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 삶터를 지키는 표정, 소리, 몸짓, 통구사신총 벽화의 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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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터를 지키는 표정, 소리, 몸짓, 통구사신총 벽화의 귀면

전호태(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동경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와 자릴 보니 가라리 넷이러라

둘은 내해이언만 둘은 뉘해인고, 본디 내해이언만 빼앗기니 어이할꼬.

『삼국유사』「처용랑과 망해사조」에 전하는 처용가이다. 동해 용왕의 일곱 아들 가운데 하나가 헌강왕을 따라 신라의 서울 경주에 들어와 왕을 보필하다가 역신(疫神)이 아내와 동침한 모습을 보고 이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처용의 이 넓은 도량에 감복한 역신이 처용의 모습 그림만 보아도 얼씬 거리지 않겠다고 맹세하자 이를 알게 된 민간에서 사귀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고자 문에 처용의 형상을 그려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의문스러운 것은 역신은 왜 처용의 모습 그림만 보아도 ‘걸음아 날 살려라’하게 되었는지, 처용의 모습은 실제 어땠는지이다.

 

중국의 신화전설 가운데에는 문신(門神)의 유래에 관한 재미있는 내용이 전한다. 『산해경(山海經)』등 중국의 옛 문헌에는 모든 귀신의 출입처인 동해 도삭산(度朔山) 대도수(大桃樹) 아래에 신다(神茶)와 울루(鬱壘)라는 신인(神人)이 지키고 서 있다가 오가는 귀신 가운데 악귀(惡鬼)는 붙잡아 호랑이에게 먹게 했다. 이를 알게 된 민간에서 문에 두 신인의 모습을 그리거나 호랑이의 형상을 그려 붙여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신다와 울루는 후한대 중국에서는 보편적으로 숭신된 문신으로 대개의 경우 새끼줄과 복숭아가지, 칼을 든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한 가지 의문부호가 제기되는 것은 실제 후한대에 다수 만들어진 화상석묘에서 문짝에 해당하는 부분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것은 두 문신이 아니라 귀면을 연상시키는 험상궂은 얼굴이 문고리를 물고 있는 모습이다.

(그림1) 한화상석묘 묘문 화상: 포수함환(鋪首銜環)

집안의 통구사신총에는 귀면의 형상을 한 존재의 정면상이 여러 곳에 보인다. 널방 천장고임 2단의 남북 모서리 부분과 제3단의 남쪽 고임돌 서쪽 부분에 한 차례씩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남쪽 고임돌에 그려진 것은 곁에 ‘담육부지(噉宍不知)’라는 글까지 쓰여 있다. 입을 크게 벌려 혀를 길게 내밀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앞으로 나아오는 듯한 자세의 이 존재는 ‘고기를 씹는다.’ 라는 뜻의 ’담육’이라는 글이 풍기는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듯이 보인다.

(그림2) 통구사신총 널방 천장고임 남측벽화: 귀면(鬼面)

 

정확히 무엇을 나타냈는지는 알기 어려우나 죽은 자의 쉼터이자 내세 삶의 공간이기도 한 통구사신총의 내부를 지키는 역할을 부여 받은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이것을 보는 눈길이 두려움에 빠지게 하고자 험상궂게 그려진 존재들은 통구사신총 외의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여러 차례 찾아진다. 안악3호분의 경우, 널방과 앞방의 경계를 이루도록 세워진 돌기둥들의 머리마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한껏 드러낸 존재들이 하나씩 그려졌고, 집안 환문총에는 널길 좌우벽에 무덤 안으로 들어서는 자들에게 덮쳐들 듯한 자세의 무덤지킴이 신수(神獸)들이 한 마리씩 그려졌다. 수산리벽화분을 비롯한 몇몇 고분의 널길 벽에 묘사된 것은 무덤을 지키는 장수나 역사들이다. 긴 창이나 칼을 들고 서 있기도 하고, 침입자를 손으로 낚아채서 내동댕이칠 것 같은 자세로 입구 쪽을 노려보고 있기도 하다. 표현된 모습이나 형태, 자세는 다르지만 하나같이 지키는 자들인 것이다.

후한 화상석묘 묘문에 새끼줄과 복숭아가지, 칼을 든 모습의 문신들이 표현되기 보다는 은주(殷周)시대의 도철문(饕餮文)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귀면이나 괴수의 얼굴이 즐겨 새겨진 것도 사악한 기운으로부터 무덤을 지키는 자에게 자연스럽게 따라 붙어야 할 이미지가 우선 고려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 민가의 대문에 붙여질 그림으로도 사람 형상의 신인보다는 귀신을 씹어 먹었다는 호랑이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 더 선호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라인들이 액막이를 하고자 문 앞에 붙였다는 처용의 그림도 그 형상은 귀신의 눈으로 무섭게 노려보며 입을 크게 벌려 으르렁거리는 용의 얼굴, 곧 용면(龍面)이었을 것이다. 용왕의 아들인 만큼 처용의 실체는 용이었을 것이고, 아마도 역병을 일으키는 귀신인 역신은 용의 아내를 건드렸음에도 용에게 씹어 먹히지 않고 살림을 받자 이마의 진땀을 훔쳐내며 앞으로는 용의 얼굴 그림만 보아도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겠다고 맹세했는지도 모른다. 뿔은 사슴 같고, 머리는 낙타 같으며, 귀신의 눈에 뱀의 이마를 지닌 용의 얼굴을 정면상으로 나타낸다면 일상에서는 보기 힘든 특별한 형상이 될 것이다. 통구사신총의 괴상한 정면상도 그 본래 나타내려 한 것이 용면인지, 용면을 모델로 삼아 표현한 귀면인지, 아니면 용면이기도 하고 귀면이기도 한 것인지 후인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아마 그 정체는 이 그림을 그린 고구려의 화가도 규정하기 곤란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