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청산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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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청산의 의미

과거청산이란 역사전환기의 사회정의에 관한 문제이다. 과거청산이 훗날에 새삼 논란되는 까닭은 사회발전과 역사변화에 따라 지난날의 과오를 청산해야할 당위적인 필요성이 증대되고 또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조건과 역량이 비로소 뒤늦게 갖추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의 제도나 법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에 제기되기도 하고 혹은 그와달리 사법적 잣대를 엄격하게 적용하기보다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경우에 제기된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지나간 모든 일들은 다 과거사(過去事)이면서 역사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에서 줄곧 논란돼 온 과거사(過去史)란 지배권력과 관련 있는 억압과 폭력 그리고 왜곡되고 은폐된 진실들에 관한 것이다. 이 땅에서 식민지배세력이나 권력자들은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해 잔인한 폭력을 행사해 왔다. 야만적인 인권유린을 자행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살상했다. 집권을 위해 맹목적인 이념갈등을 조장했고 민족사를 분단으로 이끌었다.

우리 역사는 이로 인해 끝내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분단과 전쟁을 빌미로 수많은 인사들을 투옥하고 살상해 왔으며 터무니없는 공안사건들을 날조해 냈다. 또 권력층의 비호나 사주를 받은 단체나 개인들이 공권력을 빙자해 자행한 폭력행위도 반복되어 왔다.

권력과 기득권층은 이러한 야만과 부정의를 비호하고 은폐하고 사실을 왜곡하면서 그동안 정당한 처벌이나 마땅한 응징도 그리고 올바른 평가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까닭에 지난 100년간 우리사회는 정상적으로 발전하기 어려웠고 끝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정의보다는 불의, 용서와 화해보다는 반목과 적대, 진실보다는 왜곡과 사이비가 더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과거청산이란 이런 모순을 바로 잡으려는 일이다. 청산은 사전적인 뜻 그대로 부정적 요소를 제거하고 깨끗하게 하는 일이다. 그러나 청산이 과거사에 관한 일일 경우에는 전혀 달라진다. 과거의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미 잘못된 일들을 뒷날 바로잡는 것은 곧 과거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는 일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그 동안 희생되고 피해를 입은 분들을 구제하고 보상하는 문제가 따른다. 뒤틀리고 헝클어진 제도를 바로잡는 문제도 있다. 정의를 세우고 왜곡된 가치관을 바로 잡아야 한다. 올바르지 못한 기득권에 집착하여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행위에 대해서는 응징이 필요하다. 현행법으로 처벌이 가능한 범죄는 사법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청산의 더 큰 의미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사회적․역사적 확인에 있다. 이는 진실의 사회적 회복이다. 우리는 과거사에서 사실상 무엇이 진실인지를 이미 알고 있다. 책임 있는 자와 가해자들이 이를 시인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청산 작업은 그들이 시인할 수 있도록 은폐된 자료를 찾아내고 또 잘못을 시인할 수밖에 없도록 여론을 모아내는 일이다. 진실이 명확히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그에 따라 잘못을 범한 당국이나 가해자는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피해자가 용서할 수 있고 사회는 화해를 추구할 수 있다. 이는 사회적 합의를 통한 과거사의 정리이다.

이와 같은 과거청산은 현대 문명사회가 창안해 낸 지혜로운 방법이다. 과거로부터 연속되는 부정적 요인을 안고서는 오늘날 더 이상의 사회발전을 성취해 낼 수 없다. 수구세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번 개혁적인 일에 발목을 걸면서 올바른 사회발전을 방해하고 있다. 이는 그들의 기득권이라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에서 얻어진 것도 아니며 또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유지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사의 청산이 사회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물리적인 방법으로 강행할 수도 없는 일이다. 지난날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하는 과정처럼, 예컨대 프랑스혁명 시기와 같이 수구와 개혁 세력간에 보복과 응징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속에서는 엄청난 희생이 따랐고 파멸적인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18, 19세기와는 달리 그러한 사회전환을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사를 정리하지 않는다면 세계사의 변화에 창조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해 가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우리사회에서 그 동안 누차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양면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진실과 화해 위원회 형식의 과거청산기구가 탄생한 것이다. 사회변화에 맞추어 과거의 부정적 유산을 청산하고 갈등을 해소하면서 미래사회 발전을 위해 사회적인 화해를 이루자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남아공의 진실과화해위원회가 대표적인 과거청산 기구이다. 그밖에 과거 군사정권을 경험했던 중남미의 나라들에서 그리고 아프리카 인종분규 나라들에서 청산기구들이 설치 운영되었다. 또 독일 통일 이후 동독정권의 독재를 다루기 위한 위원회가 설치 운영되었다. 이들의 활동은 우리에게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 나라들에서 제기되는 과거청산의 배경은 우리와 크게 다르고 다루는 과제들도 크게 차이가 난다. 이들 나라들은 인종차별이나 인종간의 분규 혹은 종교분쟁에서 야기된 문제를 안고 있다. 또 그들 군사정부 시절의 집단학살이나 실종사건들은 그 성격이 우리와는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과거의 부정적 유산을 청산하는 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일제식민지배로 인해 형성된 요소들을 제거하고 민족사의 바른 발전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이다. 둘째로 한국전쟁과 그 전후의 이념대립과 또 그 과정에서 행해진 수많은 집단학살을 둘러싼 갈등의 극복과 화해의 문제이다. 셋째로 독재정권이 자행한 국가 폭력과 수많은 인명살상, 인권유린 행위들을 사법적으로 처리하거나 역사적으로 심판하고 또 파생된 왜곡된 가치관을 바로잡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