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재임용제와 비정년트랙

0
342

교수재임용제와 비정년트랙

1. 재임용탈락 교수 첫 구제

 

교육부 소속 교원징계재심위원회(위원장 구관서)는 대학교수 10명의 재임용탈락 재심청구 사건을 심사해, 이 가운데 9명에 대해 재임용탈락 취소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재심위는 1991년 위원회 설립 이후 `교수 재임용탈락은 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 처분이 아니다`라는 사법부 판단에 따라 200여건의 재임용탈락자의 재심 요청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려왔다. 하지만 지난 4월 대법원이 재임용탈락도 행정소송 대상이 된다고 판결함에 따라 재심위는 이를 심사 대상에 포함시켜 이날 두번째 회의에서 구제 결정을 내렸다. 대학은 결정문을 받는 즉시 복직시켜야 하며 대학이 거부하면 교수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한겨레, 2004.6.18)

이번에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이하 재심위)가 재임용탈락 재심청구 사건을 심사하고, 부당하게 해직된 교수를 구제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지금까지 재심위는 “재임용탈락은 심사대상이 아니므로 청구인의 청구를 각하 한다”는 입장만을 되풀이 해왔기 때문이다. 재심위는 그 동안 각하 결정의 근거로 다음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교수의 재임용탈락은 계약기간 만료에 대한 사실확인에 불과할 뿐, 새로운 법률 효과를 발생하는 처분이라 할 수 없다.

둘째, 교원징계재심위원회는 교원이 징계처분 기타 그 의사에 반하는 불리한 처분을 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청구를 심사하는 것이다.

셋째, 따라서 행정처분이 아닌 재임용탈락은 위원회의 심사대상이 될 수 없다.

재심위의 이러한 입장은 사립학교법, 대법원판례, 헌법재판소결정 등에 근거한 것이었다.

2. 유신체제하에서 급조된 교수재임용제

교수재임용제는 유신체제하 제정되었다. 1975년 박정희 정권은 국민총화를 부르짖으며 유신체제 비판을 전면 금지하는 긴급조치 9호를 발령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틈타 교육법중개정법률안(敎育法中改正法律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되었다. 정부는 발의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현행교육공무원법상으로 보면 대학교수의 인사제도는 소위 연공서열제로서 소정의 근무연한만 근속하면 그 연륜에 따라 자연히 승진하게 되어 있습니다. 즉 능력이나 업적 또는 실력의 실증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비록 낡은 `노트`에만 의존하는 무능한 자라 할지라도 정년인 65세까지 교수라는 직책을 지탱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의 이와 같은 불합리한 인사제도를 쇄신하여 일정기한을 한도로 하는 이른바 기한부임용제를 채택함으로써 교수의 책임감과 연구의욕을 고취하고 아울러 우수한 교수를 확보하려는데 주안을 두고 법 제9조에 제3항을 신설하려는 것입니다(제93회 국회 문교공보위원회회의록 제1호. 1975.7.4).

  연공서열제 중심의 불합리한 대학인사제도가 시정되지 않고서는 면학분위기 조성과 대학 노화방지에 지장이 많아, 교수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기한부임용제`를 도입하겠다는 주장이다. 대학에 활력을 불어넣고 국제경쟁력을 지니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한부임용조문을 신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당시 문교부의 입장이었다. 「기한부임용제」가 비판적인 지식인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악법에 불과하다는 반론이 거세게 일자, 정부는 다음과 같이 해명하였다.

재임명 자체는 신규채용과는 틀립니다. 기득권이 있건 없건 일단 재임명한다는 것은 그만큼 기득권을 인정하기 때문에 재임명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재임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모든 교직원의 신분을 보장해 주는 것이고 도저히 교수로서의 연구 노력이 없는 극소수에 대해서 해당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지 꼭 해당된다는 것은 아닙니다(제93회 국회 문교공보위원회회의록 제1호.1975.7.4).

