1.24/2.22/3.22)에 걸쳐 총 1천 3백여만 원의 BC카드 외상금액을 대신 갚아 주었다. 이 대금은 당시 이사장직에서 해임되어 있던 박원국씨가 이강혁씨를 막후 지원하여 그를 다시 총장직에 복귀시켜 대학을 장악하고 자신의 복귀를 용이하게 하려는 데서 나온 대가성 금전수수였다. 둘 사이의 은밀한 거래는 박원국씨의 재정을 관리하는 측근 인사의 폭로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그는 “힘없는 분들의 희생을 막아보겠다고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법적, 윤리적 모든 책임을 각오하고 자격도 없는 높이 감히 나섰지만, 저 또한 사회적 약자인지라 당당히 신분을 밝히지 못하고 행동의 폭도 그리 넓지 못한 점 양해를 부탁드린다”며, 둘 사이에 있었던 검은 거래를 폭로하였다. 이 해 1월 18일에는 “이강혁 총장님! 밥값 60만원 제∼발 주세요!!!”라는 글이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와 보는 이들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다.


  12월 7일 홍대 선어도 일식집에서 친구분들과 함께 드신 식대는 언제 주실려구 연락도 없나요? 대 덕성여대의 총장님이라는 분이 덕성여대의 이름을 더럽히시는군요…제발 구정 안에 주세요…직원들 월급도 몇 달째 지급을 못하고 있는데…깔끔한 뒤처리 부탁드려요.



학교와 재단이 총장까지 증인으로 내세우면서 교협 회장단을 구속시키려 하였으나 하늘이 도왔는지 구속영장 청구사실이 언론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면서 영장은 기각되었다.


<사진 10> 덕성여대 교수협의회 교수 영장(경향신문 2001.2.28)

아침 10시에 검찰청에 출두한 우리는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북부지청을 나왔다. 학교에서는 교협 교수들이 저녁 늦게까지 퇴근하지 않고 우리의 석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6. 3.29 총궐기는 감동의 드라마였다


박원국 이사장의 전횡에 대해 마침내 학생들 분노가 폭발하였다. 3월 29일 오후 3시, 총학생회가 ▲박원국 복귀 반대 ▲민주총장 선출 ▲재임용탈락 철회 ▲등록금 동결 등을 요구하며  ‘덕성을 바꾸는 오천의 힘’이라는 이름으로 3.29 덕성총궐기를 열었다. 각 과마다 학생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노래를 부르며 민주마당으로 모여들었다. 대동제와 같은 축제 분위기로 집회를 마친 500여 명의 학생들이 총장실 점거를 결의하고 행정동으로 향하였다. 총장실 점거를 이미 예상한 학교 측은 사설경호업체 직원을 고용하여 행정동 출입구를 모두 봉쇄하고 학생들 진입을 막았다. 행정동 입구마다 단단히 자물쇠로 잠겨 있어 정문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자, 학생들은 사다리를 동원하여 4미터 높이의 2층 총장실 쪽 창문으로 진입을 시도하였다. 곡예를 하듯 몇몇의 학자 선봉대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자 밑에서는 불같은 함성이 일었고 대열은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려는 학생들까지 합세하여 순식간에 2천명으로 불어났다. 행정동 2층에 있던 사설경호업체 사람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학생의 손을 발로 밟고 사다리를 심하게 흔들어대는 등 꼭대기에 매달린 학생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사진 11> 고뇌없는 대학들, 용역업체 동원하고 형사고발 남발 (교수신문 2001.5.28)

그 위험천만한 장면을 보고 현장에 있던 많은 학생들이 비명과 고함을 지르고 주변의 돌을 던지며 흥분했으며, 주변을 지나치던 학생들도 “용역깡패 물러가라”며 동참하였다.

