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 신분을 알리고 사귀를 쫓는 도구, 안악3호분 벽화의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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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을 알리고 사귀를 쫓는 도구, 안악3호분 벽화의 부채

전호태(고대사 분과)

  예부터 바람은 신이 일으키는 것이라고 믿어 왔다. 상서로운 새 봉(鳳)의 원뜻은 바람이다. 한 번 날갯짓으로 구만리를 난다는 대붕(大鵬)이라는 새의 본래 정체도 아마 태풍과 같은 큰 바람일 것이다.

  사람이 쓰는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 부채도 ‘바람을 일으키는’독특한 기능 때문에 바람의 힘을 지닌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옛 신화나 설화 중에 부채에 바람의 정령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설명하는 부분도 있을 정도이다.

  부채에 특별한 기능과 의미를 부여하는 관념에서 비롯되었겠으나 부채는 주인의 신분이나 지위를 알리는 도구로도 쓰였다. 조선시대에 임금님은 단옷날 신하들에게 단오선(端午扇)을 하사할 때에 벼슬의 품수에 따라 부챗살의 골수를 맞추어 내렸다. 때문에 주인이 사용하는 부챗살의 촘촘하고 성긴 정도로 벼슬의 높낮이나 신분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부채 끝에 다는 패물로도 신분을 알 수 있었는데, 비취나 호박, 서각(犀角)이 달렸으면 벼슬이 높은 이고, 옥이나 쇠뿔이면 그 다음이며 쇠붙이면 품이 낮은 벼슬아치였다.

  안악3호분 앞방 서쪽 곁방에 그려진 무덤주인은 손에 깃털로 만든 부채를 들고 있는데, 부채 한가운데 귀면(鬼面)이 그려졌다.


(그림1) 안악3호분 벽화: 무덤주인과 깃털부채

  4세기 당시 공작이나 꿩의 깃털로 만든 쥘부채는 아무나 구하여 사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부채를 만드는 데에 사용된 재료의 종류만으로도 사용자의 신분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부채에 묘사된 귀면은 얼굴 세부까지 상세히 표현되었는데, 형태로 보아 도철문(饕餮文)이나 용면문(龍面文)에서 비롯된 듯하다. 벽사를 위해 그려진 이런 종류의 귀면은 안악3호분의 앞방과 널방 사이의 돌기둥의 머리 부분에도 세부 형태를 달리하면서 등장한다.

  무덤주인이 이런 종류의 깃털부채를 손에 쥔 채 정좌한 모습은 안악3호분 이외의 고분벽화에서도 찾아진다. 408년의 묵서묘지명을 지닌 덕흥리벽화분의 주인공 진(鎭)도 이런 종류의 부채를 오른손에 든 채 13군태수와 장군의 하례를 받고 있는데, 안악3호분 벽화에서와 같이 정교하지는 않으나 부채의 가운데에 귀면이 표현되었다.


(그림2)덕흥리벽화분 벽화: 무덤주인과 깃털부채 

  두 벽화고분의 주인공은 각각 회랑 대행렬도의 수레 안에 앉아 있거나, 널방 북벽의 탑상에 정좌한 상태에서도 오른손에 깃털부채를 들고 있다. 태성리1호분의 주인공 역시 오른손에 깃털부채를 든 채 탑상(榻床) 위에 앉아 있다.

  벽화의 모사선화만 알려진 상태여서 부채 안에 귀면이 그려졌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태성리1호분 주인공의 부채에 귀면장식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4세기 중엽 전후부터 5세기 초에 걸쳐 만들어진 이들 벽화고분의 무덤주인에게 깃털부채는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자 벽사를 위한 도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부채에 벽사의 기능이 있다고 믿어졌음은 지금도 민간에서 행해지는 굿거리에 필수적인 제의기구의 하나로 늘 등장하는 데에서도 확인된다. 무당이 굿에서 사귀를 쫓고 신명을 불러들일 때에 부채는 반드시 있어야 할 제의기구로 여기는데, 이때에 사용되는 부채를 보통 무선(巫扇)이라고 부른다. 어떤 기구에 좋지 않은 것을 쫓아내는 기능이 있으면 좋은 것을 불러들이는 힘도 있다는 식이다.

  동화 ‘빨간 부채, 파란 부채’에 등장하는 코를 길게 했다 짧게 만드는 부채의 신비한 힘도 알고 보면 부채에 있다고 믿어진 벽사 능력의 확대 해석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제액(除厄)의 기능이 있다면 당연히 초복(招福)의 능력도 뒤따르지 않겠는가.

  중국의 위진시대에 도교의 체계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전통적 무속신앙에서 비롯된 부채의 주술적 기능에 대한 믿음도 도교신앙의 일부로 자리 잡는다. 신선이 지닌 신통력도 선계의 부채만 있으면 행사할 수 있다고 믿어졌고, 평범한 사람도 이런 부채만 있으면 비범한 인물이 되어 제2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민간에 널리 퍼지기도 했다.

  위진시대의 제왕들이 꿩깃으로 만든 치우선(雉羽扇)을 제왕의 상징처럼 들고 다닌 것도 특별한 종류의 부채에는 신통력이 있다는 민간의 믿음을 통치권과 연결시켜 이해한 까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삼국시대 촉의 제갈량이 삼군을 지휘할 때에 백우선(白羽扇)을 손에 들고 이를 지휘봉처럼 썼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것도 부채에 대한 신선가의 해석, 도교적 인식과 이에 영향을 받은 민간신앙이 서로 얽히면서 나타난 현상 가운데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안악3호분의 주인공이 손에 들고 있는 깃털부채 역시 삼국 및 위진시대 중국사회에 널리 퍼져 있던 부채에 내재한 주술적 힘에 대한 믿음, 이런 믿음에 얽혀 만들어지고 회자되던 이야기나 이에서 비롯된 관습과 불가분의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보아도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