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경과 개경사람] 고려 최고의 길몽, 오줌꿈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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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최고의 길몽, 오줌꿈의 진실

 

 

정녕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타인의 의식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확실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가 보다는 무슨 꿈을 꾸는지에 의해서 그를 더 잘 판단할 것이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말이다. 개인 뿐 아니라 한 시대가 무슨 꿈을 꾸는가를 통해서도 그 시대인의 생각, 바램, 욕망, 좌절, 도피, 현실의 합리화등 다양한 모습을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꿈에는 개인의 일상적인 불안이나 소망 등을 반영하는 것 외에도 지역적 문화적 유형에 의해 결정되는 또 다른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오늘날 비행기로 여행하는 꿈을 꿀 수 있는 곳에서 원시인들은 독수리를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을 꿀 것이고, 융(Jung C.G)은 이런 꿈들을 “원형 심상”에 기초한 꿈이라 하였다. 따라서 특정 시대인이 꾸던 꿈의 구조는 때로 시대상황과 의식구조를 나타낼 때가 있다.

 

왕을 생산할 꿈 – 헌정왕후의 오줌꿈

현종의 어머니 헌정 왕후 황보씨는 경종비다. 경종이 훙(薨)하매 왕륜사 남쪽 사저에 출거하였는데, 꿈에 곡령에 올라 오줌을 누니 나라 안에 흘러넘쳐 모두 은빛바다가 되었다. 점을 치니 “아들을 낳으면 일국(一國)의 왕이 될 것이라.” 하니 후(后)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과부인데 어찌 아들을 낳으리요.”라고 하였다. 그러나 후에 안종 욱과 간통하여 아들을 낳았으며 그가 11대왕인 현종이 되었다.

그렇다면 헌정왕후는 정말 이 꿈 덕분에 왕이 될 현종을 낳았을까? 오줌이 온 나라안에 흘러 넘치는 꿈  선류몽(旋流夢)은 과연 왕을 낳을 꿈이었을까?

하늘을 버티는 기둥(비상한 인물)을 낳을 꿈 – 보육,진의의 오줌꿈

고려시대 선류몽의 출현은 고려사 세계(世系)로 거슬러 올라 간다. 고려 세계에 보면 호경은 꿈 속에서 전처와 교합해 강충을 낳았다. 강충의 둘째 아들은 보육인데 꿈에 곡령재에 올라 남쪽을 향해 오줌을 누니 오줌이 천지에 가득 차 산천이 은빛 바다로 변하였다. 이튿날 형 이제건에게 이야기 했더니 “네가 반드시 하늘을 버티는 기둥(비상한 인물)을 낳을 것이다”라 하고 딸 덕주를 주어 처로 삼게 하였다.

보육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둘째 딸 진의는 얼굴이 곱고 재주와 지혜가 많았다. 진의가 막 성년이 되었을 때 그의 언니가 꿈에 오관산 마루턱에 올라앉아 오줌을 누었더니 그 오줌이 흘러 천하에 가득 찼다. 깨어나 진의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다. 진의는 비단 치마를 가지고 그 꿈을 사겠다고 하였고 언니는 그것을 허락했다. 진의는 언니에게 다시 그 꿈 이야기를 하라 하고 그것을 움켜 쥐면서 품에 안는 시늉을 세 번이나 했다.

그 후 진의는 당나라 귀성(貴姓)을 만나 임신하고 그가 떠난 뒤 아들 작제건을 낳았다.

 

3개의 오줌꿈의 진실

고려시대 기록에 오줌에 관한 꿈은 위에 보이는 3번이 전부다. 그런데 이 꿈은 왕을 낳을 꿈, 또는 하늘을 버틸 기둥감을 낳을 꿈이라고 해몽하였으니 왕조시대 최대의 길몽인 셈이다. 그리고 헌정왕후와 진의는 과연 왕위를 계승할 아들을 낳게 된다. 그러면 이런 일이 정말 꿈의 계시로 일어난 것일까?

진의는 작제건의 어머니이다. 그리고 작제건은 왕건 태조의 할아버지다. 따라서 이 꿈은 왕조의 창업과 왕이 될 아들을 계시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주목되는 점은 작제건의 아버지가 당나라의 귀성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다. 이는 호경, 강충,보육으로 이어지던 계보가 사실상 단절됨을 의미한다. 상대가 당의 숙종이라 하나 현실과 부합되지 않으며 선종이라고도 추측하나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진의는 혼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제건을 낳았다. 출발부터 고려 왕실은 혈통상 중대한 결함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현종의 경우도 헌정왕후는 대종(戴宗)의 딸이며 태조 왕건의 손녀다. 경종비가 되었다가 경종 사후 안종 욱과 간통하여 현종을 낳았다. 안종은 헌정왕후의 아버지인 대종과 이복형제간인데 안종과 헌정왕후는 집이 서로 가까와 자주 왕래하다 간통하여 임신하게 되었다. 달이 차도 사람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였는데, 성종 11년 7월 후가 안종의 집에서 자고 있을 때 가인(家人)이 뜰에 섶을 쌓고 불을 질렀다. 불이 크게 붙자 백관이 달려가고 성종이 급히 가서 위문하니 가인이 사실을 고하였다. 안종은 유배를 가게 되고 헌정왕후는 부끄러워 울며 집으로 돌아오다 문에 이르러 태동을 느껴 문 앞 버드나무가지를 부여잡고 아들을 낳고 죽었다 한다. 그가 후에 현종이 되었다. 곧 현종은 경종비인 헌정왕후와 종실인 안종 사이의 불륜의 소생인 셈이다. 고려 34대 왕 가운데 왕의 아들 즉 왕통이 아닌 경우는 현종이 유일하다. 혈통에 하자가 생긴 것이다.