  밀치고 넘어뜨리는 등 1시간가량의 공방전 끝에 마침내 오후 6시 경 사다리를 통한 총장실 진입에 성공하였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가운데 사다리를 타고 2층 베란다를 향해 끊임없이 올라가는 학생들, 맨손으로 유리를 깨고 잠긴 쇠문을 여는 학생들, 아슬아슬한 베란다를 연단으로 하여 구호를 외치며 대열을 이끄는 총학생회장의 모습 등은 보는 이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학생들은 총장실과 경리과, 시설과, 홍보과, 기획실 등 행정동 2층 전체를 점거하고 행정동의 모든 집기를 밖으로 끌어냈다. 학교 행정은 거의 마비되었다. 2.15 폭력사태 때 그 사납던 직원들은 학생들의 불같은 위세 앞에 그저 망연자실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한 학생이 이날 광경을 학교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정말… 가슴이 철렁한 기분…

오늘 잠시 매점에 갔다가…행정동 쪽에서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대학 4년째 다니는 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첨인 듯싶다.…
솔직히 난 대학생활 동안…제대로 한 번도 학내 투쟁이라던지…어떤 모임에
참석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솔직히 할 일두 많은데…그런데 참석한다는 게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그 수많은 사람들이 투쟁하는 걸 보구…절로
따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친구는 첨에 망설이다가…절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왜냐하면 잠겨진 행정동 2층을 올라가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학생과
박원국 보디가드라는 사람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흔들고
심지어 보디가다 중에 한 명이 내려와서…발로 학생을 밀려고 했을 때…
난 가만히 지켜보고 서있을 수 없었다.
어떻게 우리의 소중한 학우들에게 그런 짓을…
정말 우리의 아름다운 덕성이 박원국 같은 인간 땜에…비참해지는 꼴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정말 박원국은 사라져야 한다…는 느낌을 오늘 절실히 느끼고 돌아왔다.…
오늘 모임에서 난 덕성인들의 단결과 화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렇게라면 우리 덕성인은…잘 해나랄 것이고…잘 되리라고 믿는다.(98020374)



<사진 12>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학생을 미치는 모습 (덕성여대신문 447호, 2001. 4. 2)

탄압의 칼바람을 헤치고 총장실 점거를 이루어낸 3.29총궐기는 2001년 학자투쟁의 승리를 예감케 하기에 충분하였다. 선봉대 학우들이 사설 경호업체 직원에게 폭행당하자 울면서 돌을 던지고 저항하던 일반 학생들의 불같은 분노는 바로 덕성학원을 사유물화 하려는 박원국 일가에 대한 분노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었다.

덕성학원에 대한 박씨 일가의 관리주체권을 주장하는 직원은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 아니다. 학생은 이용료를 내고 다니는 사용자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3.29 총궐기에서 보여준 학생들의 태도는 학교의 돈 줄로써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이용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학원자주화 투쟁을 통해 대학의 주체로서 주인으로서의 자격과 권리를 획득해 나가고 있었다.
7.  잘못된 것에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는 지성, 그 지성으로 떳떳하다


3.29덕성총궐기는 2001년 학자투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총장실 점거에서 분출된 투쟁력이 저변으로까지 확산되어, 4.3 비상총회에 2,150 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하였다. 3월 29일 집회보다 무려 4배 이상이나 되는 많은 학생들이 총회에 모일 수 있었던 까닭은 총장실 점거투쟁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총장실 점거투쟁을 보면서 이제 지켜만 보는 방관자적인 덕성인이 아닌 내 손으로 내 피땀으로 덕성을 사랑하는 내 마음으로 학교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 참여하는 덕성인이 되겠다고 다짐하였다.

  이날 비상총회에서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들은 혈서를 쓰고 삭발식을 거행하였다.


<사진 13> 총학, 오늘부터 이틀간 수업거부에 관한 총투표실시 (덕성여대신문 448호, 2001.4.16)

학생들에게 학교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고 수업거부라는 강력한 투쟁을 이끌어 내기 위해 삭발을 결심한 것이다. 총학이 총장실 점거에 이어 수업거부라는 극단적인 투쟁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오는 10월 25일 자로 임기만료가 되는 박원국 이사장의 연임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박원국이 덕성학원 이사장으로 있는 한 어느 누구도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없었고 교육 받고 교육할 권리를 내세울 수 없었다. 그런데 다른 이사와는 달리, 박원국 이사장은 임기가 만료된다 할지라도 자신이 설립자의 장손이며 실질적 재단의 주인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연임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면 덕성은 또다시 그의 통치 밑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다른 하나는 덕성사태에 교육부가 개입하도록 할 목적이었다. 교육부가 사학에 대해 감독권을 발동하는 경우는 두 가지 뿐이었다.  교육부는 “해당 학교의 설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 감독권을 발동하는데, 그 하나가 임원간의 갈등으로 이사회가 개최되지 못하는 경우이며, 다른 하나가 학교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아 학사행정이 파행상태에 이른 경우다.

