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감히 이사장님의 이름을 거명하다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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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이사장님의 이름을 거명하다니 (2)

한상권(중세사 2분과)

4. 내가 만일 교수라면 이런 불의에 항거하겠습니다.

덕성학원은 내가 교육자로서 부적격한 품성을 지녔다는 증거로, 과거의 교수 파벌조직을 움직여 허위사실을 날조 유포하는 문건을 배포, 선동하여 대학 구성원들 간 불신을 조장하고, 조직을 분열시켜 대학을 파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점을 세 번째 사유로 들었다. 이는 6월 5일 덕성여대교수 13명이 “한상권 교수 즉각 복직” “박원국 이사장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을 두고 말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조금 자세히 부연 설명할  필요가 있다.

  출근투쟁으로 학생들 동요가 심상치 않자 학교는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사장은 마침내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교수들을 총동원하여 출근투쟁을 원천봉쇄하기로 한 것이다. 이사장은 한상권 교수 재임용탈락은 적법한 것이며 학교를 혼란에 빠뜨리는 출근투쟁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교수들 서명을 받도록 지시하였다. 실정법과 수의 논리를 내세워 학내에서 고조되고 있는 투쟁의 열기를 잠재우려 한 것이다. 이사장의 지시에 따라 6월 5일「최근의 사태에 관한 덕성여대 교수들의 입장」이라는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다음은 성명서 내용 중 나와 관련된 부분이다.

한상권 전교수의 재임용 제외는 학교 당국의 적법 절차에 따라 취해진 결과이고,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서도 한 전교수의 재심청구를 각하함으로써 그 적법성을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전교수가 무단으로 학교에 출근하여 공개강의를 하는 등 학생들을 부추기는 언동을 하고 있어, 우리는 학생들에게 미치는 비교육적인 영향을 심히 우려하는 바이다.

  덕성여대 교수 140명 중 95명이 이 성명서에 서명했다. 그 가운데는 외국인 교수도 끼어있었다. 학교는 성명서와 서명 교수 명단을 모든 건물 출입문에 부쳐놓았다. 그러자 어떤 학생이 성명서 하단에 “지금 사정을 알지도 못하는 외국교수님들도 적어놓은 이 글이 무슨 의미가 될 수 있는가? 혹시 이들 또한 비리를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이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아닐까?”라고 써놓았다.

전체 교수의 2/3가 찬성하는 성명서가 발표되자, 이사장의 바람과는 달리, 역풍이 거세게 불었다. 서명한 교수들에 대해 학생들의 실망과 비난이 그칠 줄 모르고 터져 나왔다. 사학과 졸업생(85학번, 김미라)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 이를 잘 말해준다.

우왕좌왕의 와중에도 적반하장격인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 재단측은 마침내 지난 주말을 이용하여, 나머지 재직교수들에게 압력을 가하여 ‘학교당국을 무조건 지지한다’는 내용의 참으로 가관인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지금 덕성여대 캠퍼스 곳곳에 붙은 학교측의 성명서는 순식간에 비판의 글들로 가득 메워져 소신을 지키지 못한  많은 교수님들이 차마 얼굴을 들고 다니기 힘들 지경입니다.

  학교측 입장에 동조한 교수들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교수들 서명을 외압에 굴복하여 양심을 저버린 행위라고 보았다.

교수님들 진정한 양심은 무엇입니까?
가능하다면 교수님들(학교측에서 제시한 대자보 속의 교수 명단 중)의
직접적인 성명발표를 듣고 싶습니다.

  또 다른 학생은 “가서 교수님께 물어봅시다. 진정 동의하셨냐구. 진짜 동의하셨다면 실망스럽다구…정말 배운 게 부끄럽습니다.”며 도대체 무엇을 위해 학문을 배우고 가르치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이 밖에 “적어도 덕성을 사랑하고 교수라는 지적, 인간적 소양을 갖춘 분들이라면 중요한 것은 교수님들이 왜 이런 성명을 내야만 했을까 하는 것이다. 묻고 싶다. 과연 ‘의’를 가르치고, 진리를 추구한다는 교수님들의 행적으로 믿을 수 없다.” 며, 진정한 교육자의 본연의 자세가 무엇인지 생각해 달라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교수들의 어용적인 행태를 꼬집으며 경멸하는 학생도 있었다.

