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짐이자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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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짐이자 힘이다.

지수걸(근대 2분과)

  1. 과거청산의 실상과 허상

과거청산이 주요한 정치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문제 삼아진 ‘과거’는, 동학농민전쟁, 일제의 강제동원, 친일 반민족 행위, 제주 4·3사건과 노근리 사건,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대일 민간인 청구권 문제, 북파 공작원 사건, 삼청교육대사건, 민주화운동 탄압과 각종 인권유린 사건 등이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까지 19개의 법률이 만들어졌는데 5개는 이미 시행이 종료되었고 14개는 시행 중에 있다. 특히 2005년 5월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은 ‘확정 판결을 받은 사건은 제외한다’는 단서조항이 달려 있기는 하나, 항일독립운동과 해외동포사,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사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행위, 각종 국가 폭력 관련 사건, 기타 위원회가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 등 우리의 근현대사를 전체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국의 20세기는 민중들에게 늘 말세였고 난리통이었다. 국가공동체는 인간다운 삶은 고사하고 이들의 생존조차도 책임질 수 없는 형편이었다. 1894년 작은 난리 때도 1950년 큰 난리 때도, 식민화 과정에서도 조국 근대화 과정에서도, 민중들은 언제나 외세와 국가 폭력의 희생양이었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민중들이 요구하는 과거청산은 일종의 ‘씻김굿’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현재의 과거청산 운동을 ‘공멸과 분열의 굿판’이 아니라 ‘상생과 화해의 굿판’으로  거듭나게 하려면 공동체 구성원들이 각자 어떤 노력들을 기울여야할까?

 

 

과거청산 과정에서 흔히 제기되는 쟁점은, 무엇이 일어났는가(진상), 누구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가(책임), 그때 일어난 일이 옳았는가 틀렸는가(가치), 피해자의 슬픔을 이해하고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를 통해 현실 문제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의지) 등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과거사 관련 법들은 그 목적으로서, 진상(진실) 구명, 처벌과 보상, 명예회복과 예우, 기념사업과 위령사업 등을 강조함과 동시에, 법률 내에 조사범위와 대상, 조사기간과 방법, 조사기구와 예산 등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위와 관련한 쟁점들은 입장과 관점의 차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많다.

 

혁명이나 그에 준하는 정치변동이 일어날 경우 새로운 집권세력은 대대적인 과거청산 활동을 통해서 정치적 역학관계의 변화를 기정사실화하고, 나아가 지배권력 나름의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하곤 한다. 이런 때, 과거청산의 목적과 방법, 성격과 결과는 해당 사회의 정치문화 역량에 따라 다양한 편차를 보이기 마련이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어떤 나라들은 과거청산을 통해 민주적인 사회질서나 관계, 더 나아가서는 유의미한 공동체적 기억을 형성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반면, 어떤 나라들은 진실 구명은커녕 엄연한 현실을 지나간 일로 돌려버리거나, 범죄자들에게 면죄부를 쥐어주는 경우도 허다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여론 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정권의 지지도 하락, 보수정당과 언론의 정치공세 강화, ‘뉴라이트’의 등장 등으로 말미암아 과거청산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가 급속히 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과거청산을 반대하는 세력들은 참여정부의 과거청산 활동을 ‘좌파 민중 정권’의 ‘인민재판(거리의 재판)’이라 규정하면서 이념 공세를 강화하고 있으나, 과거청산을 주도하는 측은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처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며 단방문만을 남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필자도 과거청산은 시간문제일 뿐, 시대의 대세라 믿고 있다. 하지만 ‘폭로’와 ‘진실 구명’은 다르다. 과거청산의 ‘정치 이벤트화’는 필연적으로 수준 낮은 샅바싸움만을 부추길 뿐이라고 생각한다.

