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이야기] 죽은 조강(祖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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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조강(祖江)

홍순민(중세사 2분과)

강화는 섬이다. 섬이면 뭍에서 건너 가자면 의당 배를 타고 가야 한다. 그러나 요즈음 배를 타고 강화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매우 적다. 모두 차를 타고 간다. 20여년 전까지는 차를 타고 가다가도 김포와 강화 사이를 흐르는 해협― 염하(鹽河)를 건널 때는 차를 배로 건넸다. 그러니 차 안에 있던 사람들도 배를 타고 건너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지금 강화는 섬이면서 섬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를 타고 강화로 들어가지 않는다. 차를 탄 채 다리를 건넌다. 이렇게 가면 물론 배를 타고 가는 것보다 한결 편리하다. 하지만 배를 타고 가면서 느끼는 감흥, 섬이 다가오고 선착장이 바라다 보일 때의 설렘은 전혀 느낄 수 없다. 뭍에서 타지를 여행할 때도 그렇지만 섬 여행을 할 때는 특히나 그런 설렘이 없이 시작하면 이미 여행의 맛은 크게 줄어 버린다. 설렘이 없는 여행은 뒷맛도 없다. 교통체증의 확인과 거기서 오는 짜증만이 남기 쉽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강화를 갔다 온다. 그리고 ‘나도 강화를 가 봤다, 시시하더라’고 말한다.

만약 강화가 시시하다면 그 중요한 이유는, 좀 엉뚱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한강이 막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요즈음 48번 국도를 4차선으로 확장하고 있지만, 여태까지의 진척 속도로 볼 때 그 공사가 끝나려면 아직도 몇 달, 아니 한 두 해는 더 걸릴지 모른다. 평일 시간대를 잘 잡으면 괜찮지만 보통 사람들이 가기 좋은 날, 다시 말하자면 공휴일에는 어디나 그렇듯 강화 길도 웬간히 막힌다. 그렇게 막힌 길, 가다 서다 하는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란 얼마나 무료하고 지겨운가. 그러니 어떤 때는 가면서 이미, 아니면 돌아오는 길에 대상지에 대한 인상은 구겨지고 망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막히는 차도가 아니라 용산이나 마포, 아니면 서강 쯤에서 돛단배를 잡아 타고 한강을 따라 내려간다고 생각해 보라. 멀리 북한산이 멀어져 가고 행주산성이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물결에 흔들리면서 가노라면 풍류객이 아니더라도 흥취가 절로 날 것이다. 이렇게 놀이차 가는 것이 사치스럽다면 잔뜩 짐을 실은 짐배라도 좋고 시커먼 연기를 뿜는 철선이라도 좋다. 아무 배에라도 실려 별다른 흥취없이 그저 한강을 타고 내려가기만 해도 생각이 좀 달라질 것이다. 이 한강 뱃길은 지금은 단지 상상의 길이 되고 말았지만 과거에는 이 길이 강화로 가는 또 다른 중요한 길이었다.

한강이 흘러 내려가다가 왼편으로 통진 땅, 오늘날의 김포군 하성면과 오른편으로 교하(交河) 땅, 오늘날의 파주군 교하면, 실제로는 탄현면 오두산의 통일동산이 마주보는 어귀에 이르러 임진강과 만난다. 그렇게 합수한 두 강은 강화와 개풍 사이를 서북으로 흘러 강화의 서북단에서 다시 개풍과 황해도 연백(延白)의 경계를 이루며 흘러 내려온 예성강(禮成江)과 합수하여 교동(喬桐)을 감싸고 황해로 흘러든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난 이후의 강, 옛날의 통진과 풍덕(豊德), 현재 남쪽의 김포군 월곶면(月串面)과 북쪽의 개풍군 임한면(臨漢面) 사이, 강화와 개풍군 사이를 흐르는 그 강, 정확히 말하자면 해협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그 물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해야 할까.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50,000:1 지도나 25,000:1 지도에는 한강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그 부분을 한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면 임진강이 섭섭할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임진강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옛날에는 무어라고 했을까. 기록을 찾아 보니 조선시대 우리 지리지(地理志)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조강(祖江)”으로 나와 있다. 그 이후 만들어진 다른 지리지나 지도에도 조강으로 표기되어 있는 예가 많다. 그래서 유심히 보니 요즈음 지도에도 김포군 월곶면에도 조강리(祖江里)라는 지명이 있고, 개풍군 임한면에도 상조강리(上祖江里), 하조강리(下祖江里)라는 지명이 있다. 조강―할아버지 강? 왜 조강이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강이 정확한 이름임에 틀림없다.

지금 이 조강은 죽어 있다. 사람들 편에서 보자면 강이든 해협이든 물줄기는 사람이 들어가 배를 타고 다니기도 하고, 물고기를 잡기도 해야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조강은 비무장지대―D.M.Z.가 되어 버렸다. 남쪽도 북쪽도 들어가지 못한 채 서로 총부리만 겨누고 있다. 사람편에서 보자면 죽은 그 조강은 거꾸로 물고기 편에서 보자면 살판 났다. 그래 지금 그 조강은 물 반 고기 반이요, 돌을 던지면 한 보름만에 밑바닥에 떨어진다는 소문이 들린다. 물고기들은 살판 났는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조강은 죽었다. 조강이 죽으니 임진강도 죽고, 한강도 죽고, 염하도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