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이야기] 승천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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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포

홍순민(중세사 2분과)

염하가 뚫린다는 것은 조강이 살아난다는 뜻이다. 조강이 살아난다는 것은 D.M.Z.가 걷히고 남과 북이 연결되는 것, 통일을 뜻한다. 그 날이 오면 인천서 염하를 지나 오른편으로 돌아 조강을 거슬러 한강을 치달아 서강으로, 마포로, 용산으로 이어지는 뱃길이 열릴 것이다. 인천서 서울 가는 뱃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염하 끝에서 왼편으로 돌면 조강을 타고 내려가는 뱃길도 있다. 조강을 타고 내려가는 뱃길과 함께 조강을 건너는 뱃길도 이리저리 적합 곳을 따라 열려 있었다. 우리는 지금 이 뱃길을 거의 잃어 버렸다. 잃어 버린 것만이 아니고 잊어 버렸다. 그 뱃길을 찾으려면 이제는 하는 수 없이 옛 지도들을 뒤져 볼 수 밖에 없다.

조강을 끼고 열려 있던 뱃길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예성강을 거슬러 연안(延安), 배천(白川), 개성(開城)으로 가는 뱃길이다. 예성강 하구의 벽란 나루(碧瀾渡)는 고려 시대 제일의 국제 무역항이었다. 옛 지도들과 지지(地誌)들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다가 한 지명이 번쩍 눈에 띄었다. 강화의 북쪽 해안 가운데 쯤에 있는 승천이라는 이름이다. 기록에 따라서는 ‘昇天’이라고도 하고 ‘升天’이라고도 되어 있지만 앞의 것이 정확한 이름인 듯하다.

강화읍에서 이십리 되는 승천에는 승천진(昇天津) 또는 승천포(昇天浦)가 있었다. ‘진(津)’은 나루요 ‘포(浦)’는 포구니 결국 같은 뜻, 배 닿는 곳이다. {강화부지(江華府志)}라고 하는 정조 연간에 만들어진 읍지를 보니 양서(兩西), 곧 황해도, 평안도에서 서울로 가는 선박들은 모두 이 곳을 거쳐갔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꽤 컸던 뱃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대동여지도} 등 몇 지도에는 그 승천포에서 조강을 건너 맞은편 풍덕 땅에도 같은 이름, 승천포라는 지명이 보인다. 두 승천포는 서로 맞보며 건너 다니는 나루였다. 이 승천나루가 고려 시대 개경에서 강화를 잇는 뱃길이었을 것임은 자명하다. 풍덕에서 개성은 사십리 길이다. 그렇게 보면 강화에서 개성은 줄잡아 70리가 못되는 거리이다. 강화에서 서울이 140리니 그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강화에서 인천보다도 가깝다. 이렇게 보니 고려 시대에 개경에서 강화로 온 것이 저절로 이해가 되었다.

강화의 그 승천포는 지금도 50,000:1 지도에 이름이 살아 있다. 강화군 송해면(松海面) 당산리(堂山里) 박촌말 승천포. 그 곳에는 승천포 돈대도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48번 국도를 타고 강화읍을 지나쳐 가다가 송해면 솔정리에서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301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그 끄트머리 조강가에 있다.

반가운 마음에 차를 달려 갔다. 그러나 지금 승천포는 없다. 아니 죽은 상태로나마 거기 있겠지만 갈 수가 없었다. 가다가 보니 어딘가 검문소에서 해병대 아저씨들이 길을 막는다. 관계자가 아니면 더 이상 갈 수가 없단다. 왜 갈 수가 없느냐고 대들었더니 여기서부터는 민통선이란다. 민통선. 나는 민통선이 철의 삼각지 철원 어디나 아니면 임진각 돌아오지 않는 다리 그런데만 있는 줄 알았다. 한데 강화에도 민통선은 있다. 이렇게 강화로 통하는 중요한 길, 뱃길들은 콱콱 막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