 

2. 수준 낮은 ‘샅바싸움’

 

최근까지 친일파 청산과 관련한 정치 사회적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그 과정에서, “아픈 과거를 들쑤셔 어쩌자는 거냐, 소모적인 논의는 그만두고 경제나 살리자”거나, “세금 낸 사람은 다 친일파 아니냐, 그들의 공(功, 근대화, 국가발전)도 인정해야 한다”는 등 구차한 변명들이 이러저러한 언론매체를 통해 무수히 제기되었다. 그러나 2004년 3월 <일제 강점 하 반민족행위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자, 여러 가지 단서 조항을 달고 있기는 하나,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한 목소리로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거청산 문제가 이념대립이나 정쟁의 주요 이슈로 부각된 것은 작년 노무현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를 통해 ‘포괄적인 과거청산’을 강조하면서부터였다. 물론 과거청산을 둘러싼 논쟁은 바람직하며 장려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제대로 된 의제화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정당이나 언론들은 지극히 소모적인 방향으로 과거청산 문제를 의제화하는 데 골몰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은 과거청산보다 사회안정을 원한다”거나, “진상 규명은 학계나 민간 연구기관에 일임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은 그래도 나은 편에 속한다. 어떤 이들은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국론을 두 토막 낸 과거사 탈레반’이라 비난하면서 법률 시행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조선일보≫(2005.11.14) 유근일 칼럼에는, “메뚜기 한철처럼 생겨난 각종 과거사위원회에 들어간 왕년의 투사들이 인건비 등으로 나랏돈을 함부로 빼먹고 있다”거나, “대중의 민족감정을 김정일과의 ‘우리 민족끼리’로 각색하고 있다”는 주장 등이 보이는데, 이런 원색적 비난들이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사회적 공기(公器)’라 불리는 언론을 통해 유포되는 경우, 과거청산 논의는 자칫 이전투구(泥田鬪狗)로 화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전투구의 문제점은 결코 시비를 가리기가 어렵다는 데 있지 않다. 가급적 이를 피해야 하는 까닭은 함께 더러워지고 더불어 망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같은 이전투구가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히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령 이영훈 교수(교과서포럼 공동대표)는 한 인터뷰(「노대통령은 성공할 수 없는 대통령」『데일리안』2005.10.17)에서, ‘한국 역사학ㆍ사회과학의 낮은 수준’, ‘좌파민중주의 정권의 탄생’ 등을 강조하면서, 금성출판사가 펴낸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좌파 민중주의적 역사관을 체계화한 것’이라 규정한 바 있는데, 이런 식으로 논쟁을 도발하는 경우 대개는 ‘수준 낮은 샅바싸움’만이 가열될 가능성이 크다. ‘자학’, ‘친북’, ‘반미’, ‘선악 이분법’, ‘사이비 이념종교’, ‘아버지 지우기에만 익숙한 수정주의자들과 386세대’(교과서포럼 편, 2005『한국 현대사의 허구와 진실』, 두레시대 참조) 등의 비난은 학문적 비평 수준을 넘어선 일종의 정치선동일 이다.

 

2005년 10월 5일자 『주간조선』에 실린 「진보 지식인의 목소리가 달라지고 있다/ 안병직ㆍ김용준ㆍ정성기 교수 등 대표적 진보학자, 대북 인식 등 ‘좌편향 사회’에 잇단 경고」 등의 기사도 이전투구를 부추기기 위한 보수 언론의 조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공인인 학자로서 부적절한 발언을 한 안병직 교수의 책임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의 ‘건달 정부’ 발언을 한껏 키워서 이전투구에 활용한 보수언론도 당연히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안병직 교수가 제기한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중진 자본주의론’ 등은 학계의 논쟁거리가 되기에 충분한, 대단히 중요한 문제 제기였다고 본다. 하지만 ‘건달 정부’ 발언은 사적인 것이었지 기사로 다룰 만큼 중요한 공언은 아니었다고 믿고 싶다.

최근에 등장한 ‘뉴라이트 집단’의 문제 제기도 바람직하지 못하기는 매한가지다. 이들은 ‘자유주의’라는 정치사상적 입지를 선점한 뒤, 자신의 정치적 적들을 모조리 ‘올드레프트’, 혹은 ‘조선노동당원’으로 몰아세우는 ‘샅바싸움’만을 도발하고 있을 뿐이다. 전상인 교수는 「뉴라이트 싱크넷 보고서 Ⅰ」에서 과거청산 논란을 ‘과거사 내전’이라 규정하는 등 유치한 ‘좌우 이념 논쟁’, 또는 ‘대한민국 정통성 논쟁’ 등을 고무하고 있는데, 최근에 발생한 강정구 교수 사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가운데 과연 이같은 논쟁이 가당하기나 한 것인지, 되묻고 싶을 뿐이다. “우리가 정신 놓고 있는 중에 좌파 민중주의자, 혹은 김정일 추종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는 무지막지한 정치선동이 판을 치는 가운데서는 학문적 논쟁이 불가능하다.

