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논문 – 「임오화변 관련 당론서의 계통과 ‘정조의 임오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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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화변 관련 당론서의 계통과 ‘정조의 임오의리’」
(『역사와 현실』85, 2012)

최성환(중세2분과)

   먼저 필자에게 최우수 논문상을 통해 처음으로 학계의 인정을 받은 듯한 느낌을 갖게 해 준 것이 무엇보다 커다란 기쁨이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런 영광을 부여한『역사와 현실』의 관계자들께, 그리고 주변의 지인들에게 수상의 기쁨을 나눌 수 있게 상금까지 주신 독지가 – 안병욱 선생님이라고 들었다 – 께도 감사드린다.

사실 이 논문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인『정조대 탕평정국의 군신의리 연구』가운데 그 대강이 제시된 바 있었다. 다만 당시에는 당론서 자체에 대한 분석이 미진하였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자료와 구체적인 분석 항목을 보완해서 별도의 논문으로 구성해 본 것이다. 본 논문을 통해서 임오화변에 관한 주요 쟁점에 대해 노론, 소론, 남인계 당론서의 의리론을 정리하고, 정조는 각 정파의 당파적 의리론에 어떻게 대응하면서 자신의 의리론을 제시하며 정국을 이끌어갔는지 설명해 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영ㆍ정조대 최대의 현안이었던 임오의리를 중심으로 노론, 소론, 남인 각 정파가 어떻게 분화하고 연대하였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었다. 본 논문에 포함되어 있는 ‘노론ㆍ소론ㆍ남인내 각 분파 의리론의 흐름’이라는 도표는 영ㆍ정조대 각 정파별 의리론의 흐름을 필자 나름으로 정리해 본 것이다.


[그림 1] 보물 제 392호 영조 어진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정치사 관련 논문을 조금만 보면 공감하겠지만, 사실 조선 후기의 정치사는 사건별, 정파별로 너무 구체적인 설명이 나열되고 있기 때문에 각 정파의 당론과 정국의 흐름을 일관된 흐름으로 이해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조선후기 정치사는 자료의 홍수에 파묻혀 자칫하면 방향을 잃어버리기 일쑤이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랬다. 이런 처지에서 방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수년간 허우적댄 성과가 박사학위 논문이었고, 그 부산물을 좀 더 정밀하게 엮어 내놓은 것이 이 논문이다. 논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영ㆍ정조대의 노론, 소론, 남인 각 당파는 사도세자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대체로 보호론과 위동론(危動論) 계열로 나뉘었는데, 이들은 자파의 견지에서 당론서를 편찬하여 임오화변의 원인과 책임 문제에 대하여 상반된 의리론을 보여주었다.

보호론자는 임오화변의 원인으로 이광좌 등 준소계열 처분을 둘러싼 영조와 세자의 견해 차이를 배경으로, 위해세력이 세자를 무함하여 양자의 갈등을 조장했고, 여기에 세자의 질병과 영조의 과도한 성격까지 가세하여, 끝내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양자의 갈등을 무마하여 세자의 지위를 보존하게 하려고 노력한 노론 동당ㆍ소론 준론ㆍ남인 청론 계열 신하들을 충신으로, 세자의 신임의리관이나 사소한 잘못을 과장하고 무함하며 갈등을 증폭시켜 세자를 교체하려고 한 노론 남당·소론 탕평당의 신하들을 역적으로 간주했다.

위동론자는 세자의 자질이 높지 않았던 데다가 질병까지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보좌하는 신하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세자 보호를 명목으로 아첨하는 신하들이 직언은 하지 않고 사태를 무마하는데 급급함으로써 세자가 의리상의 잘못과 비행을 저질러 덕을 잃게 된 것이 임오화변의 근본 이유라고 판단하였다. 영조가 세자를 교도하기 위해 애썼지만 끝내 실패했기 때문에 종사를 위하여 임오화변이라는 정당한 처분을 내렸다는 것이다. 세자의 비행과 과실에 대하여 그 시정을 요구한 것 역시 신료들의 정당한 직언이므로 이를 세자에 대한 무함이라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임오화변의 책임을 세자 비판 세력에게 돌리는 것은 영조의 처분을 잘못된 것이라고 무함하고 조정의 신료들을 제거하려는 화심(禍心)에서 나온 것이므로, 영조의 처분을 변경하려 하는 자들이 역적이라는 것이다.

임오화변에 대한 의리를 기준으로 기존의 당파는 새롭게 분화ㆍ재편되는 양상을 보였다. 대체로 노론 중 북당과 동당, 소론 중 준론, 남인 청론이 보호론을 견지했고, 노론 중 남당, 소론 중 완론이 위동론을 견지했다. 이에 따라 당파는 달라도 세자 보호를 위하여 노론 동당과 소론 준론이 협력하거나, 같은 노론이라도 북당과 남당은 서로 배척하기도 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훗날 사도세자를 국왕으로 추숭하는 의리에 동의하는 세력으로서 노론 북당, 소론 준론, 남인 청론이 협력했고, 이에 대해 노론 동당 및 남당과 소론 완론은 모두 추숭론을 배척하는 논의를 펼쳤다.