  총학은 수업거부란 학생의 가장 소중한 권리인 수업권을 무기로 자신들이 요구하는 사항(교육의 질 향상, 교육 환경 개선)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최상이자 최후의 투쟁 방법이라고 설득하였다. 학사일정에 파행을 초래함으로써 교육부의 개입을 이끌어 내는 수업거부 투쟁이야말로 가장 짧은 기간에 덕성의 문제를 해결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투쟁수단이라는 것이다. 그 실례로 총파업투쟁 열흘 만에 박원국 이사장을 해임시킨 97년 투쟁사례를 들었다.

  덕성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주체 의식의 자각과 실천, 박원국 이사장과 그를 추종하는 어용세력들로 인해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학교를 후배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애교심, 투쟁 과정에서 피어난 덕성에 대한 애정과 긍지, 이것이 97년 오천 덕성인의 총파업 사수의 힘이자 저력이었다. 선배들의 97년 총파업투쟁 투쟁은 후배들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설사 그렇다할지라도 여학생들이 예쁜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는 삭발을 결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부 총학생회 간부 사이에선 삭발 대신 혈서를 쓰자는 의견도 있었다. 결국 총학은 삭발과 혈서를 함께 하였다. 비민주적 재단으로부터 학교를 지키기 위한 절박한 선택이었다. 이처럼 총학이 총력을 기울였으나, 4.3 비상총회는 재적인원 5,312명의 과반수에서 200 여명 가량 모자라 무산되었다. 비상총회가 끝난 후 약 300명의 학생들이 운니동에 있는 재단 사무실로 항의 방문을 갔으나 전경들이 캠퍼스 정문을 막고 서있어 들어가지 못해 정문 앞에서 선전전만 하고 돌아 왔다. 

  1차 비상총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자 한숨 돌린 학교당국은 대대적인 학생단속에 나섰다. 구 재단을 지지하는 교수들은 수업시간에 “박원국 이사장님이 얼마나 훌륭한 분인데, 너희들은 만나보지 않아서 모른다” “너희들은 일부 교협교수들과 총학생회에 이용당하고 있다”라는 등의 말로 학생들 투쟁열기를 잠재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학교당국은 매일 수십여 장의 유인물을 학내에 배포하고, 집집마다 열장 가까이나 되는 편지를 여섯 차례나 보내 학부모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기숙사에서는 집회 참석한 학생들에게 사진을 들이대며 경고를 주었고, 약대와 예대에서는 교수들이 1학년 학생 전체와 개별 면담을 하였다. 스쿨버스 기사는 일부러 총학이 선전전 하는 장소를 피해 학생들을 내려 주었고, 스쿨버스 선전전에 들어간 총학 간부를 밀쳐내었다. 학교측은 학생들을 총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조교를 통해 수업 진행 상황을 일일이 보고하게 하였고, 일부 교수들은 학생들을 후문으로 내보내기까지 하였다. 4월 9일(월)에는 일간지에 학내 민주화 요구를 소수 불순세력의 학교장악 음모로 몰아붙이는 광고까지 실었다.


<사진 14> 일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 (동아일보 2001.4.9)

  학교당국은 일간지 광고를 통해 “현 학원 사태가 명백히 일부 교수협의회 교수들과 극력한 학생들에 의해 자행되었음을 대다수 학생들과 학부모 제위 및 일반 국민들께 천명코자” 한다며 “본 학원은 다수의 선량한 학생들이 일부 교수협의회 교수들과 극렬한 학생들의 악의적인 선동에 휘말리지 않도록 지도·교육하겠”다고 하였다. 특히 “일부 학생들의 수업거부는 1997년 사태에서 나타난 결과와 같이, 전적으로 학생들만 피해를 받을 뿐”이므로 “배움을 갈망하는 다수의 학생들은 물론 일시적인 판단미숙으로 학생 본연의 모습에서 일탈한 학생들을 선도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수업은 학사일정대로 준수”되어야 한다며, 교수들에게 휴강은 물론 교실 내에서의 학생들의 선전전도 허용하지 말도록 지시하였다.

