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개성상인의 상업적 전통과 자본 축적」(20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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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위논문

「근대 개성상인의 상업적 전통과 자본 축적」
(2012.2 연세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양정필(근대사분과)

  박사학위논문 제목은 「근대 개성상인의 상업적 전통과 자본 축적」이다. 제목에 충실한 논문이라면 ‘상업전통’과 ‘자본축적’을 균형 있게 다루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전자에 많이 치우쳐 있다. ‘상업전통’에 주목한 이유는 개인적인 문제의식 때문이다.

우선 개성상인의 범주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개성상인은 한두 개인 혹은 한두 집안이 아니라 개성을 고향으로 하는 상인 모두를 포괄하는 용어임을 분명히 할 필요를 느꼈다. 즉 ‘개성상인’이라고 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 상인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다르게는 개성을 연고로 하는 상인 모두를 아우른 ‘상인집단’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후자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미흡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논문을 구상하면서는 수천 명 혹은 1만 명이 넘을 수도 있는 개성상인 전체를 포괄한 ‘상인집단으로서 개성상인’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다음으로 상인집단으로서 개성상인이 보여준 강한 생존력의 원인을 찾고 싶었다. 개성상인은 조선초기부터 1950년 6.25 전쟁 발발까지 500년이란 오랜 기간 상인집단으로 존재하였다. 그 기간 동안 그들은 당대 최고 수준의 상인 중 하나였다. 심지어 일제 강점기 주요한 전통 도시들에서 한국인 상권은 일제의 경제적 침투에 크게 흔들리고 있었는데, 개성에서는 일제 자본이 거의 들어오지 못했다. 인삼 주산지 개성은 일본인에게 경제적으로 매우 매력적인 곳이었지만, 개성상인의 상권을 흔들 수는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쟁 후 월남한 개성상인 가운데는 일부는 한국에서 기업가로 성공하였는데, 그들의 기업 경영은 개성상인의 상업 전통에 적지 않게 기대고 있었고 그런 만큼 자신들이 개성상인의 후예임을 자랑스러워했다. 이처럼 개성상인은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 분단 이후의 한국에서도 강한 생존력을 발휘했는데, 그 생존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위 두 문제의식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으로 개성상인의 상업전통에 주목하였다. 상업전통을 통해 접근함으로써 개별 개성상인이 아닌 ‘상인집단으로서 개성상인’을 포괄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상업전통에서 강한 생존력의 원천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개성상인의 상업전통에 주목한 이유는 대개 이와 같았다. 논문에서는 개성상인의 상업전통을 크게 세 부문으로 나누어서 검토하였다. 첫째는 상인 재생산 문제인데, ‘사환’ – ‘지방출상’으로 정리해 보았다. 둘째는 개성상인이 취급한 상품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인삼에 대해 살펴보았다. 셋째는 상업활동에서 혈액순환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금융으로서 ‘時邊’을 검토하였다.


<그림 1> 1935년 7월 고려시보 창립 총회 기념사진  고려시보 관련 인물들이다. 그들은 1930년대 개성의 유력한 자본가(김정호, 공진항 등)이며 신진 엘리트들이었다. 1930년대 개성인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사진 앞쪽 왼쪽부터 윤영선, 공진항, 김정호, 방복진, 2번째줄 왼쪽부터 박상우, 박재청, 김진원, 김재은, 김학형, 未詳, 홍이표, 3번째줄 왼쪽부터 김병하, 진호섭, 이윤수, 未詳, 未詳, 장희순 이다).

논문의 한계라고 하면 상업전통 관련 자료 대부분이 근대 기록이라는 사실이다. 상업전통이 조선시대에도 존재하였기 때문에 당시 기록을 갖고 논지를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게으름 때문에 그 작업을 하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 중요한 상업전통 중 하나인 송도부기를 전혀 다루지 못한 것도 큰 한계이다. 송도부기는 그 자체로 중요한 상업전통이면서 동시에 해당 시기 개성상인의 상업 활동을 여러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기록임에도 능력 부족으로 이를 다루지 못했다. 이 두 문제는 어느 정도 연결된 것이기도 한데 추후에라도 기회를 만들어 보완하고 싶다.

그리고 논문 제목의 ‘자본 축적’ 부분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이는 개별 상인 혹은 개별 가문의 사례 연구를 통해서 접근해야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개성상인과 권력 문제도 제대로 언급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개성상인은 권력에 의지한 상업 활동을 꺼렸다. 개성상인의 경제 활동에서 권력과의 결탁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고유한 인적 네트워크, 상업전통 등이었고, 이를 기반으로 권력과의 결탁 없이도 최고 수준의 상인으로 활약할 수 있었다. 이는 개성상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해명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인데 추후 논문을 통해 검토할 계획을 갖고 있다.

논문을 쓰면서 개성상인을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나름대로 소득이라고 생각한다. 개성상인 연구를 통해 그들이 조선 초기 이래 1950년까지 당대 최고 수준의 상인으로 존재하였고, 분단 이후에도 일부는 한국 사회의 유력한 기업가로 성장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한국사에서 기업가․자본가의 기원 및 성장 배경과 관련하여 기존의 일부 연구 성과와는 다른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즉 한국사에서 기업가․자본가 중 일부는 식민지기에 기원하지 않고 조선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고, 또 그들의 성장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권력과의 결탁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형성해 온 자신들의 고유한 상업전통이었다. 그들은 상업전통의 토대 위에서 근대 경제에 적응해 갔다. 이는 한국사에서 기업가․자본가의 기원 및 성장 배경이 다양하였음을 의미한다. 조금 벗어난 이야기가 되겠지만, 개성상인의 사례는 현재 한국 경제의 성장과 관련하여 그 역사적 배경을 논할 때 조선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성을 제기한다고 생각한다.

박사논문을 제출하였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게 된다. 앞서 언급한 논문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좀 더 욕심을 내서 다른 나라의 전통 상인 집단과의 비교 연구도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논문에서는 중국의 山西상인(晉商). 일본의 오미상인(近江상인)과 간단한 비교를 시도하였는데 이를 더욱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세 상인집단은 고향이 전국적인 유통 중심지가 못 되는 상황에서, 전국 방방곡곡으로 진출하여 상업을 전개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면서도 상업전통에는 차별성이 있었다. 예컨대 산서상인과 오미상인은 소수의 유력 상인 가문이 있어서 몇 세대를 두고 그들이 중심이 되어 동향인을 고용하고 세력을 전국적으로 확장해 갔다면, 개성상인의 경우 유력 상인 가문은 존재하지 않는 반면 끊임없이 자수성가형 상인을 낳을 수 있는 재생산 구조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이해는 추후 보다 엄밀한 검토를 통해 보완될 필요가 있다. 욕심 같아서는 중국, 일본 상인은 물론 유럽, 아랍의 전통 상인집단과의 비교 연구로 확대하여 개성상인의 특징을 보다 명확히 하고 싶다.

석사논문을 쓰면서 개성상인을 만나게 되었으니 벌써 1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부지런했다면 앞에서 언급한 논문의 한계라든가, 보완해야 될 지점들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을 마무리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여유를 갖는 것은 나쁘지 않은데 긴장의 끈을 놓는 것은 경계해야 되는 것 같다.