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 말하는 짐승들②, 무용총 벽화의 인면조(人面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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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짐승들②, 무용총 벽화의 인면조(人面鳥)

전호태(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호머의 서사시 오딧세이아에는 세이렌이라는 사람머리의 새가 등장한다. 트로이의 멸망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타카 왕 오딧세우스는 전쟁이 끝나자 귀향을 서두른다. 10년에 걸친 긴 전쟁으로 병사들의 향수는 극에 달해 있었고, 오딧세우스 역시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를 한시라도 빨리 다시 보기를 원했다. 그러나 귀국을 위한 항해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방해로 20년이나 걸리고 만다. 세이렌은 길고도 험했던 항해 길에 오딧세우스가 겪은 수많은 모험 속의 조연 가운데 하나이다.

여자머리의 새 세이렌은 거친 바닷길을 헤쳐 나가던 선원들에게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어 선원들이 넋을 잃게 만든다. 노래에 귀 기울이던 선원들이 제대로 노를 젓지 않는 사이에 배는 세이렌들이 사는 섬 근처의 바위에 부딪쳐 난파하고 만다는 것이다. 오딧세우스는 선원들에게는 귀마개를 한 채 노 젓게 하고, 자신은 돛대에 몸을 묶고 세이렌의 노래를 들으면서 세이렌의 섬을 지나가는 데 성공한다.

영혼의 사냥꾼 하르피이아도 불길한 이미지를 지닌 여자머리의 새이다. 그리이스 신화에서 하르피이아는 인간에 내린 신의 저주를 집행하는 집행관 역할을 담당했는데, 하르피이아들이 살던 섬에 도착한 유명한 아르고원정대는 북풍의 아들들의 도움으로 이들을 멀리 쫓아버린다. 그리이스 신화에서 사람머리의 새들은 사람들에게 재앙을 가져오는 존재였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사람머리의 새는 여럿 등장한다. 무용총 널방 천장고임에는 봉황을 연상시키는 몸에 긴 모자를 쓴 사람의 머리가 달린 새가 그려져 있다.

(그림1)무용총 널방 천장고임 벽화: 사람머리 새

 

천장고임의 다른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런 긴 모자는 신선들이 즐겨 쓰던 것이다. 사람머리의 새는 천왕지신총 벽화에도 보인다. 널방 천장고임에 크게 그려진 사람머리 새의 얼굴 앞에는 먹으로 ‘천추(千秋)’라는 글이 써 있다. 이 새 역시 머리에는 모자를 썼다. 안악1호분 널방 천장고임에 그려진 사람머리의 새도 머리에 모자를 썼지만 곁에는 아무런 글씨도 써 있지 않다. 덕흥리벽화분에는 사람머리의 새가 두 마리 등장한다. 삼산관(三山冠) 형식의 모자를 머리에 쓴 사람머리의 새들 곁에는 각각 ‘천추지상(千秋之像)’, ‘만세지상(萬歲之像)’이라는 글이 써 있다.

(그림2)덕흥리벽화분 앞방 천장고임 벽화: 천추

 

천년, 만년을 뜻하는 천추, 만세는 인간의 무한 장수를 기원하고 소망하는 용어이다. 사람머리의 새 천추, 만세는 무한한 수명을 꿈꾸는 인간의 바램이 형상화된 상상속의 존재인 셈이다.

고대 중국의 신화에서도 사람머리의 새는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산해경』에 소개되는 사람머리의 새들 가운데에는 잡아먹으면 특별한 약효를 지닌 것도 있고, 나타나면 흉한 일이 일어나는 것도 있었다.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에는 날아다니는 반모라는 새는 잡아먹으면 더위 먹은 것을 낫게 하며, 탁비의 깃털을 차고 다니면 천둥이 쳐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주라는 새가 나타나면 그 고을에 귀양 가는 선비가 많아지며, 옹이 모습을 보이면 온 세상에 가뭄이 들고, 부혜가 나타나면 전쟁이 일어난다고 한다. 차조, 첨조가 지나가는 나라는 망했고, 청문과 황오가 모이는 나라도 멸망했다. 중국에서는 사람머리의 새에 대한 이미지가 선과 악, 길함과 흉함 사이를 오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 집대성된 고대 동아시아 신화에서 사람머리 새의 본래의 정체는 ‘신(神)’이었다. 전통적인 동아시아의 우주론에서 땅을 둘러싼 네 개의 바다에는 각각 바다를 주관하는 신들이 있었는데, 동해의 신 우호, 서해의 신 엄자, 북해의 신 우강은 하나 같이 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새였다. 천하의 질서를 방위별로 나누어 관리했다고 하는 오신(五神) 가운데 동방의 신 전욱은 새들의 왕이었으며 사람머리의 새 형상으로 자신을 드러낼 때가 많았다.

그렇다면 『산해경』에 소개된 사람머리 새들을 복용함으로 말미암는 특별한 약효나, 이런 새들의 출현이 가져오는 특이한 현상들은 이런 새들이 지녔던 ‘신’으로서의 힘이나 능력이 세속적으로 해석된 결과일 수도 있다. 사람머리의 짐승들처럼 사람의 모습을 한 신이 되는 데에 실패하고 요괴나 괴물 수준으로 전락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이스 신화 속의 하르피이아나 세이렌들도 마찬가지이다. 한꺼번에 여러 사람을 홀리게 하는 노래를 아무나 부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영혼을 아무나 사냥할 수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무용총과 안악1호분의 사람머리 새들은 신선을 연상시키는 얼굴을 지녔고, 특별한 형태의 모자를 썼다. 천왕지신총의 천추나 덕흥리벽화분의 천추, 만세는 무한한 삶의 화신들이다. 신은 아니지만, 괴물이나 요괴, 약용동물도 아니다. 고대 동아시아 신화에 모습을 드러냈던 신으로서의 이미지와 능력을 아직 일부나마 간직하고 있는 존재인 셈이다. 어쩌면 고구려 고분벽화 속의 사람머리 새들은 신으로 지내던 시대를 되돌아보며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 세상의 변화, 이전과는 달라진 사람들의 눈초리를 안타까운 눈으로 마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