 

3. 의제 설정의 방향과 방법

얼마 전 『교수신문』을 통해, “식민지 혹은 독재의 과거를 처절하게 응시하고 넘어서려는 노력이 인적·법적 청산으로 축소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는 임지현의 견해와, “성찰적 과거청산과 인적·제도적 청산을 병행해야 한다”는 조희연의 견해가 같은 지면에 소개된 바 있다. 짧은 글들이기는 하나 이들에 의해 촉발된 논의들은 과거청산의 목표와 방법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지평을 넓히는 데 나름대로 기여한 것으로 믿어진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유치한 ‘샅바싸움’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는커녕 심지어는 사회적 의제(agenda)조차도 점차 모호해지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일제하의 민족독립운동이나 해외동포사’, ‘정부 수립 후의 헌정질서 파괴행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적대하는 행위’ 등 모든 과거사를 무차별적으로 문제 삼는, 누더기 법률(<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과거청산의 목표와 방법을 둘러싼 정치 사회적 논란은 점점 더 소모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념이나 관점을 달리하고 보면, 청산해야 할 과거는 무한대로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또 청산의 목표나 방법에 대한 의견도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과거사 정리 기본법>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법률이다.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려면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가운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역사(기억과 기념)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부터 함께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과거청산은, 공동체 구성원 스스로가 공동체의 과거를 역사화하는 행위임과 동시에 공동체의 생존과 인간다운 삶을 열어가는 미래 창조 행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청산 논의를 생산적으로 진행하려면 적절한 의제설정이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의제설정이 잘못되는 경우, 청산의 대상이나 목적 및 방법을 둘러싼 논의는 합의는커녕 오히려 혼란만을 야기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일제 하의 민족독립운동과 친일파 청산 문제, 헌정파괴 행위와 민주화운동 문제, 동학농민혁명 희생자와 한국전쟁기의 민간인 학살 문제를 아무런 구분 없이 문제 삼는 경우, 진상 규명은 물론이고 처벌과 보상에 대한 논의 자체도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청산해야 할 과거를 국가가 법률로 특정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문제 삼아진 과거는 대개 국가가 특정한 과거가 아니라 시민들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문제 제기에 의해 의제화된 과거들이다. ‘민족독립운동과 친일 반민족행위’, ‘국가 폭력(범죄)과 민주화운동’을 구분하지 않고서, 국가가 법률에 의거하여 과거사를 총정리한다는 발상은 무용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과거청산의 목적과 방법을 논의할 때도, 지나간 과거인가 현재 진행 중인 현실인가, 법적·정치적 청산 대상인가 역사적·도덕적 청산 대상인가 하는 것을 구분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가령 “과거사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학술원)나 후손들(역사)에게 맡기자”는 주장을 제기할 때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일과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가려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같은 발언은 진행 중인 현재를 ‘다 지나간 일’, 또는 ‘때늦은 일’로 돌려버리려는 눈속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사 정리 기본법>을 입안하는 과정에서도 논란이 되었듯이, 지난 일이냐 아니면 현재 진행 중인 일이냐를 따지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과거’와 ‘진행 중인 현재’, ‘정부 수립 이전과 그 이후의 과거’ 정도는 최소한 구분하는 가운데 논의를 진전시켜야 그 논의가 생산적일 수 있다.

 

