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감히 이사장님의 이름을 거명하다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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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이사장님의 이름을 거명하다니 (1)

한상권(중세사 2분과)

1. 이곳은 여전히 한 교수님 연구실입니다

  내가 출근투쟁을 시작하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학교는 학생지도에 공을 세운 교수를 포상휴가 보낼 줄 정도로 느긋해 있었다. 그러나 여름 방학을 불과 2주일 앞두고 전혀 예상치 못한 출근투쟁이 벌어지자 학교는 퍽이나 당황했다. 방학만 시작되면 모든 골치 아픈 상황이 종료될 것이라는 꿈에 부푼 기대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학교가 제일 크게 부담으로 느낀 점은 풀이 죽었던 학생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사실이었다.  5월 29일(목) 재학생과 졸업생 등 70여 명의 학생들이 ‘학교측의 재임용탈락에 대한 공청회 요구’와 ‘연구실 무단 폐쇄에 대한 공개사과’ 등을 담은 <우리의 요구안>을 들고 행정동으로 항의 방문을 갔다온 후, 그 결과를 인터넷에 올렸다.

속보!!
-“이렇게 모이지 말아라?”-

“한상권 교수님을 돌려달라!”
“기만적인 학사행정 규탄한다!”
여럿이 몰려온데 놀란 학교측의 학생처장과 학생측 대표 3인이 면담을 가졌습니다.
학생처장은 일단, 요구사항을 전달 받고 ‘의논’해서 6월 2일(월)까지 답을 주겠다고 하면서 거듭해서 “이렇게 몰려오지 말아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이름난 안하무인 재단이라도 다수의 단결된 힘은 두려운 가 봅니다.
한상권 교수님의 출근투쟁으로 더욱 많은 학생들이 힘을 얻어 모이고 있으며, 교수님들도 지지방문을 오시고 계십니다.
고지가 멀지 않았습니다.
승리를 위해, 투쟁!!!

학생들 움직임이 날로 활발해지자 학교는 허둥지둥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투쟁의 근거지인 임시연구실을 철거해 우선 발등의 불부터 꺼야 했다. 5월 31일(토) 미명, 학교는 한총련 출범식으로 학내에 있던 학생들이 학교를 빠져나간 틈을 타 출근투쟁 본부인 임시연구실을 철거하고 임시연구실로 꾸민 시설물과 선전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이 치워버렸다.

임시연구실 철거 소식을 듣고 학생들은 비열하고 야만적인 작태라며 분노하였다.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학교에 나와 다시 칸막이를 옮겨 임시연구실을 만들고 대자보에 다음과 같이 써 붙여놓았다.

여기는 한상권 교수님 연구실입니다.
한상권 교수님 출근투쟁이 오늘(31일)로 6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에서는 밤늦게까지 연구실을 지키며, 호시탐탐 연구실 폐쇄를 노리는 학교에 맞섰습니다. 그러나 기어이 오늘(31일) 새벽 학교는 한 교수님 연구실 침탈을 자행하여 선전물을 압수하고 시설물을 파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여전히 한 교수님 연구실이며 사람들은 교수님이 복직되시는 날까지 끝내 싸울 것입니다.

  학생들은 주말도 개의치 않고 학교에 모여 다음 주 월요일부터 불붙을 더욱 강도 높은 투쟁을 위해 준비하였다. 졸업생들은 “덕성여대 70년의 역사는 부당함에 한 치도 타협하지 않는 투쟁과 사회와 끊임없이 호흡하는 실천의 역사였습니다. 그것을 결코 알지 못하는 재단에게 우리는 행동으로 깨우칠 것입니다.”라며, 전의를 북돋았다.

