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구속영장이 청구됐습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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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영장이 청구됐습니다 (1)

한상권(중세사2분과)

1. 천륜을 어기는 부도덕한 행위


2000년 12월 10일, 덕성여대 홈페이지에 흥미로운 글 하나가 올라왔다. 박원국 전 덕성학원 이사장이 올린 성명서로, 박상진 상임이사 후계자 지명을 취소한다는내용이었다.


1. 본인이 1997년 박상진(박토마스) 현 상임이사를 본인의 후계자로 지명하고 각계에 설명 소개하였으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후계자임을 정식으로 취소하겠음.

2. 이유
①박원택, 박상진 부자는 그동안 교육에는 관심이 없고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자파 세력 확대를 위한 학내 파벌을 조성, 불화를 야기시키고,

②박원택, 박상진 부자는 법인의 막대한 재산(적립금 약 2,000억 이상, 학생 1인당 한국 1위, 총액 2위, 부동산 1,000만평(사찰을 포함한 동국대 부동산을 제외하면 총 평수 면에서 한국 1위)을 사유재산 시 하여 부자의 전유를 시도하여 야욕을 실현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하여 왔고,

③본인이 고발한 교육부와의 소송에서 전 이사장 이문영이 그의 전임 이사장인 본인을 패소시키기 위하여 제기한 보조 참가(법인 부담으로 2인의 법인 변호사 고용)에 대하여, 본인의 조카인 박상진 상임이사에게 이문영이 퇴임한 현 시점에서 취하할 것을 누차 이야기하였으나 무답이었음에 급기야 덕성학원 전 이사 및 감사에게 내용증명으로 우송하였음에도 답변이 없었음

이 행위는 큰 아버지인 본인의 고법 승소에 이어 대법원에서 승소하여 재단 이사장에 복귀함을 방해하는 행위로, 천륜을 어기는 부도덕한 행위이며, 교육자로서 갖추어야 할 인격을 갖추지 못하고,

④최근에 덕성학원을 20여 년간 괴롭히고, 본인을 축출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덕성학원을 파괴하기에 전념한 교수협의회와 손잡고 운동권 출신 이사를 영입, 해방대학 화에 협조함은 정치적으로 중립하여야 할 80년 역사의 덕성학원을 정치 집단화함으로써 교육의 황폐화를 초래하려고 하고 있음.

⑤기타, 박상진을 후계자로 지명한 비운에 처해있는 본인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음해, 박해하여 왔음

⑥이와 같이 차미리사 여사의 자유, 민주주의적 민족독립과 여성교육을 위한 설립이념과, 그 후 본인의 외조부(송우영 중간 설립자)와 부모가 40년, 본인이 37년간 쌓아올린 80여년 공든 탑은 일시에 무너질 직전에 있음

3. 그러므로 교육자로서의 인격을 갖추지 못하고 우매하고 무능력한 박상진(박토마스) 현 상임이사를 후계자로 지명하였음을 본인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여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본인의 후계가자 아님을 정식으로 선언함.

2000년 12월 10일
전 덕성학원 이사장 박원국


  1997년 10월 이사장 및 이사에서 해임된 자연인 박원국씨가 후계자 철회 운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더욱이 학교법인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의 공기(公器)이므로, 박원국 씨가 이사장으로 재직한 연고권을 근거로  후계가 지명 운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사장은 이사회에서 이사들이 호선하여 선출하는 것이지 어느 누가 후계자를 지명하여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원국씨 성명서는 덕성학원 전유(專有)를 둘러싸고 박씨 일가 내에서 암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박상진 상임이사 후계자 지명을 철회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큰 아버지인 자신의 덕성학원 복귀를 방해함으로써 천륜을 어기는 부도덕한 행위를 하여 교육자로서의 인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교수협의회와 손잡고 운동권 이사를 영입함으로써 덕성학원을 해방대학 화하여 교육의 황폐화를 초래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원국씨가 말하는 박상진 상임이사의 천륜을 어기는 부도덕한 행위란 다음을 말한다.