난 예전에 교수라는 직업, 지위에 대해서 꽤나 큰 존경심을 가졌었다.
이제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프라이드를 다 버리고 무조건 재단측에 서는 수많은 교수님들!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신 없는 교수들의 태도를 당당하게 꾸짖는 학생까지 있었다.

학교측의 입장에 동의하신 교수님들! 진정 당신들이 교육자라면, 진정 학교를 위한다면 지금 당장 양심선언 하십시오! 하늘이 두렵지, 부끄럽지 않습니까!

  학생들은 한 목소리로 학교의 입장을 지지한 교수들에게 진리의 편에 서서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 줄 것을 호소하였다.  

5. 감히 이사장님의 이름을 거명하다니

이사장의 당초 계획은 교수 전원의 서명을 받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내부적으로 동요하는 교수들의 분위기를 다잡고 외부적으로도 출근투쟁을 비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토의 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살벌한 학교 분위기에 비추어 볼 때 이사장의 지시가 무모한 것만은 아니었다. 교수서명이 이사장의 지시대로 진행되지 못한 데에는 교수들의 또 다른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6월 5일, 학교 입장을 지지하는 성명서가 공개될 즈음 정반대의 성명서가 교수 13명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다음날 성명서에 동의한 교수 한 명이 추가되어 14명이 되었다). 이 성명서는 덕성여대 민주화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에 다소 길지만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다만 본인의 동의를 받지 않았으므로 서명교수 이름은 생략한다).


 현금 학내사태에 대한 우리의 견해

우리 교수들은 학교당국의 파행적 학교운영과 그로 인해 누적된 숱한 문제들을 직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특히 지난 2월 말 학교당국에 의해 강행된 인문대학 사학과 한상권 교수에 대한 재임용탈락조치에서 비롯된 학내의 무거운 분위기를 절감하면서, 당면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음 두 가지의 핵심적 요구사항을 제시하고자 한다.

1. 한상권 교수는 즉각 복직되어야 한다.

한상권 교수에 대한 재임용 탈락 조치는 원천적으로 무효이다. 왜냐하면 한상권 교수는 재임용에서 탈락될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상권 교수는 한국사학계에서 중요한 업적을 쌓아가고 있는 탁월한 학자이며, 이는 전국 대학의 2,500여명의 교수가 한상권 교수의 복직운동에 동참하여 서명했다는 사실이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한상권 교수는 그간 학교에서 실시한 강의평가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상권 교수는 또 교원의 근무태도에 대한 평가에서도 양호한 성적을 얻었다. 이처럼 한상권 교수에게는 재임용에서 탈락 될 만한 아무런 결격사유가 없다. 한상권 교수에 대한 재임용 탈락조치는 양심적이고 유능한 교수에 대한 박원국 이사장 개인의 폭거일 뿐이다.

우리 교수들은 묻는다. 낮은 급여와 거듭된 승진누락을 묵묵히 견디면서, 10여년의 근무에 연구기간 한 번 받지 못하는 악조건 속에서, 오직 학문연구에 정진하며 열성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쳐 온 교수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다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지난 90년 개악된 사립학교법을 전국 최초로 악용하여 성낙돈 교수를 탈락시키고, 이제 비등하는 여론에 의해 곧 개정될 재임용 제도를 전국 최후로 악용하여 한상권 교수를 탈락시켰으니, 우리 덕성여자대학교가 어쩌다가 이토록 상식 이하의 학교가 되고 말았는가?

우리 교수들은 한상권 교수에 대한 재임용 탈락조치의 철회를 강력히 요구한다. 한상권 교수는 즉각 복직되어야 한다.

2. 박원국 이사장은 즉각 퇴진해야 한다.

우리 교수들은 한상권 교수의 복직과 아울러 박원국 이사장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한다. 박원국 이사장은 우리 덕성여자대학교를 침체의 늪에 빠뜨린 장본인이다.