  4.3 비상총회가 성사되지 못함에 따라 4월 11일 2차 비상총회를 가지려 하였으나 우천으로 다음날로 연기했다. 12일 오후 3시 열린 2차 비상총회에서는, 1차 비상총회 때의 몇 시간 동안 무작정 정족수가 채워지기만을 기다렸던 비효율적인 면을 반성하여, 각 단대별로 참석 명단을 확인하면서 곧바로 개별적인 투표에 들어갔다. 개표 결과 총 1,898명이 투표에 참가해, 찬성 1,472명, 반대 398명으로 77%가 수업거부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 어느 누구도 수업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으나, 지금 투쟁을 포기했다가는 암울한 덕성의 현실이 평생 자신의 운명을 포기하도록 압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수업거부에 찬성하였다.

  1, 2차 비상총회에서 보여준 학생들의 자발적인 정의감 표출은 놀라웠다. 학교가 “학원을 파괴하려는 일부 교수협의회 교수들과 한총련 중심 총학생회의 거짓 선동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끊임없이 학생들을 세뇌시켰음에도, 비상총회에 매 번 2,000 명씩이나 모이는 놀라운 결집력을 보여 주었다. 학생들은 박원국 이사장을 찬양하는 교수들을 ‘박원국을 지키기 위해서 무든지 하는 어용교수’로 몰아 세웠다. 그리고 1. 비리학개론(필수) 2. 부정처리론(선택) 3. 부패실천방법론(필수) 4. 부정인사관리법(필수) 5폴력행사론(선택) 6. 어용세력 교육개론(필수) 등이 “박원국 학” 전공필수과목이라며 조롱하였다.


<사진 15> I LOVE 원국씨!

학생들의 단결력은 학교 밖 집회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4월 26일 덕성여대 총학생회는 총 학생의 20%인 1,200여 명의 학생들이 운집한 가운데 종묘 공원에서 ‘덕성문제 해결 촉구를 위한 덕성인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개별 학교 규모의 학외 집회로는 최대의 인원이었다.


<사진 16> 4.26종묘집회를 마친 후 가두 행진하는 학생들 ⓒ 오마이뉴스 김미선

학생들은 고마움을 박원국 이사장에게 돌리는 재치까지 발휘하였다.


  덕성여대생은 총 오천 명이다. 집회 때 천명, 이천 명이 거뜬히 모이는 힘. 물론 이것은 박원국이 재진입한 이후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원국은 사람 모으는데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다른 집회 때 200명, 300명 모이던 숫자가 박원국이 돌아왔다니 천 단위가 넘어 간다. 요새 어느 학교에서 집회 때 이런 숫자가 모이는가. 흔히들 덕성여대에 대해 독성여대, 혹은 극성여대라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별명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잘못된 것에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는 지성, 그 지성으로 떳떳하다.
(덕성여대 98학번 Karma, 딴지일보(2001.5.11. 금요일))



2차 비상총회마저 무산되어 투쟁의 기운이 한 풀 꺾여 있는 가운데, 다음 날인 13일 “교육부, 덕성학원 ‘특감’ 검토”라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교육부 관계자는 “(덕성학원이 제출한) 자료 중 이사회 회의록은 회의 뒤 이사들의 발언에 대해 각 이사의 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최근 교육부에 자료를 제출하면서 찍은 것으로 드러나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덕성학원에 대한 특별감사를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을 듣고 학생들은 전체학번대표자회의에서 “중간고사가 그냥 지나가게 되면 투쟁의 흐름이 끊기게 되고 교육부에서 감사까지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쟁 없이 맞이한다면 감사결과에 대해서도 보장할 수 없게 될 것”이며 “결국 우리의 투쟁은 모두 허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며, 최종적으로 총투표를 실시할 것을 제안하였다.