교육부의 임원취임승인취소 처분에 의해 이사장직에서 해임된 박원국씨는 교육부 처분이 부당하다며 즉각 법원에 임원취임승인취소처분취소 청구소송을 냈다. 1998년 박원국씨 추천으로 덕성학원 이사로 선임된 이문영 교수는 취임 승낙 조건으로 박원국씨의 교육부 행정소송 취하를 요구하였다. 자신을 이사장으로 추천해놓고 소송을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으니 소를 취하하고 이사장 임기 보장을 해달라는 것이었다(17회, [애타는 강단복귀, 뒷거래는 사절]). 물론 박원국 씨는 이문영 교수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1999년 8월 12일, 교육부를 상대로 한 고등법원 행정소송 1심에서 박원국씨가 승소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교육부의 이사장 해임처분이 두 가지 면에서 잘못되었다고 하였다. 하나는 사립학교법에 따라 15일의 계고기간을 주고 승인취소를 해야 하는데 8일 만에 해임하여 절차상의 하자를 범하였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교육부가 앞으로 학사행정 간섭을 하지 않는 방법을 강구하라고 여러 번에 걸쳐 지시를 했는데도 충분한 조치를 안했으므로 임원취임승인을 취소했다고 주장하지만, 이사장의 승인을 취소할 수 있을 정도까지 교육부의 지시에 따르지 않은 것은 아니므로, 임원취임승인을 취소한 것은 권한 남용으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행정소송 1심 판결로 박원국 전 이사장의 학교 복귀가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며 적법하게 임명된 이문영 이사장의 거취가 이 판결에 의해 구속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행정소송 1심에서 승소로 박씨의 복귀 가능성이 높아지자 학내가 술렁거렸다. 대학을 정상화시키고 발전시킬 책임이 있는 이사회로서는 대책마련에 부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9월 3일(금) 열린 제 37차 이사회에서 이문영 이사장이 “덕성학원 안정을 위해, 교육부가 상고하여 재판을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고문변호사와 그 분이 추천하는 변호사를 선임하여 보조 참가할 것”을 제안하여, 보조 참가 여부를 둘러싸고 찬반 격론이 벌어졌다. 물론 구 재단 측 이사들은 반대하였다. 최영철 이사는, “재판의 핵심 내용이 박원국 전 이사장이 덕성학원 이사장으로서 학교 학사행정에 간섭을 했느냐 여부인데, 덕성학원이 교육부의 편에 서서 보조 참가를 한다는 것은 전 이사장의 학사행정 간섭을 인정한다는 것이 된다”는 이유로 반대하였다. 박원택 이사 부자 역시 “그 당시 덕성학원에 없었기 때문에 박원국 전 이사장께서 학사행정에 간여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므로 보조참가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하였다.

  보조 참가를 찬성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재판부가 이사장 승인취소를 절차상의 문제를 가지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재판부가 승인취소의 사유를 심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용을 심의해 달라는 차원에서 보조로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이문영 이사장). 다른 하나는 박원국 이사장이 그다지 크게 잘못하지 않았는데 교육부에서 과잉 개입하였다는 재판부 결정에 승복하게 되면, 지금까지 개혁 작업을 한 것이 헛일이고 안 할 작업을 하여 개악을 한 것이 된다는 주장이었다(이상진․ 정경모 이사).

  심의 결과 4대 3으로 보조 참가를 하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 이사회 결의에 따라 덕성학원은 보조참가인으로 박홍우 변호사와 최종영 변호사를 선임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최종영 변호사가 대법원장에 임명되어 자진사퇴하였기에 김영준 변호사로 교체하였다.

  행정소송이 대법원에 계류되어 있는 가운데 새로운 사태가 발생하였다. 2000년 5월 이문영 이사장이 사퇴함으로써 이사회 의결권이 다시 박원택 이사에게로 넘어간 것이다(19회, [기억을 둘러싼 투쟁]). 보조 참가를 반대한 박원택 이사는 이를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였다. 박원국 전 이사장도 조카인 박상진 상임이사에게 이문영 이사장이 퇴임한 현 시점에서 보조 참가를 취하할 것을 누차 종용하였다. 그러나 이사회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급기야 박원국씨가 덕성학원 모든 이사 및 감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내 보조참가 취하를 요청하였다. 여전히 답변이 없었다. 반면 박원택 이사는 “형님은 절대 학교에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을 흘려 동요하는 교수들을 자기편으로 끌어 들이고 있었다.

  행정소송이 한없이 대법원에 계류되어 있자 박원국씨는 몹시 초조해 있었다. 박씨를 잘 아는 한 측근 인사는 “지난 해(2000년) 가을이 박 이사장 마음이 가장 조급할 때였다”고 말하였다. 박원국씨는 중간에 사람을 넣어 김대중 대통령 일가와 친한 원로 교육사업가 제갈OO씨를 소개받았다. 박 이사장의 측근 인사는 “(박 이사장은) 고등법원 판결 뒤 청와대쪽 연줄이 없는 것을 불안해했다”고 말하였다. 박원국씨는 전혀 안면이 없던 제갈OO씨를 소개 받은 직후부터 극진히 모시기 시작했다. 분당에 사는 제갈OO씨가 서울 교보빌딩에 있는 치과로 치료 받으러 가는 날에는 비서를 딸려 자신의 벤츠 승용차를 보낼 정도였다. 일주일에 두 차례씩 있었던 일이다. 제갈OO씨는 2001년 6월 말 한겨레21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사실을 시인했다. 제갈OO씨는 “박 이사장이 나를 형님처럼 모셨는데 만날 때마다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고 말하며 “하지만 김홍일 의원이나 권노갑 의원 등에게 인사시켜준 일은 없다”고 질문하지 않은 내용까지 덧붙였다. 박 이사장은 6월 29일 한겨레21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제갈OO씨를 “그냥 좀 아는 사이”라고 했으나, 재차 친분관계를 묻자 “내가 정치를 했나, 정당을 했나. 부패 정치인도 부패 법관도 많은데 왜 정직하게 교육만 하는 나를 귀찮게 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박원국씨가 청와대에 공을 들인 덕분인지, 일 년 반 동안이나 감감무소식이었던 행정소송재판의 결심공판이 2001년 1월 19일로 갑자기 잡혀졌다. 대법원 결심 일자가 잡혀지자 당황한 박원택 이사가 하와이에서 부랴부랴 귀국하였다. 그리고 판결 직전인 1월 15일 이사회를 열어 결원된 이사 후임으로 금OO 중앙일보사장과 송OO SBS 사장 등 언론사 사장단 2명을 이사로 선임하고 상임이사를 함부로 교체 못하도록 정관 개정까지 하였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이는 2000.11.3. 국정감사에서 박상진 상임이사가 약속한 함세웅 신부와 방정배 교수의 이사 재선임을 파기하는 부도덕한 행위였다. 뿐만 아니라 국정감사에서 “법인 임원의 임명은 이사회의 독자적인 권한이나 향후 결원 임원 선임 시 학내 구성원의 합의하에 중립적인 인사가 선임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서 추진해 나가겠다”고 답변한 교육부의 입장과도 배치되는 결정이었다.

