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이야기] 강화의 넉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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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의 넉넉함

홍순민(중세사 2분과)

강화에는 문화 유적과 역사의 현장이 풍부하다. 그러나 강화의 풍부함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강화는 여러 면에서 넉넉하다. 강화는 섬답지 않게 물산, 특히 농산물이 풍부하다. 요즈음에는 정작 강화 본바닥에서는 크게 줄고 대신 인근의 김포, 연천, 포천 등지로 확산되어 나갔지만 그래도 여전히 “강화 인삼”은 명성이 높다. 인삼과 함께 강화의 특산물로 꼽히는 것이 화문석이다. 왕골(莞草)이라고 하는 키가 크고 윤기가 나는 식물을 잘게 쪼갠 것으로 짠 돗자리인 화문석은 한 때는 이름이 드높았다. 아직도 강화에서 가내 수공업으로 생산은 되고 있지만 공장 제품이나 특히 싼 값에 밀고 들어오는 중국 제품 때문에 예전만은 못하다는 소식이다.

또 강화의 특산품 아닌 특산품은 쌀이다. 강화는 섬답지 않게 쌀 생산이 많다. 1년 농사 지어 3년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보장지지로서 높이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밖에 강화에는 이런저런 농산물이 풍부하다. 지금은 그리 큰 장이 아니지만 아직도 강화읍에는 2,7장, 내가면에는 3,8장 5일장이 선다. 그 장은 철에 따라 다르지만 요즈음 같은 가을에는 쌉쌀한 맛이 나는 순무를 비롯해서 각종 농산물과 그리고 인근 바다에서 잡히는 새우젓을 비롯해서 몇 가지 수산물들이 상당히 넉넉한 느낌을 준다.

강화가 이렇게 넉넉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찌 보면 동어반복일지도 모르겠으나 강화에는 논과 밭이 상당히 넓다. 물론 인근 김포와 비교하면 평야가 좁고 비율도 훨씬 낮겠지만, 강화는 김포와는 달리 섬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다른 섬들에 비해서는 논밭의 비율이 대단히 높은 편이다. 상대적으로 넓은 논밭에서 산물이 넉넉하게 생산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논밭이 넓은 까닭은 또 무엇일까? 처음부터 지형이 그렇게 타고난 것일까? 조금은 그런 점도 있지만,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다. 강화도에는 별립산(別立山 400m), 봉천산(奉天山 291m), 고려산 (高麗山 436m), 혈구산(穴口山 466m), 진강산(鎭江山 443m), 길상산(吉祥山 336m), 마니(리)산(摩尼山 469m) 등의 산들이 북에서 남으로 내려 가면서 주욱 늘어서 있다. 그 산들 사이사이에 비교적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다.

그런 점에서 제주도처럼 한라산이 가운데 높이 솟아 있는 것보다는 논밭이 넓게 발달할 수 있는 지형을 타고 났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강화의 논밭은, 특히 논은 타고 난 것만은 아니다. 가만히 보면 강화의 넓은 벌판은 주로 해안가에 있다. 그 논들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고려말 이래 최근까지 사람들이 바다를 막아 만든 간척논들이다. 강화의 넉넉함에는 사람의 노력도 크게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더 크게 보면 간척논을 많이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자연 조건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동해안같이 바다의 경사가 급하고 백사장만 있는 곳에서 무슨 수로 논을 만들겠는가. 강화에 논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해안을 따라 발달한 개펄 덕분이다.

우리는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 개펄을 메워 논을 만드는 것도 정도 문제다. 그것이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소규모로 이루어질 때는 문제가 없지만, 그야말로 바다를 메우는 식의 대규모 “개발”은 자연의 재앙을 불러온다. 더구나 논도 아닌 주택이나 공업 “단지”를 만드는 것은 신중히 따지고 따져서 할 일이다. 아니 따지고 따져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개펄은 얼핏 보면 별로 기분좋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시커먼 뻘흙에 들어가서 놀라고 하면 처음에는 아무도 들어가질 않는다. 그러나 한 명 두 명 들어가서 옷을 버리며 놀다보면 너도나도 들어가 그 뻘흙 속에 살고 있는 게, 조개를 잡느라 정신을 잃는다. 모래 자갈이 섞인 곳을 넘어 부드러운 곳으로 나가면 그 촉감도 그리 나쁘지 않다. “개펄은 살아 있다”던 어느 T.V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개펄은 바다 생태계의 출발점으로서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펄 너머에는 당연히 바다가 있다. 바다도 강화를 넉넉하게 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강화는 섬이다. 섬은 섬으로서 갖고 있는 자기 얼굴이 있다. 비록 강화에는 커다란 항구는 없다 하더라도 석모도를 비롯한 주문도 등으로 이어지는 외포리와 교동을 잇는 창후리와 같은 포구가 있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여나믄 척 고깃배들이 드나드는 작은 포구들도 몇 살아 있다. 그런 점에서 강화는 열린 곳이다.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창구인 이런 포구들은 강화를 넉넉하게 한다. 그러나 1년 농사지어 3년 먹은들 농사는 지을수록 적자라는 농민들의 푸념 앞에서는 이제는 그것이 넉넉함으로 남지 않는다. 아무리 그물질을 해 보아도 쓰레기만 올라오는 인천 앞바다 속 사정은 섬으로서 강화를 우울하게 한다.

농촌이라고 어촌이라고 언제까지나 목가적인 낭만의 고향으로 머물 수는 없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고 농촌 경제를 강화 사정을 개발해야 함은 두말한 나위가 없다. 강화가 인천광역시로 편입되고 나서 이런저런 변화가 있다는 소식이다. 초지와 김포 대명을 잇는 제2강화다리가 놓일 것이라든가, 영종도에 세워지는 인천국제공항에서 강화로 연륙교가 놓일 것이라든가, 강화 해안 일주도로가 뚫릴 예정이라든가 하는 소식이 극심한 정체에 시달리는 38번 국도 사정을 생각하면 반갑지 않을 리가 없다. 다만 그러한 개발이 강화의 웅숭깊음과 넉넉함을 대가로 하는 것이 되지 말기를 바란다. 벌써 개발이라 하여 도로변에 무슨무슨 음식점, 모텔들이 번쩍번쩍 들어서고 있다. 행여 해안에 있는 무너져 가는 돈대의 돌들을 불도저로 쉽게쉽게 밀어 내버리지나 않을까, 혹은 또 강화 북문이나 광성보 초지진처럼 일사불란하고 반들반들한 모습으로 복원 정비하지나 않을까 지레 걱정이 앞선다.

강화의 역사와 문화 그 넉넉함을 잘 보존하여 강화가 통일된 후 교통과 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하기를, 함경도에서부터 제주도까지 팔도 각지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와서 구경하고 공부하고, 인천국제공항을 드나드는 외국인들도 일부러라도 짬을 내서 강화에 들러보지 않으면 한국에 갔다 왔다고 말하지 말라는 말이 나오기를 꿈꾸는 것으로 강화 사람도 아니면서 강화 사람 행세를 하며 아는 체 한 데 대한 변명을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