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이야기] 강화도 서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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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서해안

홍순민(중세사 2분과)

정수사에서 다시 내려와서 348번 도로를 만났을 때 오른쪽, 포장되지 않은 쪽으로 접어들면 오른편으로 마니산을 끼고 왼편으로 강화의 서남단 해안을 따라 가장 외곽으로 일주하는 길이 된다. 길은 2km 남짓 가다 보면 다시 포장이 되어 있다. 이 길 연변에는 간간이 해안에 봉긋이 솟은 낮은 봉우리마다 돈대들이 대여섯 군데 있을 뿐 특별한 유적은 없다. 그럼에도 이 길을 가는 이유는 가까이는 개펄과 마니산 자락에 안긴 마을들을, 멀리는 바다를 바라다 보는 맛이 좋기 때문이다. 정수사 입구에서 남쪽으로 향하던 길이 크게 한 굽이를 돌아 서쪽으로 향하게 되는 지점, 동막리에는 강화에서는 드물게 작으나마 백사장도 있어 만조 때는 해수욕장 모양을 갖추기도 한다. 거기쯤에서 잠시 머물러 바닷 바람도 쐬고 내키면 백사장을 넘어 개펄에 발도 디뎌보고 하는 것도 섬이면서도 바다에 직접 닿아 보기 어려운 강화 여행에서 특별한 맛보기가 될 것이다.

길이 마니산을 반바퀴 비잉 돌아 정수사 입구에서 12km 쯤 되는 지점에서는 다시 동향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거기 선수리가 있다. 선수리에는 제법 큰 포구가 있고, 그 포구 주위에는 횟집들이 여럿 있다. 광어, 도다리 같은 고급 횟감들은 이곳에서 잡은 것이 아니지만 숭어니 병어니 밴댕이니 삼식이니 하는 좀 못난 고기들은 이곳에서 잡힌 것들이다. 이쪽 황해 바다가 아무리 오염이 되었더라도 어쩌다 한 번이야 어떠랴. 이름도 시원찮은 잡어들이지만 그 나름의 맛과 싱싱함은 그런대로 매력이 있다.

흔히 많이 가는 마니산 입구에서 벌판을 가로질러 돌아 나오면 온수리에서 오는 301번 도로와 다시 만난다. 그 삼거리에서 한 500m 쯤 가면 능내리라는 마을이다. 능내리(陵內里), 능안 마을이라… 답사를 할 때는 마을 이름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능내리라 하면 능이 부근에 있다는 말이다. 도로변에 가릉(嘉陵)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하나 있다. 거기서 한 5∼600m 마을을 지나 올라가면 큰 무덤이 하나 있다. 고려 원종의 왕비, 충렬왕의 어머니 순경태후의 능이다. 능이라고 하지만 조선 왕이나 왕비에 능에 비하면 상설(象設)제도가 사뭇 썰렁하다. 고려의 능이라서 조선시대 이후 중하게 관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강화에는 가릉 외에도 고려 고종의 능인 홍릉(洪陵)을 비롯해서 고려 희종의 능인 석릉(碩陵), 강종의 비 원덕태후의 능인 곤릉(坤陵)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능들은 섬 안쪽에 있고, 꽤 높은 산 중턱에 있어서 해안을 따라 일주하는 여정에서는 특별한 관심이 없는 한 찾아보기 어렵다. 또 찾아 보아도 원래의 모습이 아니라 최근에 다시 만든 것들이기 때문에 일반인들로서는 유적으로서의 가치를 찾기 어렵다.

가릉에서 나와 301번 도로를 5∼6km 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오른쪽 길은 찬우물 고개로 이어지는 208번 도로이고 왼쪽 길이 계속 301번 도로이다. 301번 도로를 따라 다시 5km쯤 가면 외포리 삼거리가 나온다. 거기서 왼쪽으로 접어들어야 외포리 포구이다. 외포리는 강화에서 가장 큰 포구로서 거기서 석모도를 비롯해서 교동도, 볼음도, 아차도, 주문도 등 인근 섬들을 잇는 배들이 나고 든다. 당연히 그에 맞는 포구의 정취가 있다. 갈매기도 끼룩거리고 요것조것 해물들도 있고, 영락없이 횟집도 있고, 요즈음에는 전혀 걸맞지 않는 엄청나게 큰 여관들도 들어섰다. 거기서 배타고 진짜 섬들로 가보면 더 좋겠지만, 그런 여정은 그 자체 별도로 추진해야 할 것이기에 바쁜 우리 일정에서는 이 정도로 줄이고 계속 301번 도로를 타고 강화의 서해안을 달리는 것이 좋겠다.