  박원국씨는 행정소송 결심 공판을 앞두고 덕성학원 복귀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2000년 덕성여대 국정감사를 앞두고 박원국 전 이사장이 한나라당과 같은 당 교육위원들에게 거액의 후원금을 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한나라당 후원회에 5천만 원(2000.11.11.), 한나라당 현승일 의원에게 1천만 원(2000.9.15.), 같은 당 김정숙 의원에게 5백만 원 씩 세 차례(?, 2000.10.30., 12.18(?))에 걸쳐 1500만원이라는 거액의 후원금을 낸 것이다.


<사진 1> 덕성여대 국감 전후 교육위 의원에 후원금 (한겨레, 2001.3.17)

후원금 액수가 거액이라는 것도 문제려니와, 더욱 큰 문제는 돈을 건넨 시점이교육위원회가 덕성여대 족벌재단의 비리에 대해 국정감사를 실시하는 11월 3일 전후라는 점이었다. 국정감사를 유리하게 이끌어 내기 위해 로비를 벌였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정감사에서 의원이 해야 할 일은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하여 분규의 실상과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고, 불법․비리가 밝혀질 경우 책임자를 엄중 문책하도록 관계기관에 촉구하여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현승일․ 김정숙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덕성사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은 물론, 분규를 야기한 재단과 대학의 불법․ 비리를 철저히 외면한 채 재단비리에 비판적인 교수협의회 교수들을 몰상식한 언어로 압박하였으며, 구 재단 측 입장을 궤변으로 적극 변호하였다. 김정숙 의원은 덕성사태는 “교수들의 패거리 싸움”이므로 국정감사 대상이 되지 않으며, 교육여건 개선을 위한 학생들의 투쟁도 교수들의 “꼬드김” 때문이라는 망발을 서슴없이 하여 교육․사회․시민단체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현승일 의원은 국감증인으로 나온 교협 교수들에게 “무기한 수업거부를 해야 한다고 학생들을 선동했느냐” “아직까지 면직되지 않은 걸 보니 명이 길다” “말이 많아 문제가 있다”는 등 의원 자질을 의심케 하는 모욕적 발언으로 덕성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기에 급급하였다. 한나라당 현승일․ 김정숙 의원의 비리사학 옹호 발언으로 미루어 볼 때, 박원국씨가 이들에게 건네준 거액의 돈은 단순한 정치후원금이 아닌 대가성 뇌물이라는 의혹이 짙었다.

2. 운동권 출신 이사를 영입, 해방대학화 하려 한다


박원국 씨는 성명서에서 박상진 상임이사가 교수협의회와 손잡고 운동권 이사를 영입하려 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박상진 상임이사 후계자 지명을 철회하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2000년 11월 3일 국정감사에서 있었던 박상진 상임이사의 발언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덕성여대는 1999년에 이어 2000년 두 번째로 피감 대상으로 선정됐다. 박원국 전 이사장의 동생과 그의 아들이 이사로 재직하여 족벌세습체제가 사회문제화되었고 김기주 이사장직무대행과 이강혁 총장이 재단전횡에 항의하는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 5명을 명예훼손혐의로 고발하여 학내 분규가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이날 국감에서 설훈 의원은 분규해결 방안의 하나로 박상진 상임이사에게 함세웅․방정배 이사의 복귀를 제안하였다. 증인으로 나온 박상진 상임이사는 함세웅․ 방정배 이사의 재선임을  약속하였으며, 이외에도 지병으로 하와이에서 요양 중인 아버지 박원택 이사의 용퇴와 교수 고소․고발 취하,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차기총장 선임 등을 분규해결방안으로 약속하였다.

  설훈 의원이 요구한 함세웅․ 방정배의 복귀란 2000년 6월 2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48차 이사회의 하자를 치유하라는 것이었다. 6․24 하와이 이사회의 문제점이라 함은 다음을 말한다.