박원국 이사장은 아무 결격사유가 없는 우수한 교수들을 부당하게 탈락시켰고, 이에 항의하는 교수들을 비롯해 많은 교수들을 승진심사에서 누락시켰으며, 대학 예산의 편성과 집행 등 모든 학교 행정에 대해 일일이 간섭 지시해 왔고, 교양과정 교과목을 마음대로 신설, 변경 또는 폐지하는 월권행위를 저질러 왔다. 대학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박원국 이사장의 이러한 행위는 교수들의 교권을 여지없이 유린하는 것이며, 동시에 학생들의 학습권을 심각히 침해하는 것이다.

박원국 이사장은 또한 숱한 재정 비리를 저질러 왔다. 박원국 이사장은 건물 신축 등 재단이 부담해야 하는 사업에 학생들의 등록금을 적립하여 사용하였으며, 수년 전 매각한 상계동 토지대금 700여억 원이 있음에도 재단 전입금을 거의 내놓지 않아왔다. 우리 덕성여자대학교의 운영비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타 대학에 비해 부끄러울 정도로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박원국 이사장은 또 해외(미국, 일본, 유럽 등)에 장기체류하거나 외국을 여행하면서 엄청난 돈을 낭비하여 검찰에 의해 해외과소비범으로 적발되기까지 했다.
이처럼 박원국 이사장은 각종 비리와 월권행위로 우리 덕성여자대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학교를 사상 최대의 위기에 처하도록 하였다. 이제 박원국 이사장은 덕성여자대학교 운영자로서의 자격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박원국 이사장은 즉각 퇴진해야 한다.
이상에서 진술된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우리 교수들은 총장님 이하 전 교수들 교직원들 학생들 그리고 덕성 동문들과 연대하고, 민주적 사회단체, 학술단체, 관계기관 등과 힘을 합쳐 싸워나갈 것을 다짐한다. 그리하여 최근 우리 덕성여자대학교에 씌워진 ‘동토의 왕국’이니 ‘동물농장’이니 하는 치욕적인 오명을 반드시 씻어내고, 명실상부한 연구와 교육의 전당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을 천명한다.

1997.6



(사진 7) 현금 학내 사태에 대한 우리의 견해 [백서 2, 31쪽]

   14명의 교수들은 성명서를 발표한 직후 [덕성여대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교수 비대위)를 구성하고 그 사실을 동료 교수들에게 알리고 동참을 호소하였다.

저희들은 지난 3월 초 인문대학 사학과 한상권 교수님이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형언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 충격은 이내 극도의 비통함으로 바뀌었고 또 한없는 무력감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그런 암담한 분위기 속에서도 물밑에서 암중모색을 거듭해왔고, 마침내 교수직을 내걸고 지난 5일 한상권 교수의 복직과 박원국 이사장의 퇴진을 위한 서명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날 저녁 기 서명자 13명의 명단을 발표한 이후, 지난 6일 현재까지 서명에 동참한 14명의 교수들이 지난 7일 모임을 갖고 ‘덕성여대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였습니다.

덕성여대 교수들의 양심선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위 성명서(우리의 견해)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교수들이 ‘박원국 이사장 즉각 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하였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해직을 각오하고 양심선언을 한 교수가 열 명이 넘는다는 사실이다. 먼저 박원국 이사장 퇴진 주장이 지니는 의미부터 살펴보자.

  교수들이 이사장 퇴진을 공개적으로 주장한 것은 덕성여대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박원국 이사장은 1977년 학교법인 덕성학원 5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래 20년 동안 교수들의 저항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1990년 교수해직사태에서도 이사장 퇴진 구호는 나오지 않았다.

  당시 평교수협의회(평협)는 교수해직의 책임을 인사위원과 총장에게 돌렸다. 평협은 “교수의 양식을 버리고 이번 재임용탈락조치를 주도한 인사위원은 즉각 교수직을 사퇴하라.” “이번 재임용 탈락조치를 묵인 방조한 총장직무 대리는 즉각 사임하라.”고 하여, 실무책임자들에게는 교수직 사퇴, 총장직 사임 등 강도 높은 요구를 하면서도, 정작 실질적․ 법률적 최고․최종 책임자인 이사장에게는 “재단 이사장은 즉각 사태수습에 나서 덕성학원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라.”고 하여, 해직사태를 야기한 책임을 문책하는 것이 아니라 사태해결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하였다.

