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으로 읽는 대한민국』(역사비평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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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으로 읽는 대한민국』을 내면서

박태균(현대사분과)


2009년이었던 것 같다. 3년이 넘게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던 중 더 이상 칼럼을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좀 더 내공을 쌓아야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4주에 한 번 돌아오는 칼럼이 많은 스트레스가 되었다. 또한 칼럼을 쓰면서 학문적 글쓰기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烏飛梨落이라고 해야 하나? 칼럼을 그만두자마자 중앙일보에서 연락이 왔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근처에 사셨던 당시 중앙일보 논설실장께서 역사 칼럼을 한 번 써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시사칼럼이 아니고 역사 칼럼이니까 전공에도 잘 맞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몇 번을 고사하다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몇 번 정도 해 보겠다고 했다가 거의 1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 역사 칼럼을 쓰게 되었다. “중앙일보”의 ‘그 때 오늘’ 코너였다.

   거의 1년 남짓 쓰다보니까 이걸 하나로 묶어봐야 되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물론 1년을 넘어서게 되니 전공이 아닌 분야도 쓰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새로 자료를 모으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꼭 역사비평에서 출간하고 싶었다. ‘그 때 오늘’을 책으로 출간하고 또 그 책을 역사비평에서 출간하고자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추구했던 ‘대중적 역사서술’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유용태, 박진우 선생님과 함께 했던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2011, 창비)를 최근 출간했지만, “한국전쟁” 이후 8년 정도 대중적 단독 저서가 없었던 터였다. 게다가 학교에서의 연구업적 평가 때문에 대중적 글쓰기를 회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중적인 역사서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서가 논문 하나보다도 더 평가를 받지 못하고, 대중적 저서는 평가업적에 올리지도 못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오히려 이러한 작업을 계속하고 싶었다.

   둘째로 나와 내 주위에 있는 동료 연구자들에게는 ‘현재’로 느껴지는 한국현대사가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아주 오래된 역사’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에서의 역사교육은 재미없는 역사교과서에 의존하고 있기에 젊은 세대들에게서 역사가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었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이 점점 더 정치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세대들은 ‘역사’로부터 점점 떠나고 있었다. 아울러 역사를 통한 현재에 대한 성찰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느꼈다. 역사는 ‘현재와의 대화’가 될 때 그 의미가 있건만 시간이 갈수록 역사는 더욱 박제화되고 있었다.

   셋째로 그 동안 역사를 연구하면서 나름대로 느끼고 있었던 역사인식에 대해서 정리해보고 싶었다. 언젠가는 ‘역사란 무엇인가의 재인식’을 써보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에 한국현대사에 대한 제반 사건들을 정리하면서 평소에 느끼고 있었던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역사의식에 대해 초보적 수준에서나마 정리해보고 싶었다. 전체 구성을 ‘그 때 오늘’에서처럼 하루하루가 아니라 각 달 별로 정리하면서 그 시작과 끝에 역사에세이를 넣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꼭 역사비평사에서 출판하고 싶었다. 역사비평은 한국에서 역사대중화를 전문적인 측면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역사대중전문 잡지였다. 그런 역사비평에서 10년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역사비평사가 경영상에서 상당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체 운영과 기획의 문제점도 있겠지만, 역사연구자들이 박사논문에 기초한 전문 서적 출간을 역사비평사에 기대면서, 역사비평사의 사정이 더욱 안 좋게 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단 몇 권이라도 역사 대중서들이 출간되면, 이후에 대중서들이 계속 출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림1] 『사건으로 읽는 대한민국』(역사비평사, 2013) ⓒ역사비평사

   이렇게 원대한 꿈을 갖고 집필을 시작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책을 만드는 작업은 역시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칼럼에 썼던 글들을 그대로 책의 원고로 낼 수 없었다. 칼럼은 한정된 분량 안에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축약과 비약이 많이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칼럼을 일주일에 한 번씩 쓰다보니까 수정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자료를 새로 찾아 내용을 새로 보충해야 했고, 신문에 글을 쓰면서 ‘자기검열’을 했던 부분들 역시 수정해야 했다. 아울러 10월에 시작해서 8월에 끝냈기 때문에 9월의 사건들은 다시 집필을 해야 했다.

   각각의 이슈를 정해서 글을 재정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슈는 권투선수 홍수환과 수풍댐, 그리고 닉슨의 대통령 당선에 대한 글이었다. 권투선수 홍수환에 대한 글은 독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호응을 얻었던 글이었다. 197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홍수환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엄마 챔피언 먹었어’라고 했던 멘트와 ‘4전 5기’의 경기는 살아있는 기억이었던 것 같다. 여기에 더해 레슬링 선수 김일과 군산상고 야구팀은 ‘역전’의 아이콘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점점 더 패자부활전이 없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1970년대 ‘역전’의 기억은 새로운 신선함을 주었던 것 같다.

   수풍댐은 공과대학 선생님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 원래 이 글은 서울대 과학사 협동과정 박사과정에 있는 오선실 선생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글이었다. 한국 전기 120년사 작업을 했던 오선실 선생이 수풍댐에 대해서 몇 차례 발표를 했고, 이에 대한 소개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오 선생으로부터 1948년 북한으로부터의 단전이 남한의 전기 체계에 그렇게 큰 타격을 주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도 알게 되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한 자료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추가하지는 못했다.