  2000년 3월 이문영 이사장이 교육부의 압력에 못 이겨 만부득이 이강혁 총장을 복귀시켰으나, 복직된 총장이 교직원들과의 불화를 계속 야기하고 수 천만 원의 광고료를 들여 자신을 헐뜯는 광고를 신문에 내자(2000.5.26), 이문영 이사장은 그 다음날 자신의 사직서에 함세웅․방정배 두 이사의 사직서를 동봉하여 교육부에 제출하였다.


<사진 2> 이문영 이사장 사직서

“재단 이사장으로서 대학 내의 제도적 왜곡 구조를 청산하고 각종 갈등과 분쟁을 종식시키는 개혁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키 위해서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던 교육부의 지원 작업이 필수적인데, 협조는 고사하고 이사장의 선의의 대학민주화작업에 장애물을 지속적으로 조성하는 이강혁 총장의 복직을 강요했고, 이 총장 복직을 안 시키면 이사장직을 퇴임하라고 지시를 내리기까지”한 교육부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항의성 사표였다.

  그러나 교육부는 어떤 중재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사표를 즉시 반려하였다. 더 나아가서 “우리 부는 학교법인 임원의 사직서를 수리할 권한이 없어 반송하오니, 귀하께서 사임하고자 하시면 학교법인 덕성학원으로 제출하시기 바랍니다”라는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이문영 이사장은 교육부에서 중재를 하고 이견을 조정해 주기를 바랐으나, 바람이 무산되고 무시까지 당한 것이다.

  이문영 이사장은 6월 15일 다시 자신의 사직서에 함세웅․ 방정배 이사의 사직서를 동봉하여 재단 사무국에 제출하였다. 그러자 교육부는 기다리기라도 하였다는 듯이 그 다음날인 16일 구 재단 측이 이사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관할청 승인을 내주었다.(사립학교법에 이사회 소집권자인 이사장 궐위 시 관할청 승인을 얻어 이사회를 열도록 되어 있다.) 관할청 승인을 얻은 재단 사무국은 함세웅․ 방정배 이사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구 재단 이사들에게만 이사회 소집 통보서를 보냈다. 사임의 효력 발생 시기에 관하여 고문 변호사에게 문의한 결과, 해임의 경우와는 달리 사임서 접수 시에 효력이 발생한다는 의견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함세웅․방정배 이사가 이문영 이상장과 함께 동반 사퇴하였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덕성학원의 민주화와 개혁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 온 많은 이들의 충고와 질타가 잇따랐다. 두 사람이 이사로 선임된 것은 수많은 민주 인사들의 노력과 피땀으로 얻은 성과이므로, 계속 덕성의 민주화를 위해 이사로서 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많은 이들의 조언과 충고를 받아들여, 6월 23일 방정배 이사가 이사직 사퇴 철회 의사를 재단에 특급 우편으로 보냈다. 함세웅 신부 역시 사퇴 철회서를 전달하기 위해 재단사무국에 들렸다가 그 자리에서 두 이사에게는 통보도 하지 않은 채 6월 24일 하와이에서 이사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함세웅 신부는 급히 차를 몰고 김포공항으로 달려가 오후 5시 30분 경 이사회 참석을 위해 출국하는 사무국장에게 간신히 사퇴 철회서를 전달하였다.

  6월 24일 오전 9시(하와이 현지시간)에 하와이에서 이사회가 열렸다. 먼저 사무국장의 보고가 있었다.


  방정배 전 이사와 함세웅 전 이사가 기 제출된 사직서를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2000년 6월 23일 오후 5시 30분 경 서면으로 밝혀 왔습니다마는 사임은 사임서 접수 즉시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고 따라서 사임 의사를 철회한다고 해서 사임이 철회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고문 변호사의 의견임을 참고하여 이사님들께서 이문영 전 이사겸 이사장, 함세웅 전 이사, 방정배 전 이사가 2000년 6월 15일 자로 사임된 것을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와이 이사회에 참석한 이사들은 이문영 이사 겸 이사장, 함세웅 이사, 방정배 이사가 2000년 6월 15일자로 사임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들은 “덕성여대 민주화, 발전을 위해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이사직 사퇴를 철회한다”고 밝힌 함세웅․ 방정배 이사의 사표를 수리하고, 박원택 이사의 초등학교․고등학교 친구인 김OO 연세대 교수와 재단사무국장을 후임이사로 선임했다. 또한 김기주 이사를 이사장 직무대행으로 선임하고, 교수직선으로 뽑은 인사위원회에서 승진이 부결된 두 명의 교수를 승진시키고, 비 전임교원인 교수연수자를 교원임용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전원 일반교원화하기로 결정하는 폭거를 자행하였다. 이어 6월 27일에는 임기가 정해진 교무처장을 면직시키고 하와이 이사회에서 승진시킨 이OO 교수를 후임 교무처장으로 임명하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구 재단이 전횡을 저지를 수 있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교육부의 책임이 컸다. 이문영 이사장과 함세웅 신부․ 방정배 교수 등 개혁적인 이사들의 동반사퇴를 명분으로 삼아, 잔류 이사들의 입지를 강화시키려는 구 재단 측의 이사회 소집 요청을 교육부가 하루 만에 승인해주었기 때문이다. 교육부와 법인의 유착 없이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진 3> 덕성여대 교협, “법인․교육부 유착”(교수신문 2000.7.17 )

