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 대가의 안채 생활, 안악3호분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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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의 안채 생활, 안악3호분 벽화

전호태(울산대 역사문화학과)

안채는 바깥채에 대비되는 명칭이다. 바깥채는 흔히 사랑채로 불린 바깥주인의 주된 거처로 공적 성격을 강하게 띠는 공간이고, 안채는 안주인이 관리하는 가정생활의 중심공간이다. 안채의 주인은 저택의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대내적 존재이고, 바깥 세계와의 관계를 꾸려나가는 대외적 활동은 사랑채 주인의 몫이다. 일상적인 생활공간이 구분되는 바깥주인과 안주인의 만남은 안채 깊숙이 자리 잡은 안방에서 만들어내다시피 한 ‘한가한 시간’에만 이루어진다. 사실상 한 지붕 두 가족인 셈이다.

사랑채니, 안채니 하는 용어에서 사람들은 당연한 듯이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생활정경을 떠올린다. 박물관의 사랑채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선비들의 생활용품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한 지붕, 두 가족을 주제로 한 위의 안채, 바깥채 이야기는 고구려 귀족의 저택구조와 생활방식에 관한 것이다. 안악3호분과 덕흥리벽화분에서 확인되는 귀족 저택의 공간 구조와 기능 구분에 대한 설명이다.

안악3호분은 발견 당시부터 무덤구조, 벽화, 墨書 모두 화제의 대상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은 고구려 초기 생활풍속계 벽화고분이다. 앞방과 좌우곁방, 널방, 회랑이라는 비교적 복잡한 평면구조를 지닌 안악3호분에서 고구려 귀족 저택 안채의 공간구성 및 운용방식은 주로 왼쪽(동쪽) 곁방 벽화의 제재 배치를 통해 확인된다. 왼벽(동벽)의 부엌, 고깃간, 차고, 앞벽(남벽)의 외양간, 마굿간, 방앗간, 안벽(북벽)의 용드레우물. 안채를 중심으로 안뜰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배치되기 마련인 부속건물 및 시설들이다.

조리방과 상차림방으로 나뉜 부엌에서는 시녀 세 사람이 아궁이에 불을 지펴 음식을 조리하고 상차리기에 열중하고 있으며, 계단을 통해 올라가도록 만들어진 고깃간 근처에서는 두 마리의 개가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림1)안악3호분 앞칸 왼쪽 곁방 벽화: 부엌

 

넓은 차고에는 둘레가 트인 주인용 차와 둘레를 가린 부인용 차가 나란히 놓였고 차를 끌어야 할 소들은 외양간에서 여물을 먹고 있다. 사냥이나 전쟁에 나갈 때에 주인을 비롯한 바깥채 사람들이 타고 나갈 말들은 마구간에 매어 있고 마구간 아래 나무방책 앞에서는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시동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하는 중이다. 방앗간에서는 시녀 두 사람이 곡식 찧기에 바쁘고, 용두레우물에서는 두 시녀가 물을 길어 항아리와 구유에 담는 중이다. 넓지 않은 곁방 벽면 각 방향에 묘사된 장면들이지만 고구려 귀족 저택 안채에서 이루어지던 일상의 한 순간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온다.

안채의 주인은 오른쪽 곁방 앞벽(남벽)에 표현되었다. 장방 안 평상 위에 비스듬히 앉은 부인 좌우에는 세 사람의 시녀가 둘러 선 채 시중들고 있다. 화려한 복식과 머리를 한 부인의 얼굴에는 대가 안채 주인다운 위엄과 여유가 배어 있다. 안채 주인인 부인의 얼굴이 향한 오른벽(서벽)에는 바깥채의 주인인 남편의 정면 좌상이 자리 잡고 있다. 머리에는 冠을 쓰고 오른손에 鬼面의 麈尾를 쥔 남주인의 좌우에는 세 사람의 신하와 한 사람의 시녀가 둘러 서 주인에게 무엇인가를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 적거나 명령을 기다리는 중이다. 笏을 쥔 신하 곁에는 門下拜, 簡을 든 신하 곁에는 省事, 붓과 문서를 든 신하 곁에는 記室이라는 墨書詺이 있다. 이들 묵서명은 신하들의 직무와 신분을 알게 할 뿐 아니라 이런 사람들을 거느리는 주인의 신분과 지위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단서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안악3호분 오른쪽 곁방 벽화는 안채 주인과 바깥채 주인의 일상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하는 동시에 안주인과 바깥주인, 남편과 부인이 모처럼 함께 하는 순간을 보여주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남주인은 직속된 신하들의 보고를 받으며, 업무를 판단하고 지시하는 공적인 공간과 영역에서 잠시 벗어나는 순간이고, 여주인은 저택의 각종 시설, 남녀시종, 경제 전반의 관리에서 잠깐 손을 놓는 시간이다. 두 사람만의 편안하고 여유로운 때가 내세 삶의 공간 속에 재현되면서 기대되고 있는 것이다. 덕흥리벽화분 널방 벽화의 배치로 볼 때, 고구려 귀족의 안채에는 마굿간이나 외양간 외에 다락창고도 세워졌고 연못과 정원도 꾸며졌다.

 

 

(그림2)덕흥리벽화분의 벽화배치로 본 저택 구조

 

다락창고는 문헌기록에 고구려인이 집의 부속시설로 마련하였다고 전하는 桴京이다. 연못 근처에서는 七寶供養과 같은 불교적 행사도 개최되었으며, 저택의 안과 바깥으로 펼쳐진 넓은 뜰에서는 馬射戱와 같은 훈련을 겸한 놀이도 이루어졌다. 어떤 이들은 안악3호분 벽화를 보면서 고구려 귀족의 저택 안으로 들어가 1,500년 전 선조들의 바쁜 일상과 마주치는 듯이 느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