유신체제하에서 제정된 `기한부임용제`에는 두 가지가 전제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기한부임용제`를 재임용을 전제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이는 교원의 기득권 즉 ‘재임용기대권’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재임용 여부를 엄격히 심사하여 극소수에 한해 탈락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기한부임용제`를 ‘심사제’로 운영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재임용기대권과 심사제는 사실 두 가지가 아니다. 재임용기대권을 인정하면 재임용 적격여부를 심사해야 할 것이며, 재임용 심사는 재임용기대권 인정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시한부 임시직으로 전락한 교수지위

 

재임용기대권은 대학인사위원회와 같은 대학의 공식기구를 통해 대학 교원의 자격(자질과 연구능력)을 검증하는 심사를 전제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심사의 기준은 일반적으로 연구실적, 교육실적(강의평가), 봉사실적 등 세 가지이다. 이를 기준으로 재임용여부를 심사하는 심사제는 교원의 자질향상과 면학분위기 형성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심사제를 잘만 운영한다면 연구 무능력자나 연구 태만자 등을 도태함으로써 대학의 노화를 방지하고 신진대사를 촉진한다는 교수재임용제 도입취지와 부합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대학교수들은 교수재임용제를 심사제로 알고 있다. 그리고 많은 대학에서 교수재임용제를 심사제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면 교수재임용제가 왜 문제가 되는가. 엄격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른 심사를 통해 연구 능력이 없는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켜 대학의 노화를 방지하고 신진대사를 촉진시킨다는 데 왜 말썽이 끊이질 않는가. 그 비밀은 먼저 교육부가 교수재임용제의 공식명칭을 「기간제임용제」라고 한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1975년 처음 도입된 `교수재임용제도`의 공식 명칭은 `기간제임용제`이다. 이는 사립학교법의 “대학교육기관의 교원은 당해 학교법인의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기간을 정하여 임면할 수 있다”(제 53조의 2 제3항)라는 규정에 의거한 것이다. 교육부도 사립학교법 및 교육공무원법 등에 “기간을 정하여 임용할 수 있다”라는 규정에 의거하여, `기간제임용제`로 칭함이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육부가 일반적인 호칭인 `교수재임용제` 대신 굳이 `기간제임용제`가 공식명칭이라 주장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간을 정하여 임용한다”라는 의미인 `기간제임용제`가 심사제가 아니라 계약제이기 때문이다. 계약제일 경우 약정된 임용기간이 만료됨으로써 대학교원으로서의 신분관계는 당연히 종료되는 것이다. 심사제는 기간이 만료된 교원에 대해 대학교수로서의 연구능력 및 자질 등을 검증해 재임용 여부를 결정해야 할 의무가 있는 반면, 계약제는 기간이 만료되면 당연 퇴직되며 대학교원으로서의 신분은 당연히 종료되므로 심사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심사제와는 달리 계약제는 재임용기대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된다. 박정희 정권이 도입한 「기한부임용제」는 재임용 여부를 심사할 공식기구 조차 없이 제정된 졸속 입법이었다. 애초부터 심사제로 출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심사기구를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당초 ‘재임용기대권’을 인정하겠다는 약속은 속임수에 불과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대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재임용제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대학의 자유정신을 말살하고 유신체제에 비판적인 지식인을 강단에서 축출하기 위해 교수재임용제를 급조한 것이었다.

4. 비리사학의 방패막이가 된 교수재임용제

1990년 3월 국회는 의원 입법으로 기습적으로 사립학교법을 개악하였다. 개악된 사립학교법은 인사권, 재정권, 경영권 등 모든 권한을 재단에게 부여함으로써, 사학의 공익성과 교육주체의 자율성을 철저히 유린한 전대미문의 악법이었다. 재단은 총장 임면권은 물론, 총장이 가지고 있던 교직원 임면권마저 탈환함으로써 교수사회에 대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이 법은 온갖 비리로 사회의 지탄을 받아오던 재단에게 교수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부여한 것인데, 그 핵심이 교수재임용제의 강화이다. 사학재단은 교수재임용제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서 교수사회를 장악해 나갔다. 교수재임용제가 악법중의 악법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문제화 되지 않은 것은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교수들이 재임용탈락이 두려워 사전에 인사권자의 눈치를 살피기 때문이다. 인사권자에게 ‘미리 알아서 기는’ 분위기 하에서는 대학이나 재단에 대한 비판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 결과 대학의 자치력은 위축되고 자유정신은 실종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임용권자가 재임용탈락을 무기로 사전 정지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교수들이 의원 면직의 형태로 강단을 떠나거나 타 대학, 다른 직장으로 전직‧이직한 배경에는 재임용탈락의 공포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셋째, 재임용탈락 교수가 극소수이므로 예외적인 존재로 취급되어 대학에서는 물론 사회로부터도 주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재임용되는 현실에서 재임용탈락된 교수는 예외적인 존재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다.

