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학술대회 후기 – 역사학과 민주주의, 그리고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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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학술대회 참관후기]

 

역사학과 민주주의, 그리고 해방

 

이민성(근대사분과)

 

□ 일시: 2015년 8월 13일 토요일 1시
□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애오개홀
□ 주최: 한국역사연구회·역사문제연구소·역사학연구소

0. 기조발제: 역사학과 민주주의, 그리고 해방
발표: 정용욱(서울대학교)

세션1
1. 역사를 통해서 본 한국의 민주주의
발표: 박찬승(한양대학교)
2. 해방이전 시민사회 형성과 민주주의 인식
발표: 한상구(역사문제연구소)
3.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민주주의
발표: 김동춘(성공회대학교)
4. 종전/해방 직후 남한, 민주주의의 전위(轉位)와 그 동학(動學)
발표: 임종명(전남대학교)

세션2
1. 과거사 정리와 한국 역사학계의 과제

발표: 전명혁(동국대학교)

2. 역사교육 ‘안팎’의 민주주의
발표: 김정인(춘천교육대학교)
3. 민주화와 역사 글쓰기
발표: 최규진(성균관대학교)



공동학술대회 『역사학과 민주주의, 그리고 해방』에서 눈길이 갔던 부분은 ‘해방 70주년’이었다. ‘해방’ 또는 ‘광복 70주년’, 그리고 ‘건국 67년’ 등 올해를 어떻게 부를지에 대한 논쟁이 있는데, ‘해방’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이번 학술대회의 성격과 지향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이해되었다. 또 해방 70주년을 기념하는 여타 행사들은 주로 내셔널리즘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그와는 달리 민주주의를 다룬 학술대회는 어떤 내용으로 구성될지 기대됐다.

공동학술대회 『역사학과 민주주의, 그리고 해방』은 역사학계 3단체(역사문제연구소·역사학연구소·한국역사연구회)의 공동 주최로 2015년 8월 13일에 진행되었다. 발표는 크게 세션 1과 2로 나뉘어 진행되었으며, 기조 발제는 정용욱 선생님이 맡아주셨다. 토론은 각 발표에 대한 지정 토론 대신 세션 2 발표가 끝난 뒤에 종합토론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기조 발제에서 정용욱 선생님은 최근 KBS의 ‘이승만 망명 타진설’보도와 향후 상황을 제시하며,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역사는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전쟁의 대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역사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며, 진실을 밝히려는 실제적인 노력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여 이용하는 구조적인 배경은 결국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한국 근현대사의 맥락 속에서 항시 중요하게 여겨졌던 실천·연구 과제였다는 점을 밝혔다. 나아가 역사학과 민주주의 실현은 상호적으로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세션 1에서는 민주주의의 역사화라는 주제를 다루었으며,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돌아보는 발표로 구성되었다.

박찬승 선생님은 「역사를 통해서 본 한국의 민주주의 – 자유민주주의를 중심으로」를 통해 한국현대사에서 자유민주주의가 반공주의를 통해 왜곡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즉, 해방 이전 한국에서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수용이 이루어졌지만, 해방 이후에는 반공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이승만과 여당 계열의 승리로 자유주의·민주주의가 사라지고 반공이 자유민주주의처럼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사회는 민주화 노정에 들어섰지만 ‘87년 체제’는 내외적으로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이에 박찬승 선생님은 ‘87년 체제’의 한계를 넘어 신자유주의 사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한상구 선생님은 「해방 이전 시민사회 형성과 민주주의 인식」이라는 발표를 통해 일제시기에 시민사회 형성의 단초가 존재했다고 주장하였다. 그 근거로 일제시기 ‘주민대회’를 제시하였다. 일제시기 주민대회는 지역 일반 주민과 지역의 유력자, 식민지 국가권력 삼자로 구성된 “살아있는 무대”였으며, 지역단위 현안 뿐만 아니라 ‘전국적·사회적 운동사건’에 해결과 실행에도 관심을 가졌다고 분석하였다. 또, 지역주민대회가 각 지역에 존재하는 특정 유력 집단이 주도했다고 보기는 힘들고, 주민대회 참여자들은 주민 대표성과 대의성을 가진 존재였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김동춘 선생님은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민주주의」 발표를 통해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검토·분석하였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분단과 안보논리는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저해했고, 지식층에 의해 주도된 민주화 운동은 가치로서 민주주의보다는 명분과 절차로서 민주주의 실현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들의 취약한 사상적 토대는 안보논리와 국가주의, 자본주의 앞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이에 한국사회에서는 ‘저강도의 파시즘’이 일상화되었다고 한다. 이에 절차로서 민주주의는 실현되었지만, 현재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임종명 선생님은 「종전/해방 직후 남한, 민주주의의 전위(傳位)와 그 동학(動學) – 미국 헤게모니 담론과 한국 민족주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를 통해 세계사적 맥락에서 민주주의가 종전/해방 직후 한국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로서 기능했던 것을 밝히고자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전체주의 국가에 대한 민주주의 국가의 승리로 귀결되고,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해방의 이념·휴머니즘’ 등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미국의 ‘전도사’들에 의해 ‘보편 원리’로서 제시되었고, 합리·이성담론의 강조를 통해 역사·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멸각(滅却)을 통한 미국 헤게모니 강조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종전/해방 이후 남한에서 민주주의가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내부적인 이유를 민족주의적 문제의식과 혁명주의적 문제의식으로 정리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 국가 승리의 세계 속에서 국가건설의 열망이 민주주의 수용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세션 2에서는 역사학의 민주화라는 주제에 대해 다루었으며, 역사학이 한국 민주주의에 기여한 바와 그 한계에 대해 살피고자 하는 발표로 구성되었다.