고려왕의 신성성과 오줌꿈의 비밀

이상 3개의 오줌꿈에서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꿈의 결과 왕이 태어나긴 했으나 혈통상 하자가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고려 왕조의 신성함을 훼손하는 커다란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고려시대 왕은 특별히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고려에서는 태조 왕건을 ‘神聖大王’이라 시호하여, 신성성을 부여하였다. 시조 호경은 여자 산신과 부부가 되어 구룡산대왕이 되었고 태조의 할머니는 서해 용왕의 딸인 용녀였다. 즉 남계 조상을 산신, 여계 조상을 용신과 연결함으로써 왕통을 신성화하였다. 산신과 용신의 핏줄을 받은 태조는 신성한 존재이며, 그 신성함은 핏줄이 이어내려 가면서 후손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보았다. 각종 문서에서도 왕은 ‘신성제왕’으로 칭해졌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속에서 왕의 출생과정에 하자가 있다는 것은 왕실의 신성함에 오점을 남기는 것이었다. 따라서 작제건과 현종의 출생과정은 어떤 형태로든 합리화해야 했을 것이다. 오줌꿈은 이런 이유로 등장한 것이 아닐까?

고려 왕실의 세계는 의종때 김관의가 저술한 「편년통록」에 실려 있었는데, 이 때는 각종 상서(祥瑞)와 노인성의 출현, 하늘에서 금거북을 내려 주었다는 등의 신성성을 강조하는 상징 조작이 자주 행해졌던 시기다. 따라서 고대처럼 신화체계로 출생과정을 신비화하기 어려웠던 고려시대에서는 꿈이 퇴색된 신화의 한 부분을 대체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천하를 뒤덮은 오줌은 천하를 지배할 큰 인물을 암시하는 것이며 이런 꿈을 설정함으로서 그가 가지고 있던 혈통상의 하자를 상쇄하고자 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오줌꿈의 원형

이런 꿈의 원형은 신라시대 김춘추와 혼인한 문희의 꿈에서도 나타난다. 산정에 올라가 오줌을 누니 천하가 은빛 바다로 변했다든가 동생이 언니의 꿈을 사는 매몽행위 등이 진의의 경우와 일치한다. 현실적으로 김춘추가 가야계 신 김씨인 김유신의 누이 문희와 혼인하여 김춘추의 왕위계승에 하자가 되었던 점도 흡사하다. 이 경우 역시 왕계가 성골에서 진골로 바뀐 것을 합리화 하는 장치가 필요해 진다. 따라서 신분이 떨어지는 문희가 천하를 지배할 꿈을 사게 됨으로서 왕후가 되는 것을 정당화 한다. 이것이 신라와 고려시대 나타난 선유몽의 출현배경이었던 듯하다. 결국 왕이 신성시되던 고려사회에서 오줌꿈은 신성성에 오점을 남기는 비정상적인 왕위계승을 합리화하기 위한 기재로 기능하였던 셈이다.

꿈은 고려인의 정신생활의 줄거리

이같이 고려시대 기록에 나타나는 꿈은 단지 개인적인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또는 시대적인 사유의 한 부분을 포함한다. 고려인의 삶 속에서 꿈은 출생부터 죽음까지 생활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정신세계의 한 줄거리를 형성했다.

해와 별 그리고 용꿈은 태몽으로 훌륭한 아들을 기원하는 그들의 바램에 부합하였고 달이 땅에 떨어지거나 활과 칼을 맞는 꿈은 죽음을 예고하였다. 성종때 최섬이 김심언의 정수리에서 불길이 치솟는 꿈을 꾸고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거나, 이규보가 꿈에 규성을 보고 과거에 합격했다고 하는 사실등은 출세와 혼인을 통한 신분상승의 염원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리학 수용 이후 사회는 보다 합리적인 사유체계를 형성해 간다. 국왕의 신성성도 하늘이나 神과의 교감을 토대로 하기 보다는 도덕적 완성을 통한 성인화라는 형태로 전환되어 갔다. 따라서 조선에 오면 꿈은 보다 객관화 된다. 세조때 구종직은 꿈을 망녕된 것이라 비판하였고, 정은은 요사스런 꿈 이야기를 해 승진의 기회로 삼으려다 도리어 왕이 유치하게 여겼다는 기록도 있다.

현대인의 꿈을 연구하는 융은 이런 면에서 한 주술사의 의미심장한 고백을 전한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무꿈도 꾸지 않아. 꿈들은 이제 지방행정관을 대신 가졌기 때문이지. 전쟁과 질병 그리고 우리가 생사부지를 위하여 살아왔던 곳에 대하여 이제 지방행정관은 전부 알고 있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보다 합리적인 사회구조와 사유체계가 지배하게 되면서 중세인들도 한 시대의 꿈에서 점차 깨어나게 된 것이다.

    (중세 1분과 이혜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