6월 2일 월요일 오후 1시, 학생들이 또다시 행정동으로 몰려가 임시연구실 철거와 현수막 절단에 항의하였다. 계속 이런 식으로 무단으로 철거하는 등 활동을 방해한다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따진 끝에 현수막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2. 나는 왜,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임시연구실 철거가 학생들 자극만 하고 별다른 효과가 없자 학교는 새로운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학교는 출근투쟁이 끼치는 해교행위 즉 학내질서를 문란케 하여 면학분위기를 방해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기로 하였다. 한 교수가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근투쟁을 함으로써 교원으로서 사표가 될 품성과 인격에 현저한 결함이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점을 선전하기로 한 것이다. 출근투쟁을 시작한지 보름 남짓 되는 6월 10일, 학교법인 덕성학원은「허위사실 날조, 선동 행위에 대하여」라는 문건에 다음 내용을 적어 배포하였다.

그는 우리 대학 교수로서의 임기가 만료되어 신분관계가 종료된 이후에도 학내에 무단출입하여 학교시설물을 불법 점거, 공개강의를 하는 등 학생들을 선동하였고, 우리 대학과 무관한 사회단체와 연계하여 시위꾼들을 동원, 대학점거를 시도하며 업무를 방해하였으며, 작금에는 과거의 교수 파벌조직을 움직여 허위사실을 날조 유포하는 문건을 배포, 선동하여 대학 구성원들 간 불신을 조장하고, 조직을 분열시켜 대학을 파괴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사실이 그의 비 교육자적 인격적 품성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덕성학원은 내가 교육자로서 부적격한 품성을 지녔다는 증거로 공개강의를 통한 학생선동, 시위꾼을 동원한 대학점거 시도, 교수들을 동원한 허위사실 날조 유포 등 세 가지를 적시하였다. 이들 내용이 지니는 의미를 알려면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덕성학원이 지적한 공개강의를 통한 학생선동이란, 1997년 6월 3일과 4일 학생회관 로비에서 재임용제도에 관해 발언한 것을 말한다. 이 공개강연 자리는 재학생대책위(한<ㅎㆍㄴ>사람들)가 인문대학생회에 요청하여 마련되었다.

  인문대학생회는 “그동안 교수님이 출근 투쟁을 벌여오면서 많은 이들의 지지와 격려가 빗발치면서, 이참에 선생님의 강의 한번 들어 보자는 문의가 많았기에 강연회 자리를 마련하였다”고 학생들에게 선전하였다.


(사진 1) 그것이 알고 싶다. 한상권 교수님께 직접 듣는 재임용제도! [백서 2, 327쪽]

  그러나 내가 출근투쟁을 하면서 ‘지지와 격려가 빗발쳤다’는 인문대학생회의 주장은 조금은 과장된 것이었다.

출근투쟁을 하였다 할지라도 학교가 크게 바뀐 것은 없었다. “한 교수가 출근투쟁을 한다고 학교 분위기가 극적으로 반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대책위 판단이 맞았다. 인문사회관 로비에 마련된 임시연구실을 지키면서 방명록에 쓴 한 학생의 글이 이를 잘 말해준다.

처음 선생님이 출근투쟁을  전개하신 순간부터는
무척 든든하고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가뿐함이 있었는데
날이 갈수록 선생님을 뵙는 게 왜 그리 죄스러운지
이제 겨우 사흘째인데
자꾸 약한 소리만 하는 것 같아 그게 정말
싫은 거지요
아이들 사정이 이러하고, 학생회 사정이
이러하다는 이야기들이 다 궁색한 변명 같고,
그러지 말아야지. 그러지 말아야지.
그렇게 다짐하고 다짐합니다.

4월 19일 사학과 비상총회에서의 수업거부․ 시험거부․ 복직투쟁 부결 위력은 대단했다. 그날 이후로 한국사강의는 차질 없이 잘 진행되고 있었다. 나의 출근투쟁으로 복직투쟁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활기를 되찾았지만 그 수는 많아야 2-30명으로 사학과에서 여전히 소수였다. 복직투쟁에 반대표를 던진 학생들은 나를 슬슬 피하고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심지어 복직투쟁에 동참하는 학생들을 고자질하고 해 꼬지까지 했다.