총학생회도 중앙운영위원회를 열어 곧 중간고사라 3차 비상총회는 무리라고 판단하고 총투표를 실시하여 수업거부에 관한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하였다. 학생회 회칙 상 비상총회와 총투표 둘 다 인정되지만, 비상총회로 수업거부를 결정하여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려 하였으나 비상총회가 두 차례 성사되지 못하였기에 총투표로 방침을 바꾼 것이다. 총학생회가  학원자주화 투쟁 목표로 ▲박원국 일가 퇴진 ▲관선이사 파견 ▲민주총장 선출 ▲부당한 재임용탈락 철회 ▲등록금 인상 철회 등을 내걸고, 4월 16일(월)부터 17일(화)까지 이틀 동안수업거부에 대한 찬반 총투표에 돌입하였다.

8. 동아일보는 창간정신을 바꿔라


총학생회가 총투표를 통해 수업거부에 돌입할 움직임을 보이자 학교가 다급해졌다. 16일 권순경 총장직무대리는 비상체제에 돌입한다는 담화문을 발표하고, 각 건물마다 교수, 직원, 조교를 배치하는 배치표까지 작성하였다. 이날 아침 8시 교수, 직원, 조교를 학생회관 강당에 소집한 자리에서 총장직무대리는 학생들이 수업거부에 들어갈 예정이니 모든 교수 직원 조교는 학교를 정상화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하며, 이를 위하여 책걸상을 강의실에서 빼내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당부하였다. 또한 이러한 대학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책임을 물을 것이며 불이익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협박성 경고까지 하였다. 이에 대해 직원 노조가 “총장의 비상체제 돌입이라는 담화문은 직원들에게 학생들과의 물리적 충돌을 부추기는 것이며 협박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비상체제 돌입에 강력히 항의하고 철회를 요구하였다. 직원 노조는 총장의 초법적인 업무지시에 항의하며, 조합원은 본연의 업무 이외에 부당하고 초법적인 지시에 따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학내 구성원이 반발하는 등 사면초가에 몰린 덕성여대를 구원하기 위해 나선 것은 뜻 밖에도 언론이었다. 족벌언론 동아일보가 족벌재단 지원에 팔 걷어 부치고 나섰다. 16일 아침 동아일보는 전화 한 통화, 질문 두어 개로 덕성여대 총학생회와 인터뷰를 하고 잠깐 사진을 찍어 가더니, 17일자 1면 머리기사 [과격 학내분규 상아탑 멍든다]와 함께 덕성의 사진을 1면 톱기사로 실었다. 동아일보 머리기사는 사학분규의 핵심을 투쟁적인 학생들의 난폭한 폭력 때문인 것으로 일방적으로 매도하였다.


<사진 17> 과격 학내분규, 상아탑 멍든다 (동아일보 2001.4.17)

또한 덕성여대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교대로 입구를 지키며 권순경 총장직무대리의 출입을 막고 있다”는 말로 시작하여, “학생들의 행동이 성숙하지 못하다”는 권 총장직무대리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3면 해설기사에서도 덕성여대 한 학생의 “요즘 학생들은 학내분제보다는 개인의 취업이나 졸업 이후 자기 계발에 대해 더 관심이 많기 때문에 사실 학내투쟁은 소수의 학생들이 주도하고 있고 대다수의 학생들은 방관자의 입장이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문제는 어느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대개의 경우 학생들이 그들의 수준과 정도를 뛰어 넘어 무작정 학사행정에 개입하려 하거나 막무가내 식 주장을 펼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라 하여, 소수 극렬학생들의 과격한 투쟁이 대학분규의 주요 요인이라고 쓰고 있다. 또한 동아일보는 4월 25일 자 신문에서 “사학의 자율성과 학교법인의 고유권한을 부정하고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한다는 사설을 내보기도 했다.