  이후 평협은 철야농성에 돌입하면서도, 재임용 탈락을 주도한 인사위원장 즉각 교수직 사퇴, 지극히 불량한 근무평점을 주어 재임용 탈락에 동조한 교직과장 즉각 교수직을 사퇴를 요구한 반면, 이사장에 대해서는 해직교수에 대해 즉각적인 복직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할 뿐 역시 책임을 묻지 않았다.

  57일간의 처절한 철야농성을 마무리하면서도 “학교당국과 여러 차례 진지한 대화를 나눈 결과 우리는 복직문제가 원만하게 타결되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학교 당국이 조속한 복직을 위하여 적극 노력하리라 믿으며…”라고 하여, 아무런 객관적 보장도 받지 못한 채 주관적 확신만 가지고 서둘러 투쟁을 종결하였다.

  이는 지도부의 뼈아픈 실책이었다. 1990년 임시국회에서 민자당이 날치기로 통과시킨 개악된 사립학교법은 재단에게 총장 이하 전 교직원의 임면권을 부여함으로써, 재단은 교직원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따라서 교수해직의 실질적․법률적 책임은 이사장에게 있는 것이다. 해직사태를 야기한 최고․최종 책임자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묻지 않고 조정자로서 예우를 해준 까닭에 90년 투쟁은 승리할 수 없었다.

철야농성을 포함하여 78일간의 장기간 항의농성을 한 처절했던 ’90년 민주화 투쟁이 이사장의 약속 불이행에 의해 실패로 끝난 이후 평협 교수들은 온갖 종류의 교권 침해와 인간적 수모를 겪으면서 굴욕스러운 학교생활을 해야만 했다.

‘90년 민주화투쟁 좌절 이후 덕성에서는 이사장에 대한 공포가 내면화되었다. 이사장의 지시에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이사장은 성역이었다. 적어도 덕성여대에서만큼은 이사장은 살아 있는 신이었다. 이름을 부르는 것만도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피뢰침(박소정)이 인터넷에 올린 “감히 이사장님의 이름을 거명하다니!!??”라는 글이 이를 잘 말해준다.

학교측은 지난 토요일(5.31), 임시연구실 철거에 뒤이어 ‘덕성여대 박원국 이사장은 즉각 사퇴하고 한상권 교수 재임용탈락 처분을 철회하라!’는 글귀로 행정동 앞에 붙인 현수막을 무단 철거하는 비상식적 처사를 자행하였습니다. 임시연구실 철거와 현수막 절단에 대한 학교 측의 공개 사과를 듣기 위해 오후 1시경 학생대표 2인이 학생처장을 만났습니다. 임시연구실을 철거한 사실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일하는 사람들이 청소를 한 것 같다’며 발뺌을 하였고, 당일(6.2) 아침에 절취해간 현수막은 “감히 학교설립자분의 이름을 함부로 거명했기 때문이었다.”며 학교가 개인재산이라는 저열한 인식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드러내었습니다.

‘97년 덕성학원 민주화투쟁은 ’90년 투쟁의 과오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서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이사장 퇴진을 전면에 내걸고 투쟁에 돌입 할 수 있었다. 마침내 민주세력의 창끝이 이사장의 심장을 겨눈 것이다. 침묵과 굴종으로 점철된 ‘동토의 왕국’에서 제왕처럼 군림해온 박원국 이사장은 절대 절명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사장 퇴진을 주장하는 교수 성명서가 발표되자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학교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6월 7일 총장 이하 전․현직 교학부장 이상의 보직자로 구성된 대책위원 일동 명의로「13명 교수들의 선동적 성명서 발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교수들이 즉각적인 이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운영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며 교수들의 본분을 망각한,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상식 이하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교수들의 이사장 퇴진 요구를 경영권 탈취를 위한 체제전복 기도로 몰아 부치고 있었다. 그래도 성이 안찼는지 6월 10일 학교법인 덕성학원 이름으로 [허위사실날조, 선동 행위에 대하여]라는 성명서를 또 다시 발표하였다. 13명의 교수들이 한상권 전 교수의 즉각 복직, 박원국 이사장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허위사실을 날조하여 대학 구성원을 선동하는 문건을 배포한데 대하여 재단으로서는 분노와 경악을 금할 수 없다는 것이 성명서를 발표하게 된 이유였다.