  문제는 그 학생들이 내가 해직되기 전에는 나를 따르고 귀여움을 독차지했다는 데 있다. 한국사강독처럼 따분한 수업일지라도 꼬박꼬박 예습해오고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들었으며 발표도 도맡아 했다. 수업이 끝나면 강의실 밖까지 좇아 나와 질문을 해서 내가 유달리 귀여워했던 학생들이었다. A학점을 독차지했음은 물론이다.

  그 학생들은 공부를 잘한다는 점을 이용해 학과 여론을 주도했다. 공부를 잘하는 만큼 말솜씨도 좋고 영향력도 컸다. 그 학생들은 복직투쟁에 동참하지 않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갖가지 궤변을 늘어놓아 다른 학생들을 헷갈리게 했다. 인문대학생회는 이처럼 열악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공개강연회를 마련한 것이었다. 즉 사학과가 분열되고 복직투쟁에 동참한 학생들이 소수로 몰려 힘을 못 쓰게 되자, 타과에서 학생들을 보충해 투쟁대오를 건설하고자 마련한 자리였다.

6월 3일 인문대와 사회대, 4일 자연대와 예대, 약대, 동아리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생회관 로비에서 두 차례 공개강연을 하였다. 강연회 장에 모인 학생은 약 40명이었으며 대부분 사학과 학생들이었다(이들 40명이 나의 복직투쟁을 승리로 이끈 핵심세력이었다). 강연 제목은 ‘나는 왜,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였다. 출근투쟁을 시작한 직후라 덕성여대 교수들, 재학생과 사학과 졸업생, 그리고 한역연, 학단협, 민교협, 부추련(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 등에서 연일 지지 방문 오고 한겨레, 교수신문 기자들이 취재차 농성장에 들렸기에 농성장은 북적거렸다.

  강연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므로 즉흥적으로 연설할 수밖에 없었다. 남겨진 메모조차 없기에 지금 와서 무슨 발언을 했는지 기억이 날 리 만무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당시 발언 내용을 복원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 사정은 이러하다.

나의 복직논의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인 1998년 8월 17일, 교양학부 여교수(그 교수는 1997년 11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을 대량으로 복사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추적60분’ 참조)가 나를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에 고발하였다. 1997년 2월 28일자로 재임용탈락된 사학과 한상권 교수가 출근투쟁을 전개하여 건조물 무단칩입, 불법강의 및 학생선동으로 교내질서를 어지럽힌다는 것이 고발요지였다.

  당시에는 이미 1년 이상에 걸친 학내 민주화 및 복직투쟁이 마무리면서 1998년 6월 10일 덕성여대 교원인사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한상권교수 복직제청이 동의되었고 다음날인 11일에는 이강혁 총장이 법인 이사회에 한교수의 특별 채용을 위한 복직제청을 한 이후여서 학내분규는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고 평온을 되찾은 상황이었다. 이러한 국면에서 나를 고발할 책임적 위치에 있지 않은 교양학부 여교수가 검찰에 고발장을 접수시킨 것이다. 이해 10월 15일 작성된 진술조서에는 다음 내용이 있다.


문 : 진술인은 재단의 위임을 받아 한상권을 고발한 것인가요
답 : 아닙니다. 재단하고는 상관없이 제 개인적으로 고발을 하였습니다.

문 : 진술인은 대학재단측도 아닌데 같은 교수의 입장에서 한상권을 고발한 이유는 무엇인가 요
답 : 예 저는 교수의 본분은 연구를 하면서 학생들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한상권 교수는 자기의 정치적 야심을 위하여 학생과 언론, 재야단체 등을 끌어 들여 현재 많은 학생과 교수, 재단 등이 막대한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같은 교수의 입장에서 한상권 교수를 고발한 것입니다.