북으로 달리는 강화 서해안 301번 도로 연변에도 내가면의 고려시대에 만들었다는 커다란 저수지와 그 인근의 고인돌, 조금 더 들어가면 낙조봉의 적석사 등 서너가지 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욕심을 줄이고 그저 도로변 해안에 펼쳐진 너른 벌판을 지그시 바라보며 8km 남짓 되는 길을 쉬지 말고 달리는 것이 좋다. 그러다 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으로 꺾으면 교동도 건너가는 창후리 포구인 바, 그것도 그런 줄이나 알아두고 그냥 오른쪽으로 접어 들자. 거기서 다시 2.8km 동북쪽으로 더 가면 또 다시 삼거리. 여기서는 잠시 고민이라도 하자. 301번 도로는 그 방향 그대로 직진하여 조강가에 가 닿지만 거기는 민통선, 그 길을 따라 가 본들 우리는 돌아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오른쪽으로 꺾으면 그 도로는 다시 서울서 오는 38번 국도이다. 그 38번 도로를 따라 갈 때는 무조건 달리지 말고 도로변을 살필 필요가 있다. 강화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근리 고인돌을 자칫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한 6km 가면 가는 방향의 왼편, 그러니까 중앙선을 넘어 좌회전해야 하는 방향에 작은 주차장이 하나 있다.

고인돌 찾는 이들을 위한 주차장이다. 그 주차장으로 들어가서 오른편에 은행나무 묘목 밭을 끼고 걸어서 100여 미터 들어가면 밭 한켠에 교과서를 비롯해서 책들마다 고인돌의 대표인양 등장하는 그 유명한 부근리 고인돌이 있다. 물론 선수에는 대표 선수만 있는 것이 아니듯이 강화에 고인돌이 이것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 흔적만 남아 있는 것 합하면 80 여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다. 부근리 고인돌 부근에도 몇이 확인되는데 그 가운데는 은행나무 묘목밭 가운데 받침돌만 비스듬히 박혀 있는 것이 있다. 스타에게만 박수를 칠 것이 아니라 벤치나 지키고 있는 부상 선수, 물이나 나르는 후보 선수에게도 가끔은 시선을 주어 볼 일이다.

강화에서는 대표적인 신석기인 돌칼과 빗살무늬 토기 등이 몇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네 문외한들이 신석기 시대의 흔적을 강화에서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신석기 시대 유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이 아니면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도 작고 화려하지도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훼손되고 개발에 밀려났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쉽게 찾아보고 감흥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유적은 청동기시대의 족장들의 무덤인 고인돌-지석묘이다. 고인돌은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발전해가면서 한 집단의 규모가 커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정치적인 체제가 성립되었을 때, 그러한 집단의 지배자인 족장이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고 확인하기 위해서 많은 인원을 장기간 동원하여 커다란 돌을 운반해다가 자신의 무덤을 만든 것이다. 지금 고인돌은 앞뒤를 막았던 돌이 없어서 속이 휑하게 빈 모습이다. 당연히 그 안에 있던 시신은 물론 함께 묻었던 부장품들도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과욕을 해가며 자신의 죽은 몸뚱이 치레를 했던 족장이나 그 역사에 동원되어 피땀을 흘렸을 부족원들이나 이제는 모두 흙으로 돌아갔다.

고인돌은 그렇게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고 있다. 석양빛에 고인돌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분위기가 저으기 그윽하다. 그렇게 사진 한 장 찍고 나면 악착스럽게 서두를 것도 없다. 어차피 강화를 빠져 나가는 길은 막힌다. 강화다리를 새로 놓는 공사에 통진, 김포로 이어지는 38번 국도 확장 공사가 늘 하긴 하는데 몇 년이 지나도록 굼벵이 기어가듯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또 갑곶과 강화역사관은 들러보기 어렵게 된다. 이것도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어 찬찬히 둘러 보리라 미루어 두고 강화다리를 건너자. 그러면서 볼거리도 슬쩍슬쩍 빼고 말을 줄이느라 애를 쓰고 했는데도 예정된 원고 분량이 넘은 듯하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 마디 하는 폭으로 한 대목 더 붙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