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 위기 극복의 주체와 방법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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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 위기 극복의 주체와 방법을 다시 생각한다.

 

중고등학교 교실붕괴에 이어 대학의 붕괴가 운위되더니 급기야 ‘대학원 붕괴’가 초미의 관심사로 되고 있다. 6월28일자 교수신문은 2004년도 전반기 대학원 입시현황을 머리기사로 실으며 정원조차 채우지 못하는 국내 대학원 현실을 진단하고, <대학원 교육 어디로 가는가>라는 초점 기사를 통해 ‘학문 공동화’ 현상의 원인을 추적, 한국 대학이 위기상황에 처해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 분석기사는 이공계를 중심으로 다루면서, 군소대학->지역거점대학->수도권대학->외국대학으로 학생들이 빠져나가는 도미노현상을 문제삼고 학생부족과 연구의 질 저하를 걱정하고 있지만 뚜렷한 전망을 보여줄 수 없음에 안타까워한다.

기초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의 위기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지적되어왔지만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바 없다. 최근 이공계 쪽에서 더 크게 들리는 대학원 위기의 목소리도 그 반향은 그리 큰 것 같지 않다. 우수한 학생들이 기초학문을 외면하고, 이공계를 기피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을 꺼려한다면 장차 이 나라의 미래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진정 우리나라 고등교육은 구제받을 길이 없는가?

정부는 고등교육 위기의 원인을 대학의 확장에만 매달려온 대학 자체의 구조조정 실패에 따른 경쟁력 약화에 돌리고 당근과 채찍으로 구조조정을 독려하려고 하나, 이는 그 원인 파악이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방법론적으로도 타당하지가 않고, 게다가 책임 소재를 흐리게 한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 교육관료 주도의 구조조정을 일단 중단하고 대학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사립학교법 등 기본 법령부터 정비하라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사립학교법 개정 요구는 정쟁의 대상으로만 취급될 뿐 그 진정한 의미는 묻혀지고 있다.

우수한 학생들이 기초학문을 기피하는 현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출세와 개인적 이해만을 추구하는 오늘의 세태나 기어코 법대와 의대에 입학하겠다고 하는 학생을 탓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학생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 것인가? 우선 학생들이 법대나 의대 등 안정적? 직업이 보장되는 분야를 선호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특히 아이엠에프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이 노골화되면서 ‘노동시장 유연화’에 의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증 현상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식들이 전망도 보이지 않을 공부를 한다는데 찬성할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우수한 학생들이 그래도 소신을 가지고 힘든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식민지적 체질’이다.

한 사회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 정보, 윤리, 무엇보다도 한 나라의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겠다고 하는 학문정책, 고등교육정책이 있어본 적이 없는 이 땅에서 어떻게 자생적인 학문이 꽃피울 수 있을 것인가. 우선 급한 대로 기술이나 지식은 빌어다 쓰면 되고,고급두뇌 양성은 선진 국가, 특히 미국에서 그것도 자기들이 돈을 들여서 책임을 져주는데 애써 돈들이고 힘들이면서 고등교육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겠는가. 사정이 이러할진대 우리 사회를 문화적 식민지라고 부른들 누가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겠는가.

정부는 대학의 무분별한 확장이나 서열화된 대학체제가 문제라고 하여 능력없는 사학의 청산을 유도하고 국공립대학의 민영화를 추진하여 경쟁체제를 도입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국공립, 사립을 막론한 대학의 확장은 대학 자체의 의도나 학생들의 교육열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정부의 무분별한 대학정책(대학정원 정책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과 보다 깊은 관련을 가진 것이며, 무엇보다 정부의 사회정책(직업 인력정책)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과 같이 ‘고졸’ 취업자가 비참한 대우를 받는 나라가 어디 또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최근 ‘학벌철폐’의 방향은 잘못돼도 상당히 잘못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의 서열화를 문제삼기 전에 먼저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사람답게 대우받을 수 있는 사회풍토, 임금구조의 개선을 위한 조처를 취할 준비를 해야 하고, 어떤 대학을 나오더라도 나름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대학이 대학다워져야 하며, 우수한 인재를 모아놓고도 아무 동기부여를 할 수 없는 학문부재의 대학풍토를 쇄신할 수 있는 진정한 고등교육정책, 학문정책이 수립될 수 있도록 정부는 물론 온 사회가 새롭게 대학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사실 그간 교육당국은 대학설립의 기준이나 대학정원을 가지고 대학을 조정해 왔다. 한국 대학 교육의 75% 이상을 점하는 사립대학들은 장사가 잘되는 하나의 기업과 같은 ‘설립자’의 사유물로 취급되어왔고, 국공립대학이라고 하여도 그 특성이 크게 다를 것이 없게 되었다. 국공립대학의 경우 특히 국립사범대학의 ‘특권’이 사립대학의 요구에 의해 부정되면서 사립대학과의 차별성이 더더욱 흐려졌는데, 더구나 정부가 파견한 교육관리가 그 운영의 주체였기 때문에 그 자율적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당초부터 가능할 수 없었다. 사립대학이 각종 비리로 얼룩지게된 것도, 그리고 국공립대학이 관료제적 통제 속에서 경직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책임소재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우수한 학생들이 학문에 등을 돌리고 대학을 세속적 출세의 징검다리 정도로 치부하게 된 현 사태는 우리 사회의 유치한 문화수준과 정부의 저급한 고등교육정책, 대학 당국의 부패와 무능력, 대학 운영의 주체가 되어야 할 교수집단의 무사안일 등이 총체적으로 어울려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과거 산업화시대 세계 분업구조에 편승하여 중간 수준의 기술과 노동력만으로도 성장이 가능했던 시절에는 한국의 대학도 그 나름의 역할이 없지 않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인력을 수급하는데 일정한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많이 변한 이 시점에서 기왕의 체제를 가지고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음 또한 사실이다. 그것은 대학 입학정원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더 이상 우리의 대학이 자신의 삶을 보장해주지 못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산업구조가 젊은이들의 의식구조가, 무엇보다도 대학 자체가 너무도 변하지 않았고 또 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때문이다.