문 : 특별히 할 말은 있는가요
답 : 철저히 조사하여 법과 질서를 어기는 사람은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검사가 고발내용에 대한 입증자료를 요청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예 입증자료는 97.6.3과 6.4 한상권이가 학생회관 복도를 무단 점거하고 학생 약 40명을 모아놓고 공개강의를 강행하였는데 당시 한상권이가 행한 발언 등을 대학 학생처 학생과에서 일일보고서를 작성하였는데 그 일일보고서를 제출하겠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학교에서 작성한 일일보고서가 어떻게 평교수인 그의 손에 들어갔는지, 이 점은 검사가 묻지 않아 알 수 없다. 그러나 학생처장이 자료 유출에 관해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발뺌하는 점으로 보아 자료가 불법으로 유출된 것만은 분명하다. 여교수가 학생과에서 작성하였다며 제출한 일일보고서에는 나의 하루 동정이 빽빽이 적혀있고, 말미에 “상기 내용은 한 교수 강연 및 질의응답 내용을 발췌한 것이며, 요약 내용 중 「   」부분은 본인이 발언한 그대로를 발췌한 것입니다.”라는 부기가 있다.


(사진 2-1) 일일보고서


(사진 2-2) 일일보고서

  교양학부 여교수가 나를 고발해준 덕분에 이제 와서 당시 상황을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어제의 불행에 오늘의 행운이 잉태되어 있었다. 학생과에서 비밀리에 염탐하여 작성 보고한 사찰문건에는 나의 강연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6월 3일(화)
○한상권 전 교수 강연회
○일시: 6/3(화) 15:05-16:00
○장소: 학생회관 로비
○인원: 약 40명
15:05-15:10 :고려대 김준호 교수 인사
15:10-15:30: 한상권 전 교수 강연
15:30-16:00 :질의 응답
○내용
재임용탈락한 사유와 금번 투쟁에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교수로서의 권리회복과 사랑하는 학생들에 대한 보답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학교 측에서는 재임용을 탈락시킨 사유로 ‘개전의 정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개전의 정을 가질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

「덕성여대를 나가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고 덕성여대 재단 이사장 박원국이다」

자신이 재임용탈락된 후 지금까지 한 일을 소개
4개 단체에서 1,938명이 재임용제도 개선을 위해 청원하여 2개월 만에 재임용제도가 문제가 있어 바꿀 것이라는 결과가 있었다. 제도의 개혁은 이루어졌으므로 이번에는 나의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학교에 들어왔다.(5월 26일부터 학교에 출근하기 시작하였음)

나의 목적은 교육의 주체인 교수와 학생이 힘을 합쳐 부당한 제도를 타파하는 것이다. 가증스럽게도 학교 측은 출근 둘째 날 열쇠를 바꾸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재단이 아무리 나를 내 쫒아도 반드시 학교로 돌아오고 말 것이다」
학생들이 임시연구실을 인문사회관 로비에 만들어 주었으나 오늘 총무과에서 와서 교육적으로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철수해 달라고 하여 철수하기로 하였다.
「이제(내일)부터는 이사장실로 가서 이사장과 만나서 이야기를 할 테니 나를 만나기를 원하는 학생은 이사장실로 와라」

‘95년에 부정부패추방연합에서 이사장을 고소했을 때 이사장은 재임용 제도를 무능한 교수는 내보내고 유능한 교수를 들이기 위한 제도라고 답변했다. 그래서 나는 공청회를 개최해서 내가 무능함을 입증해주면 학교 측의 뜻대로 학교를 나가겠다. 싸우는 목적은 교육권의 확보이니(학생들은 학습권, 교수는 교권) 「학생 여러분은 나 한상권을 위해 싸우지 말고(자신을 희생하지 말고) 학습권을 얻기 위해 싸워라」

질의응답 중 앞으로 투쟁방향은?
1) 민교협 교수들이 본교에 와서 강의를 개최할 것이다.
2) 19개의 학술단체들이 6월 5일부터 윤번제로 학교에 와서 항의할 것이다.
3) 나는 이사장실로 가서 이사장을 만날 것이다.


