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 울림을 위한 걸음, 수산리벽화분 벽화의 멜북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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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위한 걸음, 수산리벽화분 벽화의 멜북 연주

전호태(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불까. 뜯을까. 두드릴까. 깊고 큰 울림을 듣고 느끼려면 결국 두드려야 한다. 세 사람이 함께 걷는다. 보폭과 속도를 적절히 맞춘 걸음. 두 사람은 멘 채 걷고, 한 사람은 두드리며 걷는다. 북채가 팽팽하게 당겨서 펼쳐진 둥근 가죽위를 두드릴 때마다 안에 갖힌 공기가 덩어리째 더 깊은 곳으로 밀려났다 힘 있게 되튕겨 나오며 가죽을 사이에 두고 바깥 공기와 마주치려 애쓴다. 울림이 큰 소리가 멘 사람, 두드린 사람, 함께 걷던 다른 사람들, 주변에 늘어선 사람들,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 길섶의 짐승들의 귀를 두드리고, 지붕 기와와 기둥, 담벼락과 문고리에 또 다른 울림을 가져온다. 걸음은 계속되고 소리도 이어진다. 북 뒤로 숨겨진 鼓手의 이마에 땀이 맺히고, 홑겹으로 걸친 저고리도 서서히 젖기 시작한다. 북채를 쥔 손아귀에 다시금 힘이 들어간다. 울림은 이어지고 걸음도 계속된다. 어느 사이엔가 소리는 아스라이 멀어지고 크고 화려한 멜북의 무늬만 눈 끝에 남는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모두 21종의 악기가 등장한다. 이 가운데 9종이 타악기이고 그 중 7종이 북이다. 벽화에 보이는 악기의 ⅓이 북인 셈이다. 세운북, 매단북, 메는북, 거는북, 흔들북, 말북, 장고 가운데 메는북은 덕흥리벽화분, 약수리벽화분, 수산리벽화분 등 여러 곳의 고분벽화에 보이며 각각의 모습에 차이가 있다. 덕흥리벽화분의 것은 걸대 위에 일산이 달렸으나, 약수리벽화분의 것은 일산이 없다. 둘 다 두 사람이 북을 메단 대를 메고 있는 상태에서 북을 치게 만들어졌다. 이와 달리 수산리벽화분의 것은 커다란 일산이 달려 있을뿐더러 북의 좌우에 기둥대가 설치되어 있어 메고 다니다가 세워 놓고 연주하는 것도 가능하다. 메단북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사용법도 여러 가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림1) 수산리벽화분 벽화: 멜북

한 자리에 세워 놓고 쓰는 세운북은 국가적인 종교의례, 혹은 지역사회 단위의 제의와 같은 특별한 행사에 주로 쓰였다. 중국 한대 화상석 제의장면 한가운데에 커다란 세운북이 자주 묘사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서왕모를 모시는 제의와 같이 특정한 시기나 지역에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행사에 등장하는 세운북은 커다란 울림만으로도 참가집단 전체를 흥분시켜 종교적 무아지경에 빠져들게 하기 충분했다.

(그림2)산동 등현 서호구촌 출토 한화상석 탁본: 서왕모와 세운북

여러 종류의 타악기 가운데에서도 북은 독주나 합주에 관계없이 집단의 움직임을 통제하거나, 집단의 의식이 특정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악기였다. 집단적 행진이나 군대의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고취악대가 움직일 때에 북은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인식되었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왕자를 사랑한 낙랑공주가 님을 위해 나라 지킴이로 쓰이던 自鳴鼓를 찢고, 아버지의 칼에 죽음을 당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북’이라는 악기에 대한 고대인의 독특한 인식을 읽게 하는 좋은 사례라고 하겠다.

수산리벽화분에 등장하는 메는북은 세운북을 겸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보는 이의 눈길을 끈다. 북이 크고 무거웠음을 나타내기 위함인지 멜대에 매다는 것으로도 부족하여 좌우의 세움대에도 고리를 내어 북을 걸었다. 이 북은 북채로 어지간히 힘차게  두드려도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화가는 북면에 가해진 아름다운 무늬를 가리지 않게 하려고 고수를 북 뒤에 배치하였다. 이런 까닭에 수산리벽화분에서는 덕흥리벽화분이나 약수리벽화분에서처럼 북을 치는 고수의 자세나 표정을 볼 수 없다. 북 아래로 볼 수 있는 것은 통좁은 바지를 입은 고수의 두 다리와 신발뿐이다. 보는 이의 눈길이 자연스레 태양을 나타낸 듯한 북 가운데의 둥근 무늬로 향하게 만들었다.

멜대를 오른쪽 어깨에 걸친 채 가슴을 내밀면서 머리를 크게 뒤로 제킨 앞 사람의 표정과 자세로 말미암아 두 사람이 메기에도 만만치 않은 북과 멜대, 일산의 무게가 묻어난다. 멜북 뒤를 따르는 뿔나팔 연주자와 또 한 사람. 비록 그 뒤 부분의 벽화는 지워져버렸지만, 멜북을 멘 사람들이 여러 종류의 악기 연주자들을 이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산리벽화분의 널방 북벽 한가운데 그려진 커다란 기와집을 향한 여인들의 행렬과 그 뒤를 따르는 악기 연주자들. 벽을 채우다시피 그려진 기와집이 어떤 곳이고, 그 안에 살고 있을 무덤주인부부가 어떤 사람들이기에 이들의 행렬이 북벽을 향하고 있을까. 어떤 행사가 예정되었기에 세운북을 겸할 수 있는 크고 무거운 멜북과 여러 명의 악사들이 동원되었을까. 이 큰 집에서 펼쳐진 행사가 삶을 마무리 짓고 새 삶터를 내다보기 위한 제의였을까. 아니면 부부 바깥나들이를 위한 곡예단 초청 공연에 이은 또 한 번의 큰 놀이판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