전명혁 선생님은 「과거사 정리와 한국 역사학계의 과제」에서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의 의의와 한계를 중심으로 과거사 정리 작업의 의미를 검토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여러 과거사 위원회 중 결정판으로서 2010년 12월까지 5년간 활동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한국 전쟁 이후 발생한 국가 폭력의 모습을 밝히고 피해자들이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고주의의 한계, 조사 시기에 대한 논란, 관료주의적인 모습, 이명박 정부 이후 진실화해위원회의 소극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하였다.

김정인 선생님은 「역사교육 ‘안팎’의 민주주의」를 통해 한국 역사교육계 내부에서 민주주의적 역사교육에 대한 성찰이 감지되고 있으며, 이는 역사교육계 외부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역사교육과 역사학의 연대 속에서 이 고민이 발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해방 이후 주장되었던 민주주의 교육은 미군정에 의해 현실화될 수 없었다. 이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1980년대는 학생운동화 광주항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소장 학자들과 역사교사의 연대, 새로운 역사운동의 길이 모색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뉴라이트의 등장은 민주주의적 역사교육에 대한 새로운 논란을 낳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국가가 역사교육을 둘러싼 논쟁을 주도하면서 이른바 ‘역사전쟁’이라 부르는 상황까지 일어났다. 이는 2013년 교학사 교과서 논란, 2014년 국정화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역사교사들은 이러한 논란 속에서 민주주의의 역사화와 민주주의 개념의 역사화를 통한 민주주의적 역사교육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김정인 선생님은 역사학이 함께 민주주의라는 문제의식 아래서 연대하여 전문성과 대중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최규진 선생님은 「민주화와 역사 글쓰기」라는 주제를 통해 역사학이 대중과 소통하려면 새로운 글쓰기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대중과 소통하는 새로운 글쓰기는 ‘학술적 글쓰기’와 ‘대중적 글쓰기’의 이분법을 넘어서야 하며 ‘대중 추수주의’와 ‘현학적’ 글쓰기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또, ‘탈근대 기획’의 문제의식을 담아야 한다. 나아가 연구자들의 현실 속에서 ‘자본과 국가’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더욱 ‘글쓰기 민주화’가 필요하며, 직접 글쓰기의 방식이 아닐지라도 역사학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여 민주주의와 탈근대의 가치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세션 2가 끝난 후 종합토론은 김성보 선생님의 사회와, 박구병·박명림·오제연·이상록·임경석 선생님의 참여로 진행되었다.

임경석 선생님은 한상구 선생님의 발표에 대해, “도·부·군·읍·면·리에서 전개된 다종다양한 주민 집합행동”을 모두 ‘주민대회’라고 일반화하기는 힘들다는 점, 주민대회의 대표성 논증의 문제, 면민대회 참가자의 배경에 관한 문제에 등에 대해 지적하였다. 또, 일제시기 면민대회가 전국적·사회적 현안에 관심을 두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하였다.

박명림 선생님은 역사학계에서 민주주의와 같은 ‘보편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사적이성의 극복과 공적이성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위해 역사학 내부 및 사회과학과의 소통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역사학계의 과다한 도덕주의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이상록 선생님은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에는 역사학자들에게도 책임이 있으며, 역사학이 민주주의에 대해 어떻게 기여할 지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를 위해 민주주의의 일상적·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민주주의의 서사를 재구성하여 자본주의적 삶 속에 축소된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 하였다.

박구병 선생님은 한국의 민주주의 연구가 세계 민주주의의 지성사 차원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하였다. 즉, 민주주의의 세계사적 맥락이 한국 민주주의의 수용과 발전에 있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고대 아테네로부터 근대 민주주의 이행이 ‘민주주의의 의미 축소’라는 세계사적 맥락으로 이해된다는 점을 제시했다.

오제연 선생님은 박찬승 선생님이 해방 이후 반공의 영향력을 여·야로 구분했던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다. 즉,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여·야를 막론하고 반공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이다. 임종명 선생님의 발표에 대해서는 민주주의 수용이 주로 지식인층의 담론 수용 위주로 설명되는 부분에 대해, 보다 대중적 차원에서 수용 문제에 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고 논평하였다. 김동춘 선생님의 발표에 대해서는 최근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제약 요소는 과거와 다른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였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반공은 과거보다 넓은 ‘혐오’의 맥락으로 확대되었다. 한국 자체에 대한 혐오를 의미하는 ‘헬조선’과 같은 용어도 등장하고 있다.

민주주의란 단순히 절차적인 차원을 넘어 일상 속에서 실현되는 가치로서 이해된다. 즉, 현대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부터 국가와 국가까지 모든 ‘관계 맺음’은  민주주의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사회적 갈등도 결국 민주주의 가치의 실현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해방 이후에서부터 최근 사회적 문제까지 민주주의의 문제로서 인식하고 역사화하려는 시도는 ‘87년 체제’ 위에서 새로운 ‘해방’을 모색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해방’의 토대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한편 1987년 이후 태어난 세대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자란 세대라는 점에서 그들의 인식이 새롭게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87년 체제’에 대한 세대 간 인식 차이에서부터 민주주의의 위기, 과거사 청산과 같은 문제에 대한 ‘새로운 세대’의 인식은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변수일 수 있다.

또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제기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향후 역사학계, 나아가 한국 사회전반에서 ‘민주주의의 역사화’, ‘역사의 민주화’를 화두로 한 보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논의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이러한 역사학계의 논의가 한국 사회 전반으로 확장된다면, 그 자체를 이미 ‘역사의 민주화’로서, ‘해방’의 노정이 시작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