6월 4일(수) 공개강연회는 전날과 달리 10분 만에 끝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학생과에서 작성한 사찰문건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한상권 전 교수 눈물을 흘리다)
애정을 갖고 자신이 인격체로 서기 위해서 학생들이 이 자리에 왔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저의 분신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학원민주화를 위해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승리로 이끌어 갈 것을 확신한다.」
「이 문제의 범인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이사장이다」
「오늘 이사장 실에 전화를 했더니 없었다. 그래서 내일 다시 전화를 하겠다는 메모를 남겨 놓았다」
「나를 재임용탈락 시킨 이사장을 이사장직에서 재임용탈락 시키고자 나는 이 자리에 왔다」



3. 너희가 폭력으로 맞선다면, 우리는 단결로 싸울 것이다!!

덕성학원이 내가 교육자로서 부적격한 품성을 지녔다는 증거로써 내건 두 번째 사유는 대학과 무관한 사회단체와 연계하여 시위꾼들을 동원, 대학점거를 시도하며 업무를 방해하였다는 것이다. 시위꾼을 동원한 대학점거란 한역연, 학단협, 민교협, 부추련 등에서 농성장 지지 방문을 하고 학교 앞에서 집회 개최한 것을 말한다.

  6.2(월) 오전 9시, 지난 주 토요일 임시연구실이 학교당국에 의해 철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역연 회원들이 속속 덕성여대로 모여들었다. 5.31 오후 한역연(okh1988)에서 이 사실을 속보로 인터넷에 올리고 덕성여대로 모여 줄 것을 호소하였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한국역사연구회입니다.
방금 덕성여대에서 출근투쟁/농성(?)중이신 한상권 선생님과 대책위에서 들어온 속
보를 알려드립니다.
덕성여대는 한상권 선생님의 출근투쟁을 저지하기 위해 연구실을 폐쇄한 바 있는
데, 어제(5.30) 밤부터 임시연구실로 삼아 출근/농성중인 인문관 로비를 물리력을 동원해
해산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플래카드 등 일부물품을 탈취하였고, 현재 지지방문 중
인 학단협 민교협 한역연 선생님들을 몰아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육탄
방어를 하면서 현장을 지키려고 하지만. 물리력을 동원한 덕성여대측의 파렴치한 탄
압에 직면해 있습니다.

학단협 회원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보신 여러분…
6월 2일(월요일) 아침 9시에 덕성여대 정문 앞으로 모여주십시오.
현장을 지키시는 선생님들께서는 힘닿는 데까지 싸워나가겠지만, 월요일 아침에는
대대적인 항의시위를 벌여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관심과 동참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6월 2일 아침, [덕성여대한상권교수재임용탈락처분철회및교수재임용제개선추진위원회](개선추진위)소속 한역연 회원들이「덕성여대 박원국 이사장은 즉각 사퇴하라」는 성명서를 지참하고 덕성여대 총장과 이사장을 면담하기 위해 학교를 방문하였다.


(사진 3) 97.6.2 덕성여대를 방문한 한역원 회원들(휴게실 로비에서 한상권, 이세영)


(사진 4) 97.6.2 덕성여대를 방문한 한역원 회원들(인사관 입구에서 이영호,박진태,오영선,오수창


(사진 5) 97.6.2 덕성여대를 방문한 한역원 회원들(면담을 위해 행정동으로 가는 모습 – 한상권, 오영선, 배경식, 박진태, 이영호, 오수창)


(사진 6) 97.6.2 덕성여대를 방문한 한역원 회원들(행정동 앞에서 한상권, 오수창, 배경식, 이영호, 오영선)

이 성명서는 지금까지 발표된 것과는 제목부터가 달랐다. 지금까지 발표된 성명서가 한상권 교수 복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반면, 이 성명서는 ‘박원국 이사장 즉각 사퇴’를 제목으로 뽑았다. 논조도 사뭇 달랐다.