  오늘의 덕성학원과 덕성여자대학교를 만들기까지 가정이나 사생활도 없이 한평생을 불철주야 학교를 위해 노력해온 그의 공로를 찬양하고 대학발전에 동참하지는 못할망정 이사장을 중상모략하고 급기야는 퇴진을 요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박원국 이사장 퇴진 주장은 이사장을 중상 모략하여 대학과 재단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선동적인 행위라며, 성명서 말미에 “대학의 교수 이전에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그 조직에 불만이 있다면 대표의 퇴진을 요구하기 보다는 조직을 떠나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고 충고하였다. 이사장의 애정 어린 보살핌과 자상한 지도에 힘입어 덕성여대는 꾸준히 발전하고 있으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것이다.

6. 저도 양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6월 5일 발표된 서명교수들의 양심선언에서 또 하나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이사장 퇴진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교수들이 두 자리 숫자나 된다는 사실이다. 덕성여대에서 이사장 퇴진을 주장하는 것은 해직을 의미하였다. 이 점을 서명교수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교수님들께 드리는 호소문」에서 “마침내 교수직을 내걸고 한상권 교수의 복직과 박원국 이사장의 퇴진을 위한 서명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라고 쓴 것이다.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교수가 열 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이사장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인 이사장은 나를 해직시키기 몇 달 전부터 도상훈련에 돌입하였다.

  제일 먼저 한 교수를 해직시키면 몇 명의 교수가 저항할 것인가 하는 점을 점검하였다. ‘90년 교수해직사태에서 20여 명의 교수가 똘똘 뭉쳐 저항하는 데 홍역을 치룬 탓에 이 점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저항을 한다면 시국선언을 한 교수들이 할 것이다. ’86-‘87년 덕성여대에서 세 차례 시국선언이 있었다. 세 차례 모두 참여한 교수가 여덟 명이다. 이들을 핵심 저항세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세 명은 다른 대학으로 이직하였고, 한 명은 전향하여 해직모의에 동참하고 있으며, 한 명은 곧 해직될 것이다. 남은 교수는 세 명뿐이다. 평협은 ’93년 3월 자진해산 하였고, 한때 평협 활동을 하였던 대부분의 교수들은 전향하였으므로 위협세력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90년 이후로는 교수 공채를 하면서 실력보다는 철저히 집안과 성분 위주로 뽑았기에 이후 들어온 교수들이 저항할 리 만무하다. 이사장은 한 교수를 해직시킨다 할지라도 교수 저항이 일어나지 못할 것이며, 설사 일어난다 할지라도 저항세력은 많아야 대 여섯 명 정도라고 보았다. 이 정도라면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두 번째는 사학과 김용자 교수가 행동으로 나설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김용자 교수의 움직임이 중요한 까닭은 사학과 학생들의 동요 여부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었다. 사학과 교수 가운데 한 명은 해직모의를 함께 하였으므로 학생들 반발이 일어나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막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태가 벌어질 경우 김용자 교수가 맞대응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사장은 김용자 교수가 강직하지만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이므로 속으로야 반발하겠지만 행동으로까지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실제로 김용자 교수는 6월 5일 교수서명이 있기 전까지 사학과 학생들이 찾아와도 피하고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김용자 교수는 교수직과 양심 사이에서 심한 정신적인 갈등을 일으켜 대상포진까지 걸렸다. 이 병은 6월 5일 서명을 한 이후로 가라앉았다. 김용자 교수로부터 당시 심경을 직접 들어보자.