  참여연대, 민교협, 전교조 등 20개 교육․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는「덕성여대정상화를위한공동투쟁위원회(공투위)」가 업무방해 및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문용린 교육부장관을 비롯한 교육부 관계자들을 서울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공투위는 고발장을 통해 “교육부는 대학이 교원 현황을 허위로 보고한 사실을 묵인해 대규모 불공정임용을 조장했으며, 이문영 전 이사장 재직 시 법인에 부당한 압력을 핵사하면서 이강혁 총장의 복귀를 비호했다”고 지적하고 “지도․감독기관의 역할을 방기한 채 오히려 법인과 유착관계를 보이고 있는 교육부의 이 같은 행태는 처벌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교수협의회는 “교원현황을 허위 보고한 것에 대해 제제를 가해야 할 교육부가 오히려 내규를 폐지하면 모교출신연수자를 일반교원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방법까지 제시해 불공정 임용을 조장한 것, 이문영 전 이사장 함세웅․ 방정배 이사 등이 사퇴했다는 명분으로 잔류이사들의 이사회 개최를 하루 만에 승인한 것 등은 교육부와 법인의 유착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하와이 이사회 소식을 전해 듣고, 교수협의회는 즉각 ‘6.24 하와이 이사회 무효화 투쟁’을 선언하고 농성에 돌입하였다. 이어 공투위는 종로구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 하와이에서 몰래 개최해 함세웅․ 방정배 등 민주적 성향의 이사 2명을 해임한 덕성학원 이사회는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공투위는 “재단은 이사회 개최 사실을 1주일 전 이사 전원에게 알려야 하는데도 함 신부 등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이사회를 열어 친 재단 성향 인사들을 후임 이사에 선임했다”며“이는 재단의 족벌 체제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사진 4> “덕성여대 ‘몰래 이사회’는 무효”(한겨레 2000.7.4) / 덕성여대 교수협 등, “ ‘도둑’ 이사회는 무효”(중앙일보 2000.7.3)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함세웅․방정배 이사도, 하와이 이사회 소식을 들으면서 이사들이 사립학교법상 유일한 의결기구인 이사회만 장악하고 있으면 어떤 결정을 내려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기계적 법 논리에 빠져 들고 있음을 확인하고 놀랐다며, 법 이전에 상식과 이성이 통하는 아름다운 교육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두 이사는 학교는 사회에 봉헌된 것이므로 공익에 맞게 운영되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대학은 재산권을 행사하는 사유물이 결코 아닙니다. 학교에 재산을 기부한 사람은 그 재산을 학원공동체 곧 공동선을 위해 봉헌한 것이며 학교는 마땅히 그 설립이념과 공익에 맞게 운영되어야 합니다. 오랜 동안 덕성여대가 분규상태에 빠져 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고통을 당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재산 기부자와 그 자녀들의 잘못된 소유인식으로 학교를 자신의 사유물로 생각하고 교권과 학습권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24 하와이 이사회에 참석한 이사들은 과거의 폐습을 타파하고 공익을 바탕으로 덕성을 개혁해야 할 책무를 거슬려 대학을 사유화하고 대학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파괴하였으니 질책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일치와 화해, 인간화와 통일을 지양하는 시대의 물결을 거역한  반인간적 반교육적 퇴행조처입니다.


  사퇴철회 의사를 분명히 밝힌 함세웅․ 방정배 이사를 6․24 하와이 이사회에서 해임한 조치는 국정감사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설훈 위원 :  증인(박상진 상임이사)을 중심으로 해서 법인이사회가 갈등 구조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동의하십니까?

증인 박상진 : 예, 동의합니다.

설훈 위원 : 좋습니다. 그러면 본 위원이 하나하나 제안하겠습니다. 먼저 아까 함세웅 이사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마는 방정배․ 함세웅 두 분 이사와 법인 간에 상호 법적 대응을 하고 있지요?

증인 박상진 : 예

설훈 위원 : 그러면 법인 운영을 정상화한다고 할 때, 지금 법정 판결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이전에 이들 두 분을 이사로 재 선임할 때 학교의 평화가 오고 학내 문제를 해결하는 틀이 만들어 질 수 있다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증인의 입장을 한번 말씀해 보십시오.