졸속한 법적·인적 청산론을 비판하면서 이른바 ‘성찰적 과거청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견해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성찰적 과거청산’을 강조할 때에도 법적·인적 청산의 필요성이나 의미를 애써 부정하려 해서는 안된다. 공자는 “원한을 덕으로 갚으면 어떻겠습니까”라는 물음에 대해, “원한은 직(直)으로 갚는 것이요, 덕은 덕으로 보답하는 것이다(以直報怨 以德報德)”라고 말했다. 물론, ① 도덕적 윤리적 책임을 강조할 것인가(예를 들면, 공론화하여 귀감을 삼거나 교과서에 기록하는 것) 아니면 법적·정치적 책임을 더 강조할 것인가(형사 처벌, 공직 사퇴) ② 개별보상을 실시할 것인가, 집단적 보상(지원재단 설립, 장학사업)을 실시할 것인가 ③ 경제적으로 보상할 것인가, 위령 사업이나 기념사업 등을 통해 보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안에 따라 그 답이 달라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정치적 힘이 미치는 수준까지, ‘직(直)의 원칙’에 의거한 처벌과 보상이 실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정의는 사회적 행위에 대한 시비를 가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게 했을 때 비로소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짐이자 힘이라는 말이 있듯이, 공동체의 과거 역사는 역사전개의 디딤돌이자 성취의 한계를 규정하는 걸림돌이기도 하다. 따라서 청산 대상이나 목적 및 방법 등을 논의할 때, 우리 사회의 정치·문화적 조건이나 한계, 또는 국가․민족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목표나 가치를 총체적으로 따져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이런 역사적 사유나 통찰이 결여되는 경우, 과거청산 논의는 불가피하게 패권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 공동체의 올바른 발전 방향을 모색할 때, 성현들은 끊임없이 시중지도(時中之道)를 고민했다. 하지만 시중지도를 모색할 때에도 무엇이 정직이고 정의인가를 편의적으로 규정하려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현재와 미래에 대한 희망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신념(先進祖國論)’보다 ‘정의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더욱 튼실히 싹틀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법적·정치적 청산이 어려운 사안의 경우, 그에 대한 의제설정은 당연히 우리 사회의 역사문화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들 들면, 친일파 청산 논의는 자기반성과 성찰이라는 의제가 부각될 수 있도록 연구자들이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친일파 청산논의는 자칫 ‘희생양 만들기’라는 비난을 모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여조겸(呂祖謙)의 『동래박의(東萊博議)』에 보이는, “남을 논평하는 것은 남의 단점을 빌려 나의 단점을 반성하고, 남의 잘못을 빌려서 나의 잘못을 비판하기 위해서이다”라는 말, “소인의 열 가지 죄악이 본래 사실이로되, 그 죄악을 가증스럽게 여겨 내가 덧붙인 단 한 가지 비방 때문에 도리어 실제 죄악이 변해 거짓 죄악이 되는 수도 있다”는 말 등은 친일파 청산문제를 의제화하고자 할 때 우리 모두가 유념해야 할 충고라 여겨진다.

4. 시민(민중) 주체의 역사만들기 운동

성숙한 정치문화를 가진 사회는 심각한 정치 사회적 갈등이 조성되었을 때,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실사구시적 토론, 즉 시민 주체의 역사 만들기를 통해서 시비를 가리거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곤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자신의 역사적 경험과 의견을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는 그야말로 ‘기(氣)가 막힌’ 사회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치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분쟁 당사자들은 공도(公道)나 공리(公利)보다는 자신의 사적 이익을 앞세우는 투쟁, 공식부문의 정치보다는 ‘돈이나 빽’을 동원한 뒷거래를 통해서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흔히 말하듯, 공동체의 과거에 대한 ‘주체적 사유’, 또는 ‘소통적 진실 찾기’가 결여된 가운데 형성된 정체의식이나 애정은 사상누각이거나 허위의식인 경우가 허다하다. 왜냐하면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이나 자부심은 공동체의 역사를 함께 사유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더 크고 깊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과거청산을 위해 시민 주체의 역사만들기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데 있다 할 수 있다. 몇 년 전 공주 인근의 금대마을 주민들과 함께 경험한 ‘소통적 진실찾기’를 통해서 필자는 소통 그 자체의 중요성은 물론이고 우리에게 시민(민중) 주체의 역사만들기 운동이 왜 중요하고 필요한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공주시 계룡면 금대리는 그 마을 출신 활동가, 즉 정용산(鄭龍山; 공주청년동맹 간부, ‘三宅敎授事件’ 관련자), 정상윤(鄭相允; 공주군 인민위원회 위원장) 등의 영향으로 ‘공주의 모스코바’라 불릴 만큼 좌익세가 강력했는데, 한국전쟁 직후 십수 명의 주민들이 공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좌익사범들과 함께 ‘왕촌 골짜기’에서 처형되었다(『공주신문』 2001. 6. 8). 마을 정자나무 밑에서 대학원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집단학살된 이들을 어떻게 호명해야 할 것인가(양민, 민간인, 애국자, 빨갱이, 혁명투사)? 기념사업을 한다면 누가 어떻게 시작해야 할 것인가? 유해를 발굴한다면 어떤 사전 사후 조처나 준비가 필요한가(몇 년 전 한 방송사가 발굴을 시도한 적이 있으나, 필자는 말렸다)? 등으로 논제가 모아지기 시작했다. 주위를 서성대다 정자나무 주변에 자리잡은 노인들은 처음에는, “골치 아프게 뭐 그런 문제를 새삼스럽게 들춰내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차츰 분위기가 무르익자, “그 사람들 때문에 동네사람들, 애꿎게 많이 죽었지”, “다들 똑똑했지, 아까운 사람들이야” 하는 식으로 여러 가지 반응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의 큰형님이 왕촌 골짜기에서 학살되었다는 한 노인의 일갈로 이야기판은 끝이나고 말았다. “쓸데없는 짓거리하지 말고 냅둬, 통일되면 다 해결될 거야.” 이런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발터 벤야민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 생각난다. “적이 승리하면 죽은 자조차 적들로부터 안전치 못하다. 이런 믿음을 가진 역사가만이 과거 속에서 희망의 불꽃을 피워 올릴 수 있다.”