재단은 마음에 안드는 비판적인 교수를 해직시킨 후, ‘교수자질부족’, ‘교원품위손상’, ‘근무자세 불량’, ‘학생소요선동’, ‘연구능력 부족’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총동원하여 재임용탈락 교수를 손쉽게 대학사회로부터 격리시킬 수 있었다. 재임용탈락된 교수는 극소수이므로 사회의 주목을 받기 어렵고 집단적으로 투쟁을 벌일 수도 없기 때문에 임용권자의 기도는 쉽게 관철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비리사학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교수재임용제를 통해 양심적인 교수들 입에 재갈을 물림으로써, 교수재임용제가 사학비리의 방패막이가 된 것이다. 반면 재임용탈락 교수들은 법적으로 무권리 상태에 있기 때문에 임면권자의 횡포에 맞서 싸울 아무런 저항 수단이 없었다. 해직교수가 연구실을 계속 사용하거나 출근투쟁 장외강의 천막강의를 하는 등 최소한의 사회적인 저항조차 임용권자가 사법부에 제소하면 전과자가 되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었다.

 

5. 교수재임용제의 사문화

징계가 아닌 재임용탈락의 형태로 해직된 교수들은 법적으로 아무런 권리가 없는 상태에서 싸워야만 했다. 해직 교수들은 1차적으로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재심위는 재임용탈락은 행정처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사법부에 호소해도 결론은 마찬가지였으며, 헌법재판소도 재임용제도는 합헌이라고 결정하였다. 재임용탈락을 둘러싼 학내 분규가 발생할 경우. 재단은 늘 상 이들 국가기관의 결정문을 증거로 들먹이면서 재임용탈락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강변해 왔다. 재임용탈락은 법에 따라 적법하게 처리되었다는 주장이다.

 

파렴치한 비리 재단과 무책임한 정부에 맞서 해직교수들은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고독한 투쟁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다음 두 가지를 줄기차게 주장하였다. 첫째 교원지위법정주의를 규정한 헌법정신이다. 인사권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임기만료라 하여 해직시켜도 된다는 사법부 해석은 학문의 자유에 따라 보장된 대학교원 신분보장원칙에 위배된다. 기간제임용제를 채택함에 있어서는 교원의 신분보장을 위하여 적어도 재임용의 거부사유와 재임용의 거부에 대한 구제절차를 함께 규정하여야만 교원지위 법정주의를 규정한 헌법의 정신에 합치된다. 둘째, 재임용제 도입 당시 정부가 약속한 재임용기대권이다. 재임용기간이 도래한 교원은 누구나 학교 규정이 요구하는 일정기준 즉 연구실적, 교육실적(강의평가), 봉사실적을 충족하면 재임용될 것으로 기대하는 재임용기대권이 있다. 어느 누구도 임기만료가 되면 자신이 당연 퇴직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사권자가 아무런 이유 없이 임기만료로 해직시키는 것은 재임용기대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1) 1998년 헌법재판소 소수의견

 

사법부가 해직교수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재임용제가 도입된지 20 여 년이 지난 뒤이다. 1998년 7월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재판관 9인중 4인이 사립학교법 제53조의2 제 3항이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일부 사립대학교에서 기간임용제가 악용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제도운영상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건 법률조항이 가지고 있는 위헌성에서 비롯되는 문제이다. 이 사건 법률조항이 재임용 거부사유와 거부당한 교원에 대한 구제절차를 마련하지 아니한 채 재임용권한을 임면권자인 사립학교법인과 총‧학장의 자유재량에 맡긴 결과 임면권자가 기간임용제를 악용하게 된 것으로서 기간임용제가 악용될 위험성은 이미 이 사건 법률조항 자체에 내포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재임용거부사유와 재임용을 거부당한 교원의 구제절차를 규정하지 아니한 채 이 사건 법률조항이 교원의 기간임용제를 규정한 것은 헌법 제31조 제6항에 위반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헌법재판소결정문, 1998.7.16).

기간임용제를 채택함에 있어서는 교원의 신분보장을 위하여 적어도 재임용의 거부사유와 재임용의 거부에 대한 구제절차를 함께 반드시 규정하여야만 교원지위 법정주의를 규정한 헌법조항의 정신에 합치된다는 것이다. 누가 보아도 수긍할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주장이지만 소수의견에 머물고 말았다.