증인 박상진 : 저도 위원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제안하는 방향에서 이사진에서 논의하여 검토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상진 상임이사는 국정감사에서 약속한대로 11월 28일 함세웅 신부․ 방정배 교수를 직접 찾아뵙고 12월 초에 이사회를 열어 이사로 다시 영입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앞서 성명서에서 박원국씨가 말하는 박상진 상임이사의 “운동권 이사 영입” “해방대학 화에 협조” 운운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국정감사 약속 이행을 위해 개최할 예정이었던 12월 11일 이사회는 정작 회의를 소집한 김기주 이사장직무대행이 불참함으로써 유회되었다.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김덕규 의원이 증인으로 출석한 김기주 이사장 직무대행에게, “교협 회장단의 면담요청을 거부하셨고, 교협 교수들을 검찰에 고소하셨고, 교협 교수들을 감시하고 사찰하고 그 자료를 고소자료로 제출하는 등의 행동은 증인께서 이사장직무대행 자격이 과연 있는가 하는 의심이 갑니다”라고 추궁하자, 김기주씨는 “저는 대학에 몸담은 지 42년입니다. 그동안 명예와 자존심을 제 생명같이 여겼습니다”라고 답변하면서, “저는 배신과 부도덕을 제일 싫어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명예와 자존심을 생명처럼 여긴다는 김기주 이사장직무대행이 자신이 소집한 이사회를 스스로 무산시키는 납득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김기주 이사장직무대행이 자신이 불참하면 이사회가 정족주 미달로 유회된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이 때문에 김기주 이사장직무대행의 불참은 이사회를 유회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사회 유회 전략은 과거 구 재단이 한상권 교수 복직을 방해하기 위해 써먹었던 고전적인 수법이었다.

  김기주 이사장직무대행의 이사회 유회는 박원국씨의 복귀 움직임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박원국 씨와 그 친위세력들 또한 이사회 개최일인 12월 11일을 전후로 하여 이사회를 무산시키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움직임을 일자별로 되짚어 보면, 12월 8일(금) 이강혁 총장이 박원국씨 친위 세력을 이끌고 재단에 찾아가 항의농성을 유도하였다. 12월 9일(토)에는 이강혁 총장이 한나라당 현승일 후원회의 밤에 박원국씨를 대동하고 나타나 인사시켰다. 이사회가 열리기 직전인 12월 10일(일) 박원국 씨가 박상진 상임이사 후계자 지명을 철회한다는 앞서의 성명서를 학교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사회 당일인 12월 11일(월) 교수연수자들이 재단에 몰려가 승진을 요구한 후, 다시 이사회 장소에 몰려가 직원 협의회 소속 직원들과 함께 로비에서 대기하였다. 그리고 김기주 이사장직무대행이 이에 가세하여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마침내 이사회가 유회된 것이다.

  김기주 이사장직무대행의 이사회 유회조치는 국정감사에서 도출한 덕성여대 사태해결 방안인 “함세웅․ 방정배 이사 복귀를 통한 이사회 정상화와 개혁 작업 추진을 통한 덕성 발전”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처사였다. 덕성사태를 야기한 장본인 가운데 한 사람인 김기주 이사장직무대행은 학내 분규를 수습하기는커녕 계속 파국으로 몰고 가 문제해결을 점점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12.11이사회 유회 사태에 대해 교협․ 총학․ 민동 등 학내 민주세력이 김기주 이사장직무대행 퇴진 집회를 다시 여는 등 강력히 항의하자, 12월 27일 자로 다시 이사회가 소집되었다. 박상진 상임이사는 이사회가 열리기 직전인 22일 공투위 상임공동대표(김영규 교수, 박거용 교수)를 만난 자리에서 또 다시 두 분 이사 영입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27일 이사회에서도 두 분 이사 재선임은 또다시 유보되었다. 이후 박상진 상임이사는 두 분 이사 재선임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자신이 이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엉뚱한 소리를 하였다. 힘이 없어 두 분을 복귀시키지 못하니 이사장이 되어 선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1.1.15 열린 이사회에서 박원택 부자는 두 분 이사 재선임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언론계 인사 두 명을 후임이사로 선임하였다.

  박상진 상임이사가 국감약속을 파기한 데 대해, 덕성학원 재단 관계자는 “박상진 이사가 국감 때 했던 발언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노력한다는 것이지 책임지겠다는 것은 아니었다”며 “박이사도 이사 가운데 한명이기 때문에 이사회에서 판단할 사항을 혼자 결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옹호하였다. 며칠 후 대법원 판결로 박원국씨가 이사장으로 복귀함에 따라, 사립학교법의 친인척 이사 제한 규정(사립학교법에 친인척은 이사 정수의 1/4을 넘을 수 없다. 이사 정수가 7명인 덕성학원의 경우 박씨 일가가 2명 이상 이사가 될 수 없는 것이다)에 저촉되어, 박상진 상임이사는 학교법인이 운영하는 수익사업체인 덕양사 사장으로 나가고, 그 뒤를 이어 박원택 이사가 다시 상임이사가 되었다.

