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위논문 – 『조선인민군연구 – 창설과정과 통일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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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위논문

『조선인민군연구 – 창설과정과 통일전선』

(경희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6.8)

김선호(현대사분과)

북한은 198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내게 ‘괴뢰국가’였다. 만화영화 「똘이장군」에서 김일성 전 주석은 늘 붉은 돼지였고, 인민군은 따발총을 든 붉은 늑대였다. 같은 시기에 흑백테레비에서 본 「미래소년 코난」은 달랐다. 이 만화영화에는 독재자 레프카가 등장하며, 그에 맞서는 괴력을 가진 소년 코난과 소녀 라나가 등장했다. 두 영화의 저변에 담긴 메시지가 양 극단에 서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반공글짓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지도 한참 지난 1990년대였다.

 

대학에서 배운 역사는 대단히 흥미로웠는데, 그중 하나가 같은 시대를 다르게 기억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대표적인 시대가 한국전쟁이었다. 언론과 책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을 학살자로 묘사한 반면, 시골주민들은 그들을 긴 총을 끌고 다니는 어린 소년들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후 인민군을 만든 주체가 김일성과 그의 동료들이라는 사실과, 인민군 군인들 가운데 조선의용군 출신이 많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식민지시대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시기에 북한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내가 북한과 인민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 사소하지만 중요한 의문 때문이었다.

 

똘이장군코난

[사진1] 똘이장군과 미래소년 코난의 포스터

 

역사 연구자가 북한사를 연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인민군을 연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무엇보다 공개된 자료를 찾기 어렵다. 다행히 미군이 한국전쟁때 가져간 북한자료가 공개되면서 자료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었다. 하지만 자료를 찾았더라도 이를 글로 엮어 학위를 받는 일은 쉽지 않다. 현대사 연구자가 한국사 연구자 중에서 소수이듯, 북한사 연구자는 현대사 연구자 중에서 소수다. 소수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한 지향과 무던한 노력뿐이다.

 

내가 조선인민군을 주제로 정하고 박사과정에 들어간 것은 2003년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 2016년이니 13년이 걸렸다. 지향은 명확했으나 노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학위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포도청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다가 학교로 다시 돌아와 보니 이미 마흔살이 넘어 있었다. 박사논문에서는 애초에 1945년 해방부터 1953년 한국전쟁 종전까지 다루려고 구상했다. 그러나 연구를 해보니 1945년부터 1950년에 이르는 시기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시작을 모르고 본질을 알 수는 없는 법이다. 하여 박사논문에서는 인민군의 창설과정을 다루었다. 기존 연구의 토대가 미약했기 때문에 논쟁적으로 쓰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이 연구가 향후 인민군 연구의 발판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논문의 제목에는 창설과정과 함께 “통일전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통일전선이란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의 동맹관계’를 뜻한다. 이 단어가 이 논문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북한은 잘 알려져있듯 조선노동당이 주도하는 국가다. 그런데 북한의 노동당은 다른 사회주의국가의 당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대표적으로 소련공산당과 중국공산당은 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세력으로 설정하며, 공산주의를 지향했다. 그러나 조선노동당은 노동자․농민과 함께 사무원(인텔리)이 중심세력으로 설정하며, 사회주의를 지향한다. 소련공산당의 상징이 망치(노동자)와 낫(농민)인데 비해, 조선노동당의 상징이 망치․낫․붓(사무원)인 이유다.

 

소련국기[사진2] 1945년 독일 베를린에 내걸린 소련국기

조선노동당 상징[사진3] 조선노동당 제7차대회 대회장에 장식된 당의 상징(출처 : 연합뉴스)

조선인민군도 당과 마찬가지였다. 흔히 인민군을 조선노동당의 군대로 알고 있으나, 인민군이 노동당의 군대가 된 것은 한국전쟁때 일이다. 인민군은 한국전쟁 이전까지 당의 군대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조선노동당의 전신인 북조선노동당은 1946년 10월에 군대 안에 당조직을 설치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이 결정은 “군대의 당군화를 방지하고 군대의 통일적 통솔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였다. 군대의 당군화를 방지한다는 것은 인민군을 노동당의 군대로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인민군과 달리 소련과 중국의 군대는 모두 소련공산당과 중국공산당의 군대로 규정되었다.

 

그렇다면 왜 북한의 지도자들은 소련이나 중국처럼 군대를 당의 군대로 창설하지 않았을까? 해방 직후 북한의 정치세력은 사회주의혁명이 아니라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추구하였다. 그 이유는 일본제국주의와 봉건제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 각 계급․계층을 망라한 민족통일전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해방 당시 북한지역의 주민들은 대부분 소작농과 빈농이었고, 사회주의혁명의 기간이 될 노동자들은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새로운 국가를 건설할 기술인력이나 지식인들이 부족했다.

 

북한정치세력은 신국가 건설을 위해 기술인력이나 지식인들이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고, 이들 중에서 반일적․친노동당적 정치태도를 표명한 인물들을 적극 기용하였다. 이들을 기용하기 위해 새로 고안해서 만든 계층이 “사무원(오랜 인텔리)”이다. 또한, 북한의 국가건설과정에는 민족자본가․중농․부농․지주․상인․소시민․종교인들도 참여하였다. 북한지역에는 이들의 계급적․계층적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도 창당되어 있었다. 북조선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이 그것이다.

 

윤정철 사진윤정철 이력서

[사진4] 조선인민군 군관 윤정철의 증명사진과 이력서. 중농출신이다.

 

북한의 국가와 사회처럼 인민군에도 노동당원뿐만 아니라 민주당원․청우당원이 있었고, 다양한 계급의 자녀들이 존재했다. 또한 인민군 군관이나 병사 중에는 일본군출신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북한 공군의 모체인 비행사단에는 총 3명의 연대장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일본군출신이었다. 북한의 지도자들은 군대가 다양한 계급․계층․당원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 인민군을 ‘당의 군대’가 아니라 ‘통일전선의 군대’로 창설한 것이다.

 

북한의 국가․사회․군대를 주도한 주체는 노동당과 김일성이었지만, 적어도 1950년 시점에는 노동당이나 김일성으로 획일화되어 있지 않았다. 북한에서 정치적 다양성과 통일전선의 특징이 축소되고 체제가 김일성의 유일지도체제로 변화한 시점은 한국전쟁 종전 이후였다. 그런 점에서 한국전쟁 당시 북한체제의 상황과 변화는 현대 북한의 모습을 해명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내가 앞으로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역사를 연구하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석사과정에 들어갔을 때가 20대 후반이었는데, 박사학위를 받으니 어느덧 40대 중반이 되었다. 늦다면 늦고, 빠르다면 빠른 시간이었다. 오랜 선생님께서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해석은 다양하겠으나, 나는 ‘먹고살아야 꿈을 지킨다’라고 이해했다. 역사학 전공자로 2000년대를 먹고살아간다는 것은 여전히 힘들고 어렵다. 그래도 잘 버텨온 스스로에게 격려를 보낸다. 그리고 지금도 비정규직과 연구보조원으로 먹고살아가는 수많은 역사학 전공자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