  소수 과격한 학생의 무식한 행정개입 때문에 학내분규가 발생하였다는 동아일보의 주장과는 달리, 16-17일 이틀간 투표에 덕성여대 전체 학생의 70%가 넘는 학생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투표결과, 총투표인 3,768명 가운데 찬성 2,320명 반대 1,374명 기권 32명, 무효 42명으로, 투표 71%에 찬성 62%로 수업거부가 결의되었다. 덕성여대 사태가 소수 극력 학생들에 의해 주도되는 막무가내 식 투쟁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동아일보의 덕성여대사태 본질을 호도한 편파·왜곡 보도에 교수와 학생들이 분개했다. 한상권 교수와 오영희 교수는 기사를 작성한 동아일보 기자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쓴 반박문을 통해 문제의 기사가 일제 시대 이후 동아일보가 보도한  ‣대일본제국의 언론 기관을 자임 ‣조선 젊은이들의 황군 지원 권유 ‣모스크바삼상회담 왜곡 등과 함께 “동아일보의 대표적인 왜곡 기사로 길이 인용될 것”이라며, 동아일보는 “정정 보도를 내든지 ‘민주주의를 지지함’이라는 창간정신을 바꾸든지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학생들은 광화문 동아일보 앞에서 정정보도와 사과보도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였다.


<사진 18> 동아일보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황주현씨ⓒ 오마이뉴스 이종호

  황주연(정치 2) 학생은 동아일보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4월 17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 제목이 ‘과격 학내분규 상아탑 멍든다’였어요. 97년 한상권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던 박원국 재단이사장이 돌아와서는 교수님 다섯 분을 재임용에서 탈락시켰죠. 학생들 등록금으로 땅 투기하고 정치권에 로비를 했던 박원국 이사장이 학교로 돌아온다기에 집회를 했어요. 그러자 학교는 용역깡패를 불러 여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했죠. 그런데 동아일보는 왜 총장실 점거를 시작했는지는 쓰지 않고 ‘툭하면 총장실 점거’라고 기사를 썼어요. 신문에 사진 찍힌 선배는 이런 변을 당할지 몰랐다고 하더군요.


  황주연 학생과 함께 동아일보 앞에 나온 윤아름(사학과 2) 학생도 역시 동아일보 보도만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고 했다. 그는 덕성여대 학생들이 기자가 왔다고 하면 먼저 “동아일보 기자 아니냐”며 과민 반응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아일보는 4월 17일 보도에 이어 4월 20일에는 교직원이 학생에게 행사한 폭력 때문에 교직원 퇴근길을 막았는데 오히려 학생들이 교직원 퇴근길 막은 상황을 부각시켰다.


  4.19 뜀박질을 하고 왔는데 학교에서 교수들의 농성천막을 철거하는 거예요. 학생들이 말리니까 교직원들이 폭력까지 쓰더라구요. 그래서 교직원들에게 사과를 하기 전에는 집에 갈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런 과정에 대해서는 동아일보는 구체적 언급이 없었어요. 학생들만 나쁜 사람이 됐지요.


  황주현 학생과 윤아름 학생은 동아일보가 왜 사실을 왜곡해 놓고 아무런 반성이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80년 전통의 민족지임을 자랑하는 동아일보가 친일비리족벌재단을 비호함으로써 하루아침에 학생들 조롱거리가 되었다.


똥아일보 니네들 애정표현이 넘 지나친거 아니냐?

  덕성여대 총투표가 진행된 첫날인 4월 16일 동아일보에서 취재를 나왔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뭐 어려운 것은 없냐고 친근하게 굴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인터뷰에 친절히 응해주었다. 그러나 다음날 17일 1면 “학내분규로 상아탑 멍든다”를 제 1면에 내보냈고 덕성여대 학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사는 완전히 재단측의 입장에서 쓰여졌으며 지금 문제는 몇몇 과격한 학생들에 의해서 선동되고 있다고 나왔다. 다른 신문들에서도 ‘멍드는 상아탑, 이대로 좋은가’라는 기사들이 실리고 가장 어른의 구역인 총장실 점거 등의 행위는 순수한 학생들의 모습이 아니다라는 식의 기사가 쓰여졌다. 경X 신문의 모기자는 총학측에 언론에 대한 박원국의 로비가 있다고 알려왔다.
또한 동아일보는 이에 멈추지 않고 지난 4월 25일자 신문에서 ‘사학의 자율성과 학교법인의 고유권한을 부정하고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하다는 사설을 내보냈다. 이쯤 되면 너무 노골적으로 사립학교에 대해 애정 표시를 하는 게 아닌가!!
(덕성여대 98학번 Karma, 딴지일보(2001.5.11.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