1997년 3월 2일 출근준비를 하던 중 자신의 재임용 탈락 통지를 받았다는 한 교수의 전화를 받고 학교에 가서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한 교수 소식을 들었느냐고 물었다. “며칠 전 연수회에서 방학 잘 보냈느냐고 한 선생님이 여러 교수들에게 인사하는 것 듣고 우리가 그랬어요. ‘어머 저 선생님 자기가 재임용에서 탈락된 지 모르시나봐’ 했어요.” 인사위원회에 참석했던 어떤 교수가 하는 말이다.
학기 초는 매우 암담하였다.

4월 중순 사학과 학생들의 비상총회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마음만 끓였다.

5월 말 경 한 교수가 출근투쟁을 시작하자 나의 갈등은 더욱 커졌다. 인문사회관 로비에 학생들이 마련해준 임시연구실에서 한교수가 다른 교수들과 모여 이야기 할 때 나는 그 곳을 피해 다니다시피 하였다.  

사학과 교수가 세 명이고 그 중 하나가 다른 하나의 재임용 탈락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상황인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내가 가만히 있을 경우 한 젊은 학자를 죽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6월 초 ‘한상권 교수의 복직과 박원국 이사장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서명에 참여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주저 없이 그런 모임을 만들어주어 고맙다고 하면서 찬성하였다.

성명서를 준비하기 위해서 우이동 골짜기음식점에 모여 의논할 때 나는 박원국 이사장의 이름을 거론하는 데 주저하여 반대하였으나 다른 교수들이 그렇게 가야만한다고 주장하여 동의하였다. 덕성여대에서 십 여 년 근무하면서 그 만큼 자기 검열이 커진 탓이리라.  


  이상 두 가지 점에 미루어볼 때, 이사장은 한 교수를 재임용탈락 시킨다 할지라도 저항을 쉽게 제압할 수 있다고 보고 해직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이사장은 외부 변수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 점이 이사장이 판단착오를 일으킨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즉 이사장은 한국사를 전공하는 한상권 교수를 해직시키면 국사학계가 조직적으로 반발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한국역사연구회와 같은 연구자 대중조직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도 없었다.

  덕성여대에서 ‘90년과 ’95년 두 차례 해직이 있었지만 학계의 아무런 저항이 없었으므로 이사장이 국사학계의 반발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내가 해직된 ‘97년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후로도 학계가 해직교수 복직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사례는 없다. 해직교수를 위해 학계가 나서는 일은 전무후무한 일이므로 이사장이 이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내부 저항에 관한 상황분석이 정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사장의 예상이 하나는 맞았고 하나는 틀렸다. 사학과 김용자 교수가 행동으로까지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맞은 반면, 학내 저항세력이 아무리 많아도 한 자리 숫자 이내일 것이라는 판단은 틀렸다.

  해직을 무릅쓰고 저항하는 교수가 14명이나 된다는 보고에 이사장은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도저히 덕성여대에서 있을 수 없는 수치였다. 누군가가 이름을 도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무처장으로 하여금 평소 성향으로 볼 때 도저히 민주화운동에 가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이름이 도용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교무처장이 전해주는 뜻밖의 답변에 이사장은 또 다시 충격 받았다.

저도 교무처장님과 마찬가지로 천주교 신자입니다. 양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한상권 교수 복직에 전국에서 2,500여명의 교수가 서명했는데, 정작 덕성여대 교수로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는 데 신자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학회에 나가보니, 다른 대학 교수들이 ‘우리도 서명했는데 덕성여대 교수들은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는 핀잔소리를 듣고, 얼굴이 화끈 거려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나는 천주교신자로서 양심을 걸고 서명을 했습니다.

이사장은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항의 움직임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내부저항의 진원지는 두 곳이었다. 하나는 김용래 총장이었다. 김용래 총장은 학교 측이 발표한 6월 5일과 7일자 성명서에 모두 서명했다. 외부적으로 볼 때 김용래 총장은 분명 이사장과 같은 운명의 배를 타고 있었다. 그런데 김용래 총장은 교수 13명이 발표한 성명서에도 등장한다.