3. 박원국이 다시 돌아오던 날을 기억한다


1997년 해임된 박원국씨가 햇수로 4년 만에 이사장 지위를 회복하여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 2001년 1월 19일, 임원취임승인취소처분 청구소송을 낸 후 3년 3개월을 끌어온 재판 끝에 대법원이 박씨의 손을 들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강혁 총장이 단과대학장과 행정부서장에게 “1997.10.10 교육부의 부당한 임원취임승인취소처분에 의하여 해임되었던 학교법인 덕성학원 박원국 이사장이 2001.1.19 대법원의 판결로 임원취임승인취소처분이 취소됨에 따라 동일자로 이사장직에 복귀하였음을 알려드리오니 업무에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라며, 이사장 복귀 사실을 통보하였다.


<사진 5> 이사장 복귀 통보

  대법원 특별 3부(주심 손지열 대법관)는 박원국 전 이사장이 교육부를 상대로 낸 임원취임승인취소처분 취소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교육부의 덕성학원 이사장 취임승인취소 처분은 재량권을 넘어선 처분”이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하였다. 대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까닭은 박원국 씨가 교육부가 요구한「대학 학사행정 전 분야에 관한 이사장 간섭 배제 종합시정방안」을 권순경 총장직무대행과 합의하여 1997년 10월 8일 제출하여 교육부의 시정조치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했는데도 교육부가 재시정을 요구하지 않고 바로 해임한 것은 부당하며, 게다가 박원국 씨의 이사장 복귀가 “현저히 공공복리에 반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사법부는 판결문에서 “박 이사장이 재단 이사장으로서 총장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겠다고 이행각서를 제출하는 등 교육부의 시정 조치를 받아들인 상태에서 교육부가 박이사장의 취임승인을 취소한 것은 권한남용으로 판단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박원국 이사장과 그를 추종하는 권순경 총장직무대리 간에 합의한 이행각서가 학교운영상의 위법부당사항을 시정하는 문건이 될 수는 없었다. 대법원 판결은 ①박원국 이사장이 두 차례의 계고기간 동안 김용래 당시 총장과의 합의각서 작성을 거부하였고 ②그의 압력에 시달리다 못해 김용래 총장이 사퇴하였으며 ③박원국 이사장이 자신의 측근인 권순경 교수를 총장직무대리로 임명한 후 그와 형식적인 합의각서를 3차 계고기간 중에 제출한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제출된 합의각서가 진정성이 결여된다는 점, 그리고 박원국 이사장이 146건에 달하는 위법 부당한 학사행정 간섭을 저질렀다는 점 등 덕성사태의 본질을 도외시한 채 내린 판단이었다.

  게다가 사법부는 박 이사장의 복귀가 공공복리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사립대학 재단이사장으로 박원국씨가 저지른 전횡적이고 독단적인 학교운영과 이에 따른 학내구성원들에 대한 부당한 인권 침해 실태를 간과한 채 내린 안이한 판단이었다. 교육부는 1997년 감사결과처분서에 따라 박원국씨가 사립대학 재단이사장으로서 부적격자라고 보고 임원취임승인취소처분을 한 것이므로, 설사 박원국씨가 승소하였다 할지라도 교육부 감사에서 밝혀낸 이사장직에 있으면서 저지른 위법 부당한 사실들 자체에 대해 면죄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원국 씨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자마자 “법인은 1996학년도와 1997학년도 두 번에 걸쳐 교육부의 감사를 받았으나 부정이나 비리가 없었음이 판명되었다”고 주장하며, 마치 개선장군이나 된 것처럼 덕성여대에 복귀하였다. 학내는 1999년부터 유지된 공익이사체제가 무너져 박씨의 복귀를 막는 장애물이 제거된 상태였다. 박원국씨의 친동생 박원택 상임이사와 그의 아들 박상진 이사가 이강혁 총장과 함께 ‘공익이사 흔들기’에 나서 이문영 이사장, 함세웅․방정배 이사 등 개혁적인 인사가 학교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박원국씨는 복귀하자마자 과거처럼 대학을 장악하고자 또다시 학사행정 간섭을 자행하였다.


<사진 6> 덕성여대, 박원국 전 이사장 복귀로 분규 확산(교수신문 2001.2.19)

박원국 이사장은 각 부처 업무의 직접보고를 명령한 후, 대학에 출근하여 재단이나 대학의 어떤 공적 직함도 없는 자신의 개인비서 두 명을 배석시킨 가운데, 처․실장을 비롯하여 각 부서장에게 자신의 해임기간 동안 진행된 행정업무에 대하여 보고토록 하였다. 자신이 나가 있는 동안 이루어진 학사행정이나 교수 임용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자세로 직접 업무 보고를 받으면서, 보고 내용을 평가하고 일일이 시정 지시를 하는가 하면 새로 개편된 교육과정을 문제 삼는 등 또 다시 학사간섭을 자행하였다. 또한 직전 학기 신임교수초빙과 관련하여, 대학 측 심사(학과 서류 심사, 학과면접, 시강, 인사위원회 심사, 총장제청)가 완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단직원을 시켜 해당 학과장과 단과대 학장 및 자신이 임의로 선정한 소위 원로교수들을 재단 측 면접에 배석하도록 강요하였다.