최근 “우금티 기념사업,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우금티사업회 회원들과 토론하다가, ‘운동의 한계’(최근 사단법인화했으나, 회원은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를 돌파하기 위한 방안으로써, 공주지역의 근현대사를 시민운동 차원에서 문제 삼아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 본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공주지역에 산재해 있는 ‘박제순 거사비’, ‘이근택 묘지명’, ‘왕촌 학살터’와 같은 유물 유적 등과 더불어, 왜 구시가지 한 가운데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는지, 신시가지가 난개발된 이유가 무엇인지 등도 따져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너무 생뚱맞게 문제를 제기해서 그런지 회원들의 이해와 지지를 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관련 연구자들이, ‘지역사에 대한 인식지평(역사적 상상의 폭과 깊이)을 넓혀주는 일’, ‘지역사 자료나 사실을 정리하는 일’ 등을 충실히 수행해 나간다면, 시민 주체의 역사만들기 운동도 결코 불가능한 영역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확신을 나름대로 가질 수 있었다.

 

 

역사학연구소가 편찬한 『노동자, 자기 역사를 말하다』(서해문집, 2005)는 시민 주체의 역사만들기 운동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노동자 주체의 역사만들기는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이다”라는 주장은 시민 주체의 역사만들기 운동을 전개한다고 할 때, 특별히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나탈리 지먼 데이비스(2000『마르땡게르의 귀향』, 지식의 풍경)는, 역사학자로서의 자기 소망을, “나는 오늘날의 사람들이 과거의 비극과 고통, 잔인함과 증오, 과거의 희망, 그리고 사랑과 아름다움을 지켜봄으로써 과거와 연결될 수 있기를 원했다. 특히 나는 과거는 달라질 수도 있었고, 사실은 달랐으며, 대안은 분명히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과거청산 운동은 물론이고 시민 주체의 역사만들기 운동도 이러한 소망의 실현 과정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5. 역사만들기 운동과 역사지식 역량 강화

과거청산 운동을 제대로 전개해 나가려면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역사학자들의 관심과 참여, 특히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지평을 넓혀주는 일,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자료나 사실을 잘 정리해주는 일 등이 필수적이다. 물론 한국사학계는 지금까지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필자는 한국 사학계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낙관의 근거는 대략 두 가지인데, 그 하나는 최근 참여정부가 ‘기록 없는 정부 없다(No Records, No Government)’는 기치 아래 <국가 기록관리 혁신 로드맵>(특히 국가 역사지식 역량 강화 프로젝트)을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세계화나 정보화의 진전과 더불어 한국사 연구자는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의 역사의식도 더욱 넓고 깊어지고 있다는 사실 등이다.

 

조선왕조는 국왕과 관료의 언행, 공문서 내용, 사건 처리 과정 등을 빠짐없이 기록하여 사초(史草)를 만들었으며, 국왕이 서거한 뒤에는 사초와 각 관청의 편찬기록, 개인문집 등을 모아 연대기식으로 실록을 편찬하였다. 이같은 실록편찬제도는 절대권력을 가진 국왕도 침해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한 영역이었다. 조선왕조 사회는 실록과 같은 정사체 역사 이외에 대동야승(大東野乘)과 같은 야사체 역사도 여럿 생산했는데, 이러한 역사만들기는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끊임없이 재해석(재구성)하는 과정임과 동시에 공동체의 역사문화를 창조적으로 전승하는 일종의 문화적 실천행위였다. 하지만 이같은 기록문화 전통은 우리의 국가 운명처럼 식민지화 이후 지극히 왜곡된 형태로 ‘근대화’되었다.