이상에서 진술된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우리 교수들은 총장님 이하 전 교수들 교직원들 학생들 그리고 덕성 동문들과 연대하고, 민주적 사회단체, 학술단체, 관계기관 등과 힘을 합쳐 싸워나갈 것을 다짐한다.

  위 내용에 학교는 발끈하였다. 7일자 성명서에서 다음과 같이 반박하였다.

우리는 이들 교수들이 마치「총장님 이하 전 교수들 교직원들 학생들 그리고 덕성 동문」이 연대한 것처럼 고의적으로 선동하고 있는 것에 대해 엄중하게 항의한다. 총장님 이하 전․현직 교학부장 이상의 보직자로 구성된 우리 대책위원 일동은 더 이상 소수의 의견을 다수의 의견으로 왜곡시키지 말기를 촉구한다.

  김용래 총장이 이중플레이를 하는 바람에 서로 총장이 자기편이라고 주장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김용래 총장은 이전부터 몇 몇 교수들을 만나 한 교수 복직운동을 독려하고 있었다. 그리고 6월 5일 교수 양심선언이 있은 후 대학학사행정 전 분야를 근본적‧제도적으로 개혁할 것이며, 한상권 교수 복직문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화답하였다.

총장의 변심에 분노한 이사장은 보직교수들로 하여금 총장퇴진 서명운동을 지시하였다. 한상권 교수의 신규임용을 주장하는 일부 교수들의 서명운동을 촉발하고 선동하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자세한 내용은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참조)

  이후로 박원국 이사장은 덕성사태의 본질은 김용래 총장의 학교 탈취 음모라고 규정지었다. ‘99.9.10에 작성된 ‘덕성학원 사태의 배경과 경과 개요’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이 문건은 박원국 이사장이 법원제출용으로 작성한 초안으로 대외비로 되어 있다).

지난 2년간 야기된 덕성여대 분규는 사학과 조교수 한상권의 재임용탈락을 계기로 정부와 대학의 교육개혁에 신분상 불안을 느낀 일부 교수와 자신의 욕망 달성에 급급한 전 총장 김용래가 야합하여 민주세력임을 가장하고 한총련, 재야정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한 점의 부정도 없이 교육과 재정이 건실한 덕성학원 및 대학의 체제를 타도하고 탈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내부저항의 또 다른 진원지는 상임이사로 있는 동생이었다. 4형제의 맏이인 이사장에게 둘째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어머니(남해 송금선)가 물려준 학교를 형만 20년 동안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권력을 독점하는데 대한 불만이었다. 그러나 둘째는 평소에는 형의 카리스마에 눌려 아무소리 못한 채 상임이사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런 가운데 한상권 교수의 해직이 크게 사회문제로 불거지면서 형이 위기에 몰리자 서서히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한상권 교수 해직은 잘못된 것이며 자신이 이사장이 되면 복직시키겠다는 말을 측근을 통해 교수들에게 흘렸다.

  결론적으로 ‘86년 이후 시국서명을 주도한 민주화운동 세력, 김용래 총장의 영향을 받고 움직인 총장세력(앞서 교무처장의 전화를 받은 교수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 교수는 김용래 총장과 고등학교 동창생이었다.), 상임이사의 영향을 받고 움직인 상임이사세력 등 14명이 한상권 교수 복직이라는 대의명분에 의기투합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 교수는 한상권 교수 복직이야말로  박원국 이사장을 퇴진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명분이라는데도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해직을 각오한 14명 교수의 양심선언으로 교수사회에 균열이 생겼다. 양쪽 어디에도 서지 않아도 되는 중도파 교수들의 공간이 자연스럽게 마련되었다. 이 두 세력이 합하여 ‘97년 10월 1일 교수협의회를 출범시켰다. 교수협의회에 가입한 교수는 모두 42명이었다. 교수협의회는 ‘한상권 교수 복직’ ‘박원국 이사장 퇴진을 내걸고’,  출범한 비대위를 확대하여 새롭게 결성한 대중조직이었다.