우리는 아직도 박원국 이사장 같은 자들에 의해 대학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말할 수 없는 분노와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러한 학교에서 연구하고 강의하는 교수들, 노예처럼 또 기관원처럼 부림을 당하고 있는 직원들, 그리고 학습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연민의 정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한상권 교수 재임용 탈락 처분은 단순히 한상권 교수의 복직 차원을 넘어 덕성여대를 정상화 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로 전환되고 있다. 우리 2,500여 전국 대학의 교수들과 연구자들은 지난 3월 초부터 한상권 교수 재임용 탈락 처분 철회를 촉구해왔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요구를 묵살해 온 박원국 이사장이 대학을 운영할 자격이 없는 자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개선추진위 성명서는 교수의 교육권․ 학생의 학습권․ 직원의 노동권 등 구성원의 기본권 을 유린하는 박원국 이사장이 교육자로서 자격이 없음을 선언하였다. 이어 “이제 한상권 교수 재임용 탈락 처분은 단순히 한상권 교수의 복직 차원을 넘어 덕성여대를 정상화 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로 전환되고 있다.”고 하여, 덕성투쟁이 단순히 해직교수 복직이 아닌 학원민주화 실현에 있음을 천명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이사장 퇴진이 불가피하다고 결론지었다. 개선추진위가 이사장 퇴진의 물꼬를 튼 것이다. 출근투쟁을 고비로 투쟁목표가 이사장 퇴진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이는 폭압적인 이사장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덕성 구성원들과의 연대를 염두에 둔 선언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한상권 교수가 다시 당당하게 교단에 설 때 까지, 덕성여대가 진정으로 교수들을 존중하고 학생들을 교육하는 참다운 교육기관으로 거듭날 때 까지, 그리고 박원국 이사장이 물러날 때까지! 덕성여대 학생들과 교수들, 덕성여대의 정상화를 바라는 모든 대학인들, 그리고 모든 민주교육관련단체들과 연대하여 싸울 것을 다짐하면서 다시 한 번 우리의 요구를 천명한다.

6월 5일(목)은 공청회를 열기로 한 날이었다. 학생들이 공청회를 학교측에 요청한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5월 29일(목)  [한상권 교수님재임용탈락처분철회를위한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중심이 되어 공청회 개최를 요구하는 <우리의 요구안>을 들고 행정동으로 항의 항문하였다.

이 문건에는 “우리는 한상권 교수님 재임용 탈락조치에 대한 인사위원회의 심사 기준과 학교측의 입장에 심히 의문을 느끼는 바, 만약 학교당국이 이에 대해 당당하다면 덕성 오천 학우와 교수님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개된 자리에서 공청회를 가질 것을 요구하는 바입니다.”라며, “만일 위와 같은 과정을 이행하지 않거나 불성실한 태도로 나온다면, 우리는 오천 덕성학우를 중심으로 물리적인 실력행사도 불사할 것입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70여 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몰려오자 화들짝 놀란 학생처장은 일단 요구사항을 전달 받은 후 의논해서 다음 주 월(6.2)까지 답변을 주겠다며 학생들을 돌려보냈다.

  6월 2일 오후 1시 학생대표 2인이 공청회 요구에 대한 학교측 답변을 듣기 위해 학생처장을 만났다. 학생처장은 공청회에 관해 교무위원회에 올렸으나 “비대위가 어떤 조직이며 어떤 위상 및 구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고려할 수 있다”고 하며, 오히려 비대위의 조직 구성표 및 명단 제출을 요구하였다. 이에 학생들이 “한상권 교수님 재임용 탈락 문제에 대한 공청회에 비대위 명단이 왜 필요하냐”고 따지자, “학생들의 활동을 지도하는 것이 학교의 의무”라고 응수했다.