 

대한민국의 ‘근대 국가 만들기’는 기록을 통해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억압성과 폭력성을 끊임없이 은폐하고 왜곡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게다가 군사독재정권은 정권 유지를 위해 기록을 아예 생산하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파기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가령, 대한민국의 국가적 중대사를 정부가 소장하고 있는 기록을 중심으로 재구성해보면 국가의 역사지식 역량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2003년 12월에 열린 한국기록학회 제4회 심포지움(「한국 근현대사와 기록」)에서도 지적되었듯이, 각종 정책이나 사건 관련 기록들은 이미 소각되었거나 산실된 상태이다. 2004년 12월 현재 국가기록원이 소장하고 있는 문서량은 118만권(1996년 현재 43만여 권)에 달하나, 역사적 가치가 풍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이같은 사정은 1999년 1월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통과된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① 국가적 중대사에 대한 기록 생산 의무를 명문화한 것 ② ‘기록물 분류기준표’(일종의 Records Schedule)를 작성하여 기록을 체계적으로 선별․분류할 수 있게 한 것 ③ 기록관리 전문요원의 배치를 의무화한 것 ④ 기록의 무단파기 행위를 법률로 규제한 것 등은 위 법률의 획기성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록은 가급적 생산하지도, 관리하지도, 공개하지도 않는다는 원칙’은 여전히 강고하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참여정부는 <국가기록관리 혁신 로드맵>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중인데, 핵심 의제는 ‘공적 행위의 철저한 기록화’, ‘기록관리 조직 및 시스템 혁신’, ‘국가 역사지식 역량 강화’ 등이다. 물론 위의 의제들이 얼마나 실천될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로드맵대로 ① 대통령기록관, 특수기록관, 지방기록관 설립 ② 정보공개 및 비밀기록관리 체계화 ③ 각급 공공기관의 공공기록 편찬 활성화 ④ 중요 국가기록 수집 및 활용체계 개선 ⑤ 역사기록 서비스 연계망 구축 사업 등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우리 사회의 역사지식 역량은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국가 역사지식 역량 강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가 독자적으로 사료관(사이버사료관 포함)을 설립한 것, 그리고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자료관 설립(‘과거사연구재단 설립’) 계획을 포함시킨 것 등은 대단히 바람직한 현상이라 이해된다.

하지만 국정원, 경찰청, 국방부 등이 수행하고 있는 과거사 청산 작업은 기록의 수집과 공개라는 차원에서 볼 때, 여러 가지 문제점이 엿보인다. 가령 ① 국정원 과거사위원회가 ‘김형욱 실종사건’의 진상을 구명하기 위해 국정원 존안자료(비밀이 해지된 기록) 1만 9천여 쪽을 분석했다는 기사 ② 경향신문 사건과 관련한 국정원 자료가 무려 300여건, 2만 8천 5백여 쪽에 달한다는 기사 ③ 국방부 과거사위원회가 실미도 부대원 4명의 ‘육필증언’을 공군 문서고에서 발견했다는 기사 등은 국정원이나 국방부 등에 아직도 많은 국가기록이 존재함을 보여주는데, 이런 기록들은 현재까지 국가적(<공공기록 관리법>)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 가운데 방치(사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전 국방부(위원장 이해동), 국정원(오충일), 경찰청(이종수) 등 3개의 과거사위원회 대표가 모여 관련 사건에 대한 ‘공동 조사’, ‘자료 공유’ 등을 협의했다고 한다. 이 기사를 보면서도 필자는, 과거사 조사과정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기록조차도 원질서가 해체되거나 유실(파기)되는 사태가 초래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위 기관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과거를 청산할 의지가 있다고 한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관련 기록을 수집·공개(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는 작업부터 진전시켜야 한다. 원본 공개가 어렵다면 최소한 목록만이라도 공개해야 한다.