일찍이 율곡 이이(1536-1584)는 그의 <동호문답>에서 시폐를 구하는 객의 질문에 답하면서, 공교육기관인 향교가 퇴폐해지는 이유를, 당시 세태가 훈도 직을 천한 것으로 알아 자격이 없는 자들이 호구지책으로 삼을 뿐,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 만한 자들이 그 직을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아울러 중앙 성균관 선비들의 풍습이 날로 어그러지는 것은 유생들의 허물 때문이 아니고 조정에서 그들을 이끄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확론한바 있다. 우리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의 현실에 비추어보았을 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그가 활동하던 16세기는 나라의 기틀이 새롭게 잡혀가는 시기이기도하면서 지방사회에서는 기존의 관학인 향교가 그 기능을 상실하고 대신 사학이라 할 서원이 발달하던 시기였다는 점 또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바로 얼마 전 교육당국이 초중등 교육문제 해결의 일환으로 ‘교원정년 단축’을 실시하여 교사들의 사기만을 떨어드리고 큰 성과 없이 물러난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교육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할 교사들을 개혁 대상으로 삼은 교육관료의 도착된 개혁방식이 초래한 폐해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자체 자정능력을 박탈한 것이 가장 큰 손실이다. 최근의 대학개혁 방식도 마찬가지이다. 교수집단 내부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들이 외부에서 당근과 채찍으로 조정한다고 해서 그 근본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은 교육당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현 교육부장관은 취임사에서부터 현재까지 일관되게 ‘공교육 내실화’ ‘공교육의 정상화’를 교육개혁의 기본방향으로 주장해왔다. 문제는 그 내실화 정상화의 방법이 무엇이가 하는 점이다.

대학개혁의 주체는 역시 교수와 학생이다. 이들이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선결 과제이다. 지금까지 교수단체들이 사회의 민주화에 발맞추어 10여년 이래 쉬지 않고 사립학교법 개정과 의사결정기구(교수회)의 법제화를 주장해온 것은 그 첫 단추부터 잘 꿰어보자는 뜻에서였다. 악덕 사학재단이 더 이상 대학에 자리하지 못하고 국공립대학의 운영이 투명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개혁의 성과를 평가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여건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대학개혁의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고등교육을 ‘정상화’하고 교육 내용을 내실화하는 데는 막대한 재정적 지원이 요구된다. 세부 실행계획과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은 어떠한 계획안도 도상작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정부는 고등교육을 방기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립대학이 대학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과 같이 높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한국과 같이 낮은 나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문민정부 이래 교육예산을 지엔피 대비 6%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등 교육재정 확충방안이 정권교체시마다 거론되지 않은 적이 없는데, 그나마 참여정부는 공약(空約)마저 포기한듯하다. 사회적 차원에서 대학에 투입되는 지원도 미미할 뿐이다. 최근 국제정세의 변화로 ‘자주국방’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국방예산 증가가 의심없이 당연한 것인양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전도가 밝지 않다. 자주국방에 대한 관점의 획기적 전환을 용인하는 우리 사회의 사회적 지원체제가 ‘정상화’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가.

7월2일 오후 2시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교육공공성실현․교육개혁촉구 비상국민회의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1. 외국교육기관특별법 폐기 및 교육개방 중단 2. 사학청산법 폐기 및 사립학교법의 민주적 개정 3. 국립대 민영화 및 산학협동법 폐기와 대학구조조정 중단 4. 학생회․학부모회․교직원회의 법제화와 교장선출보직제 실현 5. 사교육 불평등의 근원인 입시제도 개혁 6. EBS 수능과외방송 중단 및 강제보충 자율학습 중단 7. 안전한 우리농산물을 사용한 직영 무상급식 실시 등 일곱가지의 주요 현안을 제기하였으며, 토론 현장에서 비정규직 시간강사의 문제를 추가로 보태 이들을 당면 실천과제로 채택하였다. 정부가 공교육체제를 정상화하자는 얘기요, 공교육을 내실화하자는 얘기이며, 학문의 식민지성을 탈피하고 정체성을 만들어가자는 얘기이다. 그리고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정부가 그 역할을 방기할 때 시민의 힘이 그것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온통 나라 안이 시끄럽다. 국기가 흔들린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국민들은 명분이고 실리고 따질 여력도 남지 않은 듯 지쳐가고 있다. 이제야말로 100년 대계를 전망한다는 교육계에서 새로운 기초를 세우기 위해 나서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