  2월 15일에는 부처별 업무보고 받는 것을 핑계로 무리하게 대학에 진입하려다 이를 저지하는 학생들과 여덟 시간 가량이나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진 7> 덕성여대-재단 전횡과 학사행정 간섭(대학생신문 2001.3.20)

  15일 후 2시 40분 경 박원국 이사장이 탄 차가 학교 정문 앞에 도착하였다. 학생회관에 있던 총학생회와 각 단대 학생회, 동아리, 학과 학생들이 그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뛰쳐나갔다. 학생들 20여 명 정도가 행정동 앞에 모여 그의 차를 막아서고 구호를 외쳤다. 학생들이 차 앞에 서 있는데도 운전기사는 차를 전진시켜서 무리하게 학교로 들어오려고 하였다.

  잠시 후 박원국 이사장이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행정동 한편에서 관망하고 있던 직원들이 우루루 몰려나와 이사장을 에워쌌다. 이어 이강혁 총장을 비롯하여 부총장, 발전처장, 학생처장, 교무처장, 기획실장 등 처․실장이 마중 나왔고, 나중에는 그를 추종하는 강OO, 권OO, 고OO, 조OO 교수들까지 나와 학생들이 한마디 할 때마다 나무라며 이사장을 옹호했다.

  이사장과 학생들의 대치로 행정동 앞은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학생들은 박원국 이사장을 학교에 들여보내면 이후에도 계속 이런 일들이 일어나 그의 복귀를 허용하는 것이 되고 말기 때문에, 비록 추운 날씨에 눈까지 내리고 있는 힘든 상황이지만 한 발자국도 덕성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다며, 밤을 새서라도 학교에 들어오는 것을 저지할 태세였다. 반면 박원국 이사장도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각오로 학생들을 한 명 한 명씩 노려보며 기 싸움을 하고 있었다. 대치 상황이 길어지자 교수와 직원들이 이사장이 추울세라 눈 맞을세라 옷을 갖다 바치고 우산도 씌워주었다. 또한 학생들 하나하나 사진을 찍으면서 “너희들 두고 보자”면서 위협을 하고 있었다.

  얼마 후 박원국 이사장이 직원들과 교수들의 엄호를 받으며 행정동 2층으로 몸을 피했다. 이 과정에서 교직원과 학생들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났고 많은 학생들이 구타당하고 안경이 부러졌다. 이에 분노한 학생들이 공개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행정동 1층에서 계속 시위를 벌였다. 마침내 오후 10시 30분 경 전투경찰이 출동하여 학생들을 물리적으로 끌어낸 후 이사장을 경찰차에 태워 학교를 빠져나갔다.또 다시 다수의 학생이 부상당하는 폭력사태가 발생하였다. 현장에 있었던 학생이 이날 상황을 딴지일보에 기고하였다.


박원국이 다시 돌아오던 날을 기억한다. 2001년 2월 15일 그날은 30년만인가 40년만인가의 폭설로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인 날이었다. 인문사회대 강의실 안에서 과 후배들과 대면식을 하고 있던 도중 박원국이 왔다는 말을 듣고 과 친구들과 함께 뛰쳐나갔다. 허벅지까지 차오른 눈을 헤치고 달려가서 본 장면은 마치 김영삼 옹의 고대강연을 방불케 하였다.

정문인 행정동 앞에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무섭게 대치하고 있고 그 가운데 박원국이 서서 학생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학생들은 박원국만은 한 발짝도 덕성 안에 들어올 수 없다고 외치고 박원국은 꼭 학교 안으로 들어오겠다고 맞서고 있었다.

그러나 김영삼 옹 경우와는 좀 다른 점이 있었으니 첫째는 학생 수보다 교직원이 더 많았다는 것, 둘째는 결국 학생들이 교직원들에게 뒤지게 맞는 사이에 박원국은 저지선을 뚫고 행정동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 셋째는 추위 속에 눈밭에서 세 시간을 기다려 박원국이 집에 가는 것을 막은 학생들을 경찰들이 강제해산시켰다는 것이다.

나는 그날 분명히 보았다. 지금 현재 덕성의 총장직무대리를 맡고 있는 권순경 교수가 선배 언니의 안경을 주목으로 때려서 깨뜨리고 동기의 뒤통수를 우산으로 치는 것을. 그리고 평소에 학생들을 위한다며 수업시간마다 학생들 앞에서 위선적인 눈물을 흘리는 강모 교수가 재때려, 재때려 하며 교직원들을 사주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하기야 이 강모 교수는 97년 학자 투쟁 때 노동신문을 복사해 학생회실에 뿌리다 들킨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박원국은 학생들이 차에 매달려 있는데도 앞으로 나가게 해 학생들의 발을 차바퀴에 깔리게까지 하였다. 눈밭에서 교직원들에게, 경찰에게 개 맞듯이 맞아 뒹굴어야 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씹탱구리. 그런 사람들이 교수인가. 교육자인가
(덕성여대 98학번 Karma, 딴지일보(2001.5.11.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