 

과거청산의 첫걸음은 늘 ‘진상 규명(진실 구명)’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활용(접근) 가능한 기록이 많아진다고 해서 역사적 진실이 곧바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역사적 진실이 제대로 구명되려면 우리의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지평이 더 넓고 깊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 즉 과거 사실에 대한 끊임없는 재해석 과정이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는 왜 36년‘씩이나’ 일제의 지배를 받았을까?” 라는 질문과, “왜 일제는 36년‘밖에’ 우리를 지배하지 못했을까?”는 같은 질문일 수도 있으나, 전혀 다른 역사적 상상을 자극하는 질문이다. 이는, “우리는 왜 그다지도 가난했을까?”라고 질문할 때와 “우리는 어쩌다 이처럼 부자가 되었을까?”라고 질문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질문하는가에 따라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상상의 폭과 깊이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최근, ‘이항대립적(침략↔저항, 친일↔반일, 민족↔반민족) 역사인식 극복’을 표방하며 제기된, ‘협력론’, ‘회색지대론’, ‘식민지 공공성론’, ‘일상사론’, ‘식민지 근대성론’ 등도 역편향이나 실증적 오류 문제를 제쳐놓고 보면, 친일파 문제나 일제시대사에 대한 인식 수준을 넓히는 데 여러모로 기여를 했다고 말해야 옳다. 지나친 낙관일는지는 모르나, 필자는 인터넷에 떠도는 시민들의 글들을 보면서도 이같은 확신을 더욱 굳힐 수 있었다. 시민 주체의 역사만들기 운동이나 과거청산 운동은 이런 연구성과가 더 축적되어야 생산적일 수 있다. 필자는 ‘해석의 무한성’, ‘가치의 상대성’, ‘지식의 지역성’을 강조하는 이른바 포스트모던적인 학문경향도 ‘인식 지평 넓히기’나 ‘소통적 진실 찾기’를 고무하는 효과가 적지 않았다고 믿고 있는 편이다.

 

서구의 경우 역사학(문명)의 위기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공동체 역사에 대한 무지, 역사학의 유용성에 대한 회의, 역사학이 누려온 특권적 지위의 상실, 학문 후속 세대의 단절 등 이른바 ‘탈역사화 현상’을 강조하는 담론들이 유행인 듯싶다. 물론 우리의 경우도 여기서 예외는 아닌 듯 보인다. 그동안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들이 지나치게 운동사나 사상사(폄하하면 ‘인식사’)에 집착해 온 것, 또는 최근 들어 말단지엽적인 생활문화사나 일상사 연구가 유행하고 있는 것(탈정치화된 전문화) 등도 어쩌면 이런 추세의 한 반영이라 말해야 옳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현상조차도 일종의 ‘과도기적 진통’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과거 청산 과정에서 문제 삼고 있는 우리의 과거, 예를 들면 침략과 저항, 분단과 전쟁, 독재와 민주화, 근대화와 산업화의 역사는 다른 어느 나라의 과거보다 역사적 상상과 사유(인문적 사유, 유의미한 기억)를 자극하는 풍부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듯이, 역사학의 주요한 연구대상은 인간경험의 가능성과 인간행위의 창조력이다. 역사학은 진보와 해방이 필요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학문이기도 하다. 역사학에 대한 이같은 믿음 가운데서 역사 연구자나 관련 학회가, 자료 수집이나 활용 시스템을 구축하고, 시민 주체의 역사만들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도와 나간다면, 우리 사회의 역사문화 역량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흔히 말하는 ‘역사학의 위기’는, 국가와 민족을 초(/탈)역사화한 뒤 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는, 낡은 ‘국사학(國史學)’의 위기일 뿐이다.

한마디 더 덧붙이면, 한국 근현대사 그 자체는 우리가 가진 훌륭한 역사문화 콘텐츠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유산(heritage) 산업’ 혹은 ‘향수(nostalgia) 산업’이라는 말이 있는 모양인데, 근래에 한국 근현대사를 소재나 배경으로 한 영화나 소설이 국내나 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우리 근현대사(역사문화)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가치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20세기에 인류가 진전시킨 세계사적 실험의 결과와 의미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역사, 달리 말하면 인간이 어디까지 의연해질 수 있고, 또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역사이다. 한국 근현대사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이같은 힘과 가치에 대한 신념과 기대를 버리지 않는 한 한국 역사학계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라 믿는다.

