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 쌍현무가 지키는 내세의 삶터, 대안리1호분 벽화

0
293

쌍현무가 지키는 내세의 삶터, 대안리1호분 벽화

전호태(고대사분과)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사신(四神)으로 불리며 처음으로 도상적으로 완성된 모습을 보이는 시기는 중국의 전한(前漢)시기이다. 이전에도 벽돌문양 등의 형태로 사신이 등장하는 사례는 있지만, 후대에 널리 알려진 것처럼 현무가 뱀과 거북이 얽힌 모습으로 묘사되지는 않은 상태이다.

  전한 초까지 현무는 거북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뱀이 거북을 얽고 있는 기묘한 형태의 동물이 현무라는 이름으로 청룡, 백호 등과 함께 기물에 묘사되기 시작한 것이다. 거북만으로 표현되던 현무가 거북이 뱀이 더해진 모습으로 바뀐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고구려 대안리1호분 널방에는 각 벽에 사신이 나누어 배치되었다. 앞벽 좌우에는 암수주작, 왼벽에는 청룡, 오른벽에는 백호, 안벽에는 현무가 묘사되었다. 사신은 모두 각 벽의 하부에 그려져, 상부에 묘사된 생활풍속과 관련된 제재들을 떠받든 존재처럼 보인다.

눈길을 끄는 것은 안벽 하부에 그려진 두 마리의 현무이다. 뱀과 거북이 얽힌 모습의 현무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며 선 자세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림1) 대안리1호분 벽화의 현무

현무를 뱀이 거북을 얽은 상태인 구사교미형(龜蛇交尾型)으로 나타내는 가장 큰 이유를 문헌에서는 뱀은 수컷, 거북은 암컷의 역할을 하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뱀과 거북에 대한 신화적인 인식에 생물학적으로 불충분한 지식이 더해지면서 성립된 이해에서 비롯된 설명방식이라고 하겠다. 결국 구사교미형 현무는 음기와 양기의 얽힘, 음양조화, 음양질서의 회복 등을 구현하는 존재로 창안되고, 묘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현무를 이루는 뱀과 거북의 표정이다. 단순히 서로 얽힌 뱀과 거북이 별다른 표정 없이 머리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는 듯이 묘사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마치 싸우는 듯 서로를 마주 보며 으르렁거리기도 한다.

  으르렁거리는 정도가 때로 거북은 뱀이 자신을 사냥감으로 잡아 몸으로 얽은 것으로 여기는 듯하고, 뱀은 거북을 포식하려는 듯 보이기도 한다. 언뜻 보기에 음양의 조화가 아니라 포식자와 포식당하는 자 사이의 생존을 건 투쟁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될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한대(漢代)까지의 중국미술의 전통에서는 찾기 힘들던 두 동물 사이의 얽힘에 주목하여 이런 도상의 기원을 초원유목미술의 동물투쟁문 묘사전통에서 찾기도 한다. 동물투쟁문은스키타이에서 시작되어 흉노로 이어지는 내륙아시아 유목문화에서는 가장 일반적인 미술모티프 가운데 하나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중원문화에 소개되고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참고할 만한 견해라고 하겠다. 구사교미형 현무 도상의 조형적 기원이 내륙아시아 미술문화에서 찾아질 가능성을 굳이 배제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서로를 얽은 두 마리의 동물, 동물투쟁문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는 구사교미형 현무의 뱀과 거북에 ‘양’과 ‘음’의 상징체로서의 이미지가 더해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전한시기에 체계화 되고 우주자연, 천지만물의 운행원리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음양오행론이 사신인식에 적용되고, 사신신앙의 이론적 기초로 자리 잡게 되는 것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남방의 기운이 암수주작으로 형상화 되어 음양조화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면, 북방 하늘의 음양질서 회복은 무엇으로 이루어낼 것인가. 두 마리의 거북인가. 그런데 거북에 암수를 상정할 수 없다면 어떤 방법으로 음과 양의 만남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 아마도 이런 문제들이 제기되고 해답이 찾아졌을 것이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 사이의 먹고 먹히는 관계, 혹은 신화적 괴수와 동물들 사이의 싸움을 형상화 하는 데에 초점이 두어졌던 동물투쟁문에서 거북과 맞닥뜨릴 만한 존재로 뱀을 찾아냈는지, 고래로부터의 생물학적 지식이나, 신화적 변형론에서 뱀과 거북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상정하게 되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어쨌든 전한초의 어느 시기인가 북방의 수호신 겸 우주질서의 재현자로서 거북과 뱀이 짝을 이룬 새로운 신수의 도상이 창안되어‘현무’의 진정한 모습으로 여겨지게 되었음은 거의 확실하다고 하겠다. 암수주작과 제대로 짝을 이룰 수 있는 존재가 드디어 탄생한 것이다.

  전한 초의 벽돌문양 가운데에는 거북에 뱀이 더해진 모습으로 현무를 나타내는 사례도 보인다. 그런데 주작 두 마리가 상서로운 벽(璧)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는 모습과 짝을 맞추려는 듯이 구사교미형 현무도 두 마리가 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상태로 묘사되었다.


(그림2) 섬서 함양공심전26호한묘 출토 현무문전

  암수 주작과 대응되려면 현무 한 마리로 충분한데, 현무도 마치 암, 수가 있는 듯이 벽돌 한 면에 한 쌍을 표현한 것이다. 벽돌 문양의 구성상 한 쌍을 나타냈을 수도 있고, 구사교미형 현무가 지니는 음양론적 의미가 충분히 인식되지 못해 나타난 현상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음양조화를 강조하기 위해서거나, 강렬히 소망한 결과일 수도 있다.

  대안리1호분 벽화에서도 현무는 한 쌍이 그려졌다. 전한 초의 벽돌문양에 보이는 현무의 거북과 뱀이 서로의 머리를 마주 보지 않는 것과 달리 대안리1호분 벽화의 쌍현무는 뱀과 거북이 서로의 머리를 마주 본다. 더욱이 마주 보는 두 거북을 감은 뱀은 상대 거북의 뱀과 다시 한 번 몸을 얽은 다음 자신이 감은 거북을 향해 머리를 내밀고 으르렁거리는 듯이 보인다.

  벽 상부에 그려진 무덤주인부부의 내세 삶을 지켜주는 존재, 우주적 음양질서의 회복과 유지를 담당하는 신수로서의 이미지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려는 화공의 의지에서 비롯된 표현일까. 아니면 전한 초의 벽돌문양 쌍현무 표현에서 상정된 현무에 대한‘음양론적 이해의 부족’으로 말미암은 그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