(2) 2000년 서울행정법원 판결

 

이른바 대학의 ‘권리장전’이라 불리우는 새로운 판례가 나타난 것은 2000년에 이르러서였다. 2000년 1월 18일 서울행정법원 행정 13부(이재홍 부장판사)는 연구논문 부실을 이유로 재임용심사에서 탈락된 김민수 전 서울대 미대 교수가 이기준 서울대 총장을 상대로 낸 교수재임용 거부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재임용 거부처분을 취소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또 고광종 전 제주산업정보대학 관광과 교수가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와 학교법인 동원학원 박옥기 이사장을 상대로 낸 교원징계재심 각하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도 원고 승소 판결했다. “객관성 없는 재임용탈락은 부당하며, 재임용 거부에 대한 재심 청구를 각하한 것은 위법이라는 취지”의 이 판결은, 대법원 판례를 뒤집은 것으로 대학인들에게 용기와 깊은 감명을 주었다.

이 판결문에서 주목할 점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교수재임용제가 헌법정신에 합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점이다. 학문과 예술의 자유 보장(헌법 22조 1항),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헌법 31조 제 4항), 학교 교육 및 평생 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헌법 31조 6항)는 교원지위법률주의에 교수재임용제가 위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교수재임용제를 도입취지에 합치되도록 합목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한 점이다. 교수재임용제는 정년제의 폐단을 보완하고 교수 연구 활동 진작, 대학 교육의 질적 향상을 통한 대학사회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법부가 재임용제 도입 취지를 무시하고 형식적인 법조문에만 얽매여 탈 목적적으로 해석해 왔다.

셋째, 재임용제는 엄격한 심사제로 운영되어야 하며, 행정소송이나 교원징계위원회에 재심청구가 가능하도록 구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기간제 임용제를 채택함에 있어서는 교원의 신분 보장을 위하여 적어도 재임용의 거부사유와 거부에 대한 구제절차를 함께 반드시 규정해야만 교원지위 법정주의를 규정한 헌법정신에 합치 된다”는 1998년 헌법재판소의 소수 의견을 과감히 받아들인 것이다.

2000년 서울행정법원 판결은 자의성이 개입될 여지가 많던 교수 재임용 심사에 대해 엄정한 객관성을 요구하는 한편, 교수 신분 보장과 학문 자유 보호를 고려하였으며, 사법적 통제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던 학교와 재단 측의 자의적이 임용권 행사에 제동을 걸었으며, 재임용에서 탈락된 교원이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구제 절차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3) 2003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판결

 

2003년 2월 27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주선회 재판관)는 전직 교수 윤모씨가 “학교 정관에 따라 교원의 재임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한 사립학교법 기간임용제 조항은 위헌”이라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해당 법률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법적 공백을 막기 위해 법 개정시까지 해당조항의 효력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이 조항은 재임용 거부사유 및 탈락교원의 입장진술 기회, 사전통지 규정 등을 마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재임용 거부 시 사후 구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전혀 없어 헌법이 정한 교원지위 법정주의에 위반 된다”고 밝혔다. 거부사유 통지․입장진술 기회 등의 규정이 없는 사립교원 기간제임용제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는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림으로써, 1998년 당시의 소수의견이 5년 만에 다수의견이 되었다. 다만 재임용제도를 헌법정신에 맞도록 손질하는 시한을 명기하지 않은 점이 이 판결의 흠결이다. 그 결과 아직까지도 교수재임용제는 재 입법 되지 않고 있다.

(4) 2004년 대법원 판례

2004년 4월 대법원은 김민수 전 서울대 미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재임용탈락건에서 기존의 대법원판례를 뒤 짚는 새로운 판결을 하였다. 김민수 교수는 2000년 1심에서 승소했으나, 2001년 2심이재임용탈락 처분은 계약기간 만료에 불과해 행정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라며 원고청구 각하 판결을 해 패소하였다. 2심은 “모든 대학교수는 임기가 만료되면 당연 퇴직되는 것이다”라는 기존의 대법원판례를 원용하여 원고 청구 각하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2심 판결에서 기간제로 임용된 교원에게 재임용 기대권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은 잘못“이며, 기간제 교원은 기간 만료 시에 임용권자에 대하여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의한 재임용 심사를 받을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권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침해받은 교원은 재임용 심사의 탈락 통지라는 행정처분에 대하여 행정소송으로서 그 위법성을 다툴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기간제 임용 교수에게도 “재임용 기대권”을 인정하고 적법한 재임용 심사를 받을 권리를 명시한 것으로, 지난해 2월 헌법재판소가 기간제 임용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린 것에 영향을 받은 판결이다.