이처럼 각 정파의 시각이 제각각 정당성을 주장하며 각축하는 가운데 정조는 ‘정조의 임오의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정조는 선세자 대리 시절 보호론과 위동론을 화평론(和平論)에 의거하여 모두 포용하면서 선세자의 공과 덕을 드높이는 의리론을 제시하였다. ‘정조의 임오의리’는 세자의 광병(狂病)과 과실을 전제로 하는 ‘영조의 임오의리’를 명백히 수정하되, 그 방향은 신하들이 주장하는 보호론과 위동론의 시각을 모두 거부하고 선세자의 미덕(美德)을 전제로 군신의리 차원에서 저군(儲君)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장래에 후왕에 의해 단행될 선세자 추왕을 위한 의리론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임오화변을 둘러싼 신료들과 왕실의 분쟁 역시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당론서의 일부 자료를 활용한 연구는 많았지만, 당론서 자체를 분석하고 그 계통을 추적한 연구는 별로 없었다. 당론서는 편파적이어서 사료로 인용할 수는 없다는 불신이 깔려 있는데다가,『조선왕조실록』이나『승정원일기』의 정치사 자료를 이용하면 되지 굳이 당론서까지 상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역사 편찬서와 달리 각 당파 차원의 정론이 잘 정리된 당론서는 자체의 특징이 있으므로, 그 장점을 잘 살린다면 관찬 역사서를 보완하고 각 정치 세력의 처지를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자료임이 분명하다.

오늘날 여러 정치세력의 당론 역시 조선시대 못지않게 당파적이지만, 이러한 당론을 편파적이라 하여 무시하고서 정치 현상을 설명한다면 그것은 정치-행정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당론은 사회․정치 세력의 이해관계와 이념을 투영하여 일관된 체계를 갖춘 정론이며, 인간이 정치적 존재인 이상 국가ㆍ사회에 불가결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당론이 편파적이라거나 정치에서 분열을 야기한다고 하여 이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 않거나 없애려고 한다면 이는 독재 시절 국론 통일을 강압했던 발상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정치 형태는 시대에 따른 차이가 있겠지만,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다양한 사회․정치 세력이 노선 투쟁, 곧 의리 논쟁을 벌이는 그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는 조선시대의 당론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서 탈피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금껏 당론 그 자체를 분석하고 객관적으로 설명할 논리를 개발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는 당론서의 당파성을 역사적 실체로 받아들이고, 이를 정면에서 접근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당론 곧 당파의 의리론을 그들의 입론에 입각하여 정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당파의 형성 및 분화 과정을 염두에 두면서 계열화하여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당쟁이 가장 치열하였던 숙종~정조 연간에 국왕권도 가장 강성하였고 국정 개혁의 다양한 노력이 경주되었다. 이 시기에 당인들은 끊임없이 치열한 당쟁을 지속하였고, 영조는 치세의 2/3를 신임의리의 확정을 위하여 그리고 정조는 평생을 임오의리의 수정을 위하여 골몰하였다. 모두들 자기 당파 혹은 자신과 생부의 명예를 위한 것이었다. 이를 각 정치세력의 사적인 욕구에서 비롯된 무의미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고, 설령 그 의의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일견 비효율적인 일처럼 보인다. 이 문제가 당시의 정치적 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는 좀 더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므로 일단 그 답은 유보한다. 그러나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각 당파와 국왕의 의리론에 대해 정확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선시대의 각종 정치사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사진 2]『한중록』필사본   혜경궁 홍씨 지음 (ⓒ고려대학교 소장)

물론『조선왕조실록』의 절반 이상은 정치사 관련 기록이고, 그 자료의 질적 수준 역시 당론서보다 훨씬 고급 정보로 구성되어 있다. 당론서가 굳이 필요할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록은 편년체이고 집권층의 공적인 논의 위주여서 사회․정치적 맥락을 잡기가 무척 어렵다. 당론서는 이러한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훌륭한 자료이다. 단, 당론서는 특정 당파의 기록이므로 여러 당파의 당론서를 함께 봐야 한다. 여기에『한중록』과 같이 유력한 궁중 인사들의 내밀한 증언도 함께 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필자가 쓴「한중록의 정치사적 이해」(『역사교육』115)를 본 논문과 함께 봐 주신다면 관인층의 동향과 국왕의 동정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는 궁중 인사의 정보력을 실감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정국의 현안과 쟁점을 파악한 후에 다시 실록과 대조해 보면 각 당의 당인들과 국왕의 정론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조선시대의 정치사에 대해서는 여러 부면에서 종합적인 분석이 안 된 상태이다. 더구나 근래에는 인터넷으로 보급된『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조선 후기 정치사에 대해서 비전공자나 대중 작가들이 기존의 편견에 자극적인 상상력까지 더해 가공의 조선후기 정치상까지 만들어 내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전적으로 그들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고, 조선후기 정치사 연구자들이 좀 더 분발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필자는 조선후기 정치사의 큰 흐름, 특히 순조대 이후 세도정치기의 정치사에 대하여 영․정조대의 정국을 기반으로 꾸준히 정리할 계획이다. 조선후기 정치에 관심이 있는 분들의 관심과 질책을 바란다.

※ 한국역사연구회는 소속 연구자들의 학술연구 활성화를 위해 2007년부터 매년 심사를 통해 ‘최우수 논문상’ 및 ‘신진연구자 우수논문상’에 대한 수상을 해오고 있다. 아래에 소개된 논문은 조선 후기 정치사 및 사상사 분야에서 매우 주목되는 연구 성과로서 편집위원회의 엄밀한 심사를 거쳐 ‘최우수 논문상’으로 선정되었으며 수상은 2012년 한국역사연구회 정기총회에서 진행되었다.   (한국역사연구회 편집위원장 고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