 

6. 과거청산과 인문적 사유의 힘

과거청산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일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과거청산 논의는 당연히 공동체의 생존과 인간다운 삶에 기여하는 방향, 달리 말하면 우리 사회의 역사문화 역량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방향으로 의제화가 진전되어야 마땅하다. 물론 사안에 따라 각기 다른 입장과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논쟁을 기피하거나 막으려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공동체의 과거 역사에 대한 애정과 신뢰에 기초한 토론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의미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도 강조했듯이, 극단적인 이념대립이나 유치한 샅바싸움으로 시종일관할 경우, 과거청산 작업은 사회적 분열과 갈등만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과거청산 노력과 관련하여 첫번째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사회정의의 실현, 더 나아가서는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직(直)의 원칙’에 근거한 포폄(褒貶)이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한을 덕으로 보답하는 것(以德報怨)은 사적인 차원에서 볼 때는 큰 미덕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한 미덕은 개인적인 선택일 뿐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공적 행위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회적 악행에 대해서는 ‘직(直)의 원칙’에 근거한 철저한 응징과 청산이 필요하다(以直報怨). 특히 공인(사회 지도층)이나 국가(권력 담당자)의 역사를 포폄하는 과정에서는 ‘직(直)의 원칙’을 더욱더 엄격히 관철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물론 관철하기 어려운 원칙이나 도달하기 힘든 목표에 기초한 단죄론은 패권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인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진상 규명을 통한 처벌과 보상은 정치 역량의 문제이지, 원칙을 굽히거나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 망각의 반대말은 기억이 아니라 정의여야 한다.

두번째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과거청산 논의는 시민(민중)의 지성화, 역사 주체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4년 11월 400여 개의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가 조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청산 운동은 점점 더 시민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물론 보수 언론이나 정당들의 정치공세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모두 그들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흔히 말하는 춘추정신(春秋情神)이란 남을 비판하고 단죄하는 행위보다는 역사 주체(公的 存在)로서의 자기 자신을 더욱더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행위, 달리 말하면 공동체 구성원의 지성화, 역사 주체화를 더 중시하는 정신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가 주도의 과거청산 활동과 지역별 계급․계층별 역사만들기 운동을 제대로 결합하는 경우, 과거청산 운동은 기대 이외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도 있을 것이라 믿어진다. 과거청산 운동은 ‘정의와 정직’, ‘관용과 연대’의 정신에 기초한 다중주체적인 역사인식, 달리 말하면 공도(公道)와 공리(公利)에 대한 공통의 인식과 기억을 만드는 시민 주체의 역사만들기 운동으로 거듭나야 한다.

세번째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과거청산 과정에서 수집․생산된 기록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국가 기록관리혁신 로드맵’은 진행 중인 계획일 뿐이다. 관료사회의 저항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 개혁 자체가 언제든지 중단되거나 변질될 수 있다. 역사기록을 잘 수집하고 활용하는 일은 과거청산 활동의 기본이자 목표가 되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과거청산 활동 과정에서 수집했거나 생산한 기록들을 잘 남기는 일은 시민 주체의 역사만들기 운동을 활성화한다는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현재의 역사와 문화를 후손들에게 제대로 전승한다는 차원에서 볼 때도 대단히 커다란 의미가 있는 역사문화 행위이기 때문이다. 앞서도 강조했듯이 현재 국정원, 국방부, 경찰청 등이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과거청산 작업은 제대로 된 기록관리가 선행되지 않을 경우, 오히려 기록을 파기하고 은폐하는 과거 감추기나 지우기 작업이 될 가능성도 크다. 관련 연구자나 학계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록관리 혁신계획, 예를 들면 청와대․국정원 등 권력 핵심기구의 기록관리체계 혁신(공공기록 관리법의 적용), 정보 공개 및 비밀기록 관리체계 개선, 국사편찬위원회와 국가기록원의 조직 통폐합 등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자기비판과 성찰이란 과거에 행한 우리 사회의 선택과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를 따지는 과정, 달리 말하면 현실의 소연(所然)을 통해 소이연(所以然)을 구명하고, 현실조건 내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소능연(所能然)을 토대로 다시 소당연(所當然)을 추구해 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과거는 우리의 짐이자 힘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총체적 사유가 결여될 경우, 시민의 역사주체화는 물론이고 제대로 된 과거청산도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과거는 우리에게 짐임이 틀림없으나, 훌륭한 역사가란 짐을 힘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이다. 우리 시대는 이런 능력을 가진 역사가들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의 힘’에 대한 신념 없이 진행되는 과거청산은 생각만큼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과거청산은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추스리고 마무리하는 끝내기 수순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적 삶을 모색하는 힘찬 출발과 도약의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두서없는 글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