7. 소자보 <우리들의 합창>

  14명 교수의 양심선언 직후, 학생들의 지지와 격려 글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학내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서명교수들에 대한 학생들의 존경심을 드러낸 대자보와 소자보가 학내에 무수히 나붙었다. 학생들은 소자보 <우리들의 합창>에 진솔한 생각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  내용 가운데 일부를 소개함으로써 교수들 양심선언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가늠해 볼 수 있도록 한다.


대학이 아름다운 것은 진리가 있고 그 진리를 지키고자 하는 용기가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고등학교 때 항상 아름다운 대학을 꿈꾸며 수능 준비를 했다. 그러나 막상 내가 대학에 들어왔을 때 내가 본 대학은 썰렁한 대학 그 자체였다. 이러한 추운 대학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시려고 노력하는 14분의 교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마치 우리가 만들어 가야하는 것을 교수님들께 떠넘긴 것과 같은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여지까지 데모 한번 해본 적 없고 어찌 보면 ‘아웃사이더’라고 할 만큼 조용히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이번 일만은 나의 힘이 닿는 대로 도울 생각이다. 이것은 나에 관한 그리고 나의 미래에 관한 일이기 때문이다.

97년 3월. 아직은 찬바람에 봄기운이 솔솔 묻어올 때였다. 덕성여대 새내기라는 부푼 가슴을 안고 들어오는 길에 눈에 보이는 대자보에는 소름끼치는 말들만 적혀 있었다. “한상권 교수님 재임용탈락이 왠 말이냐” 처음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시간은 지난 6월. 사태를 파헤치고 나온 결과는 박원국 이사장의 비리.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게시판에, 강의동에, 도서관에, 학관에… 곳곳에 붙는 대자보들을 보며 조금씩 알아갔다.  

소수지만 진정한 용기를 보여주신 교수님을 존경합니다!
안일한 자신의 주변만을 생각하는 교수님들이 아닌 최소한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힘쓰는 교수님들! 당신이 진정한 나의 스승입니다!
당신들이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에 저희들은 결코 당신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자로써 온힘을 다해 힘이 되어드릴 것을 하나님 앞
에 굳게 맹세합니다. 사랑합니다.

교수님께 바치는 글
며칠 전 교수님들께서 만드신 대자보를 보며 교수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학교 측에서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엔 정말로 우리들이 나서야 할 때인 것을 압니다. 학교와 우리들을 위해 나선 교수님들과 함께 승리를 위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일들을 하고자 했어도 그동안은 제대로 되지 못했지만, 이번에 실패한다면 모든 게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실패의 결과를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뒤에서 생각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신 교수님의 용기에 존경을 표합니다. 거대한 불의를 약하고 작은 정의가 이길 수 있음을 우리는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건강하시구요, 담담하게 나가시길 바랍니다. 교수님 존경합니다!

용기있는 14분의 교수님의 행동, 정말 멋있습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민주화를 여기저기서 부르짖고 있는 지금. 왜 덕성에는 재단이사장의 남용과 독재, 비리라는 말들로 덕성의 민주화를 빼앗아 가고 있는 것입니까? 학교가 오로지 재단의 이익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입니까?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어야 하며, 재단은 학교의 발전과 학생의 복지에 뒷바라지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주인의 권리를 찾고 싶습니다.…학생이 원하는 교수님께 즐겁게 수업을 듣고 싶습니다. …덕성의 민주화와 재단 이사장의 퇴진을 바라는 민주 덕성의 한 학우가…

우리는 반드시 이사장을 퇴진시켜야 합니다. 이사장을 학교에 그대로 남아 있게 하는 것은 불씨를 키우는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14분의 교수님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교수님들 대신 질 낮은 어용교수님들께 수업 받고 싶습니까? 반드시 이사장을 퇴진시켜야만 할 것입니다.

여러 교수님들 그리고 교직원님들, 학생 여러분
진실함. 진리, 그런 것들은 많은 다수의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많다고 정의이고 사람이 적다고 불의는 아니지요(→교수님 말씀). 정의는 소수의 사람이라도 신념과 믿음이 있다면 승리합니다. 재임용탈락철회! 학원민주화쟁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