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논문 -「’조헌상(趙憲像)’의 변화를 통해 본 조선후기 시대정신의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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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논문

 

‘조헌상(趙憲像)’의 변화를 통해 본 조선후기 시대정신의 추이

(『역사와현실』93, 2014 )

 

김성희(중세2분과)

 

 

   옛글을 들추어 보니 북경으로 가는 연도에서 이루어진 가족들의 애틋한 재회, 그 끝에 찾아온 이별의 소회를 담아 놓은 시 한 구절이 눈에 들었다.

 

먼 길에 편지마저 왕래가 끊겼다가
다행히 외숙을 길에서 만났네
동문에서 발돋움하여 오래도록 뒷모습을 바라보다
갓머리 사라져도 돌아오기 아쉬워 저 산만 바라보네

– 조헌, 조천일기, 1574년 6월 5일자 일기에서 발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쉽게 지나칠 성 싶은 짤막한 시이건만, 담담한 어조로 쓰인 글귀에서 쉬이 눈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은 그 안에 담긴 슬픔이 묘하게 가슴을 울렸기 때문이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도끼를 지고 상경하여 직소를 불사하던, 맨몸으로 왜적의 총칼을 받아내던 조헌(趙憲, 1544~1592)의 초인적 표상과는 왠지 잘 부합되지 않는 그의 인간적 면모가 깊은 인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림 1] 동아시아비교문화연구회에서 국역한 조천일기 ⓒ 서해문집

   조헌의 1574년 사행기록인 『조천일기』를 만나기 전에도 (필자는 2011년 즈음부터 중세2분과 김창수 선생님을 비롯한 선배․동료 연구자들이 만든 <동아시아비교문화연구회>의 일원으로서 『조천일기』 국역 작업에 참여하였으며, 이때의 배움은 본 논문을 작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필자의 뇌리에는 조헌이라는 이름이 비교적 선명한 인상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이는 어린 시절 집에 있던 노란색 위인전집 덕분인데, 하나로 묶인 ‘조헌․영규’라는 이름이 영 낯설어 이순신 장군처럼 익숙하고 재미있을 것 같은 책들을 먼저 뽑아 읽은 후에야 책장을 열었던 기억이 난다.

어린 필자의 눈에도 남다른 효성과 절륜한 학문․정의로운 거병과 신출귀몰한 승전․열세 속의 분전과 장렬한 순절에 대한 묘사로 이어지는 틀에 박힌 듯 흔한 의병장 이야기가 별달리 흥미롭게 비치지는 않아 겨우 한 번 읽고 나서 저만치 미뤄 놓았던 것 같지만, 이후 조헌이라는 이름을 마주할 적이면 으레 의병이나 순절과 같은 단어들이 머릿속을 채우곤 했다. 이미 필자는 나름의‘조헌상(趙憲像)’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림 2] 조헌의 화살통 (보물 제 1007호) ⓒ 문화재청

   그때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조헌의 원형적 자취라 할 만한 조천일기를 통독할 기회를 얻게 되면서 비로소 필자의 뇌리 속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던 낡은 관념에 균열이 일기 시작하였다. 의심 없이 탄복하던 영웅과 위인의 표상에 대한 의구심, 그리고 필자보다 앞서 조헌을 바라보았을 무수한 시선들이 머문 지점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그림 3]조헌 자필본 조천일기 (보물 제 1007호) ⓒ 문화재청

   깨알 같은 글씨 속에서 숨 쉬고 있는 조헌은 인간미가 넘치는 인물이었다. 강직하지만 정이 많고,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유연하며, 지적이면서도 빈틈이 많은 그 진솔한 인간됨은 사뭇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이제껏 조헌이 지닌 다채로운 면면 중 유독 (초인적이기에 오히려) 비인간적인 한 부분만을 기억하며 그 지점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편협한 인식의 틀은 오로지 필자만이 소유한 것도, 하필 조헌에게만 씌워진 것도 아닐 것이다. 필자보다 앞선 누군가가 조헌에게서 보려했던 모습이 그러하였기에, 누구보다 큰 목소리를 가진 그들이 자신들의 기억을 앞장서 술회하였기에,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들의 시선이 먼저 가닿은 지점만을 바라보게 되었으리라.


[그림 4] 조헌선생유허추모비 ⓒ 문화재청

   이와 같이 작위적인 기억의 형성 과정에 어떠한 시기 혹은 어떠한 집단의 필요가 반영되어 있으리라는 가정을 염두에 두고서 조헌과 관련된 문헌 자료들을 하나 둘 열어보기 시작하매, 그의 사후에 만들어진 다양한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 둘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그 조각을 빚어낸 이 사람 저 사람의 면면도 하나 둘 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결코 길지 않은 삶을 살다 갔음에도 도학과 절의를 한 몸에 갖춘 선현이요, 사회 체제의 일신을 외친 개혁가이자, 중화 문물의 도입에 앞장선 선구자이며, 전쟁을 예견한 예언자로서, 각양의 표상을 지닌 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영생하고 있는 조헌. 이 특별한 한 인간을 제각기 원하는 모습으로 바라보았던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있어 조헌은 자신들이 도달하고자 하였던 그 어딘가로 통하는 계단과도 같은 존재였으리라.

필자가 어렸을 적 읽었던 노란색 책은 그대로 또 누군가의 계단이었을 것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그 누군가의 계단을 오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계단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하는 부단한 의심과 끊임없는 성찰만이 기억의 이면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 부족한 글을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과, 귀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 한국역사연구회는 소속 연구자들의 학술연구 활성화를 위해 2007년부터 매년 심사를 통해 ‘최우수 논문’ 및 ‘신진연구자 우수논문’에 대한 수상을 해오고 있다. 위에 소개된 논문은 편집위원회의 엄밀한 심사를 거쳐 ‘신진연구자 우수논문’으로 선정되었으며 수상은 2014년 한국역사연구회 정기총회에서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