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 백호가 차지한 사냥터, 수렵총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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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가 차지한 사냥터, 수렵총 벽화

전호태(울산대 역사문화학과)

한 아이가 하늘의 정기를 받고 세상에 났다. 알에서 나왔다는 소문도 있고, 그 어머니가 빛을 쐬고 아이를 배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활을 잘 쏘아 이름보다는 명궁이라는 별명으로 더 자주 불렸다. 부여말로 명궁은 주몽이다. 왕궁에서 태어났고 왕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만 주몽은 서자였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서자, 인기는 있으나 별궁에서 지내는 후비의 아들. 주몽은 결국 몇몇 친구와 부여의 왕궁을 떠난다. 부여 변방의 작은 나라 한 귀퉁이에 겨우 발 뻗을 곳을 정한 동부여 망명객 무리. 졸본부여의 왕이 내준 한 뙤기의 땅에 주몽은 ‘고구려’라는 이름의 작은 깃발을 꽂았다. 150여 년 뒤, 고구려는 해동 북방의 강자가 되었다. 졸본부여는 고구려의 한 지방이 되었고, 동부여는 고구려의 위세에 눌려 지내는 변방세력으로 전락한다. 이제 고구려는 해동의 새로운 패자로 우뚝 설 것을 꿈꾼다.

생활풍속은 고분벽화의 가장 일반적인 주제이다. 고구려 고분벽화 역시 초기의 주제는 예외 없이 생활풍속이었다. 무덤에 묻힌 이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 누렸던 풍요와 여유, 함께 지냈던 사람들, 사람들과 어울려 겪었던 의미 있는 사건들, 주변의 풍경들이 생활풍속을 주제로 한 고분벽화의 개별 제재들이었다. 땅의 일들은 벽에 그려졌고, 하늘에서 보았거나 하늘에 있다고 믿었던 것들은 천장고임에 표현되었다. 해와 달, 별자리, 날개 달린 짐승이나 아름다운 새,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선들이 무덤 칸 천장고임에 묘사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언제인가부터 천장고임의 한 귀퉁이에는 청룡, 백호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림1) 무용총 널방 천장고임 벽화: 하늘세계

 

동방의 별자리들, 서방의 별자리들이 각각 머리를 이루고, 등과 허리, 다리가 되어 모습을 드러낸 결과이다. 청룡, 백호는 하늘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새로운 구성원의 하나일 뿐이었다. 주작에 이어 현무도 자연스럽게 하늘세계의 새 가족이 되었다. 생활풍속이라는 커다란 주제 안에서 고분벽화의 하늘세계는 보다 풍요로워지는 듯이 보였다.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사신은 고구려에서 가장 선호되는 고분벽화의 주제로 자리 잡는다. 생활풍속은 사신에 부속되는 제재로 흔적만 일부 남기게 되었고, 한 때 풍미했던 연꽃 중심의 장식무늬도 어느 사이엔가 무덤칸의 한 부분을 장식하는 무늬로만 여겨진다. 오래지 않아 고구려 고분벽화는 사신만으로 장식된 사신도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수렵총은 사신이 고분벽화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주는 벽화고분의 하나이다. 현 남포시 와우도구역 화도리(옛지명: 평남 용강군 대대면 매산리, 평남 온천군 화도리)에 있는 수렵총은 1913년 발견 직후에는 무덤 널방 벽에서 발견된 사신으로 말미암아 매산리사신총으로 불렸다. 북한에서는 현재 사냥무덤으로 불린다. 조사 당시 널방 천정 동남쪽은 파손되어 있었고 남벽 상부에는 도굴 구멍이 뚫려 있었다. 외방의 돌방무덤인 무덤의 널방 동벽에는 청룡과 기마인물, 해가, 서벽에는 백호와 사냥도, 달이 그려져 있었다. 널길이 동쪽으로 치우친 남벽에는 한 쌍의 주작을, 안벽인 북벽에는 쌍현무와 무덤주인부부, 말과 인물을 배치하였다. 천장고임은 구름무늬와 넝쿨무늬로 장식되었다. 이 무덤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사신과 생활풍속 장면의 배치 및 표현방식, 벽화구성 안에서 지니는 개별 제재의 비중이다. 널방 동벽과 서벽의 벽화에서 청룡과 백호가 지니는 제재로서의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림2) 무용총 널방 천장고임 벽화: 하늘세계

 

사실상 벽면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두 신수가 다른 제재를 위해 남긴 공간은 길게 뻗은 등 위쪽이다. 청룡, 백호가 그려진 뒤 비어 있는 공간은 그리 좁지 않지만 화면 구성상 이 부분은 부수적으로 남겨진 공간에 해당한다. 청룡, 백호가 자리한 곳의 성격을 결정짓는 해, 달이 벽 가운데 상단에 그려졌는데, 해, 달을 나타내는 원 안의 세발까마귀나 달두꺼비 모두 특정한 상징기호가 되어 공간에 붙박인 존재이다. 여전히 남겨진 화면의 한 부분에 기마인물이 그려졌고, 사냥장면이 묘사되었다. 청룡의 머리보다 조금 더 큰 기마인물상은 꼬리 근처에 표현되었고, 암수 두 마리 사슴을 뒤쫓으며 활을 겨눈 기사는 화면 한가운데 그려졌다. 하나 뿐인 기마인물은 대행렬에서 떨어져 나온 듯 외로워 보이고 기마사냥꾼과 사슴 두 마리는 대규모 사냥도에서 이 부분만 옮겨진 듯이 보인다.

남벽에는 암수주작 외에 다른 것이 그려지지 않았다. 생활풍속의 다양한 제재들, 행렬이나 씨름, 부엌이나 외양간, 수레를 둔 차고 같이 일상의 모습, 삶을 위한 시설들이 전혀 표현되지 않았다. 남방의 수호신 주작에게 저들의 자리를 잃은 것이다. 북벽에는 무덤주인과 세 사람의 부인이 화면 한가운데 그려진 장방 안에 자리 잡았고, 두 마리 현무는 부속품처럼 장방 바깥의 한편에 조그맣게 그려졌다. 북벽 화면의 주인공은 무덤주인부부이며 쌍현무는 이 네 사람의 주인공을 지키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일종의 경호원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수렵총의 널방 네 벽, 동벽과 서벽, 남벽과 북벽에서 사신이 지니는 화면상의 비중과 역할은 이처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남벽은 이미 주작의 세상이 되었지만, 동벽과 서벽은 아직 청룡과 백호만의 세상이 아니다. 북벽의 현무는 이제 겨우 무덤주인의 수호자로서의 위치를 확보했을 뿐이다. 5세기 후반으로 편년되는 수렵총 널방 벽화에서 앞 시기에 유행했던 생활풍속의 일반적인 제재들은 더 이상 채택되지 않는다. 생활풍속이 그려지던 자리를 사신이 차지하게 된 때문이다. 청룡, 백호가 천장고임을 떠나 벽으로 내려오면서 고취악대를 동반하던 대행렬은 위축되었고, 산야를 내달리는 짐승들을 향해 창을 던지며 화살을 겨누던 사냥꾼 무리의 수는 줄어들었다. 고취악대와 수레가 사라지고 몰이꾼과 도보창대가 물러난 자리, 철갑기병 호위대도 떠나고 산과 나무, 짐승이 없어진 텅 빈 공간 한 끝에 이제 남은 것은 뒤처진 기마인물 한 사람, 사냥의 말미를 장식하는 기마사냥꾼과 사슴 한 쌍 뿐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한 시기를 풍미했던 생활풍속의 시대가 가고 사신의 세상이 왔음을 벽화 속의 주인공은 알고 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