6. 확산되고 있는 비정년트랙

1975년 재임용제도 도입 이후 이를 둘러싼 법적 투쟁은 무려 30년이나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교수들이 해직의 억울함을 호소 한번 해보지도 못한 채 교단을 떠나야만 했다. 교수들을 시한부임시직으로 전락시킨 재임용제도가 사문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들어서부터이다. 그러나 대학에 봄이 찾아온 것은 아니다. 1997년 이후 재임용탈락을 둘러싼 학내분규가 사회문제화 되기 시작하자, 많은 대학에서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계약제교수를 선임하는 방식으로 방향전환을 하기 시작하였다. 계약제는 자동해임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임용 당초부터 재임용기대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시장의 문이 매우 좁기 때문에 이 제도는 아무 저항 없이 빠른 속도로 각 대학으로 전파되었다. 교육부도 2002년부터 교수연봉제를 실시하도록 하는 개정법률안을 입법하였다.

“대학교육기관의 교원은 당해 학교법인의 정관에 의하여 근무기간, 급여, 근무조건, 성과약정 등 계약조건을 정하여 임용할 수 있다. 이 경우 근무기간, 급여, 근무조건, 성과약정 등 계약조건에 관하여는 국‧공립대학의 교원에게 적용되는 관련 규정을 준용한다.”(사립학교법 제53조의 2 ③, 교육부, ‘98.11 <사립학교법중개정법률안 입법예고>)

교수연봉제는 근무기간이 계약조건에 명기되므로 재임용탈락을 둘러싼 시비를 자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각 대학에서 신규 채용 교수들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계약제와 연봉제는 교권을 크게 위축시키고 교수들 운신의 폭을 옥죄고 있다. 교육부는 기존의 종신계약을 파기하고 계약제, 연봉제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종용하고 있다. 대학사회에 계약제․연봉제가 정착되면서 지금까지 피눈물 나게 싸워 쟁취한 ‘재임용기대권’은 저절로 소멸될 수밖에 없다.

한편 계약제.연봉제의 도입은 교수사회에 비정년트랙의 확산을 가져왔다. 시한부 전임교수 임용이 확산된 것이다. 2004년 상반기 교수초빙 동향 분석에 따르면, 정년을 보장하지 않는 시한부 교수 단기임용제가 확산되고 있고 있다고 한다. 교수신문이 전국 93개 4년제 대학의 2004년 상반기 교수초빙공고를 분석한 결과, 지난 상반기에 연세대가 처음 시작한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제’를 경성대, 경희대, 성결대, 신라대, 안양대, 영산대, 한림대 등 10여개 사립대들이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제’는 신임교수를 2년 계약제 전임교원으로 임용하지만, 재임용을 1~2회까지로 제한해, 최대 6년까지 재직한 후 임기가 만료되면 당연퇴직하는 제도이다.

 

연세대는 2004년 상반기에 초빙예정인원 2백 16명 중 64명을 비정년트랙 교원으로 임용할 예정이며, 경희대는 77명중 13명, 성결대는 35명 중 30명, 신라대는 27명 중 15명 등을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으로 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성대는 ‘단임교수’라는 명칭으로, 계약기간 만료 후 재계약하지 않는 전임교원을 5명 뽑을 예정이다. 신라대의 경우, 2년간 계약제로 임용하지만 1회에 한해서만 재임용할 수 있게 했다.(교수신문, 2003.11.17)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립대들이 교육부가 마련한 국․공립대 교수임용 제도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계약제를 시행해왔으므로, 이 같은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제’의 확산은 정년트랙 교수계약임용 감소 등 교수임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적인 시장논리가 대학사회에 빠른 속도로 침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계약제 연봉제는 시장논리에 근거하는 것이므로 사회적 저항을 훨씬 덜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비정년트랙의 확산은 교수사회를 이원화시켜 분할통치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즉 기존의 교수들에게는 재임용기대권을 인정하는 등 기득권을 인정해주는 대신, 새로 임명되는 교수들에 대해서는 계약제를 적용해 임시직으로 묶어두는 것이다. 시장논리와 분할통치에 의해 대학의 자유정신이 근저에서부터 위협받고 있는 것이 오늘의 대학현실이다.

한상권(덕성여대 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