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 외주작의 날갯짓, 약수리벽화분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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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작의 날갯짓, 약수리벽화분 벽화

전호태(고대사분과)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凰)이라는 부르는 신령스런 새가 있다. 암수를 함께 부르는 명칭인 봉황은 전설상의 성군 황제(黃帝)의 승천과 같은 특별한 사건을 예시하기 위해, 혹은 성군의 출현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중국의 옛 자전에서는 가슴은 기러기, 엉덩이 쪽은 수사슴, 목은 뱀, 꼬리는 물고기, 이마는 새, 깃은 원앙, 무늬는 용, 등은 거북, 얼굴은 제비, 부리는 수탉처럼 같이 생겼다고 이 새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다. 용이 9종류 동물과 괴수의 특징을 지녔다고 서술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또 다른 문헌에 봉황은 금계처럼 생겼다고도 하고, 공작과 같은 모습을 지녔다고도 한다. 상상 속의 새인 만큼 그 형태를 묘사하는 설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문헌의 글귀에서 역으로 추적하면 금계나 공작을 모델로 삼아 봉황이 창안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때로 10종류 생명체의 특징을 조합하여 봉황이라는 상상 속의 신조(神鳥)를 그리기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신 가운데 남방의 수호신으로 여겨지는 주작은 봉황이라는 상서로운 새의 도상과 이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도상적으로도 두 새를 구별하기 어려운 때가 많고 인식상으로도 겹쳐지는 부분이 많은 까닭이다.

  중국 한대에 유행했던 화상석묘의 묘문에 묘사된 서조(瑞鳥)는 봉황으로 보이기도 하고, 주작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한 화면 안에서도 비슷하면서도 세부의 특징이 다르게 봉황으로 보이는 새들과 암수 주작으로 보이는 신조들이 함께 묘사되는 예도 있다.

  두 종류 신조에 대한 인식과 묘사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심지어는 동시대 한 지역 안에서도 서로 넘나들고 사실상 구별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두 종류의 서조 모두 묘문이나 기물에 묘사될 때는 마주 보는 암수 한 쌍의 새로 그려지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림1) 한대 화상석 묘문의 암수주작

  고구려 약수리벽화분에서 주작은 암수 한 쌍이 아닌 외주작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림2) 약수리벽화분 널방 벽의 외주작

  무덤칸의 앞방이나 널방 입구의 통로가 한쪽으로 치우쳐 공간상의 제약으로 말미암아 외주작으로 묘사되는 예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종종 발견된다. 그러나 약수리벽화분의 경우, 주작은 널방 입구 상단의 넓은 공간 가운데쯤에 홀로 그려졌다.

  암수 한 쌍의 주작을 그릴 수 있는 넓은 화면이 확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작 꽁지깃 뒤 위의 공간에 남방을 상징하는 별자리 하나가 표현되었을 뿐이다. 주작의 발밑에는 널방의 다른 벽들에서와 같이 하늘세계를 상징하는 변형구름무늬가 여럿 묘사되었다.

  5세기 전반으로 편년되는 약수리벽화분은 전형적인 두방무덤으로 벽화의 주제는 생활풍속과 사신이다. 앞방에는 문지기역사, 마구간, 외양간, 방앗간, 부엌, 대규모 사냥장면과 대행렬도, 성곽, 무덤주인과 신하들이 그려졌고, 널방에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무덤주인부부와 시종들이 묘사되었다. 벽화제재의 구성상 앞방의 주제는 생활풍속, 널방의 주제는 사신이라고 할 수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널방 벽 상부에 그려진 사신이 하나 같이 각 방위를 대표하는 별자리와 함께 그려졌다는 사실이다.

  청룡은 해, 방수(房宿), 각수(角宿), 백호는 달, 삼수(參宿), 자수(觜宿)를 동반하고 있으며, 현무는 북두칠성과 직녀수(織女宿), 무덤주인부부 및 시종들과 함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하늘 사방의 각 7별자리가 형상화 되었다는 사신의 성좌기원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좋은 사례인 셈이다.  

  별자리로서의 정체가 불분명한 7개의 별과 함께 묘사된 주작은 두툼하고 긴 몸통, 빈약한 두 발, 부챗살처럼 반원 꼴로 펼쳐진 두 날개, 대각선 방향으로 비스듬히 길게 뻗은 세 갈래 꽁지깃 등 몸체 각 부분 사이의 불균형이 두드러진다.

  벼슬과 부리, 눈 등 얼굴 세부 요소 사이의 조화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주작의 모습에서 여러 종류 생명체의 특징들이 뚜렷이 드러나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몸의 각 부분이 10종류 생명체의 특징을 지녔다는 자전적 묘사에 충실하려고 한 데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주작이라는 신조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말미암은 결과일까. 구사교미형 현무가 무덤주인부부 곁에 자리 잡고 있는 점이나, 방위에 맞추어 표현된 청룡, 백호의 자세로 볼 때 사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나름의 뚜렷한 인식을 바탕으로 사신 묘사가 이루어진 것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청룡, 백호, 현무 역시 몸체 각 부분 사이의 균형과 조화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표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주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약수리벽화분의 사신은 하늘 사방 방위신으로서의 사신에 대한 인식과 음양조화의 상징으로서 사신 구성방식에 대한 이해가 서로 충분히 녹아들지 못한 상태에서 그려졌다고 볼 수 있다. 암수가 짝을 이루어 나타나지 않고 외주작으로만 표현된 것도 이런 까닭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