  학교가 끝내 공청회에 응하지 않자 학교 측의 무성의한 태도에 분노한 학생들이 5일(목) 오후 2시 행정동 앞에서 규탄집회를 가졌다. 학교 측이 전원을 차단하여 마이크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 이날 집회는 교문 앞에서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부추련 회원 등 50여 명이 공청회에 참석하고자 학내로 들어오는 것을 교수 및 직원 30여 명이 제지하자, 학생 60여명이 가세하여 실랑이와 몸싸움을 벌인 것이다. 비대위는 이날 집회 상황을 다음과 같이 인터넷에 올렸다.


너희가 폭력으로 맞선다면, 우리는 단결로 싸울 것이다!!

6월5일 목요일 2시경, 사학과 한상권 교수님 재임용탈락 철회와 학내민주화를 위한 공청회를 학교측에 요구하며 재단전입금 유용 및 비리에 관련하여 항의 차 방문한 ‘부정부패추방 시민연합’, 한국역사연구회 등 여러 교수님들과 함께, 학교를 방문하려 하였으나, 학교측은 교직원은 물론 교수들까지 동원하여 교문을 닫아걸고, 몸으로 막고 저지하였습니다.

이에 항의하며 들어오려 하자, 폭력을 행사하며 몸싸움을 일으키며 우리대학이 재단의 사유지라는, 참으로 한심한 주장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심지어 한 졸업생에게는 “덕성여대 사학과 졸업한 게 그렇게도 자랑스럽냐?”는 폭언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한 시간여에 걸친 몸싸움 끝에 그러나 200 여명의 재학생, 졸업생, 교수님 그리고 시민단체 모두가 결합하여 행정동 앞에서 집회를 벌여내며 더욱 단결된 힘으로 맞섰습니다.(교직원들은 집회 내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음. 형사처럼 보이는 정체불명의 남자는 “학생회는 불법단체”운운하며 위협?을 가하기도 하였음)

다음 주부터는 더욱 힘찬 투쟁으로 우리의 요구를 관철해나갈 것입니다. 또한 같은 날 현재 덕성여대에 재직하시는 교수님들이 한상권 교수님의 즉각적 복직과 박원국 재단이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우리들의 투쟁의 정당성은 더욱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 되고 있습니다.

5천 학우, 교수님, 모든 덕성인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학생과에서 작성한 사찰보고서에는 내가 이날 집회에서 발언한 내용이 적혀 있다.

전 한상권 교수는 “나를 따르는 사람이 10명만 있어도 나는 승리한다. 그런데 지금 보니 120여 명이 모였다. 교육의 주체를 쟁취하고 완성화 시키기 위해서 이 싸움은 대학 민주화를 위한 기틀이 반드시 될 것이다”라고 함

학교는 학생들이 규탄집회에 가세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교수들을 총동원하였다. 이날 집회 현장에는 교양학부 소속 동문교수들이 많이 나왔는데, 이들은 학생들로부터 심한 야유와 질타를 들어야만 했다.

학생을 막고 서계시는 교수님들…!
지금 무엇을 막기 위해 나오셨습니까? 학생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으십니까? 막으러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학원의 주인은 학생․교수․교직원입니다. 주인 된 권리를 찾으러 나온 학생들이 잘못되었다 라고는 말하실 수 없을 겁니다. 부디, 교수님도 주인 된 권리를 찾으십시오. 그리고 학원의 민주화를 막지 마십시오. 같이 투쟁합시다. 그러지  못하신다면 학생들의 올바른 행동을 막지 마십시오. 부탁입니다. 그러나 다음엔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또한 뒷날 나를 주거침입죄로 고발하는 교양학부 여교수도 나왔는데, 그 역시 후배로부터 뼈아픈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000 선배님! 제발 부탁입니다.
후배들 앞에서의 그 눈물이…제발 거짓과 위선의 그것이 아니길 빕니다. 이사장 및 학교당국의 하수인 노릇은 이제 그만 두십시오. 보기에 참으로 역겹고 부끄럽습니다.-후배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