   닉슨은 요즘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꼭지였다. 닉슨과 맥카시가 미국의 정치계에 등장한 것이 한국전쟁이 미국에 미친 가장 부정적 영향이었다는 미국 역사학자들의 평가와 함께 닉슨이 대통령으로 활동하다가 쫓겨났던 1970년대 초 한미관계와 한국사회에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켜보고 싶었다. 그런데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이 케네디에게 패배하는 과정에 대해 쓰면서 오류를 범했었다. 아마도 2000년 미국의 대선에서 고어가 부시보다 더 많은 득표를 하고도 선거인단의 수에서 졌던 기억 때문에 그랬던지 닉슨 역시 1960년 고어와 같은 경험을 했다고 썼다. 실제로는 케네디가 좀 더 많은 득표를 했고, 선거인단 수에서도 승리했다. 그런데 독자 중 한 분이 이 부분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오류를 바로잡는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일정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협박(?)’을 했다. 결국 신문에는 이에 대한 정정기사가 나갔다. 아마도 정정기사를 쓰는 것이 칼럼 하나를 쓰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사실 닉슨을 쓰면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방식의 문제였다. 1972년 미국이 중국의 문을 연 것은 닉슨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치가였기 때문에 닉슨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어떠한 미국인도 그의 방문에 대해 ‘좌빨’라고 딱지를 붙이지 않았다. 만약 케네디나 존슨이 방문했다면, 1994년 한국에서 벌어졌던 ‘조문파동’과 같은 제2의 매카시 선풍이 불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사례를 통해서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던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하나의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요인이나 이명박 본인이 북한을 방문해도 누구도 그를 ‘좌빨’로 평가하지 않을 것이며, 무슨 꼼수가 있거나 돈을 벌러 갔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에게는 대북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8년 통일부의 한 회의에서 4대강 사업은 남한에 할 것이 아니라 북한에 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던 터라 더더욱 닉슨의 교훈에 집착하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명박 정부가 많은 부분을 뒤로 돌려놓았지만, 남북관계만은 그렇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결국 이명박과 그의 정부는 극우 보수세력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책이 나오면서 독자들로부터 두 가지 비판을 받았다. 하나는 주제가 너무 국제관계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핵’ 관련 꼭지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는 물론 2011년 3.11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이후에 한국 사회에서 주위를 환기시키고 싶은 의도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공이 한미관계와 국제관계이기 때문에 나타난 불가피한 현상이기도 했다. 둘째로 대부분의 사건이 1980년 이전의 사건들이라 좀 더 최근의 사건들에 대한 서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비판적 서평이었다. 이는 애초에 ‘그 때 오늘’의 칼럼에서 상대적으로 논란이 적은 1980년 이전의 사건들에 집중해 달라는 신문사 측의 부탁 때문이기도 했지만, 1980년 이후의 사건들에 대한 자료들이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문 자료들에 의존해서 글을 쓰는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2권이 또 나와야 한다는 충고(?)를 해 주신 독자도 있었다.


[그림2] 「김종필-오오히라 메모」 ⓒ대통령기록관

   물론 최근 국내에서 새로운 자료들이 많이 공개되면서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들을 게재할 수 있는 행운도 얻을 수 있었다. 대통령기록관에서 공개한 이승만의 영문 편지와 김종필-오오히라 메모, 1970년대 말 행정신도시에 대한 자료들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스탈린이 체코 대통령 고트발트에게 보내는 편지는 북경대 역사학과의 김동길 교수로부터 자료를 얻을 수 있었고, 2010년 프랑스에서 있었던 한국전쟁 60년 학술회의에서 다른 학자들과 함께 토론을 했던 내용이기도 했다.


[그림3] 「임시행정수도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인)」 ⓒ대통령기록관

   또 월별로 사건을 정리한 것은 한편으로 새로운 편집 방식이기 때문에 신선하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대적 순서에 따른 서술에 익숙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의 꼭지들을 시대순으로 재정리하는 것이 학생들의 한국현대사 재인식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충고도 있었다. 지금은 한국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학생들에게 주제별(한미관계, 국내정치, 남북관계, 핵문제 등)로 재정리하는 보고서를 내주고 있다.

   물론 책을 내고 나서도 가장 아쉬운 점은 새로운 역사인식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서 그다지 많은 비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문제의식이 일천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초점을 잘못 잡아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출간 직후에 있었던 ‘인문학(또는 인간학)의 관점에서 보는 한국현대사’라는 대중 강연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던 터라 조금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 한국 현대사 연구가 주로 자료의 실증에만 집중되어 있고, 또한 사회과학적 이론을 접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져 본 것이었다. 인간들이 만드는 역사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제기였다. 또한 ‘인문학’이라는 이름 하에 진행되고 있는 또 다른 상업화에 대해서도 경종을 올려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아직은 내공이 거기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인문학의 위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역사학자들을 비롯한 인문학자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오히려 몇몇 연구자들이 이 위기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현대사에서 일어난 일들은 대개 국가나 정부, 그리고 사회라고 하는 거대 단위의 요소들을 통해서 이론화되고 있지만, 결국 그러한 거대한 요소들도 인간들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인간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이러한 문제의식의 출발점이었다. 예컨대 국가 간의 관계, 즉 국제정치는 지금까지 ‘국가’라는 틀로 이해되면서 이것을 ‘과학’적으로 이론화하려고 했다. 이러한 시도는 근대 이후 학문의 기본적 베이스가 되는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명제에 근거한 것이기도 했다. ‘합리적’이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과학’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탈근대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살고 있는 오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명제의 하나는 ‘인간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좁게는 한국현대사, 넓게는 역사를 연구하면서 새로운 역사적 관점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역사학계에서 좀 더 많은 관심과 토론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이 사회의 현실에 대해서 공헌할 수 있는 역사 연구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이 책을 내면서 바랐던 필자의 바람이었다. 치열한 논쟁이 사라져버린 역사학계에서 자료의 해석문제뿐만 아니라 역사인식을 둘러싼 건강한 논쟁이 다시 한 번 불붙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